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30화 (230/561)

#28. 해방구 (6)

해방구(解放區) 건설은 마오쩌둥식 게릴라 전략의 핵심이다. 농민들의 마음을 얻어 마을 단위의 지지를 확보하고, 그러한 마을들을 묶어 면(面)적인 지배구역을 확립하는 것. 도시는 점이고 도로는 선이니, 면을 지배하는 게릴라들은 점에 기반을 둔 압제자들을 끝없는 소모의 늪에 빠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의 마음은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괴벨스가 황인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부활한들, 선전과 선동만으로 해방구를 건설하기란 불가능한 일.

따라서 게릴라들은 농민들에게 먼저 물질적인 유인을 제공한다. 기득권층의 창고를 털어 재화를 마련하고, 그 재화를 농촌에 뿌려 농민들의 호의를 사는 것이다. 타락한 예수쟁이들이 한 손에는 쌀,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가난한 자들의 신앙을 사들이듯이.

성경말씀을 받아들여야만 받을 수 있는 쌀과, 혁명에 동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재화 사이엔 적잖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우리가 들어선 중당촌은 얼굴에 살이 오른 주민들이 많이 눈에 띄는 마을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마오주의 빨갱이들이 정석대로 해방구 건설에 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기야, 배를 털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화물들을 다 가져가기도 어렵겠지.’

예컨대 곡물운반용 벌크 캐리어 한 척만 털어도 수천 톤을 헤아리는 식량이 쏟아진다. 어차피 방기하거나 불태울 물자라면 주변 마을에 뿌려버리는 쪽이 이득인 셈.

이렇게 장물을 넘겨받은 농민들은 자신들이 게릴라들의 공범자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공권력에 대하여 켕기는 구석이 생기는 것이다. 걸리면 처벌을 면치 못하리라는 불안감 속에, 농민들은 이웃과 사촌을 의심하는 감시자들로 거듭난다.

게릴라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의심과 불안을 부추겨 마녀사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누가 죄인인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주체가 게릴라들이기에,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재판부의 권위 아래 종속된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게릴라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 무장 게릴라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권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라 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마녀재판에서 죄인이 정말로 밀고를 했는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꾸준히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지속적으로 보복능력을 과시해야 하니까. 피지배자들의 마음속엔 언제나 지배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어야 마땅하다.

마오쩌둥이 언명한 바,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혁명은 인민의 피를 먹으며 자라는 나무다.

마오쩌둥식 해방구 건설이 이미 이 단계까지 진행되었다는 증거로서, 마을 변두리의 논두렁엔 공개처형을 당한 시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방치되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시체의 무더기는, 만에 하나라도 정부군을 상대로 거둔 승전의 기념비일 리가 없었다.

근접경호를 하던 경태가 어이없다는 느낌으로 하는 말.

“뭔가 실감나는 역사체험 코스라도 온 기분이네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 모택동이도 국민당 뒤에서 같은 짓을 했을 거 아닙니까.”

“……그랬겠지.”

장개석의 국민당이 일제와 싸우는 사이, 모택동의 공산당은 국민당의 등을 찌르고 해방구를 넓혀가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마오쩌둥의 입에서 “일제의 침략은 공산당에게 이익이 되었고, 중국 인민들의 권리를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공산당은 일제 황군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다.”는 개소리가 나온 이유였다.

이런 사실증언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본 사회당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지껄였으니, 마오쩌둥이라는 광인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짓을 해서 승리자가 된 중국 공산당이, 거의 칠팔십 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전략에 당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게.”

나는 경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확실히 아이러니하기는 하구나.”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마오쩌둥이 세운 공산제국을 공격하고 있으니, 인류의 역사 전반에 걸쳐 이만한 모순을 다시 찾기도 어려울 터.

과거 우리와 거래한 무장단체들 중엔 필리핀에 둥지를 튼 마오쩌둥주의 반군집단 「BHB(바공 후크봉 바얀/신(新) 인민군)」가 있었으므로, 경태가 시체무더기를 보자마자 이 마을의 실태를 파악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신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소.”

나와 내 애들, 그리고 파슈툰 장인들을 마을로 들인 흑해자당 영주는 푸근한 인상의 중늙은이였다. 각성자만 아니라면 도저히 전사라고 봐주기 어려울 귀족적 체형의 소유자. 새로운 시대의 귀족을 꿈꾸는 자들 가운데 하나답다고 해야 할까.

“훌륭해. 정말로 훌륭해.”

영주는 내 애들과 제 부하들이 함께 운반해온 상자들을 열어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지시를 받고도 반신반의하던 참이었소. 설마하니 군경의 봉쇄를 뚫고 이 많은 화물을 운송해내는 상인이 있을 줄이야. 실로 굉장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구려. 예전부터 우리의 혁명에 조력해온 회교도(回敎徒/무슬림)들의 보증이 없었다면, 가짜 공산당 놈들의 낚시질이라고 의심했을 거요.”

