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해방구 (2)
섬을 초기화하는 건 언제나처럼 쉬운 일이었다. 먼저 비를 뿌려 개미들이 굴속으로 대피하도록 만든 다음, 지표 아래를 불로 구워 콜로니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 이 방식이면 지표 위쪽은 마력을 태우는 불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개미를 죽이는 데 높은 온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니 토양의 유리화 역시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다 죽이고서 염동충격을 가해 굴을 무너뜨리면, 다음 세대의 개미들은 완전히 무에서부터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번식력이 없는 일개미 약간쯤은 살아남아도 무방했다.
몇 번째인지 모를 개미 왕국을 멸망시킨 후 하늘길을 거쳐 본사로 돌아온 나는, 감시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을 통해 이슬람 성전연합이 보낸 사자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크아아악!」
‘아름다움의 아버지’가 ‘알라의 축복을 받은 언어의 천재’라 소개했던 지하디스트- 아마도 마무르 만수로비치 바바예프일 자는 분에 겨운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두들기는 중이었다. 이 분노한 무자헤딘 앞엔 이름 모를 게임이 돌아가는 노트북 한 대가 놓여있었다.
「더러운 이교도 탑신병자 같으니!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컨대 이 게임에 정글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너뿐만 아니라 너를 가르친 너의 어머니도 알라의 천벌을 받을 것이에요!」
뭐지, 이 미친놈은?
기묘한 억양에 탑신병자니 정글차이니 하는 의미 모를 표현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나, 무자헤딘의 외침이 한국어임은 분명했다. 외치는 와중에 다다다닥 타자를 치는 품새를 보건대, 내뱉은 욕을 문자로 옮기려는 모양. 필시 온라인으로 연결된 게임이고, 게임의 상대가 한국인인 것일 테지. 원래부터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면 알라의 이름을 빌린 저주가 한국어로 튀어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온라인 연결이 허용되어있다는 점.
묻기도 전에 수연이 대답한다.
“뭔가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물으니, 형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해주었습니다. 목마를 심은 노트북에 실시간 감시가 이루어지는 회선을 연결해주었지요.”
“성과는?”
“없었습니다.”
“……확실한가? 저게 위장이 아니라고?”
“예. 기도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줄곧 게임만 하고 있었습니다. 오가는 채팅에 숨은 메시지가 있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요. 저 게임에 해박한 인력을 수배하여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는지 검토를 맡겨보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아니었다?”
“네.”
조금 맥이 빠지는군. 나는 턱을 매만지며 되물었다.
“배경조사 결과는 나왔나?”
“우리와 접촉하기 아흐레 전, 브로커를 통해 국적과 신분을 세탁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경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를 만나기에 앞서 위장막을 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브로커를 썼음에도 이렇듯 곧바로 사실관계가 파악이 되었다면, 해당 브로커는 우리 조직과도 끈이 닿아있는 영세사업자였을 것이다. 고객의 비밀을 지켜주기보다 그 비밀을 팔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그러나 동시에, 그 정보를 경찰에 팔아 제 사업을 끝장낼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만큼의 자제력을 가진.
“경찰의 수사라. 전과가 있는 모양이지?”
“이달 초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농장주 살인사건의 범인입니다. 피해자는 82세의 노인으로,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요즘은 어지간히 큰 사건이 아니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대였다. 그러니 일개 외국인 노동자가 농장주 하나를 죽인 사건에 대해 무슨 정보가 얼마나 풀렸겠는가. 경찰의 의례적인 브리핑조차 없었을 공산이 크다.
수연이 묻는다.
“섬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물론이다. 잘 관리되고 있더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라즈베리 프로젝트」의 관리가 오롯이 자신의 소관이기 때문인지, 수연은 내가 섬에 다녀올 때마다 번번이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가 매우 중하게 여기는 계획인 만큼 자그마한 실수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지. 다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녀석이니까.
만약 경태가 이랬다면 단순히 칭찬을 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점을 확신하는 시험지를 가지고 애써 기대감을 감추며 채점을 요구하는 아이와 같은 행동이라고. 개를 연상케 하는 맹목적인 충성은 그만큼의 순수와 닿아있지 않고선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의 순수엔 선악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녀석이 그럴 리는 없지.’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불러와라. 직접 대화를 해봐야겠다.”
잠시 후, 부하들의 안내를 받아 회장실로 들어선 지하디스트는, 긴장이나 두려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편안함으로 내 앞에 마주앉았다. 그러고는 허벅지 위에 깍지를 끼고서 웃으며 던지는 물음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묻겠다. 당신이 이 조직의 싸장님인가? 초대형 밀수꾼 오마르 알 바시르?”
