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50화 (250/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4)

임마누일이 회상했다.

「그들과 처음 거래를 한 곳은 아이티였다네.」

2010년의 대지진 이래, 아이티는 줄곧 세계 최대의 인간 도매시장으로 기능해왔다.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신참자들이었지. 작년 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그쪽 시장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유명세를 얻었다네. 돈은 많고, 시세는 잘 모르는 데다, 남들은 줘도 가지지 않을 저질스러운 상품들까지 알뜰하게 쓸어가는 희대의 호구들이 나타났다고 말이야.」

“저질스러운 상품들이라면, 결함이 있는 물건도 가져갔단 말인가?”

「그렇다니까? 장님과 벙어리는 물론이고, 팔다리 한두 짝이 없어도 성별이 여자이기만 하면 그냥 닥치는 대로 사들였지. 얼마 못 가 죽을 질환이나 성병만 없으면 된다더군. 그나마도 난치성만 아니면 개의치 않는 눈치더라고. 억양을 숨길 생각도 않고,」

“나이는? 따로 나이 제한을 두진 않았나?”

「너무 어린 애들은 안 사가던데, 나이가 많아도 사갔을지는 잘 모르겠어. 나이가 든 것들은 애초에 들어오는 물량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거든. 자네도 알겠지만, 그 나라 상황이 좀 그렇지 않은가.」

“그건 알지.”

「아무튼 그래서 상인들이 정말로 선호하는 거래 상대였는데, 그 신참자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남미랑 멕시코, 심지어 필리핀 쪽으로도 선을 대는 게 아니겠나. 덕분에 우리도 그들과 꽤 많은 거래를 했다네. 중개만 서줘도 보상이 짭짤했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런 좋은 고객의 정보를 쉽게 털어놓아도 괜찮은 건가?”

이는 상대를 위한 걱정이 아니라 나를 위한 불신이었다. 내 물음에, 임마누일은 낮은 소리로 웃으며 되물었다.

「왜, 갑자기 불안해진 모양이지?」

“내가 태어난 나라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다네. 자네 나라에도 비슷한 격언이 있을 텐데. 「믿어라. 그러나 확인하라.」 라고.”

변하지 않는 친구를 찾는 자는 무덤으로 가라는 말도 있지. 내 차분한 대꾸를 들은 임마누일이 다시 한 번 짧은 웃음을 터트린다.

「하여간 이 친구, 예나 지금이나 신중한 건 변함이 없군그래.」

“그래서, 대답은?”

「처음에나 좋은 고객이었을 뿐 지금은 아니다…… 라고 해야겠지.」

“왜? 이젠 시세를 알게 되어 예전만큼의 돈줄이 아니게 되었나?”

「그것도 있고, 가끔은 돈보다 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더 중요한 때가 있는 법이니까.」

“아아.”

「그 섬나라 연놈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너무 많은 돈을 풀어버렸어. 노예를 팔겠다고만 하면 아무하고나 거래를 해버리니, 시장에 위계질서라는 게 없어져버렸단 말이야. 현시점에서 우리 형제들이 직접적으로 받은 피해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겠지만, 우리와 협력관계에 있던 거래처들이 무수한 도전을 받고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그 파도가 우리의 발까지 적시겠지. 이런 시장에서 질서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지 않나?」

“자네가 좀 더 열심히 일하면 해결될 문제로 보이는데.”

「이런 젠장. 진짜로 일에 치여 죽으라고?」

“설마 죽기까지야 할까.”

「거 남 일이라고 편하게 말하기는.」

임마누일은 가볍게 투덜거리고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의심은 이제 풀렸겠지?」

“음.”

「자네가 그 영국인들에 대한 정보를 왜 궁금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적대적인 관계라면 우리로선 오히려 반가운 일이야.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정보를 넘기는 거지. 괜찮다면 자네와 그들 사이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내가 방금 진 빚을 없는 셈 치겠다면 모를까.”

뒤쪽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사정이 있는 티를 내도 곤란했다. 그 자체로 하나의 고가치 정보가 되어버리니.

「이런. 본전도 못 찾겠군. 됐네, 그럼.」

나는 너스레를 떨며 물러나는 임마누일을 상대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 인간들이 영국에서 온 건 어떻게 알았나?”

「당연히 뒷조사를 해봤지. 수상해도 지나칠 정도로 수상하잖아. 우리 외에도 수상함을 느낀 친구들이 많다 보니 조사 자체는 수월했어. 신중함은 자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네, 친구.」

“그렇다면 그동안 팔아넘긴 물량의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해 둔 게 있겠군? 규모와 행선지, 양쪽 모두를 최대한 상세하게 알고 싶네만.”

