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식량반입명령 (13)
재외국민보호과장의 브리핑은 오전을 꼬박 잡아먹고서야 끝이 났다.
점심시간 이후엔 각 공능법인별로 다른 담당자가 붙는 개별상담이 진행되었다. 법인마다 체결한 계약의 세부사항이 다르며, 계약의 내용은 당연히 갑과 을만의 비밀이었으므로 통합 상담으로는 다루지 못할 사항들이 다수 존재했던 탓이다.
“그, 공능법인 개마는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자신감 없는 태도로 말하는 것은 예의 그 윤혜원이라는 외교관이었다. 수연과 뭔가 악연이 있는 게 분명한 인간. 공교로움이 지나치다 싶어 빤히 바라보자, 윤혜원은 묻지도 않은 말을 변명하듯 늘어놓았다.
“제가 요청했습니다. 여러분을 담당하게 해달라고. 제게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고자……. 아무쪼록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윤혜원이 업무보조로 달고 온 듯한 시보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자에 앉은 나는 맞은편으로 한쪽 손을 펼쳐 보였다.
“앉으십시오. 시작합시다.”
권유를 받고서 착석한 외교부 사무관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제 역할을 수행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이미 국제평화지원활동 계약을 체결하긴 했으나, 군용화기를 보유한 초능력자 집단이 해외에서 활동하려면 그밖에도 선행해야 할 절차들이 여럿 존재했다.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추가로 체결하기를 바라는 부수계약들도 있었고.
“우선 개마측이 보유한 화기, 수렵용 장비 및 이동수단들의 국가별 운용 허가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윤혜원은 사람 수만큼 준비된 문서들을 배부하며 말을 이어갔다.
“동아프리카 공동체에 속하는 국가들은 평화지원활동에 참가하는 고위험 수렵 종사자들에게 장비 운용에 관한 통합 면허를 발급하기로 잠정 합의했습니다. 케냐·탄자니아·르완다·우간다·남수단·부룬디의 6개국에 한해선 각각의 장비마다 한 번씩만 심사를 받으면 되는 것이죠. 유감스럽게도 모잠비크·코모로·마다가스카르·말라위 등의 주변국들은 독립적인 면허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통보했지만, 동아프리카 공동체에서의 면허를 얻는 것만으로도 1차적인 활동에 큰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만 들으면 간단해보이지만, ‘각각의 장비마다 한 번씩’이라는 구절이 함정이었다. 윤혜원이 곧바로 그 부분을 언급했다.
“일반적인 총화기와 장비들은 동아프리카 공동체 공통면허를 받기가 수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심사를 받을 책임이 제조사에 있고, 제조사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설 테니까요. 장비를 실제로 사용하는 엽사들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신고제에 가까운 형태가 되겠죠. 문제가 되는 건 기존에 해당 국가의 수입허가를 득하지 않은 전술차량이나 주문제작으로 만들어진 총화기, 그리고 무장여객선 같은 규격 외의 탈것 등입니다.”
“규격 외의 탈것이라…….”
“네. 무장여객선의 심사는 매우 까다로운 편인데, 영해 내 교전면허와 강상항해면허가 별도로 존재하고, 톤수가 올라갈수록 운항거리별 환경보호금 요율 책정에도 난항이 예상되는 관계로, 「스텔라 포르투나」 정도 되는 배가 정상적으로 심사를 받는다면 적어도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걸 어떻게 해보는 게 외교부의 역할이지 않습니까? 면허발급이 늦어지면 우리만 곤란한 게 아닐 텐데요.”
윤혜원이 굳이 “정상적으로 심사를 받는다면-”이라 단서를 붙인 것은 추가비용, 즉 현지 관료들에게 줄 뇌물이 필요하다는 은근한 암시였다.
그깟 뇌물이야 주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그쪽의 부패한 관료들이 요구할 금액이라는 게 대단해봐야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면허 발급을 꼭 외교부의 통합 창구에 맡겨야 한다는 법도 없다. 법인 단독으로 심사를 받는다 한들, 현지 관료들에게 돈만 잘 처발라주면 빠르고 신속한 면허 획득이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시작부터 튀어서 좋을 게 있나.’
영국 놈들을 안정적으로 사냥하기 위해서는 집단행동의 그늘을 최대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 순간의 나는 1푼 1리의 이익률도 경시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업가를 연기해야 마땅했다.