“그렇소. 내가 알 바시르요. 그러는 그쪽은 마무르 만수로비치 바바예프가 맞소?”
“옳아요. 나의 이름은 마무르. 일곱 번째 천국에 자리한 알라의 처소 알-바잇-알-마무르에서 본뜬 영광스러운 이름. 당신은 나를 마무르라 부르세요.”
“반갑소, 마무르.”
“나도 반가워요, 싸장님. 알 까심의 친구, 위굴라르의 후원자, 성전의 지지자를 만나게 되어 나의 큰 기쁨이다. 오늘의 만남에 알라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듣던 대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시는구려.”
“그렇습니다. 나는 한국어를 잘합니다. 굉장히 잘하는 것.”
마무르는 턱을 들어 올리며 자랑스럽게 대꾸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푸스하와 다섯 암미야를 말합니다. 우즈벡어, 카자흐어, 러시아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도 말합니다. 나를 경험한 모두가 경외감에 젖어 나를 칭찬하곤 합니다. Хорошо! 나는 언어의 천재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자기자랑을 늘어놓더니, 자칭 언어의 천재는 이마를 짚으며 표정을 어둡게 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알라의 뜻 아닌 것 없으니, 나의 이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 역시 알라께서 내려주신 것이에요. 이는 곧 알라께서 나를 쓰실 곳이 그만큼 많으리라는 뜻. 오, 나는 나에게 주어질 숙명의 무게가 두렵습니다. 만물의 주 하느님이시여, 저를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제가 당신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맥이 빠져가는 기분이다. 이건 혹시 나를 방심시키려는 수작질인가? 흩어지려는 주의의 고삐를 다잡으며, 나는 생체반응을 토대로 본성을 엿볼 의도를 담아 마무르의 범죄이력을 거론했다.
“듣자니 얼마 전 사람을 하나 죽이셨다던데, 괜찮다면 이유를 물어도 괜찮겠소? 우리가 만날 즈음하여 당신이 손에 피를 묻혔다는 게 조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이교도 하나 죽이는 거야 지하디스트에게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제 뒷조사를 한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정상일 터. 현상수배지에 이름과 얼굴을 올린 자로서 애써 돈을 들여 신분세탁까지 하고 온 참이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마무르는 눈을 확 찌푸렸으나, 분노의 방향성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 싸장님은 신을 모독하였다!”
“…….”
“나는 참을성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따라서 나는 은혜농장 싸장님의 부당한 처사들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주었다! 근면성실한 노동은 지하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으니까! 때리고 욕을 해도 참았고, 추가수당을 빼먹어도 참았고, 월급 절반을 상품권으로 대체해도 참았고, 허락되지 아니한 음식을 강요해도 참았고, 나의 조국이 게을러서 가난한 것들의 나라라고 해도 참았다!”
쿵! 흥분한 마무르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친다.
“그러나 기도를 방해하고 알라를 모욕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나와 신앙의 형제들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양심이 없는 월급도둑들이라고 비난했어요! 있지도 않은 가짜 신에게 기도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고! 천국에 가려면 오직 예수를 믿어야 하는 거라고!”
환장하겠군.
“나는 그녀에게 경고하고 또 경고하였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마침내 내가 보는 앞에서 한 형제의 꾸란을 빼앗아 장작 태우는 드럼통에 던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악한 불신자 박복녀 여사는 지옥의 밑바닥으로 떨어져야 마땅하였다!”
한바탕 연설을 마친 성전연합의 사자는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전부요?”
내 물음에 마무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죽음에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당신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불신자인 것?”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동문서답. 여기에 체내에 번진 순도 높은 분노의 색채까지. 기만의 천재인가, 아니면 그냥 멍청이가 온 것인가. 성전연합 동아시아 지부의 총책쯤 되는 인간이 단순한 멍청이는 아닐 터인데.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둘러댔다.
“아니.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 노인네가 죽을 짓을 하기는 했지. 다만, 죽을 짓을 한 것과 그쪽이 손수 죽인 것은 서로 별개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아하.”
사납던 눈매를 풀고 끄덕끄덕 납득하는 마무르.
“반성하고는 있습니다. 그것은 정당하지만 우발적인 응징이었고, 알라의 전사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경솔함이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처벌을 집행하였으면 소중한 수염을 깎을 필요도 없었고, 여권갈이에 들어갈 돈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신용도 없이 고객정보를 팔아먹을 만큼 수준 낮은 브로커를 이용해놓고는, 그 돈이 아깝다니.
