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7화 (227/561)

#28. 해방구 (3)

마무르는 중국에 관한 내 모든 계획을 알고 싶어 했다. 다라-아담-켈의 기술자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운송할 것인지, 위구르인 무장단체의 전력화는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무슨 수로 중국의 군사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것인지, 타격 목표는 어디이며 구체적인 거사 시기는 언제쯤으로 잡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이슬람 성전연합이 기여할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등등.

그러나 나는 일체의 정보공유를 거부했다.

“어째서입니까, 싸장님?”

마무르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같은 배를 타기로 합의하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나에게도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어야 맞는 것입니다. 내 안의 싸장님에 대한 인상, 좋은 인상에서 나쁜 인상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지금의 나는 시시각각 위험하고 치명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중입니다. 나의 관대함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말은 우스꽝스러울지언정 흉흉한 표정엔 살기가 짙다. 이래봬도 사람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간부급 지하디스트인 것이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이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요. 은밀함은 약자의 무기이고,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더 예리해지는 칼날이니까.”

“한마디로 싸장님은 우리 연합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내 차분한 답에 마무르의 인상이 한층 더 험악해진다.

“주의! 당신은 알라의 전사들을 모욕하고 있다! 우리 연합에 지하드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지하디스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에요! 나는 연합의 대리인으로서 알라의 이름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당장 계획을 말씀하여 나의 분노를 정상화하십시오!”

“거절하겠소.”

“싸장님!”

“알라의 이름으로 침묵을 서약한 전사를 의심하지는 않으리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인 휴지를 넣고서 말을 이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맹세를 한 건 지금으로선 당신 한 사람뿐이지. 성전연합의 모든 전사들이 내 앞에서 차례로 서약을 해보이지 않는 한, 내 입에서 당신이 바라는 답이 나올 일은 없을 거요.”

“이……!”

“선을 넘지 마시오. 내 계획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나와 위구르인들이오. 당신들은 중간에 끼어든 외부인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지. 당신은 당신에게 허락된 역할만 잘 수행하시오.”

“싸장님이 규정하는 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보고 들은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 그럼으로써 다라-아담-켈과 나 사이의 소통에 진실의 무게를 더해주는 것. 믿는 자가 신의 이름을 걸고 진실임을 보증한다면, 저쪽에서도 내가 무엇 하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겠지. 당신의 기여는 거기까지면 충분하오.”

앞서 아부 알 까심이 성전연합의 사자를 두고 관전무관이라 일컬은 진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었다. 실체가 불분명한 대가를 바라며 거액을 투자하는 불신자에 대해 못내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을 터.

그렇지 않고서야 그 늙은이가 외부세력의 갑작스러운 참여를 너그러이 받아들였을 리가 있나.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부 사이에서 부대끼며 오래도록 사업을 경영해온 것만으로도 수완을 알 만한 늙은이이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면 어떤 핑계를 내세워서든 연합의 참견을 거부했을 것이다.

거사의 성패를 떠나, 알 까심의 사업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성전 연합과 나 사이엔 직접적인 연결점이 존재하지 않아야 이상적이다. 서로를 모르는 두 세력의 존재는, 정보의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양자 모두를 알고 있는 제3자의 잠재적 이익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마무르가 씩씩대며 따진다.

“나를 이렇게 모욕하면서 진실한 보증을 바라십니까?”

“그럼 설마 알라의 이름으로 거짓을 전할 작정이시오?”

“내가 꼭 거짓을 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의하세요! 이 마무르에겐 당신의 계획이 시작되기 전에 당신과 파슈툰 형제들의 협력 사업을 불가능하게 만들 능력이 있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진심입니까? 싸장님은 이미 그들에게 많은 선금을 지불했고, 파슈툰 형제들의 인력과 상품과 판로를 바란다고 들었어요! 그걸 모두 포기하겠다는 말입니까?”

“포기가 아니오. 조금 미루는 것일 따름이지.”

“미룬다니? 무슨 뜻인지 설명하십시오!”