“맞습니다.”
윤혜원이 선선히 끄덕인다.
“말씀하신 것처럼, 면허발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인 문제들은 원칙적으로 저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쪽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에 한계가 있고, 그밖에도 추가비용을 들여야 할 선박과 장비들이 많아 모든 법인들에게 만족스러운 지원을 할 형편이 못 되는 상황입니다. 개마만 하더라도 운용할 무장선박이 스텔라 포르투나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변죽은 그만 울리고 원하는 걸 말씀하시지요. 저쪽에서 얼마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고, 그중에 얼마를 우리가 부담하길 바라시는지.”
“음…….”
짧게 뜸을 들이던 외교관이 협상을 걸어왔다.
“꼭 금전적인 부담을 지지 않으셔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뭡니까?”
“「코스파스 사르삿 프로그램」은 알고 계시겠지요? 다른 곳도 아닌, 개마의 부사장이시니.”
“예, 압니다.”
“아프리카 지역의 평화유지 활동에 관한 국제적인 책임분담의 일환으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코스파스 사르삿 프로그램과 연동되는 메디백(MEDEVAC/부상자 긴급후송) 체계 구축의 할당량을 부여받았습니다. 무장 후송헬기와 병상 확보 양면에 걸친 할당량이죠. 그래서 해군 훈련함 한산도함을 병원선으로 전용하여 파견하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병상 수가 부족하다?”
외교관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파스 사르삿 프로그램(Cospas Sarsat Programme)은 조난자 구조를 위한 국제 인공위성 사용 협약이다. 최초엔 미국·소련·프랑스·캐나다 4개국만의 인도적 협약으로 시작하였으되, 지금은 위성을 운용할 역량이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름을 올려둔 상황.
이 프로그램은 세계 어느 오지에서 발신되는 구조신호라도 포착할 능력이 있지만, 프로그램 자체적으로 구조대까지 운용하지는 않는다. 개인이 유사시 신속히 구조를 받고 싶다면, 구조신호 발신기 구입과 별개로 긴급후송 보험을 들어두어야만 하는 것. 그래서 보통은 발신기와 보험 상품이 한 묶음으로 묶여서 팔리곤 한다.
허나 기존의 보험업체들이 교전지역에까지 헬기를 보내줄 리는 없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항공사고, 해난사고, 밀림 및 산악지역에서의 조난, 낙후국가에서의 응급의료상황 등 통상적인 사고에 대비한 서비스를 제공할 따름이니.
그러므로 광활하고 낙후된 대륙을 무대로 반쯤 자유롭게 활동할 민간 엽사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응급의료체계를 갖춰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산도함은 3개의 수술실과 60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환자 처치가 가능한 대수술실은 1개뿐이고, 중환자실은 숫자를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강화계수가 높은 각성능력자는 수용할 능력이 없고요.”
“그럼 현지에 이동식 병원을 설치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내 물음에, 윤혜원은 조심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바로 거기에 들어갈 예산을 돌려드리겠다……라고 제안하는 겁니다, 저는.”
“무시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그럴 능력은 있으십니까? 사무관 선에서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당장 윤혜원이 달고 온 시보부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마당이었다. 윤혜원은 제 능력의 한계를 담담히 인정했다.
“맞습니다. 제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하면?”
“비록 권한은 없어도, 재료만 충분히 갖춰진다면 윗분들을 설득할 자신은 있습니다. 제가 개마에서 보낸 장비운용 신청서를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개마가 운용할 의료자원을 한데 모을 경우, 중환자 및 각성능력자 수용능력 면에선 나토(NATO) 의료지원 독트린 레벨1+급의 이동식 병원이 되겠더군요. 환자이송능력은 그 이상이고요. 솔직히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시설과 장비는 그렇다 치고, 그걸 가동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어떻게 다 구하셨는지.”
“그걸 공유해 달라?”
“예. 여기에 동의해주신다면, 선박운용에 관한 면허는 물론이고 제트 바이크 같은 특종장비 면허에 들어가는 추가비용도 일괄적으로 전액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조치해드리겠습니다. 실제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수가를 기준으로 추가 보상을 드릴 수도 있겠고요. 설령 플러스알파를 붙여드리더라도 병원을 새로 짓는 것보단 싸게 먹히겠죠.”
