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56화 (256/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10)

다르에스살람은 무질서한 성장이 곰팡이처럼 번져나가는 도시였다. 세계적인 불황과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끼니가 급한 각성능력자들의 아낌없는 능력 사용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번영의 밑바닥엔 당연히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자들의 음지가 존재했다. 쓰레기와 폐선으로 뒤덮인 해변을 통해 항구도시에 첫발을 내디딘 나는, 해변도로 아래의 비탈에 듬성듬성 드러누워 있는 불사암 환자들을 보며 해적제독 말라크 하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희는 오늘만 사는 자들이 다수인 우리를 절대로 압도하지 못하리라.」

인생의 마지막에 몸 편히 누일 집조차 없는 듯한 불사암 환자들은, 소란스럽게 붐비는 시가지로부터 고작 십 미터쯤 벗어난 자리에서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Kwenda! Kwenda!”

바다에서는 보이지 않던 경찰들이, 여기서는 곤봉을 가지고 다니며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낙오자들을 치우고 다녔다. 죽을 거면 다른 데 가서 죽으라는 것이겠지. 도시 최대의 번화가가 코앞인 곳이고, 외국인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경찰에게 맞아 비척거리며 일어선 각성자 하나는, 나와 내 애들을 발견하더니 비틀비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멋있는 중국인분들. 릭샤 타세요, 릭샤. 나 릭샤 끌어요. 릭샤 타면 우리 도시 해변 돌아본다. 키부코니에서부터 버락 오바마 드라이브까지 왕복으로 다녀와요. 가격 싸다. 속도 빠르다. 나는 튼튼하고 친절하며 달리기를 잘합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는 꼴을 보건대, 펄펄 끓는 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모양. 무시하고 지나가자, 뒤쪽에서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버려두면 오늘 중으로 숨이 끊어질 인간이었다.

릭샤가 무엇인지는 번화가의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각성능력자 인력거꾼들이 곳곳에서 릭샤를 타라고 호객을 하고 있었기 때문.

목적지인 호텔은 해변도로 북쪽에 면해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경찰의 신분 확인과 종업원의 체온 검사 및 각종 백신 접종여부 확인이 이루어졌다.

호텔 내부 주차장엔 헌터들이 끌고 왔을 전술차량과 험지주행용 오프로더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있었다. 8할 이상의 차량에 스폰서 광고가 붙어있어 요란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런 요란함 사이에서, 내 부하들이 가져다놓은 차량들이 시동을 켜놓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엔 임마누일 일행이 끌고 온 차량들도 보인다.

로비로 들어서자 짧은 탐색의 시선들이 이쪽을 훑고 지나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의 직업병이었다.

‘방독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인간이 거의 없군.’

호텔 종업원들을 제외하면, 로비는 질병감염을 걱정하지 않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나와 내 애들이 그렇듯이, 이곳에 온 헌터들은 대부분 모국에서 이런저런 백신들을 접종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백신은 완벽한 예방책이 아니었고, 마법이 돌아온 시대엔 더더욱 그러했다. 질병들의 전염성은 약화되었을지언정 변이는 빠르고 활발해졌으니까.

질병감염 가능성에 대한 헌터들의 무관심은 결국 나만 안 죽으면 그만이라는 마인드의 발로였다. 평범한 사람과는 격이 다른 신체능력과 생리작용, 그리고 회복력으로 말미암아, 각성능력자들을 상대로는 이런저런 감염성 질환들이 본연의 치명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알려진 탓.

하다못해 그 지랄 맞은 중국산 코로나 바이러스조차 예외가 아니다. 각성능력자는 강화계수에 비례하여 감염될 확률이 조금씩 낮아지며, 설령 감염되더라도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깝게 무증상으로 끝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강화계수 2.17 이상인 각성능력자가 유증상 감염자로 보고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노라고.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질병감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맞다. 보균자가 되어 병을 퍼트리고 다니면 감염원 추적이니 뭐니 해서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뻔하잖은가.

각성능력자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호텔 내부에 위험한 질병의 색채가 보이지 않는 건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일이겠지.

임마누일은 야자수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웃고 떠들어대는 헌터들로 인해 굉장히 소란스러운 실내. 다가오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기도 잠시. 마피아 간부는 인사 대신 의외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뭐야, 신비역장이 느껴지네? 자네는 언제 각성자가 된 거야? 나랑 통화를 할 때만 하더라도 각성을 하지 못한 상태였잖아?”

