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식량반입명령 (2)
루투쿠 사업장은 본디 도로·전기·수도 따위의 인프라가 일절 깔려있지 않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빈말로도 좋은 투자처라고 평하기 어려운 곳.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재환이가 투자보고서에 적어놓은 바, 루투쿠는 폐쇄적인 지역사회 내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구축하기 위한 비용이 싸게 치이는 땅이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며, 이상적인 밀수거점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김재환이는 향후 이 농장을 국제사업부 밀수처에 제공하여 이익을 창출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조직 내 거래에서 나오는 이익도 어쨌든 제 성과라고 내세울 이익이기는 하고, 본사 직할 국제사업부는 조직 내에서 돈을 가장 물 쓰듯이 써대는 부서니까.
그런 의미에선 루투쿠의 입지가 나쁘지 않았다.
루투쿠가 면해있는 탕가니카 호수는 탄자니아, 부룬디, 잠비아, 콩고 민주공화국의 4개국으로 통하는 드넓은 물길이다. 부두 하나만 지어놓으면 따로 도로를 지을 필요도 없고, 항공편 활용을 위해 간이 활주로 한 줄 깔아놓기가 그렇게 어려운 공사도 아니며, 전기는 현지인 능력자들을 고용해 인력발전소를 돌려서 얻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요컨대, 이 사업장은 거시적인 탕가니카 내륙수운 투자계획의 미시적인 곁가지에 불과했다. 내륙수운에 사설보안업체를 결합한 사업모델로 거대한 호수의 지분을 차지하면, 다른 자잘한 사업들은 자연히 뒤따라오리라는 게 김재환이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작금의 아프리카 대륙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적 융기의 조짐을 고려할 때, 지금의 투자가 머잖아 큰 결실로 돌아오리라고.
그러므로 농장경영 자체에서 나오는 이익엔 큰 무게를 두지 않았던 김재환이는, 비록 전번엔 저가 투자자이지 자선사업가가 아니라고 군소리를 해대긴 했을지언정, 넉넉한 재투자로 현지의 평판을 높여두라는 내 충고를 그럭저럭 잘 이행해놓은 편이었다. 땅은 시세보다 비싸게 주고 샀고, 건설한 부두는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해주었고, 건설현장에 투입한 노동자들에겐 현지 평균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급했으며, 주변 부족들에겐 인사치레삼아 선물을 돌리기도 했다. 현지 보안업체와 경비계약을 체결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조치들이 선행되었기에, 현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급변했을 때 김재환이가 추가로 돈을 뿌려 지역 민심을 빠르게 확실히 잡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활활 번져나가는 불길이 이쪽으로 옮겨붙지 못하도록.
‘아니었으면 돈밖에 모르던 짱깨 새끼들이 다급해지니까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비웃음이나 샀겠지. 나는 지금쯤 사상자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그쪽 지역 사람들에게 동양인은 그냥 중국인으로 통한다.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내륙 깊숙한 곳에서 활동하는 동양인들은 일대일로로 진출한 중국 건설기업들의 임직원 및 노동자들이 태반인 까닭.
그 ‘진짜 중국인’들은 지금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손발이 잘리거나 목이 매달리거나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하느라 바쁘다. 아프리카 대륙 전반에 걸쳐,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도 먼저 식량 반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국가가 바로 그들의 조국이었으니까.
조금 길어질 기미가 보이는 침묵이 신경 쓰였던지, 분할화면 속에서 살살 이쪽의 눈치를 보던 김재환이가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은 화두를 꺼내었다.
「중국 놈들도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뭐가?”
「지금 긴급구조가 필요한 자기네 나라 국민들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잠깐을 놀려도 아까울 공중기동대를 우리 애들에게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청탁을 받고 압력을 넣어준 장군들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뭘 새삼스럽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적을 가진 1등 시민들은 벌써 다 구했겠지. 당원도 아니고 도시 호적도 없는 3등 시민들이야 거기서 죽어주는 편이 오히려 더 이익일 테고.”
「군사적 개입 명분을 쌓고 있다 이 말씀이시군요.」
“의도가 있든 없든 그렇게 되지 않겠나?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피해자 행세가 가능해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익이지. 여론을 뒤집고 외교적 고립을 타파할 구실이 절실했을 텐데.”
중국의 대대적인 식량 반출은 근래 검은 대륙의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 미국과의 무역분쟁 심화로 대두(大豆)를 비롯한 농산물 수입에 제동이 걸리자, 사정이 급해진 중국이 그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검은 대륙의 농산물 시장을 쥐어짜기 시작한 것.
중국의 지랄로 같이 덤터기를 쓰게 된 다른 국가들이 중국에 불만을 품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들도 같이 하던 짓이긴 하지만, 일대일로에 기반한 중국의 착취는 누가 보더라도 도가 지나친 것이었으니까.
