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38화 (238/561)

#29. 식량반입명령 (6)

머리를 굴리던 공산귀족은 은근한 어조로 미련을 드러냈다.

“내 무명회사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요마는, 이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명회사로선 원래 하던 무기밀매나 계속하는 수밖에 없지 않소? 수익성을 따진다면 무기거래가 인간사냥보다 한참 아래일 터인데.”

나는 이번에도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목숨이 위험하진 않지요.”

“무장, 조직, 훈련.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게릴라들이 두렵다는 것이오? 필요할 땐 나 자신을 최후의 병사로 내보내서라도 승리를 확정지어야 한다고 했던 동사장이?”

“오해 마십시오. 나는 그저 생명수당에 대해 말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서기. 위험도 평가를 배제한 수익성 비교는 결코 합리적인 경영 방책이라고 할 수 없지요. 사업가가 추구하는 이익은 결코 장부상의 숫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값비싼 고급 인력들을 가만히 놀려두는 게 최선은 아니잖소?”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이 될 수는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최고의 역량을 투사하려면, 자잘한 기회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하들을 충분히 쉬도록 해두어야 하는 것이니까.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기력을 낭비하는 소인배가 어찌 큰 이익을 도모하겠습니까?”

“으음…….”

할 말이 궁해진 공산귀족은, 여러 호흡을 골몰한 끝에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그럼 얼마면 되겠소? 내 사촌이 얼마를 드려야 동사장의 도움을 받기가 가능하겠는가 이 말이오.”

“역으로 묻지요. 서기께서 생각하시는 나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의로 맺어진 형제의 목숨 값을 얼마로 보고 계시는가를 말씀해주신다면, 그 값을 토대로 통상적인 비율을 적용하여 생명수당을 산정하는 게 좋겠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

가오슈센이 다시 한 번 합죽이 흉내를 낸다. 속으로는 역시 나를 어떻게든 핀윈줘로 끌고 갔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침묵이 길어진다. 나는 공산귀족이 애먼 소리를 덧붙이기 전에 쐐기를 박았다.

“서기.”

“왜 그러시오?”

“지금의 미얀마는 나 같은 무기상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사업 환경입니다. 반군을 지원하고는 싶은데 대놓고 지원할 수는 없는 서방세계의 국가들이, 그들을 대리하여 시민들을 무장시킬 중개인들을 구하고 있으니까. 수익과 안전성이 양호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서방세계의 첩보당국들과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둘 기회인 셈이지요.”

“크흠.”

“중국제 정품 무기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완성된 운송로까지 가지고 있는 나는, 서방세계를 만족시킬 최고의 대리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아는 나와 내 회사의 능력이 미얀마의 반역도당들을 무장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실로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할 거요?”

“안 합니다. 다만 이거 하나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내 회사가 미얀마에서 장사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당신과 이 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중국군이 미얀마군에게 대놓고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지금, 중국은 무기상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중국이 내 일감을 가로챘다고 봐야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미얀마는 새로운 무기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 그러므로 중국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내 조직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쏠쏠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게 가오슈센이 이해하고 있을 현 상황이었다.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사정.

“하아.”

공산귀족이 냄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 사촌 녀석에게는 동사장이 다른 일로 바쁘게 되었노라고 전하는 수밖에.”

“유감이군요.”

“유감은 무슨. 내 어찌 형제의 핏값을 후려치겠소.”

말은 이렇게 해도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또 한 사람의 인민영웅을 배출하여 가문의 위상을 확고부동하게 굳힐 작정이었을 테니, 그야 아쉽지 않을 수가 없겠지.

미얀마 군사정권을 돕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국가공정이기도 하고.

군부가 승리한 미얀마로부터 인도양 방면의 항구를 뜯어낸다면, 중국은 해상운송료 부담을 큰 폭으로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밖에도 다른 이익들이 많겠으나, 인도양 항로의 가치에 비해선 사소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터. 성공하기만 한다면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에 더없는 호재가 되어줄 것이었다.

국내가 어지러운 와중에 아프간도 건드리고 아프리카에도 불을 지르면서 미얀마까지 집적대는 꼴이 우습기는 하지만.

욕심을 부리는 건지, 발악을 해대는 건지.

