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식량반입명령 (12)
외교관의 브리핑은 뒤로 갈수록 실용성을 더해갔다. 국가적인 정보망이 아니고선 입수하기 어려운 정보들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남아공 국가정보국에 따르면, 프랑스 대외안보총국에 의하면 등등의 수식어를 달고 나오는 정보들은 세 경독을 통해서도 입수하지 못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주술사 왕」에 관한 상세였다.
‘흥미롭군. 무수한 군벌들에게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汎) 아프리카주의자라……. 제 주술을 혁명의 도구로 여기는 사상범인가, 아니면 종교적인 자기최면에 범 아프리카주의가 포함되어있는 사이비 교주인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원시주술이 지배하는 땅이며, 이 땅에선 기독교인이든 이슬람교도든 주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프랑스 대외안보총국이 파악한 바, 주술사 왕의 진정한 영향력은 거느린 군세의 강성함이 아닌 주술사 왕 본인의 주술적 업적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업적이란 다음과 같다.
일곱 번의 저주로 일곱 개의 무장단체에게 패배와 역병과 몰락을 선사한 것.
일곱 번의 축복으로 일곱 개의 무장단체에게 승리와 영광과 복수를 허락한 것.
마지막으로, 명성이 높던 일곱 명의 대주술사들과 신통력을 겨루어 승리를 거두고, 패배한 자들과 그들을 숭앙하던 더 많은 주술사들에게서 영적인 스승으로 인정받은 것.
이 같은 소문이 돌고 있기에, 국가와 부족과 종교를 불문하고 어떤 군벌도 감히 주술사 왕의 조언이나 요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태라 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를 소문이긴 하나, 적어도 현지인들은 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그래서 현지인들은 주술사 왕을 「음왈리무 음투쿠푸(Mwalimu Mtukufu)」, 곧 위대한 스승이라고도 부른다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그러하듯이, 종교적인 충성맹세의 도미노는 급격한 영향력 확대를 가능케 한다. 주술사 왕이 독립적인 무맥(巫脈)을 거느린 대주술사들을 일곱이나 무릎 꿇린 게 사실이라면, 그의 주술적 명성이 거대한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게 되었다 한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식회사 호킹 솔루션의 대리인이 손을 들고 묻는다.
“우리가 담당할 구역에서 프랑스인들도 납치를 당하고 있다 이겁니까? 그들을 구하면 이중으로 보상을 받는 게 가능하다?”
한창 국제구조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던 외교부 박혁중 과장이 그렇다고 답한다.
「프랑스인들만이 아닙니다. 미국, 영국, 독일, 벨기에,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국민들 역시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해당 국적이 아닌 사람들조차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려지는 경우도 많고요. 다만 그중에서 프랑스인들이 유독 높은 비율로 표적이 되고 있는 거지요.」
이렇게 말하며, 외교관은 리모컨을 눌러 빔 프로젝터 화면을 여러 번 바꾸었다.
「이런 연쇄적인 납치사건들의 배후엔 현지 무장단체들의 느슨한 연합체, 「후루 연합전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술사 왕의 주도로 창설된 이 연합전선은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과 범아프리카주의를 공유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이는 현 시대에도 제국주의적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는 주술사 왕의 가르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화면에 나열된 정보들은 미리 배부받은 인쇄물에도 기재되어 있는 바, 한국이 입수한 주술사 왕과 후루 연합전선에 대한 정보들은 대부분 프랑스 정보당국이 제공한 것이었다. 나는 출처가 균일한 정보들의 행간으로부터 웃음이 나올 만큼 선명한 살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렇겠지. 메마른 들판에 불씨가 떨어졌으니, 큰불이 되기 전에 미리 밟아두고 싶겠지.’
조기진화에 실패하면, 건방진 주술사 나부랭이는 프랑스가 검은 대륙에서 누리는 기득권들을 모조리 불태울 재해로 거듭날 게 뻔하다.
그러게 좀 적당히 해먹었어야지.
제국주의 시대가 겉보기로나마 막을 내렸던 20세기 중반, 프랑스는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을 결코 곱게 놓아준 것이 아니었다. 독립을 희망하는 국가들에게 개살구 같은 자유를 허락하는 대가로 프랑스 식민지 협약(Colonial Pact) 가입을 강제했던 것.