신비역장(Mистический поле)은 마력장을 뜻하는 러시아어권의 대중적 표현이었다. 나는 테이블 앞에 서서 임마누일을 보는 시선을 기울였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그 왜, 소프라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실탄 쓰는 걸로 약한 소리를 했었잖나. 자네가.”

“딱히 약한 소리를 한 기억도 없네만.”

“뭐지?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아무튼 얼른 앉아.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오랜만이구만.”

내게 자리를 권한 임마누일은, 내 몫까지 저가 알아서 주문하겠다며 급사를 불러들였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이랬다.

“여긴 쿠쿠 마칸게가 맛있어.”

“쿠쿠…… 뭐?”

“쿠쿠 마칸게. 여기서 파는 이 동네 전통요리가 딱 두 개밖에 없는데, 하나는 영국 놈들 피시 앤 칩스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질 않고, 나머지 하나가 이 쿠쿠 마칸게라네. 나머지는 죄 인도나 동남아, 중동, 일본 쪽 음식들이라구. 맛이야 좋지만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파는 데가 많은 것들이지.”

“……아무래도 좋으니 시키기나 하게.”

급사는 임마누일이 떠들어대는 중간에 이미 와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쿠쿠 어쩌고 하는 것을 주문한 임마누일은, 저가 가져온 작은 아이스박스로부터 묵직한 보드카를 한 병 꺼내어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스톨리치나야. 3리터.

“여기 콜키지 가능하지?”

마피아 간부가 러시아 억양 진한 영어로 묻는 말에, 급사는 난처한 미소로 화답했다.

“콜키지는 당연히 가능합니다만, 무장한 고객에게 일정량 이상의 술을 파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콜키지 서비스도 포함되고요. 보드카 같은 고도수 증류주는 1인당 25밀리까지만 허용되니, 가져오신 술을 전부 드시는 건 곤란합니다.”

“25밀리를 누구 코에 붙여? 작은 잔으로 한 잔밖에 안 되잖아!”

“그 이상의 음주를 원하신다면 저희에게 무기를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맡겨두신 무기는 접수 시점으로부터 6시간이 경과한 후 귀중품 보관소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사방이 다 무장한 놈들인데 총도 없이 술을 마시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손님. 법이 그렇게 되어있어서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흠…….”

잠시 거칠거칠한 수염을 긁던 임마누일이 급사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고는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꺼낸 달러 지폐들을 흉기처럼 들이대며 하는 말.

“잘 생각해봐, 이 새끼야. 이래도 안 되겠어? 벤저민 프랭클린 선생님들이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있잖아. 이 사람 술 좀 마시게 해주세요, 하고.”

“…….”

홀린 듯이 지폐 다발을 응시하던 급사는, 이내 돈과 술병을 받아 쥐고는 방법을 마련해보겠다며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주변의 시선을 경계하며, 급사는 보온병에 옮겨 담은 보드카를 쟁반에 올려 내어왔다. 보온병의 숫자는 넷이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술을 마셔야 하나?”

내 물음에, 임마누일은 저와 나의 물컵에 술을 채우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식사를 하면서 술을 안 마시면 그게 사람이야? 자네가 싫어할까 봐 한 병만 꺼낸 거니까 너무 그렇게 여편네처럼 굴지 말라구.”

“……그게 그냥 한 병이라고?”

“원래 한 병에 들어있던 거니까 한 병이 맞지. 어이, 너네 와서 이거 가져가라. 파블릭 너도 말이야.”

뒤쪽은 복수의 테이블에 나누어 앉은 저와 내 부하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랫사람들 몫으로 보온병 세 개를 내어주려던 임마누일은, 경태를 위시한 내 부하들이 술을 사양하는 것을 보곤 입술을 구부리며 보온병 하나를 덜어냈다. 알코올에 미친 인간 같으니라고.

임마누일이 잔을 들어 보였다.

“자, 건배하세.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네 사업의 번창을 위하여.”

건배사를 끝낸 러시아인은 제 잔을 물 마시듯 쭉 비워버렸다. 그러고는 입맛을 짭짭 다시며 하는 소리가 이러했다.

“각성자가 되고 나서부터는 술을 마실 때 뜨끈한 맛이 약해져서 아쉬워. 식전에 보드카를 털어 넣었을 때 위장에서 뭉근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열기 말이야. 발칸 176 같은 걸 마셔야 그나마 예전 기분이 좀 나는데, 이건 또 풍미가 내 취향이 아니거든.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예전 같은 만족감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술 이야기는 그만두고 일 이야기나 해보게.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일정은 잡았나?”

