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54화 (254/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8)

마법의 재래가 촉발한 경제 불황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와중에도, 차세대 위성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기업들은 일시적인 자금경색과 사업지연을 겪었을 뿐 순조롭게 자신들의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격오지에서 활동할 일이 많은 헌터들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조직의 선단에 설치한 선박용 위성 인터넷 단말은 기대보다 훌륭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기존에도 선박이나 항공기용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스타링크를 위시한 신규 서비스들은 기존의 것들에 비해 백 배 이상 빠른 속도를 뽑아주니 만족스러울 수밖에.

이슬람 성전연합의 사자는 이를 저가 좋아하는 게임하는 데 써먹었다.

“나는 지금 승급전을 치르고 있어요.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싸움이며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싸장님은 조금만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일이 아니라면.”

……승급전?

내가 전화로 용무 있음을 알리고서 선실에 들어섰음에도, 마무르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했다. 쉴 새 없이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에 이따금씩 자판 누르는 소리가 뒤섞인다. 거의 깜박이지 않는 눈과 불규칙한 호흡이 지하디스트의 집중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침대에 걸터앉은 난 다소 어이없는 심정으로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승리」

스피커에서 끝을 알리는 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눈썹 짙은 지하디스트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알라를 찬양했다.

“알라 후 아크바아아아아르!”

쿵, 쿵, 쿵! 각성능력자의 힘으로 연거푸 뛰어오르니, 매번 뛸 때마다 천장에 머리가 부딪힌다. 그러나 피부 아래 흥분의 색채가 가득한 지하디스트는 계속해서 정수리를 박아가며 환희가 흘러넘치는 광란을 이어갔다.

“알라후아크바르알라후아크바르알라후아크바르알라후악발알루악발알락발알락바아아아르!”

허…….

이쯤 되면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아연한 마음이 들 지경. 내 곁을 지키는 경태 역시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엎드려 신에 대한 찬양을 이어가던 지하디스트는, 다시 몇 분이 더 흐르고서야 대화가 가능한 상태를 회복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싸장님. 이제 용건을 말씀하십시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가슴을 들썩이며 하는 말. 나는 한심해하는 감정을 숨기며 물었다.

“게임에서의 승리가 그렇게 기쁘셨소?”

“당연합니다. 어머니가 없는 자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하였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없는 자들?”

“그렇습니다.”

마무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대부분 어머니가 없는 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그들의 어머니, 속이 터져 죽었어요. 소중한 자녀가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종일 게임만 해댔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만큼 한국 게이머들의 실력은 대단합니다. 스스로의 인생과 어머니의 영혼을 샤이탄(사탄)에게 바치고 얻은 실력인 것. 실로 알라의 전사에게 어울리는 대적(大敵)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나는 향상심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최고의 전장에서 가장 흉악한 적들을 무찔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은 알라께서 허여한 것이므로, 내가 불신자들을 상대로 거두는 승리는 그 종류를 불문하고 진정한 신앙의 위력을 증명하는 것이에요. 두고 보십시오. 오늘에 이르러 마스터가 된 나는 언젠가 한국 서버의 정점에 올라 알라를 믿지 않는 한국인들의 열등함을 증명해보이-”

“그만.”

가만히 내버려두니 또다시 흥분상태에 돌입할 기미를 보인다. 손을 들어 말을 끊은 나는, 미뤄두었던 용건을 입에 담았다.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소.”

“말씀하십시오. 나의 귀는 싸장님을 향해 열려있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첫 번째는 이 땅의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의사소통 창구를 만들어두는 것이오. 일단은 외국인 인질이나 정보를 거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엔 보다 심도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게끔. 창구를 만들어 내 부하에게 넘겨주면, 각각의 창구를 이용할 때마다 오가는 금액의 일정비율을 사례로 드리도록 하리다.”

메리옘 바투르 그룹에게 맡기기에는 정신상태 측면에서 못내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고, 누르메멧 칸 그룹에게 맡기자니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할 일감. 여기서는 이런 분야의 전문가인 순혈 지하디스트에게 감시인을 붙여 활용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신앙으로 연대하는 테러리스트들 사이의 국제적 연락망이라는 것도 있을 터이고.

잘만 된다면 정부의뢰를 받은 공능법인으로서의 형식적인 업무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무르는 선선히 내 부탁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싸장님은 정직한 밀수꾼. 싸장님의 사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준일 것이라 믿어요. 그러나 나는 사례와는 별개의 활동자금 지급을 희망해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속도는 활동자금의 액수에 비례할 것.”

