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식량반입명령 (3)
후샨량이 급히 나를 찾은 이유는 제 자식이 저지른 말썽 때문이었다. 내 도움을 받아 아부다비로 보내놓은 아들놈이, 같은 국제학교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퍼마시곤 음주운전으로 행인을 들이받아 죽이는 대형 사고를 터뜨린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슬람 국가에서.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아부다비는 술을 마시는 데 면허가 필요한 나라였다. 오직 21세 이상의 외국인에게만 발급되는 허가증이. 비록 지금은 그 제도가 폐지되어 이론적으로는 무슬림조차도 음주가 가능한 도시가 되었으나, 지정된 장소 이외의 공간에서 술을 마시거나 취한 채로 돌아다니는 것은 여전히 처벌 가능한 경범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후샨량의 아들이 이제 겨우 열네 살 먹은 애새끼이며, UAE 연방형법이 18세 이하 미성년자에 대한 형량 감경을 명시하고 있긴 하나, 술 먹고 차 몰다가 사람 쳐 죽인 짓은 아무리 애새끼라도 실형을 면치 못할 중죄였다.
「말이 안 됩니다.」
암호화된 위성 통화로 하소연을 늘어놓는 후샨량의 음성엔 짙은 피로와 절망감이 녹아있었다.
「그쪽은 형사책임의 최소연령이 7살이라고 하더군요. 믿겨지십니까? 고작 7살짜리 애한테까지 실형을 선고하는 나라가 있다는 게?」
“진정하시오.”
「아들놈이 지금 유치장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진정을 하겠습니까? 안사람 말을 들어보니 재수가 없으면 추방이 아니라 10년짜리 금고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답니다. 그 어리고 겁 많은 녀석이 자그마치 10년을 감옥에 처박혀서 보내야 하는 거지요! 경찰이 말하기를 죽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했다던데, 정신 나간 알라쟁이들은 그게 관대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글쎄. 살인에 대한 처벌이 금고 10년형이면 관대한 기준이 맞는 것 같은데.
‘샤리아가 적용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형사사건을 다루는 샤리아 율법의 기본은 「키사스(قصاص/보복)」의 원칙이다. 사람을 죽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고를 낸 장소가 아부다비 특구를 벗어난 지점이었다면, 후샨량의 아들놈은 금고형이 아니라 사형을 걱정하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도와주십시오, 간부(干父/의부)님!」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갈라진 목소리로 호소한다.
「제 아들 녀석이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지, 원래는 밑바탕이 착하고 순하기 그지없는 아이입니다. 몰고 다닌 차도 제 어미 것이 아니라 친구네 아버지 것이라고 하는데, 분명 못된 친구들이 기억 흐릿한 제 아들에게 누명을 씌운 게 틀림없습니다! 술을 마신 것도 다 그 나쁜 연놈들이 꾀어서 먹인 것이겠지요! 우리 애는 무조건 착합니다. 감옥에서 10년이나 썩혀도 좋을 애가 아니란 말입니다…….」
“진정하라고 했소.”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나는 귀찮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달래듯이 대꾸했다.
“그대는 내게 아들과 같은 사람이오. 그러니 그대의 피붙이는 내게도 남이라고 할 수 없지. 최선을 다해 구명을 해볼 테니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시오.”
「감사,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말은 결과가 나온 뒤에 듣도록 하리다. 아직은 어찌 풀릴지 모르는 일이니. 그보다, 피해자의 신원이 어떻게 되오? 이마라티만 아니어도 승산이 꽤 높아질 텐데.”
이마라티란 UAE의 내국인을 뜻하는 말이다. 외국인이 내국인보다 많이 거주하는 부족연합국가에서, 순수혈통의 내국인은 귀족계층이 아니더라도 1등 시민으로 취급된다.
「정확한 신원은 모릅니다만, 일단 내국인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이로군. 죽은 사람의 성별은 어찌 되오?”
「여자……라고 했는데, 성별이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내가 기억하기로, 이슬람 율법에서 여자의 목숨은 남자보다 저렴하다. 비록 에미레이트 연방 형법이 이슬람 율법의 전근대성을 배격하기는 하지만, 그 법을 다루는 사법부 전원이 무슬림이고 보면 샤리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판결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름 민주국가라는 한국에서조차 국민의 법 감정 운운하며 왜곡된 판결을 내리곤 하는데, 관습법이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선 오죽하겠는가.
