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47화 (247/561)

#30. 검은 대륙의 러시아인 (1)

공인능력법인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래, 조직 산하에 창설된 공능법인들은 경기 북부의 지자체들로부터 자연각성체 관리 및 치안보조 등에 관한 위탁계약을 수주하는 데 힘써왔다. 본사 인근지역에 떨거지들이 발을 들이는 일을 막고,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무형의 장막을 두텁게 쌓아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 결과 현시점의 경기북부 일대는 사실상 우리 조직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조직을 창설한 이래, 사회의 양지에 대한 조직의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높아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내 조직은 과거엔 꿈도 꾸지 못했던 규모의 공중 지상 합동훈련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마법이 돌아오기 전까진 외국의 훈련장에서나 제한적으로 가능했던 일.

‘뭐, 그때는 기동훈련의 필요성도 별로 없었지만…….’

사실상의 군대가 완성된 건 좋은 일이다. 유사시 본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온갖 군벌과 약탈자들의 무리들이 횡행하는 대륙에서 괜한 손실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개별 전투단위가 아무리 강하고 정예한들, 거시적인 차원에서 손발이 맞지 않으면 삼류 잡배들을 상대로도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는 수가 있었다.

“이보쇼, 백곰 파파!”

지휘차량 선탑자석에 양반다리로 앉은 경태가, 헤드셋을 낀 채 두툼한 군사규격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속사포처럼 떠들어댄다.

“너네 백곰들이 임마, 거기서 남서쪽 진입로를 차단해놨어야 누님이 우리 배때기를 쑤실 생각을 못 하지. 그거 아까 백곰 다섯 애들이 하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 뭐? 걔들 지금 못 움직인다고? 왜? 전면에 바투르 전투단 출현? 야 이, 그걸 인제 말해주면 어떡하냐. 보고를 좀 빨리 하든가, 아니면 전산에 제때제때 정보를 갱신해 주든가. 너네가 아직도 그렇게 얼을 타면 내가 형님을 무슨 낯으로 보겠어? 분발하자 우리. 응? 아무튼 그럼 백곰 다섯은 현 위치를 고수하도록 하고, 어디 보자, 야옹이 파파? 너희 여유 좀 있지? 야옹이 셋이랑 야옹이 넷 좀 예비대로 빼자. 오케이, 바로 좌표 찍어줄게.”

경태가 들여다보는 태블릿엔 미군의 소부대 전술정보 공유 체계를 복제하다시피 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 또한 같은 사양의 태블릿을 가지고 있기는 마찬가지. 옵서버로서 양측의 정보를 모두 열람 가능한 나는 싸움의 판세를 쉬이 헤아리기가 가능했다. 수연과 경태가 편을 나누어 맞붙고 있는 가상의 전장은 현재 경태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있었다.

‘이번엔 경태의 판정승이겠군.’

경태도 수연도 새로운 영역의 지휘능력을 빠르게 습득해나가는 중이지만, 승률은 아무래도 경태 쪽이 조금 더 높았다.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 면에서 경태에겐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재능이 있었던 까닭이다.

액정에서 잠시 눈을 떼니, 할 일 없는 노인들이 멀찍이 모여 이쪽을 구경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이 점점 공백지화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살아온 촌구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무력한 낙오자들.

촌구석 주민들의 민원은 훈련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었지만, 나는 훈련비용 격으로 마을발전기금을 먹임으로써 손쉽게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주민들 간의 의견일치 따윈 불필요하다. 일단 돈부터 밀어 넣어 놓으면, 그 돈을 꿀꺽하려는 마을 이장과 마을주민들 간에 싸움이 붙게 되어있기 때문. 공정하게 기금을 운용하는 예외적인 마을들이 없지 않았으되, 그 수는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만큼 적었다.

이렇게 마을마다 싸움이 불거진 다음엔, 조직 장학생으로 키운 기자들이 제 역할을 해주었다. 추악한 개싸움들을 집중적으로 기사화함으로써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놓은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무장공비 브이로그 사태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기까지 하니, 정치인들 또한 검증된 공능법인들의 활동에 어깃장을 놓지 않았다.

“경태야.”

“예.”

“네가 보기엔 바투르 그룹이 어떤 것 같으냐?”

“전투집단으로서요?”

“그래.”

지시 하달이 뜸해진 틈을 타 묻자, 경태는 눈을 태블릿에 고정시켜놓은 채 화면에 터치를 이어가며 대답했다.

“전반적으로 실전에서도 굴릴 만한 수준까진 올라왔지 싶습니다. 종종 미친 돼지처럼 저돌성이 폭발하는 게 문제이긴 한데, 이건 뭐, 경우에 따라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조금 더 경험을 쌓으면 돌파력 하나는 끝내주는 애들이 될 것 같……. 어이쿠.”

