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33화 (233/561)

#29. 식량반입명령 (1)

파슈툰 기술자 제1진의 수송을 완료한 나는, 이어 광저우에 들러 조직 중국지사의 경영현황을 점검할 계획이었다. 석벽호표(石壁虎豹)의 2군(群) 이하 병단들을 사열하고, 가오슈센과 합작으로 경영하는 농업회사도 시찰하고, 정킷 기업들의 인수로 말미암아 삽시간에 덩치가 커진 마카오 쪽의 법인들도 둘러보는 등. 최고사령탑에 앉은 자가 서류로만 현장을 파악해선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겸사겸사 거기 있는 꽌시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어주고, 애매하게 남는 자투리 시간에 린페이에 대한 집착까지 과시해 주면 아주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이용할 항공편은 상하이에 준비되어 있었다. 단순히 시간 효율만 고려한다면 주장시(九江市) 앞의 물목에서 뱃머리를 서쪽으로 틀어 우한으로 향하는 편이 나았을 터.

그러나, 지금 중국 내륙에서 항공편을 이용한다는 건 지나치게 무모한 일이었다. 흑해자당이 하늘길에 대한 공격을 예고해놓은 까닭.

의도는 아주 투명했다.

장강수로 봉쇄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거지.

일반적인 여객기 따위, 휴대형 지대공 미사일 한 발이면 대형 사고를 면하기 어렵다. 개인이 휴대 가능한 미사일은 최대 상승고도가 낮아 고도를 높여 나는 민항기를 위협하지 못하지만, 그 약점은 공항 인근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흑해자당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을 열추적 지대공 미사일, 북한제 「화승총」의 사거리는 4.2킬로미터. 우한 톈허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반경 4.2킬로미터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엔 지나치게 많은 호수와 늪지들이 들어간다. 물길을 통해 장강수로와 연결되어, 흑해자당이 침투하기에 더없이 좋을 매복지들이.

상하이 쪽은 사정이 훨씬 낫다. 공산당이 최우선적으로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해안지대의 도시이기도 하거니와, 장강 하구의 감시만 확실히 하면 하늘길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그러나 상하이에 도착한 나는 예기치 않은 보고에 발이 묶였다.

아프리카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보고였다. 현지 군벌에게 사업장이 습격을 당하는 사고가.

「루투쿠 사업장에 파견되어있던 조직원들의 안전은 확보했습니다. 「모누스코(MONUSCO)」의 중국군 항공기동대가 조금 전 현장에 도착했다고 하니, 이송이 완료되고 나면 인명손실이 발생할 확률은 제로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모니터 저편에서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보고하는 수연은, 평소와 달리 하늘하늘한 디자인의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현재 화교계 필리핀 재벌 2세의 위장신분으로 저장성 기업인들의 사교클럽인 「강남회(江南会)」의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 스타일리스트 팀의 전문적인 기술은 이번에도 수연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위장신분에 맞는 프리셋에 따라서.

강남회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설립한 클럽이었다. 설립 취지는 옛 저장상인들의 모임인 저장상방(浙江商幇)의 상호부조 정신을 계승하고, 기업경영에 의로움을 더하여 도의 경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강남지역의 내로라하는 공산자본가들이 줄줄이 포진해있는 이 클럽은, 비록 수장인 마윈 회장이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콩고 민주공화국 평화유지군(모누스코) 산하의 중국군 부대들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앙군사위 장성들에게 뇌물이 들어갔나 본데…….’

나는 화면 속 수연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훌륭해. 아주 잘해주었다. 기대보다 굉장히 빠른 일처리로구나. 혹시 회(会)의 대주주들이 「강남령」을 발동한 건가?”

「그렇습니다.」

강남회가 대주주들의 합의하에 회주의 이름으로 발령하는 강남령(江南令)은 모든 회원들이 반드시 응해야 하는 부조의 의무다. 불응하면 회에서 자동으로 탈퇴 처리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배신의 정도에 따라서는 회 전체의 보복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이게 무협에 푹 빠져있던 마윈 회장이 장문령(掌門令)인가 뭔가 하는 소설 속의 개념을 참고하여 만들어놓은 장치라고 했던가?