여기까지 말한 영주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당신이 상품운송의 책임자요?”

“그렇다면?”

“혹시, 선생네 상사(商社)가 「무명회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곳이지 않소?”

……이 새끼 봐라? 나는 눈을 찌푸리며 경쟁자의 모욕감을 연출했다.

“왜 우리가 무명회사라고 생각합니까? 이 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회사가 그 새끼들만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오. 다만 우리네 지휘관 동지들 중 하나가 의견을 내기를, 무명회사가 아니고선 이런 정신 나간 운송을 맡을 회사가 달리 없을 거라고 아주 장담을 해서 말이오. 만약 상대가 무명회사라면 분명 자기를 알고 있을 거라더군. 자기가 무명회사의 관계자들을 접대한 적이 있다나. 그래서 한번 확인차 물어보았던 것이오.”

보아하니 광둥삼합회에서 간부 노릇을 하던 흑해자 떨거지 하나가 어찌어찌 살아남아 흑해자당에 합류한 모양. 태생이 흑해자라고는 하나, 그 인간의 입장에서 흑해자당은 제 인생을 망친 원수 집단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럼에도 흑해자당에 가담하여 지휘관 소리를 듣게 되었다니 기이한 일이다.

그 놈인지 년인지 모를 인간이 여기에 와봤자, 지금의 나와 내 애들을 알아보진 못했겠지만.

“그래서, 아니다 이거요?”

“아닙니다.”

“그런가.”

여기선 당연히 부정을 해놔야 한다. 비록 흑해자당이 공안과 무명회사의 유착을 알지 못하더라도, 나중엔 어찌될지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슬그머니 상체를 기울이며 눈을 치켜떴던 중당촌의 영주는, 내 단호한 부정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되돌렸다.

“뭐, 좋소. 그쪽이 무명회사인지 아닌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말은 심드렁하지만 두개골 안쪽엔 옅은 만족의 색채가 더해진다. 이놈이 좋아하는 걸 보니 삼합회 떨거지와는 계파가 다른 듯했다. 전직 삼합회 간부가 이 자리에 직접 나오지 못한 이유를 짐작케 해주는 단서였다.

영주는 제 부하들로 하여금 금괴를 채운 상자들을 내오도록 했다.

“자, 대금을 확인하시오. 약속했던 황금 480공근이오.”

다라-아담-켈의 장인들과 흑해자당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였다. 장인들의 동기가 무엇인가와 별개로, 흑해자당은 이들을 쓰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뜻.

이는 나와 흑해자당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해자당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장인들을 통하여 소개받은 무기상인일 따름. 그러므로 내가 흑해자당에게 넘기는 보급물자는 공짜가 아니었다.

‘그래봐야 이것 자체로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1킬로그램 금괴 480개는 현재 시세로 3천만 달러 안팎에 불과했다. 한화로는 약 34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니, 이익이 단지 이뿐이었다면 내가 대마법사의 기회비용을 낭비하면서까지 중국으로 올 일이 없었을 터였다. 상품 당 이윤을 낮게 책정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달리 말해, 지금의 흑해자당에게 나는 반드시 붙잡아야 마땅한 거래처였다. 이들과 거래하는 다른 어떤 거래처도 나만큼의 물량을 나만큼의 가격에 제공해주지 못할 테니. 취급하는 상품의 희소성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내 애들이 형식적으로 금괴들을 확인하는 사이, 영주는 이문을 탐하는 중국인 특유의 친근함으로 내게 다가섰다.

“그래, 선생의 상사에서 선생의 직급은 어떻게 되시오? 현장에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의 거래조건을 조정할 정도의 권한은 있으시오?”

“직급은 비밀이고, 권한은 있습니다.”

“잘됐군!”

“뭔가 제안이라도 있으신지?”

“있지. 있고말고.”

영주는 제 측근을 향해 손뼉을 쳐보였다.

“데려와.”

영주의 지시는 측근이 내리는 호령으로 변했고, 측근이 내린 호령은 그보다 낮은 직급이 내지르는 고함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전달된 명령에 따라, 무장인원들의 통제 하에 지하로부터 줄줄이 끌려나오는 것은 눈이 어둡게 죽어있는 창백한 낯빛의 여자들이었다. 대체로 반듯한 편인 이목구비, 곡선이 살아있는 신체굴곡, 색조 짙은 화장과 강한 향수내음, 그리고 노출이 많은 차림새 등이 끌려나온 여인들의 용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똑바로들 세워!”

영주 측근의 호통에 무장인원들이 여자들을 윽박지른다. 이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있던 여자들이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올린다. 두려움과 무기력으로 가득한 얼굴들.

“뭡니까, 이건?”

