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49화 (249/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3)

메리옘 바투르 그룹과의 만찬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엄숙함 속에서도 위구르인들은 내 우측으로 붙어 앉은 수연과 경태를 향해 가려지지 않는 호기심의 시선들을 보내었다.

내가 이 자리에 두 측근을 동반한 것은, 나의 부재 시에도 두 녀석이 메리옘 그룹에 대한 종교적 통제력을 발휘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이 자리에 모인 위구르인들이 전장으로 나아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조치.

이 만찬을 종교적인 행사로 받아들이는 위구르인들의 입장에서, 내 우측의 수연과 경태는 내 좌측의 메리옘만큼이나 의미심장하게 보일 터였다.

여기에 평소부터 쌓인 궁금증도 있을 것이다. 내가 두 녀석을 달고 다닌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볼 기회가 많았으니 궁금할 때도 많았겠지.

“궁금한 게 있다면 말해 봐라.”

내가 시선으로 똥 마려운 강아지 하나를 지목하자, 깜짝 놀라 바르르 떤 강아지는 이내 손을 모아 꼼지락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귀하신 분의 은혜를 찬미하며, 당신의 종 주눈 토흐티(توختى زۇنۇن)가 무한한 아량에 기대어 여쭙습니다. 귀하신 분이시여, 지금 당신께서 당신의 오른쪽 자리를 내어주신 두 사람은 혹시 당신께서 축복하신 저희들의 이맘과 같은 반열의 사도들인지요?”

언어교육과 전투훈련을 병행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억양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영어였다. 나는 그 유창함에 만족하며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거두어진 순서로는 너희의 이맘보다 앞서고, 내 군세에서의 직급 또한 그러하다.”

“아아-”

이번엔 감동에 겨워 몸을 떠는 강아지. 앳된 위구르 청년의 촉촉해진 눈이 잠시 자신들에게로 돌아오자, 수연은 담담하게 눈인사를 보내었고 경태는 조금 난처한 느낌의 미소를 머금었다. 이 둘을 향하여, 주눈 토흐티는 마흐디(메시아)의 축복을 받은 사도들에 대한 예의로서 가만히 머리를 숙여보였다.

“혹시 저희가 두 분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수연과 경태가 차례로 준비된 칭호와 가명을 대자, 둘러앉은 위구르인들은 그 이름을 열심히 되뇌어 암기했다. 어느새 식사는 나중이 되어있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강아지가 멈칫멈칫 손을 들어올린다.

“귀하신 분이시여, 저에게도 질문을 허락해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자잘한 예절은 생략해도 좋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신 분이시여, 아미라 아이누르는 혹시 귀하신 분께서 공평하게 대하시는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지요?”

아미라(أميرة)는 성별이 여성인 군주 내지 사령관을 의미하는 칭호이고, 아이누르(ئاينۇر)는 수연이 댄 가명이었다. 나는 시선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공평하게 대하는 여인이라면, 내 아내냐고 묻는 건가?”

“그러합니다, 귀하신 분이시여.”

“……그렇지는 않다. 그게 왜 궁금한 것이냐?”

내가 거듭 던지는 질문에, 질문자는 여러 호흡을 망설인 끝에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다만 귀하신 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차지 않은 자리가 남아있는가를 알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차지 않은 자리라니?”

“예언자 무함마드는 13인의 아내들을 두었습니다. 한없이 높으신 알라께서 그분이 선택하신 예언자에게 특별한 권리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이름을 알아서는 안 될 귀하신 분께선 무함마드보다도 위대한 선지자이자 예언자이시니, 그런 당신께서 보다 완전한 숫자의 아내들을 취하심은 당연한 순리일 것입니다. 하여 감히 다시 묻사오니, 완전한 수는 얼마이며 그 수에 아직 여유는 남아있는지요?”

이렇게 묻는 질문자의 눈은 한 점의 미혹조차 묻어나지 않는 경건함을 담고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종교적 열망이라고 해도 무방할 기대를.

“…….”

어이가 없어진 나는 흡음결계를 두르고 메리옘을 돌아보았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리냐? 저들에겐 들리지 않을 테니 편하게 말해.”

“제가 나누어준 가르침이 아닙니다.”

메리옘이 공손한 어조에 꾸밈없는 당혹감을 담아 답한다.

“이전에 올렸던 말씀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제 동생들은 질병 같은 조바심을 앓고 있사온즉, 어린 레이한귈(رەيھانگۇل)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히 이해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높으신 분의 심기를 다시 거스르는 일이 없게끔 제가 잘 교정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요컨대, 자신들에 대한 회의와 내 총애에 대한 목마름이 그룹 내에서 메시아의 아내를 배출하고픈 열망을 낳았으리라는 통찰이었다. 그리하면 그룹 전체가 자존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나는 떨떠름함을 삼키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라.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 불쾌한 건 아니었으니.”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신 분이시여.”