배가 속도를 줄이는 게 느껴진다. 바깥을 슬쩍 내다보니 중간 경유지인 잉더(英德市) 북쪽의 백석요(白石窑) 댐이었다. 장강수로를 항해할 때와 같이 수상경찰이 알아서 길을 터놓았으므로, 갑문을 이용하기 위해 따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갑문을 통과하고 나서 목적지인 중심주까지는 지나온 길의 4분지 1에 불과한 거리였다. 이 짧은 수로를 타면서, 나는 자잘한 사담을 받아가며 맥 빠진 귀족의 심기를 달래주었다.

“나 말이오.”

가오슈센이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사내답게 잘생긴 편이지 않소?”

나는 살을 빼더라도 구제의 가능성이 없을 펑퍼짐한 낯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반평생에 걸쳐 무수히 많은 미인들로부터 숨 쉬는 듯한 아첨을 받아왔을 테니, 저가 잘생겼다고 착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렇습니다. 선을 살리려면 살은 조금 빼시는 편이 낫겠습니다만.”

“으음, 살이 문제가 되나? 사내는 무릇 풍채가 좋아야 하는 법인데. 내 딴엔 많이 노력을 하는데도 박 여사는 나를 남자로 보지 않는 눈치더란 말이지.”

시답잖은 연애상담은 선박의 항해가 마침내 반환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심주에 설치된 척식 사무소와 엽사병단 주둔지는 민간시설이라기보단 차라리 본격적인 군사시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높으신 분들의 방문을 예고 받은 현장 실무진들이 무더기로 몰려나와 각 잡힌 오와 열로 우리를 환대한다.

“중심주 사무소에 어서 오십시오!”

이렇게 목청을 높이는 자는 중심주에 박아놓은 석벽호표 제9군(群) 소속의 중급 간부였다. 본사에서 파견한 전투인력이 아닌, 광저우에서 모집한 현지인 이능보유자. 군대의 그것을 많은 부분 참고한 계급장을 보건대, 군(群), 단(团), 대(队), 조(组)로 내려가는 석벽호표의 병단조직체계에선 대(队) 하나를 맡고 있는 인간이다.

선현에서부터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미주는, 잔교를 내려오자마자 간부의 싸대기를 후려쳤다. 턱뼈에 금이 갈 만큼 강한 타격. 내가 손수 회로를 열어준 각성자다운 힘. 쩌억 소리와 함께 피와 이빨 조각이 튀자, 옆에 있던 공산귀족이 으흥- 하는 괴상한 숨소리를 흘린다.

“호, 호표사령!”

옆으로 쓰러진 간부가 미주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왜…… 왜 화가 나신 겁니까?”

미주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내가 여러 번 훈시했을 텐데. 어디로 파견을 가든 그곳을 항상 전장으로 여기라고. 어디에 흑해자당의 눈이 있을지 모르니 자나 깨나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기억나지 않는 건가?”

불투명한 보안경이 미주의 인상을 더욱 무기질적으로 만들어놓는다.

“무,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 이 지랄을 해? 여기 중요인물이 있다고 광고라도 할 셈이야?”

싸움터에서는 경례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적 저격수에게 고가치 표적의 존재를 노출시키는 행위이기 때문.

“똑바로 서라, 젱루오(郑罗) 1급 엽사장(猎士长).”

“예!”

주저앉아있던 간부가 벌떡 일어선다. 미주는 하급간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탁탁 소리가 나도록 바로잡아주며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했다.

“너는 경솔한 행동으로 인민영웅 가오슈센 서기와 우리 병단의 투자자를 잠재적 위험에 노출시킨 거야. 이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겠나?”

“예!”

“중요인사의 이동정보는 대외비로 지켜야 할 사항이다. 한데 그걸 이딴 식으로 광고를 하나? 이번엔 이걸로 넘어가겠지만, 만약 이런 일이 한 번이라도 더 있으면 그때는 절대로 가볍게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호표사령!”

“두 분 귀빈께는 내가 대신 사과드리겠다. 부하의 실수는 사령의 책임이니까. 오늘 이후 다시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아. 이해했으면 일단 여기 모아놓은 인원들부터 해산시켜. 지나치게 요란하다.”

“예, 사령!”

나는 미주 녀석의 병단 사령 노릇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잘 적응했군. 기대 이상이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미주가 비록 영업직이었다곤 하나, 사람 죽이고 무기 파는 회사에서 근무를 한 경력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녀석이었다. 또한 영업을 하며 만나고 다닌 게 죄 인세의 그늘에 발을 들인 인간들이었으니, 그로부터 기른 배짱은 또 얼마일 것인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미주에게 병단 운영을 맡긴 게 아닌 것이다.

