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32화 (232/561)

#28. 해방구 (8)

카피르와 나무스. 전자는 불신자를 뜻하고, 후자는 파슈툰 율법(파슈툰왈리)이 규정하는 「여성의 명예」를 의미한다.

시선을 돌려보면, 장인들은 여자들에 대한 흑해자당의 난폭한 행동들을 한심해하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여자들의 미색에 홀려 흥분한 기색인 마무르와는 완전히 반대인 분위기. 이는 경력이 긴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전통을 신앙만큼 중시하는 이슬람 부족전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였다.

나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관둬야겠군.’

내가 파슈툰 부족들에게 이상적인 협력자로 남아있으려면, 돈에 집착하여 여성의 명예를 짓밟는-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테니-모습을 보여주어선 안 된다. 일전에 협상을 위한 사전조사의 일환으로 파슈툰왈리를 숙지해놓은 보람이 있다 하겠다.

잠시 후, 내 최종결정을 들은 영주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펄쩍 뛰었다. 이미 열 명이 넘는 성노예들을 주민대표들에게 풀어버린 다음이었으니까.

“아예 하나도 안 사가시겠다고?!”

“아무래도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공연히 최고급 상품들만 낭비한 꼴이 된 영주가 주먹을 쥔 채 몸을 떨었다.

그러나 화를 아무리 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파슈툰 율법은 여성에게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며, 이를 지키는 것을 남성의 의무이자 명예로 간주한다. 여성을 살해하거나 성노예로 거래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중죄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평범한 이슬람 부족 사회의 가부장적 전통일 따름이지만, 그 전통에 대한 파슈툰 사람들의 집착은 절대로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파슈툰왈리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피난처 제공(ننواتې)의 율법에 따라,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미군 부상자 하나를 보호하겠답시고 마을 전체가 나서서 탈레반과 교전을 치렀을 정도. 2007년에 있었던 사건이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전통이 종교와 결합한 부족사회는 여간해선 변하거나 타협하는 법을 모르지.’

파슈툰왈리에서 말하는 여성은 어디까지나 파슈툰 족의 여성을 뜻하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여자를 거래하는 노예상인은 파슈툰 남자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은 사내의 명예를 모르는 불신자라고.

지금이라면 해명이 가능하다. 대놓고 거절하면 상대의 자존심이 상할 터라,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할 조건을 내걸어 거래를 파탄 낸 것이라고. 오가는 대화를 통역으로 엿듣던 기술자들은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터. 내가 이제껏 쌓아온 호감이 있을뿐더러, 실제로도 그런 모습과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애초부터 살 생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문제는 폭발 직전까지 달아오른 중당촌 영주다. 나에 대한 불만에 제가 실수한 만큼의 울화가 더해졌으니, 흑해자당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조금은 달래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혹시 남자 노예는 없습니까?”

“……뭐요?”

“남자 노예 말입니다. 당신네들에게 가담하기를 거부한 농촌 호적의 반동분자로, 신체 건장하고 정신도 아직 말짱한 물건이면 좋겠는데. 이능보유자라면 더더욱 좋겠고.”

황금기의 눈으로 보아 이미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던지는 질문이었다. 씨근덕대던 영주가 호흡을 누그러뜨리며 의문을 표한다.

“있기는 많이 있소만……. 소나 말처럼 부릴 노동력을 원하는 거라면 조건이 이상한 쪽으로 상세하군. 왜 굳이 반동분자 출신에 정신이 멀쩡한 놈이어야 하는 게요? 그것도 꼭 농촌 호적으로만 한정해서? 맨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이능보유자는 통제하기도 힘들잖소? 조련을 당신네가 직접 한다고 딱히 더 나아질 것도 없을 테고.”

“내가 바라는 건 노동용 노예가 아니라, 가짜 공산당에게 현상금을 타내기 위한 가짜 사냥감들이니까요. 당신들도 분명 손을 대고 있는 사업 분야일 텐데……. 아닙니까?”

“허, 허허.”

영주의 웃음에 스치듯 묻어나는 당황은 내가 제대로 짚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놈들이 위장 엽사병단을 굴려서 얻을 이익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야.’