「규모는 뭐, 최소로 잡아도 만 단위지. 너무 많아서 감이 안 잡힐 지경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행선지는 글쎄……. 중간 경유지인지 뭔지는 몰라도, 영국이 아니라 감비아와 시에라리온 같은 동네로 가는 물량이 과반이더라고. 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도 아직 조사 중이라네. 그쪽에 또 다른 거래처가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그거 공교롭군.

나는 머릿속으로 아프리카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거대한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감비아와 시에라리온은 얼마 후 내가 향할 탄자니아로부터 6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원탁이 그토록 많은 노예들을 긁어모으는 중이라면, 아프리카 동부에서도 분명 노예상인들과 거래를 터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재난과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는 곳엔 반드시 노예상인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아프리카 동부는 서부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식민지이기도 하지 않았던가.

“혹시 내게 아프리카 방면의 고객들을 소개해줄 수 있을까? 정보원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자들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해주는 선을 넘어, 아예 거래처를 소개해 달라? 어허. 이거 점점 백지수표의 무게가 무거워지는데.」

“경계하지 않아도 좋아. 난 그쪽으로 판로를 열어보려는 게 아니니까.”

「지금이야 그럴지 몰라도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 자네와 「드브」의 역량을 뻔히 아는 내게, 우리의 귀중한 협력자들과 안면을 트게 해달라니. 이 바닥에 자네에게 비견될 무기상이 몇 명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거절인가?”

「흠, 어떻게 할까…….」

수화기 너머에서 뜸을 들이던 임마누일이 문득 떠올랐다는 투로 질문했다.

「곱씹어보니 조금 이상하군. 그 섬나라 놈들은 중미와 필리핀에서도 노예를 사들이는데, 유독 아프리카 방면만 특정해서 정보책을 소개해달라고 하는 것이. 자네, 그쪽에 정말로 사업적인 욕심이 있는 거 아니야?」

“아니라고 했잖나.”

「에이, 그걸 어떻게 믿어? 이거 갈수록 더 수상한 냄새가 나.」

아니라는 말만으로는 넘어가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짧은 고심 끝에, 나는 진실의 아주 작은 조각을 내어놓기로 했다.

“중미와 필리핀 쪽의 정보가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니야. 다만 그 모든 곳에서 정보원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면 들어주지도 않을 테니, 입수한 정보의 활용도가 높은 지역으로 범위를 좁혔을 따름이지.”

「활용도가 높다니?」

“우리 회사가 동아프리카 지역의 평화유지 활동 관련 정부계약을 몇 개 따냈거든. 교민 구조나 군사작전 보조, 순찰, 보급호송, 해적 퇴치 같은 것들 말이야. 기왕 그렇게 인력을 파견하는 김에 해당인력에게 부차적인 임무 하나를 추가로 맡기고 싶은 거지. 그거 하나만 보고 인력을 파견하기엔 아까운 감이 큰 임무를.”

「한마디로 인력 낭비를 최소화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

「오호, 오호.」

내가 평화유지 활동에 관한 정부계약을 따냈다는 부분에 대해서, 임마누일은 딱히 놀라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마법이 돌아오기 이전 이탈리아 마피아들도 정부로부터 난민 관리 계약을 따낸 바 있고, 브라츠키 크루그 또한 러시아 정부가 창설한 위장 사설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을 음양으로 지원해준 전적이 있는 까닭.

「그렇다는 말은, 자네 회사에서 편성한 타격대 하나가 동아프리카로 간다 이 말이로군? 그것도 현지 무장단체들을 상대로 싸워볼 만한 규모로.」

“맞아.”

「그 타격대의 주력은 당연히 각성능력자 예게르(Eгерь/엽사)들일 테고?」

“……그렇다면?”

「좋아, 아주 좋아! 마침 그쪽 동네의 중요 고객 하나가 우리 이권을 인질로 잡고는 각성능력자 용병들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해대서 좀 곤란하던 참이었는데, 극동회사(드브)의 행동타격대라면 체면치레 이상이 되겠지. 일이 이렇게 풀리기도 하는구만! 하하하!」

“아니, 잠깐.”

나는 관자놀이로 손을 가져가며 되물었다.

“백지수표를 이렇게 곧바로 쓰겠다고?”

「안 될 건 또 뭔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진 말게. 반군 거점을 한 번 그럴듯하게 타격하면 끝나는 일회성 임무인걸. 의뢰인이 자네가 소개받기를 원하는 중요한 정보책의 한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보기엔 이 정도면 저울의 균형이 얼추 맞는 것 같은데.」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지.”