‘뭐, 그 값이라는 것도 유족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금전적 보상으로 환산하는 「디야(ديات)」의 율법은, 죽은 자의 상속자들이 보복의 권리를 포기할 때 비로소 작동하는 것. 샤리아를 근거로 들어 무슬림을 설득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어설픈 인용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므로.
“나이와 종교는 알고 있소?”
「그것까지는 잘……. 아내에게 확인해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모른다면 됐소. 내가 직접 알아볼 테니. 아내에게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 말고 조용히 자중하고 있으라 전하시오.”
「예!」
중국인들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중국 이외의 땅에서 사고를 쳐도 중국에서처럼 꽌시에 의존해 해결을 보려 든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현대화된 도시 속에서도 이슬람 부족사회의 전통과 종교적 폐쇄성이 남아있는 UAE 같은 나라에선 도리어 역효과를 볼 가능성이 존재했다.
이제야 이성이 좀 돌아오는지, 후샨량이 이렇게 물어온다.
「혹시 제가 보답을 해드릴 무언가가 있겠습니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필요 없소.”
나는 즉각적인 대꾸에 불쾌감을 담아 후샨량의 말을 잘랐다.
“나는 대가를 바라고 그대를 돕는 게 아니오. 간부 된 자의 도리를 다하려는 것이지. 그대는 나를 간부로 섬기겠다고 해놓고도 속으론 여전히 남이라 여기는 모양이군.”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분 상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다음 연락을 기다리시오. 어쩌면 광저우에서 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예, 간부님!」
“밖에선 간부라 부르는 일이 없게끔 주의하도록 하고. 내가 이런 통화에서조차 대자(代子)를 상대로 태도를 삼가는 이유를 잊지 마시오.”
「며, 명심하겠습니다.」
“끊겠소. 보중하시오.”
마냥 좋게 도와주기만 하면 내가 베푸는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기 마련. 의도적인 차가움으로 종료한 통화는 후샨량으로 하여금 기다리는 내내 가슴을 졸이도록 만들어줄 터였다. 적어도 내게 폐를 끼쳤다는 인식은 박아줘야지.
사실 이해득실을 말하라면 내게는 이익이 되는 일이다. 가족들을 외지에 두고 있는 한 내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음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어줄 테니까.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가 안면을 터둔 이마라티 브로커는 두바이 에미르의 혈통을 나누어받은 자. 즉 사실상의 왕족이다. 비록 왕족 중에서는 한미한 가계(家系)에 속한 자이지만, 그럼에도 그 영향력은 일개 브로커로 취급하기 미안해지는 수준.
나와 그 브로커의 관계가 친밀한 것은 아니나, 일개 외국인의 재판이 그렇게 중대한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적당한 설득에 적당한 액수의 성의를 곁들인다면 10년의 금고형에 집행유예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추방령으로 갈음해버리거나.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각성체 낙타나 한 마리 만들어 보내면 될 거다. 이런 데 대마법사의 능력을 쓴다는 게 달갑지 않아서 그렇지.
나는 메리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귀하신 분이시여.」
나를 섬기는 사도는 공손한 어조로 지식을 바쳤다.
「그런 거라면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4.25킬로그램의 금을 전하고 싶어 하노라 말씀하십시오. 이는 ‘신성했던 책’에 적혀있는 낙타 백 마리의 값어치이니, 알라를 믿는 자의 입장에선 믿지 않는 자가 예언자 시대의 일화를 알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메리옘의 전공은 문학이다. 그러나 모든 이슬람 문학의 뿌리가 「쿠란」에 있으며, 이슬람권의 기초교육 또한 「쿠란」을 읽는 데서 시작되므로, 메리옘은 이슬람의 성서에 대하여 제법 많은 지식들을 지니고 있었다.
“왜 하필 낙타 백 마리의 값이지?”
내 물음에 메리옘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거짓된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므르 이븐 하즘에게 보낸 편지에 적기를, 사람의 한평생은 낙타 백 마리로 보상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가 오늘날까지 정확하게 준용되는 것은 아닐지나, 믿는 자들에겐 충분히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가. 나는 내 사도가 사용하는 언어를 곱씹었다.