흑해자당이 해방구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선 끊임없이 반동분자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소자산계급(小资产阶级/쁘띠 부르주아)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농민들, 가짜 공산당의 세뇌교육으로 말미암아 충당애국의 정신을 버릴 줄을 모르는 맹목적인 무지렁이들, 흑해자당의 활동을 공안에 밀고하려 드는 배신자들, 배신을 하지 않았어도 배신자로 낙인찍혀야 하는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그리고 분수에 걸맞지 않게 예쁜 아내를 가진 남편들과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딸을 가진 부모들 등등.

이 무수한 반동분자들을 전부 다 전시용 공개처형으로 소모해버리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짓이다. 노동력이나 성노예 수요부터 우선적으로 채운 다음, 나머지는 전투복과 무장을 지급해놓고 실전적인 훈련을 위한 표적으로 써먹으면 얼마나 유익한가.

무장을 지급한다고는 해도, 각성능력자의 방어구를 뚫을 정도의 화기를 지급하지만 않으면 일방적인 몰이사냥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사냥의 증거와 결과물들은 편집 및 가공을 거쳐 공산당으로부터 현상금을 타내기에 충분한 재료가 되어줄 터.

흑해자당의 각성능력자들이 신분세탁을 통해 친정부 엽사병단을 가장하면, 공안은 그 진위를 가려낼 의지가 없을 것이다.

그 책임은 많은 부분이 베이징 중앙정부에게 있었다.

‘실적 독촉도 적당히 해야지.’

까마득히 높은 곳으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힐난과 질책이 내려오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피가 마르는 일선 책임자들이 작은 실적이라도 제 손으로 지우고 싶어 할 리가 있나. 그것도 신분세탁 브로커들이 상납하는 뇌물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는 세 경독이 한결같이 증언한 바다. 내게서 얻은 공적이 없었으면 자신들은 매일같이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리라고. 이 하소연 아닌 하소연은 자신들에게 때늦지 않게 새로운 공적을 먹여달라는 은근한 요청이기도 했다.

이러니까 내가 항상 내리갈굼을 경계하는 것이다. 조직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직위와 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책임추궁은 절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가 없다. 그저 현장과 사령탑 사이의 괴리만 심화시킬 따름.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독촉에 시달리는 부하들이 현장의 상황을 정직하게 보고할 리가 없잖은가? ‘해로운 새’를 몰살시켜놓고도 한동안 농업생산량이 증가하는 줄만 알고 있던 마오쩌둥의 무지가 단적인 예다.

이런 면에선 군기반장 노릇을 도맡아주는 수연이 크게 도움이 되는 셈이었다. 내가 화를 내지 않아도 알아서 기강을 유지해주니까.

당혹감에 뜸을 들이던 영주가 이내 고개를 까딱인다.

“따라오시오.”

영주가 인도하는 방향엔 땅 밑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다. 흑해자당이 지저에 건설한 거대 갱도진지의 수많은 출입구들 가운데 하나. 나는 경호실에 속한 부하들만을 동반하여 영주를 뒤따랐다.

갱도진지의 입구는 두 차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올라가는 요철구조로 되어있었다. 가스 공격 방어를 위한 기본적인 설계. 벽면엔 무릎 높이로 동작감지기와 가스감지기가 붙어있고, 미닫이식 차단벽도 존재했다.

일단 입구를 통과하자, 본격적인 지하대로가 펼쳐졌다.

“햐. 제대로 만들어놨네.”

감탄사를 흘리며 전신의 긴장도를 티 나지 않게 끌어올리는 경태 녀석. 미리 대비하고만 있다면, 전투정면이 한정된 통로는 경태 이하의 애들이 실력발휘를 하기에 좋은 전장이다. 내 지향성 음파공격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환경이기도 하고.

갱도는 머리 위로 공간감이 느껴질 정도로 높았고, 좌우 폭은 갓길을 포함한 2차선 왕복 도로에 가까울 만큼 넓었다. 바닥엔 광차(鑛車)용 궤도를 복선으로 깔아 화물 운송을 용이케 해놓았다. 폐쇄된 광산에서 주워왔을 법한 녹슨 광차들이 눈에 띈다. 조명은 대낮처럼 환하여 갱도 어디에도 어둠이 고여 있지 않았고, 중간중간 좌우로 더 넓게 파놓은 관문 진지들이 존재했으며, 환기시설이 충분하여 산소가 부족해질 우려도 없었다. 그럼에도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냥 중국의 대기질이 더러운 탓이었다.

과거의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수준이 높은 갱도진지라고 해야겠으나-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게 있나.’