“그건 청구하는 만큼 내어드리겠소. 내 부하들이 동행하는 것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동행? 그 부하들은 혹시 푸스하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인 것?”

“한 명은 그렇소. 당신이 하는 일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거요.”

“그 한 명이 혹시 내가 전에 보았던 자들 가운데 하나입니까?”

“전에 보았던 자들이라면?”

“알 까심의 장인들을 중국 땅의 무신론자들에게 데려다줄 때, 싸장님이 대동했던 통역들을 말합니다. 나는 줄곧 그들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신앙의 형제들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싸장님은 내게 그들과 직접 대화를 해볼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누르메멧 칸 그룹의 푸스하 구사자들을 말하는 거로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당신과는 마주친 적이 없었던 녀석이지.”

호오, 하고 의외라는 기색을 드러내는 마무르.

“나는 감탄합니다. 싸장님이 보유한 인적자원의 풍부함에. 진정한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싸장님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싸장님에 대한 나의 평가를 높아지게 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만남은 역시 알라의 인도하심이 틀림없습니다.”

메리옘 그룹에서 차출한 인원이니 진정한 신앙을 가진 자가 아니라 배교자라고 해야 올바르겠지. 메리옘의 언어교육을 가장 우수하게 이수한 학생들 가운데 하나. 녀석에게 경호실 인원을 추가로 붙여 동행시키면, 본인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마무르가 애젊은 위구르인의 실체를 알아차릴 일은 없을 것이다.

“노파심에 말해두겠소만-”

나는 이슬람 지하디스트에게 검은 대륙의 특수성을 주지시켰다.

“원시적인 주술과 우상숭배는 사하라 이남의 문화적인 공통분모요. 이 땅의 믿는 자들이 다소 이교도스러운 언행을 보이더라도 못 본 척 넘어가야 소통이 수월할 거란 뜻이지. 이런 측면에서 내가 당신을 믿어도 괜찮겠소?”

이에 지하디스트는 씨익 웃으며 의외의 가벼움으로 대답했다.

“싸장님은 걱정을 마시라는 거예요. 나는 이미 인도네시아의 형제들과도 어울려본 경험이 있습니다. 미신에 얽매이는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교정이 필요한 것이었지만, 현명함이 남다른 전사인 나는 항상 우선순위를 먼저 고려하였어요. 신앙의 적들과 싸우는 전사는 언제나 승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배교와 같은 중죄가 아니라면, 형제들의 사소한 잘잘못은 보다 여유가 있을 때 바로잡아주어도 무방합니다.”

“바람직한 마음가짐이군.”

“자, 이제 하나를 들었습니다. 나에게 부탁할 또 다른 일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오. 루구루 부족에 속한 자들 가운데 이야기가 통할 만한 형제를 찾아주길 바라오.”

“루구루?”

지하디스트가 슬쩍 시선을 기울인다.

“처음 듣는 자들이다. 그 부족이 진정한 신앙을 믿습니까?”

“일부는 그러하지.”

내가 손짓하자, 경태는 비서실이 조사한 자료를 지하디스트에게 넘겨주었다. 마무르는 영어로 인쇄된 자료를 흥미롭게 읽었다.

“고지대에 머무는 자들 중엔 로마의 교황을 따르는 이교도들이 많지만, 저지대로 진출한 나머지 가운데엔 알라를 믿는 형제들이 많다?”

“다분히 현지화된 신앙이긴 하나, 일단은 그렇소.”

내가 이 부족에 주목한 이유는, 루구루족의 핵심 씨족 중 하나인 「베나」의 우두머리가 「주술사 왕」과 주술대결을 벌인 일곱 주술사들 가운데 하나라는 정보가 들어온 까닭이었다. 대결에서 패배한 후로는 주술사 왕의 심복을 자처하고 있노라고.

이는 어디까지나 현지에 도는 소문을 수집한 것이라 백 퍼센트 확신을 하기는 어렵지만, 고지대의 루구루족 다수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었으므로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바라바이그족도 의심스럽긴 한데…….’

바라바이그는 탄자니아 북부의 평야지대에 기반을 둔 유목민들로, 탄자니아 연방정부와는 심각한 갈등을 겪는 중이었다.

갈등의 원인은 그들이 머무는 땅 그 자체.