탄생한 계기는 우스꽝스러울지언정, 강남령 한 방에 가동되는 꽌시의 그물은 엄청나게 강력한 것이다. 나는 가벼운 우려를 담아 시선을 기울였다.

“대가로 뭘 내어주기로 했나? 혹시 무리를 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궈 회장이 언제나처럼 저와의 사적인 만남을 바라는 눈치이긴 했습니다만, 꽌시를 통해 인민영웅 가오슈센에게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니 다들 수긍하더군요. 소개 경로를 세탁해야 할 테지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놀랍구나. 겨우 그 정도 대가로 회 전체를 움직이다니.”

비록 가오슈센의 이름값이 높기는 하나, 강남에서 손꼽히는 공산자본가 수십 명을 포함하여 수천 개의 회사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연합체를 움직이기엔 부족한 감이 많은 대가였다.

수연이 절제된 동작으로 끄덕인다.

「저도 본래 여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만, 각각의 간부들을 상대로 간을 본 결과 이들이 회주(会主)의 공백을 근심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회주의 공백이라. 마윈 회장이 자숙에 들어가면서 회 전체의 결속력에 문제가 생긴 건가?”

「아직은 괜찮아도 앞으로가 문제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차기 리더십이 확실치 않은 상황이니까요. 이럴 때 적절한 구실을 제공해준다면, 구심력 유지를 위한 예방접종 차원에서 강남령을 발동하게끔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다?”

「예.」

언제나처럼 수완 좋은 녀석이로군.

“알았다.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으냐?”

「금(琴) 연주회와 저녁 연회(飯局/판쥐) 참석을 요청받아서 바로 복귀하긴 곤란합니다. 밤늦게나 합류가 가능할 것 같은데, 먼저 광저우로 출발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남회는 회원들에게 높은 수준의 교양을 요구하는 클럽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서예와 다도, 그리고 전통악기인 칠현 고금(古琴)에 대한 교양을 요구한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축인 수연은 강남회 내부에서 탄발(弹拨/현을 뜯는 연주법)의 명인으로 통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명인이라 불릴 실력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미인이 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가점을 받는 법. 수연은 저가 타고난 무기를 십분 이용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뭐, 무리를 하지 않았으면 됐다. 나는 신경을 이완시키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도록 해라.”

「예.」

“너무 화내지는 말고. 그래도 김재환이가 초기진화를 잘해놓았으니 이 정도로 수습이 가능한 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그럼 밤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만 가봐. 무슨 일 생기면 곧바로 연락하도록 하고.”

「예.」

수연이 통신을 종료하자, 화면의 다른 구석을 정지화면처럼 차지하고 있던 여의도 김씨, 김재환이가 비로소 움직여 살아있는 티를 낸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뭐가?”

「방금 제 수명을 늘려주셨잖습니까.」

“엄살이 심하다.”

「엄살이라뇨. 강 실장 저 사람이 회장님 앞에서나 내숭을 떠는 거지, 회장님 안 계시는 자리에서 진짜로 화난 강 실장에게 한 번 조져지고 나면 ‘나 같은 건 애초에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다…….’ 싶어질 만큼 자괴감이 든단 말입니다. 그 이튿날까지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라니까요? 제 나이에 잠이랑 끼니를 거르면 몸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데요. 아무리 각성능력자가 되었어도 챙길 건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잠과 밥은 중요하지.

「아무튼 이번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의 혜안이 아니었더라면 초기대응에 나설 기회 자체가 없었을 테고, 그랬으면 지금쯤 파견인원들이 줄초상을 치르는 중이었겠지요. 설마하니 정부가 이 민감한 시기에 눈치도 없이 식량반입명령을 때려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합리적인 게임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잖으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게을러터진 외교부 철밥통 새끼들이 현지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않았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잖습니까. 교민들을 몰살시키려고 작정을 한 수준의 태업입니다.」

“누가 알겠나. 대사관이 제대로 경고를 했는데도 정부가 무시하고 강행한 일일지.”

