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53화 (253/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7)

샤크헤드 스티프 충각선의 약점은 후방에 있었다. 쐐기형 장갑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부분들. 여기까지 철갑으로 덮어버리는 수도 있었겠으나, 그랬다간 중량증가로 말미암아 속도가 죽어버렸을 것이었다.

정부가 특별히 허가한 제트 바이크의 무장은 미니건 터렛 하나에 유탄발사기 하나, 70밀리 무유도 로켓 두 발뿐. 하나하나가 제트 바이크와는 별개로 개별적인 획득심사를 받아야 하는 특종장비들이었다.

충각선의 배후를 찌르는 데엔 미니건만으로도 족하다. 연기 속으로 급강하한 나는, 강철쐐기의 후방을 잡은 즉시 노즐을 겨냥하여 트리거를 당겼다.

부우우욱-!

본래 분당 6천 발인 발사속도를 1천 발까지 끌어내렸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간격이 좁아 마치 한 덩어리인 것처럼 뭉개지는 총성들. 비스듬히 꽂히는 연사가 충각선 분사노즐의 옆구리를 갉아먹는다. 고속비행의 운동에너지가 더해진 탄환들은 보통의 사격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탄착지점에서 미친 듯이 튀어 오르는 불꽃들.

충각선의 메인 노즐은 채 2초를 견디지 못하고 파열되었다.

「콰아아아-」

균열을 통해 새어나오는 불길이 없던 방향의 추력을 자아내는 순간, 중심을 잃은 충각선은 맹렬하게 회전하며 대각선으로 튀어 올랐다. 진로가 갑자기 꺾이는 바람에 측면으로 물의 저항을 받아버린 탓. 애초에 고속주행시의 안정성이 좋을 수가 없는 디자인이기도 했다.

체임버에 불을 불어넣던 발화능력자 해적 3인은, 노즐이 손상된 줄도 모르고 몇 번 더 돌격을 시도하다가,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자 탑승구획의 아래쪽 해치를 열고 수중으로의 탈출을 꾀했다.

꼴에 공기통과 오리발, 휴대형 연소 체임버 및 로켓 노즐 세트까지 미리 준비해두었으니, 해적들이 저들의 소굴까지 수중을 유영하여 복귀하는 건 썩 어려운 일도 아닐 터였다.

내 부하들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철갑 피라냐 무리의 돌격을 좌절시켰다. 먼저 대공화망을 걷어내지 않았다면 조금은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일.

쿠우웅!

조향능력을 상실한 두 충각선이 표적 근처에서 충돌하는 굉음. 한쪽은 충격에 못 이겨 선체로부터 탑승구획이 떨어져나갔다. 원래부터 충각돌격이 성공하는 순간에 충격으로 분리되어 수중으로 파고들도록 설계된 구획이었다.

격파당한 충각선의 수에 비례하여 파도 아래를 헤엄치는 해적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이것들까지 잡아 죽여야 해적함대의 전력에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물 밑으로 뛰어들면서까지 전투를 치러줄 의리는 없었다.

해적들도 끈질기게 전투를 고집하진 않았다. 생각건대, 해적들 입장에선 휴대형 대공미사일 등의 공격수단을 보강하여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지 않은가. 어차피 가까운 거리엔 손상된 군함을 수리할 만한 건선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사냥을 포기하더라도 딱히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입힌 피해만으로도, 두 군함은 반년 가량은 수리를 받아야 할 테니. 이미 상처를 입은 사냥감들을 끝장내는 것보단 더 많은 사냥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쪽이 전략적인 이득일 수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의 전투의지가 높지 않다 보니, 교전은 싱거울 만큼 금방 끝나버렸다. 그저 한 차례 들이치고 반응을 볼 생각이었건만.

경험의 질이야 어쨌든, 길이가 짧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가벼운 전초전 내지 탐색전을 치렀다는 느낌.

빠아아앙-

한발 늦게 도착한 다른 헌터 그룹들이 전장 상공을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며 경적을 울려댄다. 근거리 레이더 화면에 어지러울 만큼 많은 점들이 찍혔다. 나는 경태 이하에게 무전으로 지시했다.

