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6)
예정대로 5월의 세 번째 월요일에 탄자니아 땅을 밟은 나는, 다음 날인 화요일 오전 9시엔 스텔라 포르투나 호를 타고 케냐령 만다 섬 동쪽 6킬로미터 해상에 도달했다.
이렇듯 뜬금없이 북쪽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순양함 「벙커 힐」과 덴마크 프리깃 「에스번 스네어」가 말라크 하산 해적함대의 지속적인 습격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신속히 북상하여 엄호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공격의 표적이 된 두 전투함은 아프리카의 뿔 인근 해역에서 유엔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다국적 해군 기동부대 소속이었다. 한국 역시 여기에 전투함을 파견한 상태였으므로, 국제적인 연대의 일환으로 우리에게까지 요청이 닿은 것이다.
망원경으로 수평선을 살피던 경태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연기가 보입니다, 형님.”
경태의 말처럼, 북쪽 수평선 너머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더해 머나먼 천둥의 메아리처럼 아스라이 울려오는 연속적인 포성들. 크기는 강화된 청력으로도 듣기 어려울 만큼 작다. 두 전투함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적들과 교전을 치르고 있다는 시청각적인 증거들이었다.
“총원 전투배치.”
내 허락을 구할 것도 없이 수연이 바로 내리는 명령. 끄덕인 선장이 선내 방송용 유선 마이크를 붙잡고 지시를 하달하자, 딩딩딩딩 시끄럽게 울리는 경보음과 함께 선내 전체가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내가 끌고 온 다른 선박들 또한 동일한 변화를 보인다. 개마를 비롯한 조직 산하 공능법인들의 선단.
지원대상인 두 전투함과의 교신은 진작부터 이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시작부터 요란하군.’
요란하다는 건 소리가 아니라 상황을 두고 하는 생각이었다. 공능법인으로서의 역할 수행이 어떤 식으로든 내 시간을 잡아먹을 것은 예상하고 있던 바이나, 도착한 직후부터 이토록 요란한 교전을 강요받는 것은 그냥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 일이었다.
부우우우우우-!
선수를 나란히 한 헌터들의 다국적 선단이 길게 뱃고동들을 울려댄다. 무언가 의미가 있다기 보단, 폭주족들이 경쟁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것과 흡사한 느낌.
각각의 선박에선 갑판마다 날아다니는 탈것들이 발함(發艦) 준비를 마친 채 대기 중이었다.
「발화」와 「방전」을 동력으로 삼는 비행은 기수의 체력이 받쳐주는 한 무제한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아직 날아오르는 자들이 없는 건, 전투공역에 먼저 진입한다고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게 아닌 까닭이었다. 남들보다 앞서 가봤자 괜히 몰매를 맞을 따름.
또한 모선(母船)이 가까이 있어야 격추당했을 때 생존율이 올라가기도 할 터이니, 제 목숨이 최우선인 헌터들로선 빠듯한 시점까지 출격을 미루고 싶을 수밖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계약은 그저 책잡히지 않을 만큼만 이행하는 게 최선인 것이다.
통합된 지휘체계의 부재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각각의 배마다 정부 파견 감독관들이 행동을 재촉하고 있겠으나, 국가를 불문하고 감독관의 역할은 문자 그대로의 감독에 국한된다.
내가 다른 배에 처박아놓은 한국군 파견장교 2인조는 딱히 재촉을 해오지도 않았다. 그들이 군복을 벗고 나면 주겠노라 약속한 공능법인 개마의 사외이사 자리 때문이겠지.
경태가 전투함으로부터 들어오는 현장영상을 보고 흥미 가득한 감탄성을 흘렸다.
“햐, 저게 그 샤크헤드로구나. 이렇게 보니 또 새롭네.”
샤크헤드란 「샤크헤드 스티프(Sharkhead Stiff)」의 줄임말로, 말라크 하산 해적함대가 사용하는 로켓추진 충각돌격 보트에 붙은 별명이었다. 해적들은 「마르깝 다압」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모양.
이 배의 추력을 만들어내는 건 당연히 발화 능력을 보유한 이중각성능력자들이다.
소말리아의 인구는 천육백만 남짓에 불과하나, 그 천육백만 인구가 배출하는 각성능력자들이 하나같이 해적이 되기를 꿈꾸는 꿈나무들인 관계로, 말라크 하산 해적함대는 각성능력자 부족으로 고생할 일이 없었다.
「콰아아아아-」
칼날처럼 날카로운 선체가 불규칙한 방향전환을 선보이며 고속으로 쇄도한다. 예리한 삼각뿔 형상의 뱃머리와 극단적으로 높은 종횡비에 힘입어, 달려드는 충각돌격선은 파도를 가르는 한 자루 비수와도 같은 기세를 품었다.