“내 계획의 핵심은 다섯 공장이 아니라 내가 후원하는 위구르인들이오. 그들이 유물론자들의 군대를 파괴하여 기쁨의 개가를 올리는 날, 그들의 명성은 이슬람 세계 전체를 진동시킬 거요. 알카에다의 아버지, 우사마 빈 라딘조차도 내가 후원한 위구르인들에 비하면 태양 아래의 달빛에 불과하게 될 터. 그날이 오면-”

나는 숨을 고르고서 느리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날이 오면, 위구르인들이 신용을 보증하는 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성전의 후원자이자 설계자로 알려지겠지. 당신이 오늘의 나를 헐뜯은 말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말 거요. 다섯 공장은 내게 열광적으로 손을 내밀 테고, 나는 그때에 이르러 투자의 열매를 회수하면 그만이겠지. 회수가 늦어짐에 따라 기대이익의 손실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손실이 당신과 성전연합의 손해만큼 크지는 않으리라 확신하오.”

물론 그렇게 되면 내 쪽도 속이 쓰리긴 할 것이다. 돈으로는 사지 못할 시간을 잃어버리는 셈이니까. 그러나 눈앞의 지하디스트는 내 사정을 거기까지 깊게 알지 못한다.

‘이 새끼는 저와 제 연합의 평판을 걱정해야지.’

보수적인 무슬림들조차 머리를 흔들게 만드는 다에쉬(ISIL) 개잡놈들의 테러와 정복전쟁을 제외하면, 내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에 터뜨릴 테러는 21세기 들어 무슬림들이 거둔 최대의 승리이자 최고의 영광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위대한 성전에 시작부터 훼방을 놓았다는 평판이 나돌면, 성전연합의 위신은 그 즉시 쓰레기통에 처박힐 게 뻔하다. 일단 다라-아담-켈의 다섯 공장들부터가 앞장서서 비난을 하고 나서겠지. 그래야만 이슬람 세계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지킬 수가 있으니까.

이 같은 위신의 추락은 이슬람 무장단체에겐 굉장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충성을 맹세한 하부조직들이 더 나은 지도조직을 찾아 이탈해버리기 때문.

서로 다른 조직들 간의 종교적 충성서약은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초국가적 세력을 구축하는 근간이다. 예컨대 9.11 이후 알카에다의 세력이 급속도로 부풀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뜻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있다고 판단한 무장단체들이 앞다퉈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한 덕분이었다.

우리도 당신의 성전에 함께하고 싶다고.

부디 우리를 거두어 우리들의 영혼을 알라의 천국으로 이끌어달라고.

무수한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온갖 테러를 통해 악명을 높이려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든 「이 시대의 성전을 선도하는 자」라는 평판을 얻기만 하면, 천국행 확정 열차에 올라타고 싶어 안달이 난 광신도와 후원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 세력과 자금을 채워주는 것이다.

“하!”

마무르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로 기가 막힌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기어이 나에겐 비밀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오늘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시오. 자신이 없으면 일찌감치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였겠지.”

자, 이 새끼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 제 자존심을 앞세워 일을 망칠 것인가, 아니면 저가 차리지도 않은 밥상에 대한 욕심을 단념할 것인가.

조금은 긴장되는 순간이다.

‘불투명해.’

지하디스트의 생체징후는 황금기의 눈으로 보기에도 직관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불투명함은 스스로의 감정을 도구적으로 다루는 데 능한 자들의 특색이었다. 단순히 감정을 다스리는 선을 넘어, 의도적으로 격발시켜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것.

이는 협상가의 기술일 수도 있고 숙련된 전사의 기술일 수도 있다. 확률적으론 반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므로 그 안에서 흐르는 생각을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불투명한 놈이 1차원적으로 사고하는 원시인일 가능성은 낮은 편이었다.

씩씩대던 마무르의 호흡이 비정상적인 빠르기로 안정을 되찾는다. 나를 맹렬히 노려보던 시선도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부드러이 풀어졌다.

