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8화 (228/561)

#28. 해방구 (4)

4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나는 상하이 앞바다에서 오랜만에 베크룩스와 재회했다. 마지막에 보았을 때만 해도 격전의 상흔들이 곰보자국처럼 남아있던 무장 여객선은, 지금에 이르러선 수개월간의 개보수를 거쳐 본연의 하얗고 예리한 외양을 되찾은 상태였다.

전투적합성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높아졌다. 아무렴 건선거에 올려 정식으로 개량을 진행했는데, 내 부하들이 인력으로 야전개조를 했을 때보다 못해서야 쓰나. 엔진을 교체하여 속도를 늘렸고, 내부구획을 정리하여 전투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으며, 공간장갑과 티타늄 장갑재를 활용하여 중량 증가를 최소화하면서도 방어력을 확충했다.

나는 배를 끌고 온 미주에게 가벼운 칭찬을 건네었다.

“옷이 제법 잘 어울리는구나. 누가 봐도 전사라고 하겠어.”

“앗, 예.”

미주는 조금 어색해하는 모습으로 제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입고 있는 옷은 위장무늬가 들어간 전투복. 이는 조직의 중국지부 산하에 편성된 이능엽사병단 「석벽호표(石壁虎豹)」의 유니폼이었다. 오른팔 상박엔 다섯별이 박힌 방패와 간략화된 호표의 문양이 식별표처럼 붙어있다. 대각선으로 교차하는 호랑이와 표범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포효하는 그림.

나는 의아함을 담아 시선을 기울였다.

“뭘 그리 어색해하나. 슬슬 그 옷에도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아니면, 혹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가 어려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님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조금 민망해서…….”

민망? 내가 저를 두고 전사라 일컬은 부분을 신경 쓰는 건가. 말끝을 흐리는 미주는, 민망하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지 볼과 목덜미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눈으로는 나와 가까운 경태를 힐끔거리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사람이 된 기분인 모양.

별걸 다 부끄러워하는군.

지금의 미주는 석벽호표 병단의 최고책임자였다. 주로 후방운영을 맡고 있긴 하나, 내가 손수 회로를 새겨준 각성능력자이면서 사선을 넘나든 경험과 자의로 위험을 감수하는 담대함을 겸비했으니, 어떤 싸움터에 내놓아도 한 사람 몫은 해낼 법한 녀석이라 하겠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이야기했다.

“민망해할 거 없다. 장담하는데, 너 정도면 당장 현장에 나가더라도 웬만한 중국군 지휘관들보다 나은 책임감과 지휘능력을 보여줄 테니까.”

이 말에 미주는 시시한 농담이라도 들은 양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건 칭찬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가슴을 펴라. 네겐 충분히 당당할 자격이 있어.”

“……감사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중국군의 간부들 중엔 실제로도 쓰레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그들 사이에 만연해있는 매관매직의 풍토. 승진을 하기 위해선 상관이나 권력자에게 성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돈을 쓰고 나서는 제 아랫사람들을 상대로 같은 장사를 하여 다음 승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

이렇게 계급을 사고파는 자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언젠가 자신도 저 높은 공산귀족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

‘오로지 출세를 위해서만 싸우는 연놈들이 제대로 된 군인일 수가 있나.’

죽어서 하는 출세엔 의미가 없다. 고로 이들에겐 위험한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프리카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중국군이 일개 부족군벌들을 상대로도 번번이 졸전을 거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였다. 소수의 애국심만으로는 조직 전체의 보신주의를 극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은 갑수가 제 몸으로 수류탄을 덮었을 때 두 팔 벌려 가오슈센 앞을 가로막았던 미주는, 그날 보여준 용기만으로도 대부분의 중국군 장교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다.”

“예?”

“네게 주어진 낯선 업무들이 시간을 약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과중한 일감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또한 있었다. 네 두 번째 복수가 불완전연소로 그친 것도 신경 쓰였고. 지금 보니 기우였던 것 같구나.”

항상 유념하는 바, 인적자원의 관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적인 소모에 주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보고서들이 부장이 된 박미주의 유능함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녀석에게서 최대한 길게 이익을 뽑아내고 싶었다. 장차 한 지사의 부사장직을 맡겨도 좋을 법한 인재가 아닌가.