조사한 바, 바라바이그족의 전통적인 생활영역은 광활한 탄자니아 전역을 통틀어 밀 농사를 짓기에 가장 적합한 옥토지대였다. 당연하게도 연방정부는 그 땅을 수탈하여 농장을 조성하고 싶어 했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게 된 바라바이그족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연방정부는 그 반발을 음습한 탄압과 비공식적 폭력으로 억누르려 들었다.

뜨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반세기 이상 이어져 온 그 갈등은, 국제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면서 다시 한 번 첨예한 대립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중이었다.

내가 주술사 왕이라면, 궁지에 내몰린 자들의 절박함을 세력 확장의 양식으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다만 여기서는 루구루족의 매력도가 더 높을 뿐.

루구루족 또한 최근 식량관리정책을 두고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루구루족의 땅 역시 대단한 규모의 옥토지대니까. 이쪽은 농경지로의 개간이 완료되어있기도 하다.

여기에 백만을 훌쩍 넘어가는 루구루의 머릿수까지 고려하면, 주술사 왕이 이들을 우선적으로 회유를 하려 들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무르가 입술을 구부린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에요. 꾸란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이든 말이 통할 것입니다.”

“기대하고 있겠소. 가급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찾아주었으면 좋겠군.”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싸장님의 용건은 이걸로 마지막인 것입니까?”

“끝이오.”

“오늘은 시간이 늦었습니다. 그러니 일은 내일부터 착수할 것이에요.”

마무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

“싸장님께선 이만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면 한동안 지상에서 머물러야 할 텐데, 이 나라의 인터넷 환경은 분명 게임을 돌리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복장을 터트리는 레이턴시. 따라서 나는 이 밤을 열정으로 불태우려 합니다. 이제까지 무찔러왔던 자들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결손가정 자녀들이 나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어요.”

“……다 좋으니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하시오.”

“츳츳. 싸장님은 알라의 전사를 얕보지 마십시오. 뛰어난 전사인 나에게 하룻밤의 철야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칠 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 적도 있다. 믿는 자의 정신은 육체를 초월하기 마련이에요.”

어울려주기도 귀찮아지는 헛소리들. 나는 대충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비켜드리지.”

“잠깐.”

“……?”

“다라-아담-켈의 다섯 공장과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이곳에서의 일이 그들을 위한 자원을 잡아먹는 건 아닙니까?”

돌아보면, 마무르는 이제까지의 우스꽝스러움을 싹 걷어낸 모습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소. 마스지드(모스크)의 파괴자들을 치고 위구르인들의 투쟁을 돕는 일에 있어서, 나는 아부 알 까심에게 공언했던 기한을 반드시 준수할 거요. 그것은 내게도 필요한 일이니까.”

미주가 아직 이쪽 방면으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기술자 제2진의 이송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내가 직접 가서 다시 한 번 도착을 지켜볼 예정.

이런 타임 테이블을 짤 수 있었던 배경엔 비즈니스 제트 여객시장의 부상이 있었다. 능력이 뛰어난 각성능력자 헌터들을 적재적소에 빠르게 공수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연비가 높은 중소형 초음속 여객기를 예약제로 운영하는 여객업체들이 등장한 것이다. 구매력 높은 수요자들의 출현이 자연스러운 공급을 낳은 셈.

불황에 시달리던 세계 각국은 신규시장에서 다양한 이익을 기대하며 관련 규제들을 완화해주었다. 세수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겠으나, 나날이 피폐해지는 항공사들에게 산소 호흡기를 달아주는 효과는 있을 테니까. 단순한 경제논리를 떠나, 민간 영역에서 각성능력자 긴급 공수 인프라가 구축된다는 전략적인 이점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시장은 선점하는 자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과거 에어버스가 보잉의 독점을 깨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한국에 판로를 뚫지 못했다면 지금쯤 에어버스라는 기업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터. 각국 정부로서는 다른 나라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규제의 빗장을 풀어줄 수밖에 없다.

위성 인터넷 서비스 산업에 이어, 마법의 시대의 덕을 본 또 하나의 신흥 산업이라 하겠다.

초음속 슈퍼크루징이면 탄자니아에서 상하이까지는 여섯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움직이는 동안에도 통신을 연결하여 사무를 볼 수 있으니,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마무르가 평소에 없던 묵직함을 담아 말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내가 여기서도 싸장님을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와 싸장님이 같은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인 것. 기억하십시오. 알라께선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싸장님이 초심을 지켜야 하는 이유.”

“유념하지. 달리 또 할 말이 있소?”

“없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무르는 이번에야말로 내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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