각성능력자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도, 시날로아 카르텔의 전대 두목이었던 호아킨 구스만은 탈옥 한 번 하겠다고 1.5킬로미터짜리 땅굴을 파서 레일을 깔아놓았던 바 있다. 하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장비에 비견되는 각성능력자들을 최소 만 단위로 보유하고 있을 흑해자당이라면야.

이런 갱도진지들이 산악과 강변의 지저를 따라 끝도 없는 미궁처럼 이어져있으니, 공산당이 흑적 토벌에 애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쪽이오.”

영주는 여러 겹의 창살과 경비병들이 있는 감옥으로 나를 이끌었다. 지저에 존재하는 여러 감옥들 가운데 하나. 이곳을 지키는 경비들은 유독 여자의 비중이 높았다.

앗- 핫- 하응-

감옥 내부는 음란한 소리와 불쾌한 냄새들로 가득했다. 이 구획에 갇혀있는 수감자들은 사지가 멀쩡한 남성 각성능력자들이었고, 개중에 피부가 희고 생김새가 반듯한 자들은 족쇄와 수갑이 채워진 채 여자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중이었다.

피부가 거친 이능보유 여전사들은 낯선 이방인들의 등장에도 아랑곳 않고 쾌락을 탐닉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중당촌 영주가 히죽히죽 미소를 짓는다.

“당황하지 마시오. 여전사 동지들이 전투에 대비해 소제압력(消除压力/스트레스 해소)에 힘쓰고 있을 뿐이니.”

수감구획의 책임자는 팔아치울 노예를 보러 왔다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있는 지바(鸡巴/남자의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들은 우리 여전사 동지들과 남편 잃은 여인들을 위한 복리(福利/복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진정하시오, 동무, 멀끔한 군바리(阿兵哥)들을 데려가려는 게 아니니까. 까맣고 키 작은 원숭이들은 이능이 있고 물건이 크더라도 인기가 별로 없지 않소?”

인민해방군 포로들은 대체로 신체조건이 좋다 보니 성노예로서도 우수하다. 중당촌 영주가 굳이 군바리를 언급한 이유.

여간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발 물러났다.

“……어느 놈을 데려가시는지 제가 직접 보아야겠습니다.”

“뭐, 마음대로 하시구려.”

이 시시하고 같잖은 촌극을 거쳐, 영주는 내게 그럭저럭 괜찮은 상품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체면치레에 가까운 줄다리기로 금괴와 인간의 교환비를 확정지었다. 오랜 농사로 얼굴이 늙고 허리가 굽은 남자들의 가치란, 어설프게나마 이능을 보유한 능력자쯤이나 되어야 겨우 성노예들과 비슷해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애당초 정부가 지급하는 포상금 이상으로 돈을 지불하는 게 우스울 거래이기도 하고.

‘이걸로 시간낭비를 좀 덜겠군.’

이 거래는 우선적으로 영주를 달래기 위해 체결한 것이나, 부수적인 이득도 존재한다. 돌아가는 길에도 장강수로를 타야 하는 입장에서, 베크룩스의 표면적인 항해목적은 빠르게 달성할수록 좋은 것이었으니까. 일시적인 후퇴 및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변명이 그럴듯하게 들릴 만큼 가시적인 전과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 얻은 노예들만으로 그 정도의 전과를 채우기는 불가능하다. 영웅함선 베크룩스의 위명과 가오슈센의 후광을 고려할 때, 거대한 호수의 다른 기슭에서 진짜 사냥을 한 번 하기는 해야겠지. 만약에 대비해 위장된 전과의 진위파악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서두른다면 해가 뜨기 전에 소화할 수 있을 간단한 일정이다.

베크룩스로 복귀하기 전, 나는 파키스탄 장인들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영주에게는 고객과의 의례적인 작별인사라고 둘러대면서.

파슈툰의 전사들은 성노예 거래가 결렬된 경위를 듣고는 내가 진정으로 사내다운 정신을 지녔노라 평했으며, 굴비처럼 엮여 끌려나온 남자 노예들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노예들을 출신지로 묶어 서로 죽이라 하고, 부하들에겐 그저 독전관 역할만 맡겨놓는다면, 내 애들의 정신에 더해지는 녹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지.

다음으로는 부탁을 하나 할 차례였다.

“염려 놓아도 좋다.”