맥락 없이 던진 말에 조금 당황했던 미주는, 이어지는 부연을 들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내 말이 끝난 뒤엔 조금 전과 색채가 다른 담담한 미소를 머금고서 머리를 숙였다.

“이제 제 삶에 남은 건 정말로 형님에 대한 충성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이 기쁩니다. 그러니 더는 마음 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냐.”

끄덕인 내가 새롭게 물었다.

“그래도 부하들의 고충에 귀를 열어두는 건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달리 힘든 일은 없나? 예를 들어 가오슈센이 너무 귀찮게 군다거나.”

“아, 그 인간.”

잠시 미간을 좁혔던 미주는 이내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따금 불쾌하게 굴 때가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뭐든 제게 맞춰주려고 하는지라 그렇게까지 힘들다 싶은 일은 없었습니다.”

“불쾌하게 군다면, 어떤 의미에서?”

“제게 종종 흑적 심문을…… 아니, 흑해자당 포로 심문을 참관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자꾸 그런 부탁을 거듭하는 것부터가 이상하거니와, 막상 참관을 하려고 가면 전문가도 아닌 제게 심문을 미뤄놓고는 묘하게 흥분을 하는 기색이어서 기분이 나쁩니다.”

“아아.”

“제가 포로를 구타하기라도 할 때면 눈도 깜박이지 않고 집중하면서 쳐다보더군요. 얼굴은 붉고, 눈은 멍하고, 입은 슬금슬금 웃고 있고……. 처음엔 뭐 이런 음습한 새끼가 다 있나 싶었습니다.”

“그건 내가 한마디 해두도록 하지.”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꽌시 관리 차원에서 좀 괴상한 취미생활에 어울려준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제가 바쁠 때는 그쪽이 알아서 삼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보아하니 그 취미생활이 공산귀족이 품은 연심의 발로임은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다. 영업직으로 뛰던 녀석에게 이 정도 눈치도 없을 리 있나.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만, 가오슈센의 호출에 응할 땐 반드시 경호실 애들을 동반하도록 해라.”

이 당부는 미주를 위한 배려인 동시에 조직을 위한 안전장치였다. 경태가 미주에게 붙여둔 경호실 인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조직의 중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겠으나, 미주가 적성세력의 포로가 될 위기상황에 처하면 책임자의 판단 하에 미주를 사살할 것이다. 조직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주가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는다.

“염려 놓으십시오. 제 목숨은 형님의 것이고, 형님께서 주신 권총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있으니까요.”

여차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기특한 다짐이었다.

「부우-! 부우-!」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경적 소리. 1초간 이어지는 짧은 신호 두 번은 「우리가 귀함의 우현 방향으로 지나갈 것」이라는 의미였다. 경적을 울리고서 전면으로부터 다가오는 배는 상하이 해경총대에 속한 순찰선 한 척.

베크룩스는 현재 양쯔강 하구의 잿빛 물살을 가르며 내륙으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폭이 거의 15킬로미터에 달하여 좌우로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은 물길이라, 보통은 배와 배가 경적을 울려 경고를 전할 만큼 가까워질 일이 없다. 그러므로 해경의 접근은 명백히 의도적인 것이었고, 이는 보통 수상한 기미가 보이면 정지명령을 내리고 임검을 실시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갑판 아래 다라-아담-켈에서 보낸 기술자 제1진과 성전연합의 메신저가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크게 긴장을 하지 않았다.

「부우-! 부우-!」

다시 한 번 경적을 울려 이쪽의 주의를 환기하는 순찰선. 선내에 있던 항경(航警/선박에 배치된 경찰)들이 갑판으로 쏟아져 나와 일정 간격으로 도열한다.

대함경례의 준비였다.

내 허락을 구할 것도 없이, 미주가 선내방송에 연결된 핸드마이크를 들었다.

칙-!

“함교에서 호표 사령이 알린다. 중국 해경 순찰선이 접근하는 중이다. 현재 임무가 없는 선내 총원은 우현 방향 대함답례를 준비할 것. 반복한다. 임무가 없는 선내 총원은 우현 방향 대함답례를 준비할 것. 이상.”