‘신성했던 책에 거짓된 예언자라.’
재미있는 표현이다. 알라를 증오하는 배교자에게 쿠란은 더 이상 신성한 책이 아니고, 무함마드 또한 진정한 예언자가 아닌 것이다. 메리옘은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저가 더는 믿지 않는 믿음의 구절들을 읊었다.
「말리크의 야히아 이븐이 거짓된 예언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자 사이드 이븐 알 무사입의 말을 전하기를, “여자의 손가락은 남자의 손가락과 같고, 여자의 이빨은 남자의 이빨과 같으며, 뼈가 드러나는 상처 또한 남녀가 서로 다르지 아니하고, 뼈가 부러지는 부상 역시도 남녀가 서로 동등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등함은 남자의 목숨 값의 3분의 1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남녀의 목숨을 달리 계산하는 근거입니다.」
“방금 그 부분, 한 번 더 되풀이해주겠나?”
「예, 위대한 분이시여. 말리크의 야히아 이븐이 거짓된 예언자의-」
메리옘이 반복하는 내용을 암기한 나는, 이어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목숨을 다르게 계산하는 법까지 듣고 만족했다.
“고맙다. 도움이 되었어.”
「……제 미천한 앎이 귀하신 분께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반 호흡 느리게 나오는 대답은 조금 전까지와는 어조가 달라져있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와중에도 다 억누르지 못한 기쁨이 새어나오는 느낌.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하기야 날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에 깊이 빠져드는 기색이었으니.
“훈련 중이었나?”
「예.」
“다들 실력은 많이 늘었고?”
「저희는 그저 귀하신 분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고자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러냐. 다음에 보게 될 때가 기대되는구나.”
「그…….」
“뭐지?”
「감히 이런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귀하신 분의 관대함에 기대어 여쭙습니다. 언제쯤이면 저희가 다시 귀하신 분을 배알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는지요?」
“그게 뭐 대단한 질문이라고 어려워하나.”
광저우에서의 볼일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사냥은 정식으로 정부의 의뢰를 수주한 다음이어야 할 테니, 그 전에 본사로 한 번 돌아가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일정을 상기해보고서 답했다.
“늦어도 보름 안에 한번 보러 가도록 하마. 그때는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아, 귀하신 분께서 몸소 베풀어주시는 성찬(聖餐). 감사드립니다. 동생들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그때 보자꾸나.”
「…….」
“뭔가 더 할 말이라도 있나?”
「아뇨, 아닙니다. 저, 당신의 미천한 종 메리옘 바투르는 귀하신 분을 뵈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나이다.」
통화는 여기서 종료되었다. 마지막에 조금 묘한 얼룩이 느껴지긴 했으나, 곱씹어 봐도 뭔가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나를 구세주로 섬기는 광신도의 아쉬움 같은 것이었겠지.
어쩐지, 광저우 소요 당시 부두를 떠나는 베크룩스를 보고 발을 구르던 메리옘 그룹의 모습이 떠오른다.
현재 베크룩스가 정박한 상하이의 부두, 고층빌딩이 즐비한 금융가 앞의 금릉동로도구(金陵东路渡口)는 당시의 부두와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다란 선착장을 따라 줄줄이 대어져 있는 호화로운 요트들은, 오랫동안 탑승한 흔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외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이 도시가 광저우만큼 극심한 혼란을 겪은 적이 없다는 간접적인 증거 같은 것이었다.
부두에서 조금 눈을 돌리면, 북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광명금융맨션이 자리하고 있다. 수연이 강남회의 회원들과 어울리고 있는 장소. 총 32층짜리 고층빌딩은, 중간의 아웃 리거(Out rigger/건물의 횡력 저항을 위해 고강성 수평부재를 채우는 층) 위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기업인들만의 공간이었다.
강남회의 공산자본가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온갖 보안장치들로 도배해놓았다. 아마도 위정자들의 말 한마디에 기업을 빼앗길 수 있다는 현실인식이 보안에 대한 집착을 낳았겠지. 출입자에 대한 보안이든, 통신에 대한 보안이든.
이 두꺼운 보안장벽 안에서 벌어지는 연회엔 인세의 혼란과 동떨어진 안정감이 가득했다.
일부러 무너뜨려주고 싶은 충동이 드는, 그런 종류의 안정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