「그래, 그래야지! 하하!」

임마누일이 만족스럽게 웃은 직후, 「타앙!」 울리는 총성이 수화기를 뚫고 넘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짧은 시차를 두고 멀찍이에서 「쑤우우우우까! 뒈지게 아프네!」 하는 걸쭉한 외침이 들려온다.

“모냐. 지금 설마 일하는 중인가?”

이 인간이 현장에서 뛸 군번은 아닐 텐데. 미심쩍게 던진 질문에, 잠시 말이 없던 임마누일은 곧 대수롭지 않은 투로 대꾸했다.

「아, 별거 아니야. 우리 애들이 소프라노를 좀 돌렸나 본데?」

소프라노(Cопра́но)는 러시안 룰렛을 뜻하는 레드 마피아들의 은어였다. 총이 격발되면 계집애처럼 비명을 지르게 된다는 의미로 쓰는 은어지만, 보통은 비명을 들을 일 자체가 없다. 대가리에 총을 맞고 어떻게 비명을 지르나.

나는 어이가 없는 심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런 것 치고는 맞은 놈이 아직 살아있는 듯한데. 공포탄이나 고무탄을 쓰나?”

「공포탄이나 고무탄? 소프라노는 당연히 실탄을 써야지!」

“……당연히?”

「흠……. 말하는 걸 보니 자네는 아무래도 각성을 못 한 모양이군. 사내가 육체적으로 초인이 되었으면 말일세, 총알 한 발쯤 마빡으로 받아쳐보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겠는가? 내 살과 뼈가 총탄을 막을 만큼 강하고 질겨졌다? 이건 못 참지!」

그걸 어째서 못 참나.

「아무래도 구경이 크면 좀 무리지만, 내가 힘 좀 쓰는 예게르요, 하고 행세하려면 최소한 .22 정도는 빡 하고 받아내 봐야지. 그래야 인정을 받지. 능력이든, 대담함이든! 뭐, 죽으면 그냥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던 거고. 능력은 부족했을지언정 대담함은 증명하고 죽는 거니까, 사내로서 부끄러운 죽음은 아니잖아.」

이 새끼들, 이마로 받아낸 총탄 구경으로 자존심 경쟁을 해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굳이 하려면 못할 건 없긴 하다. 경태나 수연쯤 되는 녀석들은 입사각에 따라 일반적인 권총탄(9mm)까지도 도탄시킬 수 있겠지. 입사각이 나쁘거나, 복부처럼 골격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드러운 부분을 피격당한다면 당연히 생명이 위험해질지라도.

그러나 그건 그냥 골밀도와 강도, 피부가 질겨진 정도 등을 측정하여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데서 끝내야 할 일이었다. 총기는 매양 조심해서 다루어야 마땅한 것이므로.

안전사고는 매양 방심과 부주의의 그늘에서 싹을 틔우는 법.

내 속을 모르는 마피아 고위간부는 계속해서 미친 소리를 지껄여댔다.

「이건 단순한 여흥이 아닐세. 본인의 강화계수를 속이는 거짓말쟁이들, 그리고 능력이 있어도 써먹을 배짱이 없는 새가슴 능력자들을 도태시키는 시험이지. 자네 조직에도 한번 도입해보시게나. 옥석을 가려내는 데 이만큼 빠르고 편리한 방편이 없어! 일상적인 놀이로 정착을 시켜놓으면 총격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훈련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진다네!」

“……충고 고맙군. 참고하도록 하지.”

「내가 직접 해보니까 「마테바 14」만 한 게 없더라고. 그게 총구가 잘 안 튀잖아. 다른 총으로 하면 말이야, 긴장을 해서인지, 아니면 그립을 거꾸로 쥐는 자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격발할 때 사선이 종종 이마 위쪽으로 엇나가버리더라고. 머리카락이 쫙 밀려버리는 불상사가 터지는 거지. 맞은 자리에 머리카락이 다시 안 자라는 건 당연하고.」

그렇잖아도 피로하던 차에, 듣는 헛소리가 길어지니 머리가 더욱 아파오는 느낌이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는 손에 힘을 더하며 요구했다.

“알겠으니까, 이만 본론으로 돌아가세. 그 일회성 용병을 구한다는 의뢰인, 정체가 뭔가?”

「아, 그 사람?」

임마누일은 이번에도 별것 아니라는 투로 툭 내뱉었다.

「그 사람, 르완다의 대통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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