불평등조약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식민지 협약은, 세부조항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독립한 국가들은 프랑스가 ‘근대화를 위해 건설해준’ 도로와 철도 등의 비용을 부채로 계산하여 프랑스에 상환할 의무를 진다.」
「독립한 국가들은 자국의 화폐를 발행할 권리가 없으며, 프랑스가 발행하는 별도의 화폐(세파 프랑)를 이용해야 한다.」
「독립한 국가들은 외환보유액 전액을 프랑스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며, 예치한 외화를 꺼내어 쓸 때는 대출 형식으로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매년 국가의 세입세출과 예산계획을 프랑스에 보고해야 한다. 이는 신생 독립국들이 스스로 외환보유고와 예산을 관리할 능력이 모자란 까닭에 프랑스가 문명국의 짐을 져주는 것이다.」
「독립한 국가들은 자국의 천연자원을 개발함에 있어서 무조건 프랑스에 우선권을 부여하며, 프랑스가 그 권리를 포기하기 전에는 자체개발이나 제3국과의 개발협력을 진행할 수 없다. 아울러 독립한 국가의 정부가 공공조달사업을 진행하는 경우엔 프랑스의 기업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독립한 국가들은 프랑스군의 자국 주둔을 영구적으로 허용하며, 프랑스와 항구적인 동맹을 체결해야 하고, 프랑스군에게 자국 내에서 자유로이 군사작전을 수행할 권리를 부여한다. 또한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고자 할 땐 반드시 프랑스의 승인을 먼저 얻어야 한다.」
이상의 더러운 조항들은 오늘날까지도 대동소이하게 존속하여 효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근대화 비용을 조금씩 선심 쓰듯 탕감해주기도 하고, 프랑스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외환보유고의 비율을 소폭 깎아주기도 하였으나, 협약이 보장하는 프랑스의 종주권은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예컨대 어느 자선가가 옛 식민지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현금을 전달하고자 한들, 그 돈의 85%는 일단 프랑스의 국고로 들어가서 세파 프랑으로 바뀌어 나와야 한다. 기부금도 어쨌든 외화는 외화이고, 구 식민지들이 벌어들이는 모든 외화는 의무예치 65%와 부채보증 20%를 프랑스 중앙은행에 맡기도록 되어있으니까.
사정이 이러하니, 주술사 왕이 진심으로 범아프리카주의를 추구한다면 프랑스야말로 가장 마귀 같은 나라로 보일 수밖에.
브리핑을 진행하는 외교관의 아가리에선 주술사를 겨냥한 프랑스의 살의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주술사 왕은 소말리아의 근본주의 이슬람 무장단체 「알 샤바브」 및 소말리아의 신흥 해적연합 지도자 말라크 하산(Malakh Xasan)과도 협력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연합임무부대 151(CTF-151) 소속 프랑스 초계함 장 바르가 말라크 하산 산하의 해적 그룹과 교전하여 획득한 포로들이 진술한 것으로, 교차검증을 통해 신뢰도가 매우 높은 정보로 분류되었습니다.」
「말라크 하산의 해적연합함대는 본디 케냐 인근해역까지를 활동영역으로 삼았었으나, 후루 연합전선과 동맹을 맺고부터는 기습적으로 희망봉까지 진출하거나 강을 타고 내륙 깊숙한 곳의 구호단체 캠프를 습격하거나 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된 바 있습니다. 해상과 강상(江上)에서 무장여객선을 운용할 예정인 공능법인들의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주술사 왕 「홍고 무크와비응이카」에게 3천만 유로, 우리 돈으로 4백억 상당의 현상금을 내건 상태입니다. 이 현상금은 표적의 생사와 무관하게 지급되며, 결정적인 첩보를 제공하거나 주술사 왕의 코끼리를 사살하기만 해도 5백만 유로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단, 이러한 현상금 관련 사항들은 대외비임을 명심하여 주십시오. 프랑스 정부는 거액의 현상금이 주술사 왕의 명성을 높여줄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은 소말리아의 대해적에게도 천만 유로의 현상금이 걸려있노라 첨언했다. 이는 프랑스만이 아닌, 소말리아 인근 해역의 안정화에 관심이 많은 나라들이 각출하여 조성한 자금이었다. 프랑스가 내놓기로 약속한 자금이 가장 많기는 하지만.