경태의 손과 입이 다시금 바빠진다. 내 몫의 액정을 보니, 수연이 기동력 높은 전투단위를 활용해 경태가 배치한 부하들의 간극을 찔러 들어오는 중이었다.

‘저돌성이라.’

내 평가도 경태와 다르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들의 투지는 섬세한 정련을 거치고서야 온전한 장점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 인적자원 보전을 중시하는 내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정련엔 당연히 최소한의 실전경험이 포함된다. 내가 이번 탄자니아행에 메리옘 그룹을 동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이유였다. 꼭 전투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내가 확실하게 믿어도 좋은 무슬림과 무슬리마들의 존재는 전체 인구의 3할이 무슬림인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든 쓸모가 있을 것이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이슬람 성전 연합의 사자 역시 끌고 가볼 요량이다. 지하디스트들의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정보망이라 할 수 있음인즉.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면 알라의 전사들을 일회성 용병으로 써먹는 일도 가능하겠지.

손에 쥔 패와 정보를 입수할 루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끼릭끼릭끼릭-

멀지 않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쇠 갈리는 소리. 돌아보면, 군 소속의 구형 전차 한 대가 느릿느릿 언덕길을 올라오는 중이었다. 후진이 아니고선 경사진 도로를 오르기가 버거울 만큼 낡아버린 구시대의 유산.

그러나 이런 전차라도 대부분의 자연각성체들을 상대로 뚫리지 않는 강철의 수문장 노릇을 할 수 있다. 길목에 박아놓기만 해도 차단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군인들이 여기에 있는 것은 떡고물을 주워 먹기 위해서였다. 이쪽의 훈련에 있으나마나한 들러리를 섬으로써 보고서에 올릴 실적을 채우려는 것.

공능법인에 상주하는 연락장교에겐 해당 법인의 업무협력을 평가할 권한이 있으므로, 나로서는 군바리들이 ‘가라’를 칠 수 있게끔 배려해주는 편이 나았다.

50톤짜리 쇳덩어리가 제 위치에 도달하자, 차체 밖으로 몸을 내밀어 시야를 확보하던 전차장이 정지 사인을 내린다. 그러고는 핸드폰 액정을 두드려 제 상급자에게 보고를 보낸다. 정위치에 도달했노라고.

‘요즘은 전투지휘를 상용 메신저로 하나?’

한심하긴 하지만, 남침 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밥을 먹겠다는 북한군에 비하면 천 배는 더 낫다.

“계속 하고 있어라. 하늘에서 한 바퀴 둘러보고 오마.”

나는 경태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휘용 차량에서 하차했다. 밖에서 경계를 서던 경호실 소속 부하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훈련을 조감하러. 불 잘 쓰는 놈으로 하나만 따라오도록.”

비록 하늘이 사방으로 노출된 환경이긴 하나, 내게 황금기의 눈이 있고 주변엔 온통 무장한 부하들이 깔려있으므로 동반할 호위는 하나면 족했다. 이나마도 경태가 불편해할까 봐 달고 가는 것이지.

비행수단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개발한 화염 능력자용 제트 바이크였다. 갑종·을종·병종·특종으로 나누어지는 고위험 수렵용 장비들 가운데, 보유와 운용에 개별적인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 특종장비의 하나.

화염능력자용 제트 바이크와 제트추진 윙슈트, 전기능력자용 드론 바이크, 본디 군용으로 만들어진 전술차량, 스텔라 포르투나 같은 무장여객선, 휴전선 비행금지구역에서 사용할 헬기 및 드론 등이 모조리 특종장비로 분류된다.

경기북부를 장악하면서 간접적으로 얻은 이익 중 하나가 넉넉하게 떨어진 특종장비 운용허가였다. 경기북부는 국가안보상 중요한 지역이라, 개별 지자체에 주어진 쿼터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던 덕분이다. 이 쿼터를 미끼삼아 예산지출을 최소화하면서 헌터들을 끌어들이라는 배려.

제트 바이크의 기본적인 구조는 일본이 최초로 상용화한 제트 바이크와 흡사했다. 기다란 안장에 기대듯이 올라탄 나는, 새까만 파일럿 헬멧을 뒤집어쓴 뒤 태블릿에 바이크의 기체정보를 옵서버로 등록했다. 내 비행이 부하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콰아아아아-!

안장 직하(直下)의 연소 체임버에 「발화」를 투사하자, 다수의 노즐로 분산된 화염이 강한 추력을 만들어낸다. 계기판의 연소압력 게이지가 치솟는 순간, 제트 바이크는 단숨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는 전신을 후려치는 중력가속도를 느끼며 생각했다.

‘그런대로 잘 만들었단 말이지.’

