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39화 (239/561)

#29. 식량반입명령 (7)

내가 양광백포를 세우면서 부수적으로 얻은 이득 중 하나는 중국산 농축산물을 한국으로 빼낼 경로를 확보한 것이었다. 양광백포는 생산과 가공, 유통을 총괄하는 기업이었고, 내게는 인민영웅의 비호와 수상경찰을 움직일 꽌시가 있었으므로, 조직의 밀수 역량을 낭비하지 않고서도 중국정부가 내린 식량수출 금지령을 간단히 우회하기가 가능했다. 조직원들 및 조직의 계열사들을 위한 폐쇄형 복지몰에 파격적인 가격으로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먹거리 물가의 고공행진이 온 세상의 시름으로 떠오른 시대엔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마땅히 챙겨야 할 일이었다 하겠다.

항상 유념하는 바,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부하들의 충성심을 관리하는 데엔 밥을 잘 먹여주는 것만큼 우수한 방책도 드물다. 조직에 속한 부하들은 바깥사회의 시름을 볼 때마다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의 값어치를 되새길 테지.

그걸 위해서라면 다소의 금전적 손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호오.”

양광백포 중심주 사무소로부터 물길을 거슬러 내려오며 차례차례 사업장들을 점검하던 중, 잉더(英德) 북단의 대두(大豆) 가공시설을 둘러보던 가오슈센이 가볍게 감탄사를 토했다.

“뭐랄까, 식품 가공 공장이라기보단 반도체 생산라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군. 위생이 이렇게까지 철저할 줄이야.”

스마트, 자동화, AI, 실시간 내부영상 송출, 생산물 이력추적 시스템 등등은 공산당의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만족스러울 요소들이며, 또한 중국산 식자재에 대한 조직원들의 신뢰도를 제고할 방편이기도 했다.

나는 기우는 시선으로 공산귀족을 응시했다.

“설마 처음 보십니까? 이 건으로 보고를 올려서 표창까지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표창?”

잠시 당황하는가 싶던 가오슈센은,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듣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려. 내가 받은 표창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이런 사소한 건은 아마도 내 비서 선에서 알아서 처리했을 게요. 인민영웅씩이나 되는 내가 일개 대두유 공장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체면이 빠지는 일 아니겠소?”

“그건 그렇지요.”

이 새끼, 경영엔 정말로 관심이 없군.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서라면 핀윈줘에서 보았던 그 여자인가?’

나는 내게 삼합회 보유자산의 분할에 관한 계약서를 건네주던 비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모델워킹을 선보였던 똥자루를.

그 늘씬한 몸매의 고독(蠱毒)이 과연 전문적인 업무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인가부터가 의문이거니와, 능력이 있다 한들 가오슈센의 방임 속에서 자기 밥그릇 챙겨먹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을 터이므로, 이 공장에서 빼돌리는 물량을 조금 더 늘리더라도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냥 빼내는 것도 아니고 제값 다 치르면서 가져가는 것이니까. 다만 상품의 행선지가 다를 따름.

“그런데 동사장.”

가오슈센이 내 손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낸다.

“아까부터 손아귀에서 굴리고 있는 그건 뭐요?”

“금강석입니다.”

“금강석? 한번 볼 수 있겠소?”

나는 손을 펴서 20그램 남짓하게 키워놓은 덩어리를 보여주었다. 탄소와 질소에 대한 구속력을 섬세하게 운용하여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건, 전율하는 거인의 새로운 코드들을 익히고자 고안한 일상적인 수련의 하나였다. 검은 장갑 위에 놓인 반투명한 원석이 공장의 하얀 불빛 아래 노란 광채를 흩뿌린다. 인공적인 성장흔(成長痕) 하나 없는 원석은 형태면에서도 자연산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건 원석이로군. 아직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올시다.”

“보통은 볼 일이 없긴 하지요.”

“근데 크기가 좀 많이 큰 거 아니오?”

“일백 캐라(克拉/캐럿) 정도입니다.”

“뭣이?”

공산귀족의 눈에 놀라움과 탐욕이 함께 깃들었다.

“맙소사. 일백 캐라짜리 황금빛 금강석이면 도대체 그 가격이 얼마란 말이오? 지금 상태로도 품질이 좋아 보이는데!”

“원석이 일백 캐라라고 해도 가공을 하려면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양이면 가장 크게 나오는 결과물이 얼추 삼사십 캐라쯤 되겠군요.”

“그게 어디요? 그야말로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물건이잖소!”

삼십 캐럿을 넘어가는 다이아몬드는, 커팅과 색채와 투명도 모두가 우수하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렉션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귀물이었다. 대략적인 시세는 일이백억 안팎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그 돈이 있다 한들 구매희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 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하나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물건이라는 뜻. 경매에서 져버리면 그나마도 없다.

“이달에 결혼하는 조카가 구한 게 채 20캐라가 안 된다고 하던데…….”