내가 묻자, 영주가 이문을 탐하는 중국인 특유의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겠소. 물물교환에 쓰고 싶은 상품들이지.”

“흠.”

내 조직은 인신매매를 하지 않는다. 수익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직의 건전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은 사업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세계 노예시장의 수익규모는 연간 천오백억 달러가량. 유통되는 상품의 80%는 노동노예이고 나머지 20%가 성노예인데, 기왕 장사를 하려거든 고부가가치 상품인 성노예를 취급하는 편이 유리했다. 그러는 편이 인력소요도 최소화할 수 있고.

그러나 성노예의 부가가치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있으며, 취급하는 상품의 아름다움은 부하들의 정신을 녹슬게 만들 공산이 크다.

‘내가 뭐 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하나.’

부하들의 정예함은 시시한 이익 따위와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가치. 나는 근시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선 대놓고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인신매매를 편집증적으로 거부하는 건, 이 바닥에서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무명회사만의 독특한 개성이었던 까닭. 보통의 범죄조직이라면 품질 좋은 성노예들을 보고 욕심을 내야 정상이다.

이곳에 온 나는 무명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인물이어야 했다.

영주가 은근한 목소리를 낸다.

“자, 어떻소? 이 정도면 보기 드문 상등품들이지 않소? 지금이라면 특별히 금괴 하나에 여자 다섯으로 쳐서 내어줄 수도 있소만.”

선심을 쓴다는 듯한 말투지만, 금괴와 성노예의 시세를 고려하면 그렇게 많이 싼 가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운송 및 판매를 내가 맡는 조건이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품은 좋습니다만, 그 가격이면 그냥 금으로 가져가는 편이 낫겠군요.”

“어허. 이렇게 예쁜 애들을 어디서 또 구할 수 있다고?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 보시구려. 응? 뭣하면 지금 여기서 박아 봐도 좋소.”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어이가 없어 되묻자, 영주는 허허 웃으며 한 여자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붙잡고 몸을 돌려세웠다. 이어 여자에게 상체를 숙이라고 요구하고는, 허벅지의 절반쯤을 가리는 치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젖혀 올렸다. 여자는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영주는 남은 손으로 여자의 볼기짝을 두드리며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영업을 했다.

“자아, 이 탐스러운 복숭아를 보시오. 참으로 먹음직스럽지 않소? 한 번만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요. 어서 와서 맛을 보시구려. 상인이 과일에 값을 매기려면 먼저 맛부터 봐야지. 물이 많고 단맛이 나는지, 아니면 퍽퍽하고 밍숭맹숭한지.”

찰싹찰싹 두드려대는 경박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두통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나는 관자놀이로 기어오르려는 손을 참으며 말했다.

“시식은 됐고, 값을 절반으로 깎아주시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절반? 금괴 하나에 열 명?”

“예.”

거래를 파투 낼 요량으로 값을 후려치자 영주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영주는 흐느끼는 여자를 흥이 식은 기색으로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시오. 이번 거래는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 안정적인 공급처에 가격을 잘 쳐주는 건 상식이 아니겠소? 당신은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만큼 좋은 거래처를 찾지 못할 거요.”

“그렇게 자신이 있습니까?”

“물론이오.”

영주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온 천지에 인민의 적과 반동분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요. 가짜 공산당과 그 주구들이 무고한 인민의 누이와 딸들을 강간하고 있으니, 혁명투사인 우리들에게도 그들의 누이와 딸들을 강간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겠소?”

강간범의 변명 치곤 최상급이로군.

“그러니 선생에게 팔아넘길 상품이 바닥날 일은 절대로 없지. 이 대륙은 광활하고, 우리는 앞으로 무수히 많은 미인들을 넘겨줄 수 있소. 선생의 회사는 우리와의 거래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될 거고. 그러니 선생, 바라건대 대범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라오. 어차피 금을 받아 가면 한 번의 상행으로 한 번의 이익만 남기는 꼴이지만, 상품으로 바꾸어 가면 또 다른 이익의 단초가 되지 않소?”

짜증의 수위가 높아진다. 조직 차원에서 인신매매에 뛰어든다는 선택지는 없다. 조직문화의 건전성도 건전성이거니와, 거기에 할애할 인력부터가 아깝다. 단순한 이익보다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많은 상황인데. 비밀엄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자들을 받아서 폐기처분을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런 업무에 특화된 부하들에게도 정신적인 내구연한이라는 게 있는 법. 금전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 짓을 하기는 싫었다.

그러나 거절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상품운송의 어려움을 들더라도, 일부는 받아야 부자연스러움이 없을 상황. 이미 파슈툰 기술자들을 안전하게 데려온 만큼 운송의 어려움을 크게 과장하기도 어렵다.

염병할 빨갱이들 같으니. 나는 불쾌감을 삼키며 평정을 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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