“우리는 이만 빠지도록 하자.”

두 척의 군함에서 대미지 컨트롤을 위한 탑승지원과 부상자 후송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었으나, 그건 날파리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그만이었다.

기수를 돌리기 전, 나는 상처 입은 군함들을 일별했다. 흘수선에 여러 개의 파공이 뚫린 두 척의 배는 침수대응에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대응을 잘하더라도 속도가 느려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일단 구원은 했으니, 나머지 여정의 호위는 다른 것들에게 떠넘기도록 해봐야겠군.’

시속 3노트를 간신히 내는 굼벵이들과 끝까지 함께해줄 순 없는 노릇. 한국 정부 입장에서도 우리가 오랫동안 가용전력에서 빠지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형님.」

경태의 부름이 나를 상념으로부터 일깨운다.

“뭐냐.”

「미국에서 전함을 다시 취역시킨다는 소문이 돌던데, 해적들 하는 짓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소문이 소문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강한 예감이 들지 말입니다. 말라크 하산이 제시한 패러다임을 곧 전 세계의 해적들이 본받을 거 아닙니까?」

“가능성이야 있겠다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죠! 전함의 시대가 다시 온다는데! 거대한 주포, 두꺼운 장갑, 심미적으로 잘 빠진 선체의 곡선! 어지간한 미인보다 더 매력적인 게 전함이지 않습니까? 심장을 가진 남자라면 가슴이 뛰는 게 정상입니다, 형님.」

“…….”

「미주리의 재취역을 기점으로 해서 앞으로 세계 각국의 전함 건조 웨이브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형님께선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관심 없다.”

「그럴 수가!」

외마디 탄식을 토한 경태는 이어 전함의 아름다움을 모르시는 형님이 안타깝다느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들을 늘어놓았다.

경태가 언급한 미주리는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2차 대전기의 전함이다. 연료만 넣으면 운항 가능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니, 은퇴한 노병을 다시 현역으로 끌어오는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 옛 전함의 두꺼운 장갑은 해적함대의 충각돌격 따위 간단하게 방어해낼 터.

그러나 그걸 시작으로 전함의 시대가 돌아온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전함 건조 따위에 예산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해적제독의 요구사항을 받아주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힐 것이다.

해적제독 말라크 하산은 서구세계에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과거 소말리아에 입힌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커피색 피부를 지닌 소말리 해적제독의 선전포고는 라바이크(لبیک)와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 내용을 회상했다.

「나 말라크 하산은 서구의 「강도국가」들과 우리 「사람을 죽이는 어부들」 사이에 전쟁상태가 존재함을 선언하며, 지금은 위선자로 거듭난 옛 강도의 무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전쟁상태(State of war)가 존재할 것이다, 라는 표현은 국가 간 전쟁을 선포할 때 사용하는 외교적인 수사법 같은 것이었다.

「너희는 우리를 해적이라 부른다. 너희는 우리를 살인자들이라고도 부른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살인을 일삼는 해적집단이다. 너희에게 배운 살인과 너희에게 배운 강도질을 너희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다시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너희는 이를 두고 광기의 소치라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살인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자들을 어찌 제정신이라 하겠는가? 가해자가 아닌 자들에게까지 되돌려주는 복수를 어찌 정당한 복수라 하겠는가?」

「더는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는 즐거움, 좋은 옷을 입고 쾌적한 집에 거주하는 즐거움, 헐벗지 않은 가족들의 웃음을 보는 즐거움, 전에 없던 사치를 부리고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는 데서 오는 즐거움, 값비싼 현대문명의 이기들을 손에 넣는 즐거움,」

「거만한 백인들과 건방진 황인들을 무릎 꿇려 놓고, 그들이 비굴하게 목숨을 애걸하는 모습을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

「살육과 폭력이 선사하는 원초적인 즐거움. 사냥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순간 온몸의 혈관에 도는 뜨거운 희열.」

「이 모든 즐거움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힘과 살인능력에 중독되었다. 너희 책임 있는 자들과 그 밖의 책임 없는 자들을 가리지 않고, 우리가 아닌 자들의 피를 짜내어 우리의 배를 불리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단 말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인정한다. 지금의 우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강도와 살인자들의 집단이다. 과거의 너희가 그러하였듯이.」