귀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은 공산귀족들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그리고 깨끗한 금빛(Fancy yellow)의 다이아몬드는, 황금에 종교적인 수준의 집착을 보이는 중국인들이 특히 더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조카를 주워섬긴 가오슈센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동사장. 그거 혹시 주인이 정해져있는 물건이오?”

“그렇습니다.”

“대체 누구요? 그 사람이.”

“린페이입니다.”

“……진심이오?”

“서기. 내가 언제 빈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황망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던 공산귀족은, 이내 마른세수와 함께 한숨을 닮은 말들을 내뱉었다.

“린페이, 린페이, 린페이. 동사장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시는구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고 해두지요.”

“끄응.”

가오슈센이 듣기 좋게 앓는 소리를 낸다. 지금 느끼는 아쉬움의 크기만큼 내 마음을 착각할 테니, 일부러 눈에 띄도록 원석을 굴려댄 보람이 있다 하겠다. 최악의 경우에도 린페이만 꽉 붙잡고 있으면 내게 얼마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 여길 테지.

“그러지 말고, 내 조카 녀석이 준비한 예물과 교환하는 게 어떻겠소? 오늘부터 가공에 들어가면 결혼식 전에 반지든 목걸이든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오. 솔직히 린페이 그 아이에겐 10캐라짜리를 주기에도 이르지 않소?”

미련을 못 버린 공산귀족이 입맛을 다시며 나를 설득하려 든다.

“남녀 간에는 응당 밀고 당기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올시다. 여느 애완동물들이 그렇듯이, 무턱대고 잘해주기만 하면 첩의 성격을 망쳐놓기 십상이란 말이지. 사내를 제 치마폭에 완전히 떨어트렸다고 믿는 여자가 얼마나 건방지게 변하는지 아시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린페이가 그럴 것 같지는 않군요.”

“어허, 이 사람 참……. 한번 버릇을 잘못 들인 여자는 고쳐 쓰기도 어렵건만…….”

공산귀족이 쯧쯧 혀를 찬다. 중국에서도 혀를 차는 것(咂舌)의 의미는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나를 보는 시선에 욕심을 넘어선 안타까움이 깃드는 게 보일 지경.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손에 쥐어 뒷짐으로 감추며, 적당한 말로 가오슈센을 달래었다.

“서기의 조카라면 내게도 남이 아닙니다. 당신의 체면을 살려드릴 겸 하여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두었으니, 기대하고 있어도 좋을 겁니다.”

“으음, 동사장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내 뒷짐 지는 손을 따라 눈을 굴리던 가오슈센이 체념하듯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화제를 전환한다.

“그래, 결혼식에 참석하실 수는 있겠소이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근시일 내로 멀리 바다를 건너가는 일정이 잡혀있는지라.”

“바다를 건너? 어디로 말이오?”

“사업상의 비밀입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날 일이 아니며, 함부로 미룰 수도 없는 중대사라고만 해두지요.”

“이런. 이거 숙부님께서 많이 아쉬워하시겠구려.”

나도 그 인간을 한번 만나보고 싶기는 하다. 가오슈센의 숙부 가오닝후이는 가오슈센이 속한 가문 전체의 우두머리 같은 자이니까. 아무렴 성(省)급 정부의 최고 실세나 마찬가지인 자인데 꽌시를 두텁게 해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그러나 일찍이 가오슈센이 말했던 조카의 결혼식까지는 겨우 스무 날밖에 남지 않은 상태. 나와 내 부하들의 탄자니아 행은 표면적으로 한국정부의 정식의뢰를 받아서 가는 형식이 되어야 할 터라, 정부가 요구하는 파견 전 교육훈련 및 준비과정을 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조직 내적인 원정 준비로도 시간과 자원이 소요될 터. 늦지 않게 사냥터에 도착하려거든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그런즉 지금으로선 갈기를 화려하게 흩날리는 각성체 명마를 보내어 나에 대한 호감을 더해두는 게 최선일 것이다.

대두가공공장에 이어 여러 사업장을 시찰한 나는, 해가 뉘엿뉘엿 서쪽 산등성이 아래로 넘어갈 무렵 가오슈센에게 작별을 고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좋았습니다, 서기.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가오슈센은 아쉬워하는 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대는 내가 누구보다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사무적으로만 얼굴을 보고 헤어지려니 서운한 마음이 크오.”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일정이 너무나 빠듯한 것을. 괜찮다면 내일 석벽호표 본부 사열이라도 참관하시겠습니까?”

마음에도 없는 권유를 하자 가오슈센이 얼른 손사래를 친다.

“아니아니, 그건 됐소. 그것도 결국은 일이잖소? 엄밀하게는 내 일조차도 아니고.”

오늘만 해도 업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내내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공산귀족이다. 제 것이 아닌 병단의 사열을 보자는 제안이 달가울 리가 있나.