방송을 듣고 베크룩스에서도 갑판으로 선내인원들이 달려 나온다. 나오는 인력은 전원 「석벽호표」의 1번대에 속한 부하들. 통칭 「호표 제1군(群)」에 속한 녀석들로, 모두가 본사에서 파견한 전투인력이었다. 2번대 이하는 중국 현지에서 모집한 엽사들로 채워놓았기에 이런 데까지 끌고 올 전력이 못되었다.

함선 간에 경례가 오가는 모습을 보며 경태가 감탄하듯 한마디 한다.

“영웅함선이라는 명예가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시진핑핑이 성능 확실하구만.”

베크룩스는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상찬한 광저우 사태 최고의 수훈함이었다. 이는 「이름 없는 의용병대」, 즉 석벽호표와 화성맹룡대의 전신을 공안에 합류시켜 사태 진압에 공헌한 가오슈센을 모범으로 삼아, 다른 공산귀족들의 병단 경영에 ‘여론과 전례’라는 족쇄를 채우기 위한 국가 차원의 프로파간다였다.

베크룩스와 함께 교전을 치른 592함의 데이터는 해경과 해군 공통의 교육용 자료로 쓰이고 있을 터. 사정이 이러하기에, 작금의 해경 간부들 중 베크룩스를 모르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여기에 인민영웅의 명예를 얻은 가오슈센의 후광까지 등에 업었으므로, 베크룩스는 배 자체가 중국의 모든 물길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자유통행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엔 선전영화도 한 편 나왔다지.’

보고받기로는 그 영화의 주연들 가운데 하나가 린페이였다. 그 번거로운 여자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미미한 짜증이 올라온다. 기왕 중국까지 왔으니, 조금이나마 짬을 내어 장기적인 시간낭비를 줄이는 편이 현명하겠지.

해경 순찰선이 베크룩스의 선미 방향으로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본 끝에, 나는 툭툭 미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아래의 상황을 보고 오마.”

“예. 다녀오십시오.”

내가 향한 아래층의 식당엔 마무르와 파슈툰 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무슬림들이 둘러앉은 식탁은 화려한 음식들로 가득하다. 할랄 인증을 받은 재료들을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정성껏 조리해낸 결과물들이었다.

지금이 비록 라마단의 한중간이긴 하나, 전쟁을 치르는 전사들은 해가 떠있는 동안에도 자유롭게 음식을 먹고 마시기가 가능했다. 하물며 그 전쟁이 신앙의 적들에게 맞서는 성전임에야. 고로 바깥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처지라는 점만 제외하면, 이 배를 탄 무슬림들은 쾌적하기 짝이 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잘 즐기고들 계시오?”

내 물음에, 마무르가 끄윽- 트림을 토하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식은 맛있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에요.”

“긴장이 되어서?”

“그 경솔한 발언을 취소하십시오. 나는 대담함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나약한 유물론자들을 상대로 긴장 따윈 하지 않습니다.”

“실례했군. 그러면 뭐요?”

“이건…… 각오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편한 것이에요.”

마무르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나는 알라께서 나의 헌신을 어여삐 여기실 만큼 고난으로 가득한 여정을 기대하였던 것. 하지만 이 항해의 난이도는 베리 베리 이지에 해당합니다. 쉬운 성전의 결과물은 그만큼 적은 알라의 총애입니다. 그러므로 전사인 나는 아쉬움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한낱 게임조차 손쉬운 구더기들만 상대하다간 심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에요.”

말미에 괴상한 예시를 들긴 했으나 의미를 이해하긴 어렵지 않았다.

“가시밭길이 편한 길로 바뀌었으니, 내가 보기엔 당신의 신을 찬미할 때가 아닌가 싶소만.”

“아, 물론 알라께서는 위대하십니다. 싸장님은 알라께서 그분의 전사들을 위하여 깔아두신 최고급의 융단이다. 감사하십시오. 불신자가 이런 찬사를 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 싸장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밀수꾼.”

“그거 고맙구려.”

이 엉뚱한 구석이 많은 지하디스트를 상대하는 데에도 슬슬 요령이 생기는 참이다. 무성의하게 끄덕여준 나는, 이쪽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파슈툰 장인들을 돌아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