「나는 우리의 광기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미쳤었고 우리는 미쳐있다는 사실을, 너희에게는 너희의 책임이 있으며 우리에게는 우리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지.」

「너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미쳤으되 대화와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자들이다. 너희의 언론들이 근거도 없이 떠들어대는 것과는 달리, 서구세계를 상대로 지하드를 치르는 알라의 전사들이 아니라는 말이지.」

「사람을 죽이는 어부들을 대표하여, 나 말라크 하산은 너희 ‘은퇴한 강도’들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바이다.」

「샤리아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미덕은 용서라고 말한다. 물론 그 용서는 합당한 보상이 전제되어야 하지.」

「대저 개인과 개인 간에도, 사람을 장애인을 만들어놓았으면 해당 장애가 그 사람의 평생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여 보상을 지불하는 법이다. 너희가 저지른 만행들이 우리의 결핍과 우리의 광기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니, 너희에겐 우리의 정신적 장애가 지속되는 모든 시간에 걸쳐 지속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너희처럼 배부른 위선자로 거듭날 기회를 줄 의무가.」

「너희가 그 책임을 지겠다면, 우리들 역시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시작할 의사가 있다. 너희는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고, 우리는 우리보다도 광증이 심한 미치광이들과 인근 해역의 해적 집단들을 사냥하는 거지. 우리의 피와 우리의 목숨을 보다 좋은 쪽으로 소모하는 것이다.」

「어떤가? 미친 자들이 제안하는 협상 치고는 그럭저럭 공정한 거래처럼 들리지 않는가?」

「우선은 오십억 달러를 지불해라.」

「우리의 합의는 매년 정기적인 협상을 통해 갱신될 것이다. 너희는 그때마다 적정한 금액을 다시 지불해야 하겠지. 절대로 적은 금액은 아니겠지만, 여러 나라가 분담한다면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닐 것이다. 너희들의 전투함 한 척이 십억 달러를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너희에게 그 금액이 우스워 보일 만큼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으며, 그 능력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너희와 우리 사이의 전쟁상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우리 함대를 힘으로 무찌를 수 있으리라 낙관하지 말라. 오늘의 우리를 예상치 못한 너희는 내일의 우리 또한 상상하지 못할 것인즉. 높으신 알라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사람의 힘으로 용광로를 달구며 오직 사람의 힘으로 새로운 함선들과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병들 것이 두려워 힘을 쓰길 꺼려하는 자들이 다수인 너희는, 오늘만 사는 자들이 다수인 우리를 절대로 압도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너희는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

「너희 자신을 위해서라도.」

발음은 다소 투박할지언정 막힘없는 영어로 제 입장을 표명한 말라크 하산은, 같은 내용을 이탈리아어로도 반복했다.

요구사항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단순히 비용만 생각한다면 하산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가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은퇴한 강도’들 사이의 합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가를 두고 서로 개처럼 물어뜯는 난장판이 벌어지겠지.

그리고 이런 요구를 받아들인 선례를 한번 만들어놓으면 제2, 제3의 말라크 하산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말라크 하산의 자리를 빼앗고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는 신흥 해적군주가 나타날 수도 있을 터.

사정이 이러하니, 은퇴한 강도들은 차라리 자신들의 군사력을 보강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군사력은 해적들을 막는 것 이외에도 쓸모가 많은 도구이지 않은가.

하다못해 해적들에게 줄 돈의 절반만 헌터들에게 지원해도 해적들의 활동을 큰 폭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 바로 지금, 전 세계의 바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다.

‘말라크 하산도 이걸 모르지는 않겠지.’

스스로를 미쳤다고 일컫기는 하지만, 말하는 것만 봐도 미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내가 보기에 해적제독이 진정으로 노리는 건 여론전이었다. 종교적 대립구도의 프레임을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이미지를 일신하여, 민주주의 국가들의 내부에 진통을 일으키는 것.

내 짐작이 맞다면, 해적제독은 지금보다 앞으로의 성장이 더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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