입술을 적시는 수준으로만 잔을 홀짝이며 일정을 묻자, 마피아 간부의 입에서 비로소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날짜는 5월 24일에서 26일 사이에 편한 날짜를 고르면 돼. 다만, 오는 길에 통화를 해봤는데 좀 특별한 미팅을 원하더라고.”

마피아 간부가 상체를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춘다. 배경소음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러시아어를 알아들을 잡것들도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나는 만약에 대비하여 점진적으로 두터워지는 흡음결계를 두르고서 되물었다.

“특별한 미팅이라니?”

“자기 관저 앞마당에 야간 공중침투로 들어오래. 최소 서른 명의 이중각성능력자들이 관저 담장 안쪽으로 정확하게 들어와야 한다나?”

“미팅에 앞서 실력을 보겠다는 거로군.”

“응. 그리고 침투를 시작하는 지점은 수도의 바깥 경계로부터 최소 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고, 무장을 얼마나 했는지, 휴대한 장비의 중량은 얼마인지, 예정 도착시각을 얼마만큼 정확하게 준수했는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평가를 내리겠대. 자기는 이번 일에서 매사냥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속도와 은밀성도 중요하게 보겠다 하니 패러모터를 쓰기는 곤란하겠지.”

헌터 업계에서의 매사냥(Hawking)이란 저소음 장거리 비행기술과 그 기술을 활용한 고위험 수렵 행위를 의미했다.

한정된 머릿수의 헌터들로 광범위한 영역을 커버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생 각성체 출현 신고가 접수될 때마다 일일이 항공기를 띄우는 건 다분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일단 돈이 많이 들어가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복수의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 동시에 대응하는 능력도 떨어지니까.

사냥감이 항공기의 소음을 듣고 경계태세에 돌입한다는 부수적인 문제도 있다. 표적이 숲으로 달아나버리기라도 하면 사냥의 성공률은 극적으로 낮아진다.

그래서 헌터들은 동력 윙슈트와 패러모터(Paramotor)를 사냥에 도입했다. 높은 봉우리에 근거지를 두거나, 대형 열기구를 띄워 임시대기소로 삼고, 신고가 접수되면 딱 필요한 인원만큼만 고속으로 활공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속도 측면에서는 윙슈트가 선호되고, 안전성 측면에서는 패러모터가 선호된다.

내가 부하들과 더불어 시험해본 바, 윙슈트 같은 경우 자그마한 추진기 하나만 달아도 수평비행으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고작 일이백 뉴턴(N) 남짓한 낮은 추력으로 무제한적인 비행이 가능한 것이다. 추력을 1천 뉴턴까지 끌어올렸을 땐 좋지 않은 바람 속에서도 시속 25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를 낼 수 있었지. 제한적인 상승비행은 덤으로 따라왔고.

기본적인 추력 자체가 작은 관계로 소음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아예 추진기도 없이 염동력으로 추력을 만들어 내거나, 비행이 끝나갈 무렵 추진기를 꺼버리면 문자 그대로의 무소음 침투가 되는 셈.

제트 바이크나 드론 바이크 따위를 가동할 깜냥이 안 되는 발화·방전 능력자들도 동력 윙슈트와 패러모터를 쓰는 데엔 무리가 없다.

임마누일이 제 잔에 다시금 술을 채우며 물었다.

“침투 전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하라던데, 어떻게, 조건에 맞출 수 있겠어?”

“못할 거야 없지. 영상은 그 자리에서 보고 지우도록 하면 그만이고.”

“오호. 갑작스러운 통보라서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역시 극동회사로군. 역시 극동회사이고 역시 바딕이야.”

내가 이런 쪽으로 준비를 안 해왔을 리가 있나. 광활한 대륙에서 소수정예로 치고 빠지는 싸움을 하러 왔는데. 클라이언트도 이 정도는 예상했겠지.

임마누일이 이어서 묻는다.

“자네는 어쩌겠나?”

“나?”

“그래. 그 사람, 나랑 자네는 그냥 공항으로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 난 애초에 자네가 각성자인 줄도 몰랐고, 설령 알았더라도 한 조직의 수장에게 서커스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글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인상을 강하게 주는 편이 나으려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첫인상을 어찌 주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강한 인상을 주면 역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통령의 행적과 성향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어느새 또다시 잔을 채우고 있는 임마누일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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