「어…….」
눈알을 굴리던 김재환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중국이 외교판에서 명분 장사를 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수습을 하기는 해야 할 것인데, 어차피 해야만 하는 수습이라면 중국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편이 낫겠지. 말로 해결 가능한 선은 진즉에 지나쳐버렸으니.”
공연히 독자행동을 벌여 중국이 먹을 욕을 나눠 먹어줄 이유가 있나.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중국을 욕받이로 삼을 수 있어서 좋고, 중국은 파탄지경인 외교를 조금이라도 제고할 수 있어서 좋을 일이다.
「과연. 언제나 그랬듯이 훌륭한 통찰이십니다. 향후 투자계획을 세울 때 참고해야겠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김재환은 여전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
“재환아.”
「예, 회장님.」
“모르는 척해주기도 고역이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겨우 이 정도를 헤아리지 못할 녀석은 아니지 않으냐. 조직의 중역이라는 녀석이 되도 않는 연기를 하고 있으니 보고 있기가 많이 괴롭다.”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좌불안석이겠지. 내 권고를 두 번이나 무시하면서까지 투자를 강행했다가 이런 꼴을 보게 된 거니까.”
겉으로는 내가 화를 내고 있지 않을지라도, 내게서 점수를 많이 잃어버렸으리라는 근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부하들의 목숨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는지 모르지 않는 녀석이므로.
“하지만 재환아. 나는 네게 권고를 했을 뿐, 마지막까지도 명령으로 투자를 금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나?”
「그러셨, 지요.」
“그건 곧 네 소신과 네 업무영역을 존중하겠다는 내 결정이었다. 그리고 네가 내 세 번째의 권고까지 무시하지는 않았지. 그러니 내겐 이번 일로 너를 책망할 마음이 없다.”
「어, 그러니까, 조금도 없으십니까?」
“없어.”
「…….」
“중요한 건 결과다. 만약 인명이 상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긴 했겠지. 네가 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네 의지로 사업을 추진한 건 사실이고, 단순 투자를 넘어서 국제사업부의 인력까지 가져다 썼다가 사고가 터진 거니까.”
김재환은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반사적으로 몸을 떠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로 심각한 사안이 아니고선 내가 내 입으로 징계를 거론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 그리고 내가 직접 징계를 결심한다면, 그 징계의 수위는 결코 낮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되었다 쳐도-”
나는 카메라 렌즈를 보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징계는 징계일 뿐, 징계 이후에 남는 감정은 없었을 거다. 업무상의 책임은 업무상의 책임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하나?”
「예, 예! 이해합니다.」
“그럼 이제 조직의 중역다운 모습을 보여라. 언제까지 그렇게 움츠러들어있을 작정이냐.”
「송구합니다.」
내가 정신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중역들 중에서 유독 기백이 달리는 놈이었다. 조직의 중역으로 뼈가 굵고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타고난 천성. 그러니 그저 생긴 대로 써먹는 수밖에. 망가지지 않을 만큼만 죄거나 풀어주기를 반복하면서.
김재환이가 기운을 차리도록, 나는 업무에 대한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간 뒤에야 비로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아프리카, 라…….
중국이 불을 질러놓은 검은 대륙은, 단순히 투자처로만 생각한다면 매력이 제로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사냥터로서의 아프리카는 그렇지가 않았다. 갈수록 치솟는 생활물가를 잡기 위해, 또 급변하는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검은 대륙에 대한 자본주의적 지배를 강화하던 국가들 중엔 당연하게도 영국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온갖 폭도와 도적 떼와 반군집단들이 혼란을 빚어내는 가운데, 그 혼란의 그림자에 숨어 혐오스러운 섬나라 연놈들을 사냥하는 건 내게 큰 이득을 선사할 게 분명했다.
‘마침 정부에서 요청이 들어왔다지?’
한국 최초의 공능법인인 「개마」의 이름값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효용을 증명했다. 정부로부터 아프리카의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해달라는 국제협력사업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위기에 처한 교민들을 구조하고, 정부가 지위를 보증하는 사설 군사기업으로서 평화유지군의 치안유지활동을 보조하며, 나아가 국제적 공조 하에 대한민국이 보유한 자산과 권리들을 보호하는 데 힘써달라는 내용의 의뢰가.
하여간 정치인들이란.
농어촌공사의 지원을 받아 해외의 농지를 확보한 사업자들에겐, 유사시 정부가 내리는 명령에 따라 자기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조국으로 반입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부가 내린 식량반입명령의 실체.
한국이 식량안보를 위해 일찍부터 들어놓은 이 보험은, 마법의 시대를 맞이하여 본격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본디 식량부족을 겪는 국가로부터는 식량을 반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긴 하나, 그런 도의적인 원칙 따위가 지금 같은 시대에 지켜질 리가 있나. 군자연하길 좋아하던 유럽 국가들도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한창일 땐 마스크 쟁탈전을 벌이며 인간 군상의 민낯을 드러냈건만.