이중인격자의 인격이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좋습니다.”

빙그레 미소 짓는 지하디스트.

“싸장님은 이미 파슈툰 형제들에게 아주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 자칫 그 돈을 잃어버릴지 모를 순간에도 싸장님은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범상한 장사치의 마인드가 아니다. 축하드립니다. 싸장님의 무례함은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어요! 나는 싸장님에게 위구르 형제들의 투쟁을 후원할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불신자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굳은 심지였다. 그러므로 나는 싸장님이 하는 일들을 지켜볼 것이다.”

나는 당겨졌던 신경을 이완시키며 되물었다.

“내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일단은 그러합니다.”

“일단은?”

“우리 연합은 앞으로 싸장님에게 믿음을 주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싸장님의 계획에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구르 형제들의 성전에 우리 형제들의 성전을 더함으로써 원 플러스 원이 쓰리 포 파이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각자의 거사가 시너지를 이루도록 하겠다는 뜻인가.

“중요한 것은 하나라도 더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것이에요. 명성은 그다음입니다.”

마무르가 주먹을 쥐고 웅변하듯 말을 이었다.

“위구르 사람들은 착했습니다. 위구르 사람들은 착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싸가지 없는 공산주의자들이 위구르 사람들을 괴롭혔어요. 중국인들을 죽입시다. 중국인들은 나의 원수! 씨발, 개새끼, 싸가지 없는 유물론자들!”

한 꺼풀 기만을 걷어낸 다음에 쏟아내는 욕설엔 투명함이 더해진 분노가 묻어있었다.

이 강도 높은 분노가 순수하게 핍박받는 신앙의 형제들을 위한 것일 리는 없다. 아니었다면 위구르인들의 유일무이한 무장단체인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ETIM)」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용병 노릇으로 연명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아편 팔아 돈을 버는 군벌들이 조금만 배려를 해주었어도, ETIM의 처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성전연합의 사자는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ETIM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 싸움에서 그들의 지분을 챙겨줄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위구르인들의 배후조종자로 거듭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오늘이 오기까지 조사해본 바, 이번 싸움에 성전연합이 끼어들 동기는 하나뿐이었다.

‘밥그릇을 건드리니까 화가 나는 거지.’

백악관의 미치광이가 “미국을 최우선으로!”를 외치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결정한 이래,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접경지대인 황금의 초승달지대는 그야말로 아편이 물처럼 흐르는 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중앙아시아에 세력기반을 둔 성전연합 역시 이 전성기의 수혜를 받고 있을 입장.

그런데 여기에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공의 제국주의자들이 미군이 빠져나간 공백지대에 중국군을 밀어 넣으려는 욕심을 드러낸 것. 명분은 평화와 질서의 재건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팔일철기」와 같은 정예 각성자 집단이 위력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능굴기」의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국내 여론을 진정시킬 위신을 챙기고, 군사력 투사를 통해 외교적 영향력을 회복하며, 나아가 친중 정권을 세움으로써 주변에 우호국이 없는 현실을 타개한다면, 중국에겐 쏠쏠하게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이슬람 성전연합에겐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었을 터.

그러므로 성전연합의 입장에서, 지금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예방전쟁에 가까운 일이었다. 공산당의 제국주의자들이 바깥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도록 만들어놔야 초승달지대의 풍요가 오래도록 계속될 게 아닌가.

이런 조사가 선행되었기에 내가 눈앞의 지하디스트를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요구합니다. 내가 싸장님을 시험한 걸 불쾌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하기가 불가능한 불신자는 반드시 이렇게 검증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금 웃으며 말하는 마무르.

“지능적인 면에서 나보다 알라의 축복을 덜 받은 일부 동지들은 이번 일을 두고 성급한 불평들을 늘어놓을 테지만, 나는 그들을 나의 빛나는 지성으로 얌전하게 눌러둘 것이에요. 감사하십시오. 이는 싸장님에 대한 나의 자그마한 성의인 것.”

알라께서 우리의 앞날에 영광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신도는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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