가만히 고개를 조아리는 메리옘. 이 거짓된 사제를 건조하게 응시하던 수연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제 시선을 스르륵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들리지 않는 대화가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질문자는, 나중에 메리옘에게 답을 들으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안도하며 신경을 이완시켰다. 이로써 못내 분위기가 달라졌으므로 내게 질문을 던지는 위구르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만찬을 끝낼 때, 나는 메리옘 그룹에게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결정한 바를 전했다.

“조만간 먼 땅에서 싸움을 치를 예정이다. 그곳에 너희를 위한 자리를 예비해 두려 하니, 너희 모두 각오를 새롭게 다져두길 바란다.”

좌중 전체가 이 말 한마디에 고요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달아오르는 얼굴들과 벅차오르는 숨결들. 감정의 울렁임을 견디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을 쏟아내는 수도 적지 않다. 일시적인 호흡곤란을 느끼며 테이블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는 녀석도 하나 보인다.

메리옘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이고 고이다가 마침내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방울 하나. 하나는 이내 둘이 되고 둘은 곧 셋이 된다. 이는 단순히 동생들의 기쁨을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생들과 함께 감정의 급류에 휩쓸린 것이었지. 대뇌피질의 보상회로가 흘러넘치는 신경신호들로 번뜩거린다.

난 못내 기이한 것을 보는 심정으로 물었다.

“메리옘.”

“예.”

“네가 많이 바뀌었다는 자각은 있나?”

“있습니다.”

메리옘은 젖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언제나 영광만을 누리소서. 저희들의 삶이 되어주신 분이시여.”

나는 딱히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깊어가는 밤, 나는 미국 뉴스 채널을 배경소음으로 깔아놓고 술식 코드 해석과 재구축에 골몰하고 있었다. 「전율하는 거인」으로부터 새롭게 뽑아낸 13종의 마법적 구속력은, 아직은 무엇 하나 실용적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여기서도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가…….’

13종 모두를 동시에 추구하고 싶은 것이 마법사의 욕심이지만, 현실은 탄소에 대한 구속력을 정련하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빠듯할 지경. 가오슈센이 욕심을 내었던 다이아몬드 원석 하나를 키워내는 데 얼마의 시간이 들어갔는지. 마력장의 반경과 술식의 회로점유율을 제한할 때가 많았다고는 하나,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물에 대한 구속력과 비교하면 실전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그래도 요 며칠 새 그런대로 진전을 얻어, 이제는 평상시의 마력장과 회로 가동률을 유지하면서도 시간당 여러 개의 굵직한 원석들을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생명」과 「열화」의 개량을 병행하며 얻은 성취다.

이대로 갈고 닦아나간다면, 물에 대한 구속력처럼 파괴적인 마법을 완성하기는 무리더라도, 무기와 방어구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의 물성(物性)을 향상시킴으로써 나와 내 애들의 생존성을 제고하는 수단으로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대마법사의 인시(人時)를 무한정 쏟아붓기는 곤란하니, 최정예 타격대에게 개선된 장비들을 지급하는 정도가 최선이겠지.

나는 술타나와 함께했던 사냥을 회상했다. 곱씹는 기억은 경태가 대퇴부에 피격을 당하던 장면. 그건 참으로 큰 손실을 볼 뻔한 순간이었다. 고강도 탄소 동소체로 직조한 방어구의 보급은 그런 종류의 자산손실 가능성을 큰 폭으로 덜어줄 터.

“…….”

오랜 시간 집중하고 있었던 탓일까. 피로로 인한 두통이 느껴진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을 뿐이지, 수면부족은 내가 여전히 앓고 있는 고질병이었다.

흘려듣던 배경소음이 비로소 귀에 들어온다.

「예전에 내가 시 주석을 후 주석이라고 부른 걸 가지고 나를 헐뜯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상식이 부족하다느니, 대통령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느니.」

TV 속에서 떠들어대는 인간은 날이 갈수록 정정해지는 백악관의 미치광이였다. 아래에 깔린 헤드라인은 「대통령, 또다시 중국에 외교적 모욕을 가하다」라는 자막을 담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덩치만 믿고 으스대는 극동 변방 빨갱이 집단의 우두머리 이름을 아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내가 빨갱이도 아닌데 좀 헷갈릴 수도 있는 거지!」

「문제는 경제입니다, 여러분. 시 주석이든 후 주석이든 돈만 잘 갚으면 그만이다, 이 말입니다. 저쪽 동네에도 ‘검은 고양이나 하얀 고양이나’라는 경구가 있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백악관 미치광이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여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돈을 의미하는 사인이다.