“혹시 내일 저녁엔 시간이 나시겠소? 핀윈줘 말이오.”

“그건 곤란하군요. 이미 출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인지라.”

“으음, 아무래도 어렵겠소? 그대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 거요. 남들은 돈을 주고도 얻지 못할 귀한 인맥들이 동사장의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애가 닳아 있는 상황이라오. 이는 사업가가 마땅히 챙겨야 할 이익인즉,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여섯 시간 정도만 출국을 미뤄보시구려. 동사장에게도 굉장히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을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는 바요.”

참 끈질기기도 하지.

이해는 간다. 일전에 핀윈줘에서 거두었던 ‘성공’이 얼마나 달콤한 기억으로 남았겠는가. 66억 위안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 영향권 아래 묶어둔 것만으로도 일생일대의 쾌거였을 테니. 거기에 미인계도 제대로 먹혀들었고, 추가적인 투자들을 이끌어내어 내 돈으로 제 사람들에게 인심을 쓰기까지 했으므로, 그 성공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법도 하다.

경태가 젊은 세대의 언어를 빌려 표현하기를, 내가 ‘보물 고블린’ 같을 거라던가. 의미를 물어보니, 건드리기만 해도 재보를 쏟아내는 작은 괴물이라고 했었다.

「형님이 몇 개의 금고를 털고 얼마의 돈을 벌어갔는지 아는 입장에서 집착을 안 할 수가 없겠죠. 이익을 미끼로 살살 구슬리면 엄청난 돈을 몇 번이라도 더 뱉어내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을 텐데요, 뭐.」

그리고 공산귀족으로선 류린페이에게 너무 무게가 실리는 것도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 미완의 고독이 저가 대체불가의 인재임을 깨닫게 되면- 즉 ‘건방지게’ 변하기라도 하면 자칫 제 통제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으니까.’

막말로, 린페이가 가족이야 어찌 되든 아랑곳없이 저 하나만 잘 살겠다고 탈주를 감행해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가오슈센이 아는 나는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적이 없는 밀수 전문가다. 설마하니 여자 하나 빼돌리기가 어려울까. 중국정부의 여우사냥으로도 내 보호와 은폐를 뚫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니 그러한 우려가 현실성을 띠기 전에, 예방접종 차원에서 내 마음에 새로운 고독을 심어두고 싶을 수밖에.

나는 고심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어렵겠군요.”

“…….”

“달리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나는 이만 린페이를 보러 가보겠습니다.”

“아이고야(哎哟).”

탁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부여잡는 공산귀족. 탄식하는 귀족에게 다시금 작별을 고한 나는, 비행의 안전이 보장되는 영역으로 들어서고부터 헬기를 타고 광저우 도심으로 향했다.

현재 린페이가 거주하는 곳은 광저우 최대의 부촌인 21세기 중앙경제구역(CBD)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중해경휘화정(中海璟晖华庭). 전용면적만 2백 제곱미터가 넘어가는 호화로운 집은 내가 제공해준 물질적인 행복의 일부였다.

나는 린페이에게 일부러 빠듯한 연락을 넣었다. 집으로 찾아가겠노라고. 그러므로 내가 아파트 현관에 도달했을 때, 조금 먼저 일터로부터 헐레벌떡 돌아온 린페이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분주히 실내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그리 어지럽지도 않은 집안이었음에도, 린페이의 눈엔 그게 아니었던 모양. 슬리퍼를 신을 겨를조차 없이 스타킹으로 바닥을 밟고 뛰어다니는 다급함이었다.

신체에 흐르는 긴장의 색채, 틈틈이 시계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초조한 행동 등은 내게 최대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발로겠지.

정리가 적당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초인종을 누르자, 울상을 지은 린페이는 서둘러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다듬고는 현관으로 달려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오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실 줄은-”

나는 린페이의 입을 입으로 막아버렸다. 신속히 무력화한 뒤 명상이나 하고 싶었던 까닭. 마법사로서 궁구해야 할 코드가 얼마란 말인가.

질척이는 접촉을 유지하며 현관문을 닫은 나는, 신경다발들이 번뜩거리는 인체를 벽으로 밀어붙여놓고서 움직임을 봉쇄하여 행동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잘 숨겨진 감시카메라의 렌즈가 린페이의 몸통에 가로막힌다.

“읍, 으응…….”

혀가 얽히는 물소리 사이에 이따금씩 꼴깍꼴깍 타액 넘어가는 소리가 섞여든다. 비위생적인 소리다. 수 분에 걸쳐 생체징후를 살피며 혀와 손과 몸과 숨결을 사용하여 자극을 준 나는, 린페이의 골통 속 내용물이 확실하게 녹아내린 다음에야 비로소 입술을 떼었다.

그러곤 두 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일단 성교부터 하자.”

“……녜헤.”

눈이 풀린 린페이는 흐물흐물한 발음으로 답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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