최근 아프리카 대륙의 농업생산량은,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가버린 동북부를 제외하면 가파른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인간의 노동으로 농기계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고, 이제껏 저렴한 수입식품에 짓눌려있던 아프리카의 농업생산자들이 국제곡물시장의 거래가 폭등과 생산비용 감소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했으며, 우후죽순 들어선 인력발전소와 인력공장들이 식품저장과 가공, 그리고 유통을 과거보다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 대륙 전반의 원시적인 공업화에 힘입어 일반 대중의 구매력이 전보다 높아진 덕도 있겠다.

사정이 이렇다고는 하나,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보면 아프리카 대륙의 농업은 이제 막 지옥을 벗어나 연옥으로 올라온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날의 산출이 워낙에 형편없었기에 생산량 증가가 가능했을 뿐. 심연의 밑바닥에 머물던 자들이 간신히 빛이 보이는 곳까지 기어 올라왔을 따름인 것이다.

문제는 힘 있고 돈 많은 나라들이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는 것.

착취는 인간의 본성이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선 농지를 확보하고 농산물 유통을 장악하려는 부국(富國)들의 각축전이 한창이었다. 위기에 처한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하여, 막대한 자본과 외교력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경제적인 침략을 벌이고들 있는 것이다.

검은 대륙의 주민들이 이를 곱게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렴 기아가 일상인 땅에서 식량을 쥐어짜겠다는데 좋게 보일 턱이 있나. 외국 자본에 잠식된 농장들이 현지의 각성능력자 무장단체들로부터 잦은 습격을 당하고 있는 이유였다.

순전히 돈을 노리고 습격하는 도적 패거리들조차 입으로는 아프리카의 식량주권을 주워섬기는 병신 같은 상황.

“우리 사업장을 들이친 것들의 우두머리가 누구라고 했었지?”

「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게 발음이 어려워서.」

내 질문을 받고 화면 너머에서 잠시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김재환이가 이국적인 이름을 어렵게 읽어냈다.

「음차위……홍고……무, 무크와비니카? 아니, 음차위 홍고 무크와비응이카? 이게 맞구나. 음차위 홍고 무크와비응이카(Mchawi Hongo Mukwavinyika)라고 합니다. 이게 진짜 이름은 아니고, 그 뭐냐, 말하자면 별명 같은 건데, ‘많은 땅들의 정복자이자 뱀의 영혼을 가진 주술사’라는 뜻이라더군요. 영자신문에서는 그냥 간단히 「주술사 왕(Witch-king)」이라고 쓴답니다. 요즘 탕가니카 일대에서 끗발 날리는 신흥군벌두목이라던데요?」

“주술사 왕이라.”

「좀 괴상하지요?」

“괴상할 건 또 뭐냐. 그 동네 문화가 그런 것을.”

아프리카 대륙은 북부를 제외하면 어디를 가더라도 원시주술신앙의 천국이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조차도 예외가 아닐 지경. 내가 굳이 군벌 두목의 이름-또는 별명-을 재확인한 것은 기억해둘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신념이 굳센 도적놈은 시운이 따라주면 나라를 세울 수도 있지.’

이번에 습격을 당한 탕가니카 호수 연안의 루투쿠(Rutuku) 사업장은 김재환이 투자한 아프리카의 농업용지 중 하나로서, 야트막한 경사지를 따라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려던 곳이었다.

이곳을 들이친 주술사 왕의 민병대 「우타웨 나 브옘베(Utawe na vyembe)」는 처음엔 흉흉한 기세로 사업장을 포위했다가, 고용되어있던 마을 주민들을 붙잡고 뭔가를 물어보더니, 기세를 누그러뜨리곤 사자를 보내어 금품, 무기, 오프로더, 보트, 수상비행기 등을 알뜰하게 뜯어갔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군대를 위한 물자를 내놓으라면서.

그나마 부하들이 위성전화를 숨겨두었던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탈것도 없이 오지에 고립된 부하들은 자력으로 탈출을 감행해야 했을 테니까.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 점령한 영역에 겁도 없이 남아있는 건 결코 현명한 선택일 수가 없다. 하물며 그 무장세력의 우두머리가 주술사라면, 불길하게 나온 점괘 한 번에 조변석개처럼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높았다.

부하들이 철수 전 짧게나마 보고를 전한 바, 민병대가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본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저 이방인들은 당신들을 어떻게 대우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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