「보고 있습니까, 시 주석? 돈 갚으십시오, 돈. 우리 미국과 미국의 시민들에게 갚아야 할 돈! 내가 한 번 억지로 받아낸 이후 추가로 상환한 청나라 국채가 한 푼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당신들은 또한 당신네가 퍼트린 「중국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전 세계에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겁니다. 우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큰 피해를 입은 우리 미국에 대한 배상금부터!」

「CIA가 그러더군요.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경매에서 5천만 달러에 호랑이 앞발 두 짝을 낙찰받아 간 사람이 알고 보니 후 주석 당신의 비서였노라고! 그걸로 술을 담가먹든 뭘 하든 당신의 취향이니 아무래도 좋지만, 그런 데 쓸 돈이 있으면 우선 나라가 진 빚부터 갚으십시오! 아니면 헐벗은 당신네 인민을 위해 좀 써보든가! 그거 다 나랏돈을 횡령해서 쓰는 거잖습니까? 당신은 그, 양심이라는 게 없습니까?」

「아, 내가 또 후 주석이라고 했나요? 조크입니다, 여러분. 웃으세요.」

「아무튼, 시 주석. 당신들은 지금 협상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먼저 당원들과 중국 기업들에 대한 자산동결을 풀어줘야 협상에 임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는데, 난 애초에 협상을 할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당신들이 계속해서 빚을 갚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느님께 맹세컨대,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당신들은 깜짝 선물을 받게 될 겁니다. 내가 한 번 한 일을 두 번은 못할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담컨대, 이번에는 의회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언젠가 우리 두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렇게 말을 끝맺으며, 방역마스크를 쓰지 않은 백악관 미치광이는 빨간 콜라 캔을 건배하듯 들어보였다. 이 동작에 뒤따르는 지지자들의 환호는 미치광이의 권세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치광이가 한번 원한을 품으니 참 오래도 가는구나 싶다.

부우우우-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한다. 길게 이어지는 전화 수신알림이었다. 번호를 확인한 나는 TV 볼륨을 줄이고 수신 버튼을 눌렀다.

“Алло.”

전화를 받자, 걸걸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임마누일 “모냐” 칼라쇼프다.

「오, 바딕. 나의 친구. 이게 얼마만의 통화인지 모르겠군. 그동안 잘 지냈나?」

바딕(Вадик)은 내가 쓰는 가명 중 하나인 바딤(Вадим)의 애칭이었다. 나는 과거에 연기했던 우정을 현재에 이어 꾸며냈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지. 모냐 자네는?”

「나도 별일 없었다- 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하구만.」

“왜?”

「왜긴 왜겠나. 세상이 이 모양이니 일거리가 늘어나서 그렇지. 조직 내부 관리 쪽으로든, 조직 외부 사업 쪽으로든 말이야. 돈을 벌 기회가 여러모로 많아지고 있는 건 좋지만-」

말 중간에 혀 차는 소리가 끼었다.

「안팎으로 기어오르는 풋내기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오랫동안 거래했던 거래처가 망하거나 하는 일도 부지기수로 늘어나서 말이지. 게다가 전투조직 개편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는지……. 하루하루 일에 치이는 입장에선 여러모로 안정적이었던 과거가 어쩔 수 없이 그리워진다고나 할까.」

“과연.”

「세상이 이상해지지만 않았어도 슬슬 명예직으로 물러나서 손자 손녀 재롱이나 보며 소일했을 텐데, 시국이 수상하니 형제들을 봐서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구먼. 매일같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며 서로 다른 사업들을 조율하려니 아주 현기증이 날 지경이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어느 나라에 와있는지 헷갈릴 정도라니까?」

“글쎄. 그건 아마 쉴 새 없이 처먹는 보드카 때문이지 싶은데.”

「무슨 소리! 보드카는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생명의 물이야!」

“개소리 집어치우고 적당히 마시도록 하게. 자네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져.”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곤란해진다. 내가 직접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가치가 아주 높은 인맥을 하나 잃어버리는 셈이니.

인도네시아의 금빛 꼰대는 담배를 좀 줄였으려나?

적당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나와 임마누일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피차 바쁠 테니 사담은 여기까지 해두지. 바딕, 무슨 일로 나와 통화를 원한 건가?」

“자네, 최근에 중미지역의 노예시장 쪽에 손을 대고 있다고 들었네만.”

「이런.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아무튼, 그래서? 혹시 자네도 노예거래에 관심이 생겼나? 드디어 「드브(ДВ)」가 여기까지 진출하는 거야?」

드브란 브라츠키 크루그가 내 조직을 부르는 별명 같은 것이었다. 자기들 입장에서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거래처이고, 스스로 이렇다 할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그냥 임의로 극동(Дальний Восток) 회사라는 명칭을 붙인 것.

“그건 아니고.”

「그러면?」

“최근 그쪽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는 상품이 늘어났다던데, 그 부분에 대해 좀 물어보고 싶어서 말일세.”

「맨입으로?」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지. 얼마를 바라나?”

「흠……. 돈은 됐고, 내게 빚 한 번 지는 걸로 치는 게 어때?」

“이런 일로 백지수표를 내어달라는 건가?”

「어허, 이 친구. 과도하게 청구하면 자네가 받아주기는 하고? 그리고 또, 내가 설마 자네와의 관계를 망칠 만큼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까.」

“……알겠네. 그럼 빚을 지도록 하지.”

「하하, 잘 생각했네!」

임마누일은 시원한 웃음으로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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