「발화」를 이용한 제트추진은, 단순히 날아오르는 것만이라면 기술적인 구현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트바이크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흡기계통과 조종계통의 완성도였다. 마력을 태우는 불도 불은 불이므로 흡기가 잘 이루어지면 화력이 강화되며, 자세제어와 조종의 편의성이 높을수록 비행성능도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내가 공중조감에 나선 데엔 이 새로운 시대의 탈것에 익숙해지려는 의도도 있었다.

요란한 비행소음이 지상의 시선들을 끌어모은다. 개중엔 마대로 쌓아올린 진지 안에 웅크리고 앉아 비닐밥을 먹던 일반 사병들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속도감에 힘입어 한순간에 가까워졌다가 한순간에 멀어지는 건조한 눈길들.

‘뭐라더라, 국민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했다던가?’

적은 비용으로 호감을 사둘 겸 하여 부하들에게 일반 사병들의 식사추진을 지원해주겠다고 전하라 일렀더니, 부하가 받아온 파견장교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애들을 너무 잘 먹여주면 정신무장이 해이해져서 안 됩니다. 얘들이 뭐 호의호식을 하려고 군대에 온 건 아니잖습니까?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러 온 거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힘이 들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겁니다.」

「요즘 국민들이 먹거리 물가 상승으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습니까? 이럴 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 군이 앞장서서 그 고통을 분담해야지요. 이렇게 병사들의 공동체의식을 함양하여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주는 것도 군이 담당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음은 정말 감사하나 성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뭐, 그 돈으로 나중에 우리 간부들과 회식이나 같이 하시죠. 업무상 협조를 위해선 사적인 친분을 쌓아두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엽사님들.」

조직관리 차원에선 참으로 저급하게 느껴지는 사고방식이었지만, 군의 조직관리가 어떠하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받지 않겠다면 그걸로 끝난 거지.

카카카캉! 카캉!

지상에서 메아리치는 공포탄의 총성들. 높이 부는 바람에도 지릿한 초연의 냄새가 섞여있다. 속도를 줄이고자 「발화」의 출력을 깎으니, 체임버의 압력감소에 비례하여 분사노즐의 방향이 변화한다. 소프트웨어적인 자동제어였다.

나는 조종간을 다루어 양측 대립군이 맞부딪치는 제일선 상공을 선회했다. 승기가 기울어가는 지상에서, 가장 필사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나를 구세주로 섬기는 광신도들의 무리였다.

모두가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지만, 구세주로부터 직접 “실전처럼 임하라.”는 말을 들은 광신도들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다.

사망 판정을 받은 광신도 하나가 무릎을 꿇고 서럽게 흐느낀다. 낮아진 제트엔진의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가느다란 소리.

“주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희가 아직도 이토록 부족하나이다! 믿음이 부족하고 노력이 부족하여 주의 은총을 온전하게 체현하지 못하고 있나이다!”

내가 있는 걸 알고서 내지르는 외침이 아니었다. 다만 어디에 있을지 모를 내게 사죄의 기도를 올리고 있을 따름.

저건 영 안 고쳐지는군.

내가 없는 자리에서의 믿음은 오직 속으로만 품고 있으라 당부했건만, 여러 번 당부해도 도무지 종교적 흥분-특히 부정적인 흥분-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원들이 있었다. 그나마 이럴 때도 영어를 쓸 만큼 언어교육이 진행된 건 긍정적인 부분. 누가 듣건 간에, 기도의 내용만 듣고서는 외치는 자가 거짓 선지자를 섬기는 사교도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메리옘의 조언은 이러했다.

「귀하신 분의 미천한 종이 감히 말씀을 올립니다. 그 문제는 성취감이 주어지면 해소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귀하신 분께 처음 구원을 받은 이래, 저와 제 동생들은 까닭 없이 주어지는 은총과 은혜들을 누려오기만 했을 뿐 귀하신 분의 총애를 받을 만한 무언가를 성취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전사로 거듭나고자 심신을 갈고 닦는 중이기는 하나, 진정한 전사를 자칭하기엔 아직 성취한 바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요.」

「이는 자존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강제수용소와 죽음이 흔한 하렘을 거치며 스스로의 나약함과 하찮음을 절감해온 저희들은, ‘과연 우리가 귀하신 분을 섬길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 라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귀하신 분께서 자비로우신 말씀을 내려주셔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이 머리를 따르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도 초조함과 조바심이 있을진대, 하물며 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저희들의 몸은 살점 하나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당신의 것 아닌 게 없으며, 저희들의 마음과 영혼 또한 오롯이 당신께 바쳐진 것이오니, 귀하신 분께서는 이런 저희를 부디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사실상 저와 제 동생들을 싸움터로 끌고 가달라는 간접적인 요청에 가까웠던 조언들.

메리옘의 내면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이 단단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내가 처음 뜻밖이라고 느꼈을 때보다도 더.

조언을 고할 때,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배교자에겐 오로지 진실과 숭배의 색채만이 가득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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