오직 들이박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쐐기.
정부로부터 공유된 정보를 떠올린 나는, 내심 해적제독의 안목을 인정했다.
‘단순하지만 정말 잘 뽑아낸 물건이야.’
이렇게 작고 단단한 배들이 피라냐 떼처럼 무리지어 달려들면, 현대적인 전투함의 대응능력으로는 감당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가성비를 무시하고 대함미사일을 쏜다 한들, 피라냐의 정면면적이 미사일의 원형공산오차(CEP)보다도 작아 명중을 장담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피라냐 무리는 선체의 크기와 형상으로 말미암아 레이더 반사면적마저 작다.
물론 근접폭발로 반파시키기는 가능하겠지. 그러나 소말리아산 강철쐐기의 기울어진 장갑 안쪽으로는 몇 겹의 얇은 격벽이 있을 뿐, 대부분의 공간이 텅 비어있다시피 하여 장갑을 깬다고 곧장 무력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폭뢰 또한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시속 칠팔십 노트를 가볍게 찍으며 회피기동까지 하는 고속표적을 무슨 수로 유효한 폭발범위 안에 집어넣는단 말인가.
그나마 기존의 무장들 가운데선 어뢰 정도가 쓸 만할 따름이다. 관측능력이 제한적인 충각선들은 어뢰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까. 4백만 달러짜리 어뢰로 5만 달러 남짓한 쪽배를 잡는 짓이 우습기는 하지만.
함포와 기관포는 썩 유효한 무기체계가 못 되었다.
「쾅! 쾅! 쾅! 쾅!」
두꺼운 함포가 연신 불을 뿜는 소리. 해수면에 떨어진 철갑고폭탄들이 거친 충격파와 물보라들을 일으킨다. 그러다 나온 명중탄 한 발은, 극단적으로 경사도가 높은 경사장갑에 튕겨져 허공에서 폭발했다. 경사가 170도는 되어 보이는 장갑판엔 긁힌 자국이 남았을 따름.
굵직한 포탄을 튕겨낸 샤크헤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전복되었으나, 무게중심이 선복 하단에 몰려있는 폐쇄형 선체는 자연스럽게 몸을 뒤집어 자세회복을 완료했다. 후방 로켓노즐의 불길이 잠시나마 잦아들었던 샤크헤드는, 이내 다시금 뜨겁고 맹렬한 추력을 자아내며 잃어버린 속도를 빠르게 되찾았다.
“오, 오, 박는다, 박는다.”
흥미진진한 스포츠 경기라도 보는 듯한 경태의 중얼거림. 맹진해온 샤크헤드가 새하얀 항적만 남긴 채 함포 관측카메라의 사각지대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쿵-! 하는 소음과 함께 카메라의 시야 전체가 흔들렸다.
이렇게 여러 개의 비수를 박아놓고, 점차 기동력을 잃어가는 배를 끈질기게 쫓으며 사냥을 이어가는 게 소말리아 해적들이 정립한 대(對) 군함 전투교리였다. 피 흘리는 짐승을 쫓아 쓰러질 때까지 몰아가는 사냥꾼들과 같다 하겠다.
경태가 물었다.
“형님. 슬슬 공중지원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더 시간을 끌었다간 배가 가라앉는 건 둘째 치고 생존자 건지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스텔라 포르투나를 위해 안전거리도 확보해놔야 하고요.”
이 말처럼, 해적함대 충각선단의 집단공세는 스텔라 포르투나 같은 무장여객선에게도 위험한 것이었다. 직각으로 진입하면 함포조차 튕겨내는 강철쐐기를 무슨 수로 완벽하게 막아내나. 공중전력을 활용해 철저한 아웃레인지 싸움으로 몰아가는 게 최선이다. 아니면 값비싼 대전차 미사일을 무더기로 갈기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보자.”
“같이 가시게요?”
“여기까지 왔으니 경험해 봐야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전투양상을.
우리가 마침내 공중기병을 출격시키자, 나란히 나아가던 다른 선박들 역시 저마다의 공중전력을 하늘로 내보냈다. 앞서 나가도 문제지만 뒤쳐져도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날아오른 것들의 속도는 동일하지 않았다. 기수들의 역량이 균일할 수가 없었기 때문. 이러한 능력상의 편차는 곧 전장으로의 진입을 늦출 또 하나의 핑계거리이기도 하다. 각각의 헌터 그룹마다 가장 느린 동료와 발을 맞춘다는 변명이 가능한 것.
나와 내 애들은 아랑곳없이 속도를 끌어올렸다. 속도계의 바늘이 죽 미끄러져 시속 2백 킬로미터를 넘어선다. 두꺼운 방탄소재 앞유리가 버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몰아치는 맞바람이 빠른 비행을 체감하게 만들었다. 파득파드득 옷자락 나부끼는 소리. 나는 총격에 대비하여 콕핏을 밀폐시켰다.
