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식량반입명령 (11)
내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나와 경태 앞에 놓인 명패, 공능법인 개마의 이름이 인맥에 목마른 사업가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이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사냥꾼 집단의 대리인들이었고, 언제나 기회를 찾고 있는 사냥꾼들은 브리핑이 시작하기 전의 짧은 여유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려 들지 않았다.
이렇게 단 냄새 맡은 날벌레처럼 꼬여드는 잡것들은 대개 경태가 나서서 특유의 넉살로 상대해주었으나, 자존심이 유별난 것들은 상급자인 내가 상대해주지 않으면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곤 했다. 최초의 공능법인이랍시고 남들을 아래로 보는구나 여기는 눈치.
이럴 때 굳이 부정적인 인상을 쌓아둘 이유가 없었으므로,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잠깐 동안의 귀찮음을 감수하기로 했다.
수연 녀석이 있었다면 귀찮음의 반 이상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을.
「명천」, 「백록」, 「주식회사 호킹 솔루션(Hawking Solution)」, 「HC 서울」, 「동화수렵」, 「H’s YGS」, 「신익 시큐리티」, 「세종 유나이티드 HC」…….
이런저런 엽사 집단 대리인들의 명함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와중에, 목숨 내놓고 돈을 버는 헌터라는 직업의 특성상 없을 수가 없는 막장인생들과 정신이상자들은, 자신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괴상한 언행으로 내가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들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 나라에서 손에 꼽는 염동능력자인 김연화라는 무당이었다. 현대적인 위장전투복에 요란한 장식들을 달고 다가온 젊은 무당은, 입에는 불을 붙이지 않은 옥수수 담배 파이프를 물고서, 철심이 박힌 무선(巫扇/무당의 부채)으로 탕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을 내리쳐 무례한 첫인사의 막을 올렸다.
“자네, 혹시 본녀의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공능법인 「연화암」의 대표 엽사 김연화 님 아니십니까?”
“어허. 김연화라니. 이 나라에 아직도 내 진명을 듣지 못한 불운아가 있었구나.”
촤륵. 넓은 부채를 펼쳐 얼굴의 반절을 가린 무당은, 전형적인 사이비의 수사법으로 스스로를 소개했다.
“경계할지라. 사람이 선녀를 속세의 이름으로 부르면 부정을 타게 되어있느니. 본녀는 몸에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신을 모시고 있는 고로, 본녀의 성은 곧 맥아더요, 자네는 나를 연화 킴 맥아더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야.”
자기소개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이가 없어질 만큼 맛이 간 여자였지만, 정신 상태야 어쨌든 3.9톤짜리 컨테이너를 밀어내는 염동력은 그것만으로도 대체인력을 찾기 어렵도록 만드는 특별함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발화까지 동시에 구사하는 삼중능력 각성자라면야.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정부로선 아쉬운 대로 써먹어야 하는 인적자원인 것이다.
“법인과 같은 단체에도 사주팔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가?”
법인설립 승인이 나온 날이 곧 사람의 생일과 같다 운운하는 희언으로 내게 표정관리를 강요하던 무당은, 마지막까지 제정신이 아닌 소리를 하며 제 명함을 내려놓았다.
“내가 오늘이 오기 전에 그대들 「개마」의 가까운 앞날을 점쳐본 바, 편관(偏官)에 다스림이 없어 강한 살(煞)이 끼었으므로 이는 곧 경금(庚金)에 더해진 병화(丙火), 부조화로 말미암아 단단한 철을 녹이지 못하는 불의 기운이라. 빛나는 능력을 가지고도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자들의 운세이다. 그러나 본녀가 그대들과 함께한다면 병화를 능히 정화(丁火)로 바꿀 수 있음인즉, 그대들이 원한다면 본녀는 기꺼이 그대들을 도와줄 의사가 있느니라.”
“…….”