나는 해상도가 낮은 말라크 하산의 흑백사진을 응시했다. 무수히 많은 해적들을 규합하여 해적함대를 만들어냈다는 걸물은, 생김새만 놓고 보면 둥글둥글 순박하게 생긴 평범한 인간이었다.
해적, 해적이라.
‘자업자득이지. 누가 누구를 원망하나.’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유럽이 낳은 사생아들이다.
91년, 소말리아의 독재자 사이드 바레가 쿠데타로 몰락하고 기나긴 내전이 막을 올리자, 무주공산이 된 소말리아 앞바다를 가장 먼저 점령한 것은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불법조업 어선들이었다.
개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게 바로 유럽, 그중에서도 유럽 속의 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프랑스의 어선들이다. 그 당시는 중국의 어선들이 지금처럼 많을 때가 아니었고, 중국인들의 식생활도 지금과는 달랐으니까.
이 침략자들은 작금의 중국 황충들이 그러하듯 무제한 저인망 조업을 벌임으로써 빈곤한 소말리아 어부들의 밥그릇을 약탈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이탈리아 마피아 은드랑게타의 폐기물 처리 하청사업.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두 개의 폐기물 처리업체를 설립한 은드랑게타는,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로부터 일감을 수주한 뒤, 유럽 전역에서 긁어모은 유독성 산업폐기물과 방사성폐기물 천만 톤을 소말리아 앞바다에 쏟아부어버렸다. 작업을 방해하는 어민들을 죽여 폐기물과 함께 버려주었음은 물론이다.
유럽이 앞서 행하자 중동 국가들까지도 모범을 본받았다.
여기에 연루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설마하니 그럴 줄은 몰랐노라고 발뺌을 하지만-
‘처리비용이 톤당 1천 달러여야 정상인 폐기물들을 단돈 2.5달러에 받아주겠다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수상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냥 알고도 속아준 거지.
이로써 벼랑 끝에 내몰린 소말리아의 어민들은, 마침내 뜻을 모아 총을 들고 바다로 나선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바다를 지켜보겠다고. 가만히 앉아 굶어죽느니, 한번 목숨 걸고 싸워보기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며.
그런데, 사로잡은 도둑놈들이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어대질 않겠는가.
몸값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의도치 않게 엄청난 거금을 손에 넣은 어민들은, 이 황홀한 경험을 계기로 그들의 새로운 직업을 결정했다. 물고기가 돌아올 가망이 없는 어장에선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이것이 소말리아 해적들의 탄생 경위다.
한때 몰락일로를 걷고 있었던 해적들은, 마법의 시대를 맞아 과거의 전성기 이상으로 빛나는 황금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잠시만!”
무당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주술사 왕이라는 자가 어떤 주술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는가? 본녀가 보기엔 그거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보가 아닐까 싶은데.”
외교관에게도 반말을 해대는 무당은 얼굴에 발갛게 홍조가 올라와있었다. 살갗 아래엔 흥분의 색채가 넘실거린다.
박혁중 재외국민보호과장은 난감함을 감추지 않았다.
“주술이라 하심은, 주술사 왕이 어떤 국제공인 특수능력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그걸 물어보시는 게 맞습니까?”
“공인특수능력 같은 평범한 초능력 말고, 대주술사다운 뭔가가 있을 게 아닌가! 예를 들어 다른 주술사들을 무릎 꿇릴 때 어떤 신통력을 선보였는지! 축복은 어찌 하고 저주는 어찌 날리는지 등등! 그걸 미리 알아야 이쪽도 대비를 하지!”
“대비라면……?”
박혁중 과장의 반문에, 무당은 부채를 쫙 펼치며 턱을 치켜들었다.
“작게는 액막이 부적 준비부터 크게는 신통의 격을 다투는 주력(呪力) 대결까지! 자네도 생각해보시게나. 이 계룡산 작두만신 연화 킴 맥아더가 그 깜둥이 주술사를 굴복시키면 그 이후의 일이 아주 편하게 풀려가지 않겠는가?”
미친 무당년의 자신만만한 헛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스멀스멀 두통이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지금이 사이비들의 전성시대라는 사실을 이런 자리에서 재확인하는 건 달가운 경험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