「조심하십시오.」
골전도 헤드셋으로 들어오는 수연의 음성.
「오인사격이 없도록 다시 한 번 주의를 전하긴 했습니다만, 만에 하나 해적들이 공중전력을 투입하여 대응할 경우 혼선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컨대 날아다니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구원대상인 두 전투함이 엉뚱한 표적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미국 순양함 쪽이 이지스 레이더를 달고 있고, 그 레이더가 사분면 하나하나마다 250개씩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는 게 가능하다고는 하나, 시스템을 다루는 사람이 실수를 해버리면 레이더의 성능은 의미가 없어진다.
평범한 레이더를 달고 있는 덴마크 프리깃 쪽은 더더욱 주의를 요하는 대상이겠지.
대공화기가 하늘을 겨눈다 싶으면 그냥 뒤로 빠지는 수밖에. 경각심은 해적 공중기병들이 출현하는 순간부터 가져도 충분하다.
햇빛이 부서지는 푸른 해면 위를 고속비행으로 주파하기를 잠시. 멀게 보이던 연기가 짙어지는 매캐함으로 다가올 즈음, 이쪽의 접근을 감지한 해적들이 총탄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충각선단을 위해 연막을 뿌리던 보조함들의 견제사격이었다.
정확도는 형편없다. 오직 육안에만 의지하는 개인화기 사격인 데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연막이 자기들에게도 방해가 되었기 때문.
나는 HUD에 뜨는 조준점을 배 위의 해적들에게 맞추었다.
부욱! 부우우욱!
트리거를 가볍게 끊어 당기니, 기수 아래 달아놓은 미니건(Minigun) 터렛이 기괴한 총성과 탄피들을 뱉어낸다. 갑판 위로 예광탄 빛줄기 섞인 사격이 빗발치자, 정확도에 기겁한 해적들이 난간 밖의 바다로 뛰어내렸다. 갑판 위엔 두 구의 시체만이 남았다.
선원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배는 방향을 유지하며 느릿느릿 나아갔다. 속도는 대략 3노트쯤 될까. 스티로폼으로 꽉 채워놓은 선창 안쪽은 갈수록 거세지는 불길로 가득하다. 배 자체가 처음부터 통째로 태워버릴 요량으로 끌고 온 땔감이었던 것이다.
투시력을 가진 나의 표적지시에 힘입어, 부하들이 차례차례 해적들의 대공화망을 걷어낸다. 해적들은 이쪽의 정교한 사격이 당혹스러울 터였다. 다행히 해적들이 보유한 무장에 휴대형 대공미사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태가 무전으로 질색을 했다.
「어우, 연기가 너무 심한데요? 저거 가라앉히는 건 무리겠죠?」
“무리야. 안쪽이 죄다 스티로폼이다.”
「어쩐지. 누더기 꼴인데도 여전히 떠있더라니.」
이쪽이 보유한 화기라고 해봐야 기관총과 소형 로켓, 약간의 폭발물이 전부다. 함포에 두들겨 맞고도 떠있는 땔감을 가라앉히기란 불가능한 일. 선체는 그저 껍데기일 뿐, 실상은 엔진을 달아놓은 거대 스티로폼 덩어리인 배였다.
충각선들이 서로의 추력을 모아 견인해왔을 둔중한 땔감들은, 사냥의 표적인 두 전투함의 풍상(風上)을 점한 채 끊임없이 뭉글거리는 연기를 내뿜었다. 잔잔한 해풍을 타고 퍼지는 유독한 연기는 통상시야의 가시거리를 백 미터 이하로 단축시켜 놓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샤크헤드 충각선의 로켓 노즐은 선명하게 발광하는 표적 지시등이었다.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돌격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들이 단순한 격침 이상을 노리나 보군.’
그저 군함을 침몰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충각선단을 나눠서 돌격시킬 이유가 없다. 그냥 한꺼번에 내보내 한꺼번에 들이박으면 끝.
그러나 해적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순차적인 공세로 탄약소모를 유도하여 나포까지 노리기 위함인가? 아니면 일방적인 농락의 장기화로 심리적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함인가. 둘 모두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선택지도 존재한다. 어느 쪽이든, 공세의 진정한 표적은 군함 그 자체가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국가와 국민들이라 봐야 할 터였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싸움의 관건은 국민들의 전쟁수행의지를 무너뜨리는 것이니.
경태가 내게 허락을 구했다.
「형님. 돌입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한 번 치고 빠진 다음 반응을 보기로 하자.”
나는 연소 체임버에 밀어 넣는 불의 압력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