이 보험의 맹점은 농지가 소재한 국가에서 곡물 수출을 봉쇄해버리면 대응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외교적으로 항의를 해보는 정도.
그러나 국력이 약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한국쯤 되는 나라의 항의를 무시하기 어렵다. 대가리들이 극도로 부패한 상태이기에 더더욱 그러하고.
하물며 지금은 상대가 대한민국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신흥시장 장악을 위한 국제공조가 활발하게 기능하는 상황에서, 주요 이해당사국들은 자기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재산권 침해’의 선례가 생기는 꼴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었다. 분개한 현지인들의 봉기는 국제적인 합의하에 도적 떼의 활동과 한 묶음으로 취급되어 파묻힐 터. 국제사회로부터 반군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비루한 토인들의 폭동쯤, 머지않아 진심으로 싸움에 임하는 1세계와 2세계의 합동작전으로 평정될 게 뻔했다.
딱 여기까지가 정치생명을 걸고 치킨 값으로 싸우기 바쁜 위정자들의 계산이었겠지. 현지 교민들이 줄초상을 치르기야 하겠으나, 미쳐 날뛰는 장바구니 물가만 잡을 수 있으면 남는 장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밥은 그만큼 중대한 문제다.
당장 내년이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해가 아니던가.
비난의 화살은 국제법을 무시하며 민간인 학살을 일삼는 도적의 무리들에게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생활이 팍팍한 국민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따름이라는 정부의 변명에 동의해줄 것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불편한 침묵을 지키는 자들 또한 동조자들에 불과할 따름.
도덕을 말하는 소수는 식탁이 위태로운 다수를 이길 수 없고, 민주주의는 언제나처럼 다수표의 예술로 작동하겠지.
위정자들이 만족하기엔 그 정도면 족하리라.
나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태에게 말했다.
“본사로 돌아간 다음엔 곧바로 다시 출장 준비를 해라. 1차 행선지는 다르에스살람이다.”
오, 하고 반응하는 경태 녀석.
“사냥입니까?”
“그래.”
“이야. 이거 새롭네요. 아프리카 쪽으로는 몇 번 가본 적이 없었고, 그나마도 항구나 잠깐 들르는 게 전부였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많이 됩니다.”
“기대가 된다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대륙에서의 활동이?”
“형님이랑 같이 하는 고생이잖습니까?”
“…….”
싱글벙글 웃는 얼굴과 그 내면의 색채는 아무리 봐도 진심어린 기대 그 자체였다. 나는 어쩐지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첨언했다.
“연간 활동일수가 넉넉하게 남은 녀석들을 먼저 파견해 놔라. 내가 도착할 땐 기함을 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기함 이외의 선단 편성은 파견인원 편성과 마찬가지로 네가 담당하도록 하고.”
“옙. 맡겨놓으십시오. 이 김경태가 완벽한 원정계획을 짜서 품의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함이란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Fincantieri) 사에 개장을 맡긴 2만 7천 톤급 로팩스(RO-PAX)선 「스텔라 포르투나」 호였다.
베크룩스가 그러했듯 본디 여객 용도로 쓰이던 이 호화스러운 중형선은, 취역 후 채 5년이 지나기도 전에 코로나 팬데믹 한파를 맞아 헐값 매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이 배를 조선소에 맡길 때 상층부를 쳐내어 하중을 덜고 무게중심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3만 톤이 넘어가던 돼지 같은 배는 4천 톤 이상의 체중감량에 성공했고, 선체의 복원능력은 큰 폭으로 향상되었으며, 추진계통을 완전히 갈아 36노트의 고속항해성능을 확보했다. 무장여객선으로서 방어력을 더한 것은 물론이다.
다만 롤스로이스제 고출력 방위각 추진기(Azimuth thruster)는 기동성이 우수한 대신 방향타(러더)를 쓰지 않는 독특한 물건이라, 국제사업부의 항해인력들 중에서도 완벽하게 다룰 줄 아는 숙련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니 미리 태워서 적응을 시켜놓아야 먼 곳에서의 사냥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겠지.
한 반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사이즈의 무장여객선은 함부로 운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눈에 띄잖은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베크룩스는 멕시코의 기사단장이 그러했듯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블루오션의 탄생을 내다본 투자자와 사업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고위험수렵용 선박 임대사업의 효시를 쏘아 올리고 있었으니까.
「스텔라 포르투나」 또한 표면적으로는 그러한 임대사업자 소유의 선박으로 등록되어 있다. 「개마」를 위시한 조직 산하의 공능법인들은 어디까지나 배를 빌려서 쓰는 입장이므로, 일시적으로 대규모 선단을 운용하더라도 하등 수상해 보일 구석이 없었다.
웅웅-
스마트폰의 진동이 상념을 일깨운다. 액정을 켜보니 비서실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해있다.
세 경독 중 하나인 후샨량이 급히 연락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