고하르 라왈은 내 당부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위험할 때 다시 한 번 당신의 신세를 지기로 약속한 우리들이다. 저 명예를 모르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특이사항이 생긴다면 당연히 공유해야겠지. 공장장님과도 그러기로 합의하지 않았는가?”

내 부탁은 흑해자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흑해자당과 거래를 하는 외부세력의 존재를 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로 광저우 소요 당시의 흑해자당은 분명 혐오스러운 섬나라와 어떤 식으로든 접점이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의 의문스러운 실종, 그리고 중국 방첩당국이 총력을 다해 벌인 간첩 검거작전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상황을 관망하는 중이겠지만, 지금의 흑해자당은 가볍게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많을 만능의 꽃놀이패였다. 놈들이 다시 한 번 접점을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셈.

난 당부에 주의를 덧붙였다.

“위성전화는 반드시 무작위로 섞어서 사용하도록 하고, 기간을 정해 서로 다른 구역끼리 단말기를 교환하시오. 서구의 위성망을 쓴다 한들 비밀유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거요.”

콜롬비아의 초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도 위치 노출을 피하고자 같은 원칙을 준수했었다. 이는 내가 주기적으로 조직 전체의 위성전화를 물갈이하는 이유였다. 서로 다른 위장법인들을 이용해 분할 계약을 체결하여 단말기 전체를 교체하는 것.

통역을 들은 고하르 라왈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그야 기본이지 않은가?”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개의 사고는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터지는 인재(人災)요. 내 말을 절대로 가볍게 듣지 마시고, 다른 기술자분들께도 좋게 말씀을 전해주시길 바라오.”

마음 같아선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라도 시키고 싶지만, 그랬다간 나를 은인으로 여기는 고하르 라왈조차 모욕으로 받아들일 게 뻔했다.

“흠…….”

수염을 쓰다듬던 고하르 라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의 경고를 흘려들을 순 없지. 아직까진 알라의 인도하심이 당신을 통해 현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그럼 정말로 작별이로군. 다시 만날 때까지 무탈하시길 바라오.”

“당신이야말로.”

부족사회의 은원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과거 영국과 전쟁을 치른 바 있는 파슈툰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믿을 만한 정보원들이었다.

고하르와 악수를 나눈 나는 구입한 노예들을 동반하여 중당촌을 빠져나왔다. 다시 시동이 걸린 석탄운반선의 선현에서, 마무르는 마을의 불빛을 바라보며 노예를 부리는 공산주의자들을 비웃었다.

“유물론자들은 어리석습니다. 천상의 왕국을 부정하며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겠다고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들이 노력해봐야 불완전한 낙원이 만들어질 뿐이에요. 저기 있는 흑해자당의 해방구가 그 증거인 것.”

그러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마무르.

“불완전한 낙원은 곧 낙원을 지탱하는 자들의 지옥이다. 착취가 없는 낙원이란 오직 알라의 무한한 권능으로만 성립 가능한 개념인 것. 알라 후- 아크바르! 나는 저지능 빨갱이들의 작은 성기 같은 지옥으로부터 신의 위대하심을 새롭게 엿보았던 것입니다. 싸장님도 여기에 동감하십시오. 그러면 제공된다. 당신의 영혼을 위한 구원과 일흔두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획득할 기회.”

“…….”

나는 수다스러운 광신도를 무시하며 멀어지는 마을을 눈에 담았다. 지금은 흑해자당이 경영하는 인세의 지옥이긴 하나, 지옥의 근간을 이루는 주민들의 악성은 해방구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맹아(萌芽)의 형태로 존재하던 것이었다.

‘이것도 결국은 공산당의 원죄지.’

중국의 농촌- 공산당이 건설한 중화제국의 식민지는 어디를 가더라도 고독의 도가니다. 선성은 녹이고 악성은 담금질하는 빈곤과 차별의 용광로.

그러므로 중국의 식민지는 수천수만의 전라남도 신안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탈북민들을 노예로 삼는 연변의 민심이 중국 전체로 놓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일반성인 것이다. 흑해자당의 통치전략이 안 먹혀들어가면 이상한 기반인 셈.

공산당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

마을로부터 시선을 거둔 나는 호수의 중심을 향해 눈을 돌렸다. 등화관제를 실시한 베크룩스는 수평선과 가까운 섬 그림자 아래에 조용하게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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