“여기 명함을 두고 갈 터이니 필요하면 연락을 하도록 하라. 단, 내 외모에 반해 호기심으로만 전화를 했다간 큰 호통을 들을 것이야. 아시겠는가?”
여기까지 말한 무당은 부채 위로 눈웃음을 치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미친 사이비가 두고 간 명함은 다른 명함들과 달리 다양한 색채가 요란하게 들어가 있었다. 신점·운세·궁합·사주팔자·각성체 퇴치 상담이라는 문구가 황당함을 더한다.
경태가 자그맣게 와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소문으로 들은 것보다 훨씬 더 미쳐있는 여자네요. 저 여자가 그리는 부적들이 그렇게 잘 팔릴 수가 없다던데……. 달리 믿을 게 그렇게 없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던가. 하물며 내 조직조차도 단속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임에야.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연은 브리핑이 막 시작할 무렵 들어와 내 옆자리에 착석했다. 담담한 표정 너머의 내면은 처음에 비해 많이 가라앉아있었으나, 평소에 비하면 여전히 파도가 높게 이는 바다와도 같았다. 슬쩍 돌아보니, 문 근처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던 외교관 윤혜원과 시선이 마주친다. 움찔한 윤혜원은 어색한 미소를 곁들여 눈인사를 보내왔다.
「안녕하십니까, 엽사 여러분.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장 박혁중, 인사드립니다.」
단상에 오른 재외국민보호과장은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한 중년인이었다. 아마도 근래 외교부에서 가장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법한 사람.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현재 아프리카에선 동부 3개, 남부 1개, 서부 2개, 중앙 1개의 신속대응팀이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분들이 속한 공능법인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거점을 두고 있는 동부 제2팀 및 UN 평화유지군을 지원하여 교민 구조, 우방국 시민 보호, 군사작전 보조, 치안유지활동 등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중에 기 동의하신 사항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지금 손을 들어주십시오.」
다른 팀 브리핑을 들어야 할 법인 대리가 잘못 참석하진 않았는지 확인한 박혁중 과장은, “없습니까?” 하고 재차 질문한 후 브리핑을 이어갔다.
「여러분에게 주어질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 교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동아프리카 지역의 우리 교민들은 절반 이상이 개신교 선교사와 그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의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하여 현지 대사관에선 교민분들에게 이슬람 사원 앞에서의 땅밟기 기도, 교육봉사를 빙자하여 무슬림 가정 자녀들에게 개신교 교리 가르치기, 무슬림 집단거주 지역에서 공개적인 선교활동 벌이기 등등의 자극적인 행동을 삼가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나, 이러한 안전수칙들이 충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통제에 따르지 않는 소수의 일탈이 다수의 안전을 극심하게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슬림 인구가 다수는 아닌 지역이라 방심하고 있는 탓도 크지요.」
「설상가상으로, 반중국 감정에 매몰된 현지인 폭도들이 우리 교민들을 중국인으로 오인하여 린치를 가하거나 살해하는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원할 신속대응 동부 제2팀은 케냐,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말라위, 짐바브웨, 부룬디, 르완다,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남부 등을 관할합니다. 동부 제2팀은 담당 지역 교민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금일 08시 기준 본국으로 돌아온 교민의 비율은 전체의 47%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53% 중에서 사망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납치·실종·소재파악 불가 등의 국가별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케냐. 납치 17건, 실종 22건, 소재파악 불가 41건. 탄자니아. 납치 36건, 실종 39건, 소재파악 불가 24건. 마다가스카르…….」
도입부에선 이렇게 국민의 생명보호가 우선이라고 못을 박긴 했으되, 법인들의 실질적인 활동과 전력운용으로 차례가 넘어가자 브리핑의 기조는 급격하게 바뀌었다.