기실, 미주를 갑수의 보좌로 붙여준 건 처음부터 대가 약한 갑수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한 인사였다.

두 녀석이 부부가 되었어도 잘 어울렸을 텐데.

충성스러운 두 부하의 결합은 내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겠지. 나는 조직원들 간의 결합을 권장하는 입장이니, 행복한 가정의 모범사례가 생겨서 나쁠 것이 없었다.

갑수 녀석의 죽음이 새삼스럽게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랫사람 관리에 소홀하여 두 분께 폐를 끼쳐드렸습니다.”

미주가 사죄하자 숨결이 거칠어졌던 가오슈센이 열성적으로 손사래를 친다.

“그 무슨 말씀을! 박 여사와 나 사이에 겨우 이 정도로 폐라고 할 게 있겠소? 오히려 그렇게 이 몸의 안전을 챙겨주는 모습에 감동하였소이다. 부하들을 엄하게 다스리는 모습이 아름, 흠, 멋있기도 했고. 아니 그렇소, 동사장?”

이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공산귀족의 시선엔 빨리 그렇다고 동의하라는 무언의 채근이 담겨져 있었다.

인간에 대한 돼지의 짝사랑이 참 열심이기는 하군.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선 다른 여자들을 깔아놓아야 한다고 지껄이는 정신 상태로는 천년이 지나도 가망이 없을 것을.

이런 속을 감추며,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람 많은 조직에 멍청이 하나 없을 수 있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네가 직무에 잘 적응한 게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도록.”

“제 교육관리가 미비했는데도 오히려 칭찬을 해주시니 민망합니다.”

“혹시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있나?”

“경호팀에게 배운 것도 있지만, 비서실장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해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

“예. 나이를 떠나, 모든 면에서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상급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지.”

나조차도 가끔은 사람이 저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녀석이니까.

미주가 화를 내며 얼간이의 뺨을 후려치긴 했으되,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일 뿐 내 안전이 실제로 위험해진 건 아니었다. 흑해자당의 저격수 따위가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고로 농지 시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양광백포회사가 이 지역에서 추진하는 구획정리 및 농업현대화는 미국을 모범으로 삼고 있었다. 채 1헥타르도 되지 않는 자그마한 농지와 과수원들이 직소 퍼즐처럼 뒤섞여있던 전근대적 경작방식을 폐기하고, 수백 헥타르 단위로 반듯하게 규격화된 경작지들을 조성하여 농업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

보고받은 바, 이 부근의 농민들은 양광백포가 제안한 토지유전을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회사가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큰돈을 쓴 것은 아니었다. 농민들은 다만 상식적인 수준의 대가를 받았을 따름.

그러나 중화제국의 식민지엔 원래부터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한평생 비상식적인 착취를 정상으로 알고 살아온 3등 시민들에겐 상식적으로 책정된 대가가 어마어마한 거금처럼 느껴졌을 뿐인 것이다.

‘이것도 결국은 미주의 공로지.’

미주가 현장 책임자로서 인민영웅 가오슈센의 권세를 휘둘러 식민통치 피라미드의 아래층을 꼼꼼하게 갈아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가오슈센의 공산귀족다운 탐욕을 중간에서 차단해주지 않았더라면, 양광백포의 척식사업은 꽤 많은 양의 제국주의적인 유혈을 동반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가오슈센에게도 이익이었다. 양광백포가 이능을 활용한 농업굴기의 모범사례로 꼽히면서 중앙정부가 조성한 기금의 지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 지원금을 가오슈센 혼자 절반 이상 처먹는 중이었으니까. 돈은 저가 집어삼키고 채무는 회사에 떠넘기는 악질적인 행태다.

농지와 벗한 강변의 민가들은 절반 이상이 텅 비어있었다. 한 번에 목돈을 쥐기는 하였으되 당장의 생업을 잃게 된 농민들이, 중앙정부가 선전하는 해외취업 프로그램에 단체로 투신해버린 탓이다.

그 해외취업 프로그램의 종착지는 중국이 일대일로로 확보한 해외의 식민지들.

즉 중국은 식량자급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잉여인력을 아프리카 같은 땅에 옮겨 심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절반만 살아남아도 중국으로선 남는 장사가 될 테니까. 그러므로 가짜 빨갱이들의 장밋빛 선전선동에 넘어간 농민들의 운명은 결코 좋을 수가 없겠지만, 내가 거기까지 신경을 써줄 의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내 자존심의 값을 지불했다.

내가 자기만족의 선을 긋는 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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