여기까지 말을 늘어놓은 윤혜원은, 호의를 갈구하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제 제안이?”
“흠.”
조건 자체는 좋다. 곧바로 거절하는 대신, 겉으로나마 고민하는 시늉 한 번은 해봐야 자연스러울 정도로. 이쪽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 싶었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
‘내 애들을 위해 준비한 보험을 함부로 낭비할 순 없지.’
예나 지금이나, 내 조직에선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높은 자산이다. 양지의 조직들처럼 채용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아서 결원을 채울 조건이 못 되니까.
조직의 이동식 의료지원체계는 내가 대단히 공을 들여 구축한 것이다. 특히 고 강화계수 각성능력자에 대한 외과수술역량 면에선 조직 본사 의료지원과를 능가할 집단이 드물겠지. 대마법사가 사용하는 「생명」에 힘입어, 살아있는 각성능력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실습을 경험한 녀석들이니까.
비록 중증외상수술을 담당하는 인력 과반수가 의사면허가 없는 녀석들이긴 하나, 면허를 가진 녀석들로부터 도제식으로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아 실습으로 단련토록 했으므로 능력 면에선 하등의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인재육성 시스템을 최초로 확립한 게 벌써 이십 년 이상 지난 일이고, 그 정점엔 내가 가장 신뢰하는 노년의 흉부외과의가 존재했으니까.
‘처음엔 인재영입에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구축했던 시스템이지만…….’
황금기의 눈은 어떤 병에 대해서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지만, 내가 내린 진단을 토대로 아무런 의문 없이 시술을 해줄 의료진이 있어야만 그 효용을 백 퍼센트 발휘하기가 가능해진다.
이걸로 몇이나 되는 부하들에게 목숨을 빚지워 왔는지.
“안호준 부사장님? 슬슬 뭐라도 말씀을 해주셨으면…….”
조금은 초조한 기색으로 답을 재촉하는 윤혜원. 숙고하는 시늉을 하던 나는, 제안이 제안이니만큼 이 자리에선 일단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기로 했다.
“좋은 제안이긴 합니다만, 바로 결정하기는 어렵겠군요. 우리의 의료자원들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속한 엽사들, 그리고 우리와 협력할 법인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서 말입니다. 내부적인 논의를 좀 해보고서 답변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우리와 협력할 법인들이란 당연히 조직이 운영하는 개마 이외의 공능법인들을 뜻한다.
“아, 물론입니다. 사흘…… 아니, 닷새 안으로만 연락을 주시길.”
안도하는 기색으로 답한 윤혜원이 계속해서 남은 상담을 진행했다.
상담이 이어지는 내내, 국가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윤혜원은 그게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최대한 우리의 몫을 챙겨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수연의 안색을 살피는 건 덤이었고.
모든 상담이 끝난 후, 국민외교센터를 나온 나는 조직 본사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수연에게 물었다.
“수연아.”
“예.”
“그 윤혜원이라는 인간과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내 물음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수연 녀석은 조용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키지 않는다면 억지로 대답할 필요는 없다. 네게도 사적인 영역이라는 게 있을 테니. 다만…….”
“다만, 무엇입니까?”
“처음 보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은. 솔직히 약간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더구나.”
그래. 충격적이었다. 설마하니 이 비범하고도 비상한 녀석에게서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을 줄이야. 내색은 안 했어도 나 또한 잠시 눈을 의심했었지.
“너는 내게 결코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측근이다. 너에게 중요한 일은 내게도 중요한 일이고, 네가 해소해야 할 은원관계는 내가 해소해야 할 은원관계이기도 하지. 그러니, 너만 괜찮다면 들려주었으면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너 정도 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학창시절의 악연을 잊지 못하는지.”
차내에 흐르는 잠깐의 정적.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측근……이로군요.”
묘한 기색으로 내 말의 일부를 되뇐 수연이, 이내 다리 위에 포개어놓은 손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형님께 말씀드리기도 민망할 만큼 시시한 일입니다. 어린애들 사이에 있었던 사소하고도 유치한 말썽일 뿐이죠. 고작 그런 기억 때문에 형님 앞에서 스스로를 다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만큼……. 그런데도 듣고 싶으십니까?”
시시한 일?
“네가 화를 낸 것만으로도 이미 시시한 일이 아니다.”
나는 수연의 말을 단호하게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