국민들에 대한 보호와 구조 활동에 대한 설명은 “고도의 유연성을 유지하며 비상대응팀의 요청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한다.”라고 간략하게 끝낸 반면, 식량안보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는 매우 밀도 높은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다릅니다.」
박혁중 과장이 단호한 어조로 선을 긋는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오직 중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업입니다. 부채는 참가국들에게 떠넘기고, 사업의 알맹이는 모조리 중국이 독점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이지요. 투자가 아니라 착취이며, 개발이 아니라 침략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투자는 상생과 호혜의 원칙을 준수하는 합리적인 투자였습니다. 중국과 달리 우리는 개발의 이익을 현지인들과 공정하게 나누고 있지요. 우리는 항구를 빼앗지도 않았고, 댐과 도로와 발전소를 사유화하지도 않았으며, 인력을 고용할 때 현지 주민들을 배제하는 차별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식량반입명령 역시 현지인들의 것을 약탈해 오려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현지인들의 지분을 제외한 우리의 지분만을 가져오고자 했을 따름이지요.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면서 말입니다.」
「이 어찌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더구나 근래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자급률은 백 퍼센트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190%를 달성한 탄자니아가 대표적이지요. 우리는 절대로 식량부족국가에서 식량을 빼내는 비도덕적인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소리 같지만, 식량자급률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식량의 양과 실제 산출의 양을 비교하는 지표일 뿐. 그 식량을 실제로 그 나라의 국민들이 소비하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외교관의 말은 결국 기아가 만연한 대륙으로부터 식량을 반출하고 싶어 하는 국가의 대의명분에 불과한 것.
인본주의적 도덕은 자본주의적 정당함의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아니다.
‘그래. 착취는 인간의 본성이지.’
스승새끼의 유해가 강박적으로 되풀이하는 소리들 중에서 몇 안 되는 정론의 하나.
이 명제를 부정하려는 자는 먼저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동산 시장부터 해명해야 할 것이다. 토지와 건물을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축적한 자본주의적 귀족들의 자산증식과 신분상속, 그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를 비판하는 자들은 많겠지만, 막상 자기에게 그런 재산과 권리가 주어지면 싫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백 채의 아파트와 수천억 대의 빌딩을 손에 넣어, 자신이 비판하던 자들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면?
미친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모두가 좋다고 답하겠지.
부동산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자들은, 막상 자신이 그 문명화된 착취의 수혜자가 되고 나서는 적극적인 체제의 옹호자로 돌변할 게 뻔하다. 얼마나 갈망하던 특권이고, 얼마나 목마르던 무위도식이었겠는가.
주둥이로는 깨어있는 흉내를 낼 수 있겠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기부와 사회 환원으로 자기만족의 선을 긋는 것까지는 가능할 터이나, 저가 얻은 특권을 살아생전에 완전히 내려놓는 경우는 만에 하나 꼴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다.
브리핑을 진행하던 외교관이 목소리의 톤을 새롭게 했다.
「제가 이 같은 내용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런 쪽으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까닭입니다.」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여러분과 여러분의 법인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이 된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현지 특파원들의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현지인들에게도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이야기할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우리 정부의 식량반입명령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왜곡된 보도는 중단된 상태입니다. 보도가 나간 직후 다수의 폭동과 소요가 발생하긴 했습니다만, 현시점에선 대중의 관심이 중국의 대대적인 군사력 투입과 과도한 식량 반출 이슈에 집중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께선 대민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주시고, 관민합동 민사작전(Civil Affairs Operations) 요청을 드릴 경우 성실히 응해주시고, 군경 파견대장의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돈이 안 되는 일감이라고 해서 무시하시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계약서에도 기재되어있는 사항이긴 하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당부말씀을 드립니다.」
국익보다 사익이 더 중할 헌터들에겐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당부. 기실 헌터들 입장에선 현지인들의 적대감이 높아질수록 돈 되는 일감도 늘어날 법한 상황이라, 욕심 많은 공능법인 몇몇이 현지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건의 진실이야 어쨌든, 외부인들의 눈에 자신들이 피해자로 비쳐지게끔 구도를 연출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언젠가 한 차례 곱씹었듯이, 사업가는 스스로 수요를 창출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