“지부장인 당신이 농장 일을 한 것도 그렇고, 여권갈이에 쓴 돈을 아까워하는 것도 그렇고, 지부의 자금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오?”
질문을 받은 마무르가 검지를 세워 좌우로 까딱인다.
“싸장님은 나와 내 형제들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객관적으로 볼 때 나의 지부는 많은 액수의 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부의 운영은 본부에서 보내주는 자금과 지부에 속한 전사들의 노동만으로도 가능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나는 이를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자비심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이티하드 동아시아 지부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믿음 깊은 무슬림으로서, 나는 이교도와 불신자들로 가득한 타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지부의 자금을 지부의 운영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말은 자비심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엔 당연히 타산이 깔려있었을 게 뻔하다. 무슬림 외노자들의 마음을 얻어 협력자와 조직원을 확충하겠다는 타산이. 이 녀석의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보건대, 나르시시즘적인 자기최면으로 순수한 선의라 믿고 있을 가능성은 있겠다.
“이런 상황에 알라께서 내려주신 전사의 육체를 놀리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성실한 노동으로 나 자신을 거룩한 분의 뜻에 봉헌한 것입니다.”
“과연.”
“무엇보다, 지부장이라고 해서 편한 자리에만 앉아 있어서야 어떻게 부하들의 존경을 얻겠습니까? 나는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현명한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일선 부하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에요.”
첫인상이 많이 병신 같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랫사람들에겐 심리적 지주가 되어줄 법한 품질 좋은 광신도임을 알겠다. 또한 얕보이기 쉬운 언행은 상대의 실수를 이끌어내는 기술의 하나일 수도 있었다. 의식적으로 개발한 게 아니라, 타고난 본능 위에 이득을 본 경험들이 더해져 완성된 무의식적인 처세술일 가능성이 있는 것.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광신도가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싸장님에게 투자를 제안해요.”
“투자라면, 어디에 말이오?”
“불신자인 싸장님의 사후에.”
“…….”
“당신의 재산, 금 85그램 이상이다? 자카트(자선)를 베풀어 알라의 총애를 얻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사후에 제공된다. 탐욕스러운 자에 대한 알라의 징벌.”
“자카트를 행하든 행하지 않든, 불신자는 어차피 징벌을 받지 않소?”
“물론 지금의 싸장님은 불신자이며, 불신자는 존재 자체로 지옥에 떨어질 죄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도 앞날을 모르는 것. 성전의 지지자인 당신은 이미 높으신 분의 계획 속에 있음이니, 언젠가 올바른 신앙에 귀의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미리 투자를 해두세요. 많은 돈을 베풀수록 처녀들도 예뻐진다.”
“처녀라니?”
“모릅니까? 천국에 가는 자에겐 알라께서 72인의 처녀를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해주십니다. 거룩한 분의 총애로 처녀들의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하십시오.”
이건 또 무슨……. 맥락 없이 개소리가 튀어나오니 어울려주기도 까다롭다. 난 다시금 관자놀이를 누르며 대꾸해주었다.
“뭐, 좋소. 너무 많은 돈이 아니라면, 내 사후가 아니라 우리의 우정에 대한 투자라고 치고 내어줄 수도 있지. 얼마쯤이면 만족하시겠소?”
“나는 싸장님에게 27억 9,300만 원을 기대합니다.”
“미묘하게 구체적인 금액이군.”
“그것은 용처가 정해져있기 때문인 것. 나는 정직함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양심적인 나는 오직 현 시점에서 필요한 금액만을 정확하게 요구합니다.”
“…….”
“천재인 나는 내게 도움을 구한 자들의 이름과 사연과 필요한 액수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재 도움이 가장 급한 자는 백혈병 환자인 아들을 둔 테미르 사기드라마눌리 아흐멧베코프인데, 현재까지 지출한 치료비 총액은 1억 2천 7백만 원이며 지금까지 9천만 원의 대출을 받아 생활비와 치료비를 충당하였고-”
마무르가 속사포처럼 떠벌대는 말들로 제 기억력을 과시하기에, 나는 적당히 들어주다가 손을 들어 성가신 수다를 끊어놓았다.
“그만. 알겠으니 그만하시오. 그 정도 성의는 내어드리도록 하지. 오늘의 대화가 긍정적으로 끝난다는 전제 하에.”
“훌륭합니다! 싸장님 당신은 갸륵한 불신자!”
이렇게 말한 마무르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팔을 벌리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럼 싸장님, 우리 이제 즐겁게 중국인들을 죽이는 이야기를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