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해방구 (1)
조직 계열사 명의로 소유한 전라남도 신안의 한 섬에서, 난 짧은 통화로 본사에 지시했다.
“정중하게 붙잡아 놔. 편의는 최대한 봐주도록 하고.”
성전 연합이 파견한 메신저는, 수원에서 내 부하들과 접촉한 후 귀와 눈이 가려진 채 본사로 이송되었다. 지금은 먼저 본사로 들어간 수연의 감독 하에 배경조사가 이루어지는 중. 내가 본사로 들어갈 즈음이면 최종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통화를 종료한 후 뒷짐을 지고 섬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겉으로는 그저 평범하고 평화로운 섬일 뿐이지만, 알고 보면 곳곳에 역병의 색채가 묻어있는 미친 개미들의 소왕국을.
‘역시 보고서와는 다르군.’
섬에 머무는 부하들은 매번 실험을 진행하는 내내 그 경과를 기록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 그 보고서의 내용이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것만큼 정확할 순 없는 것이었다.
보고서의 정확성과 별개로, 부하들의 능력 자체는 훌륭했다. 아무렴 수연 녀석이 직접 선별한 인력인데 무능할 리가 있나. 페스트 병원균의 배양에서부터 시작해서 병원균에 오염된 먹이의 제작과 급여, 개미 군집의 확장을 결정적인 순간까지 지연시키기 위한 장치로서의 번식 카트리지 개발 등은 내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단 하나. 이 섬의 부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들이다. 조직 간부들에게조차 정보를 공유할 수 없는 「라즈베리 프로젝트」의 특성상, 수연이 특별하게 가려 뽑은 부하들은 내게 광적인 충성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원탁의 추종자들과 비교해도 좋은 승부가 될 정도로.
못내 입맛이 떫긴 하나, 프로젝트의 진행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일 따름. 온종일 생화학 방호복과 방독면을 벗지 못하는 생활이 벌써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음에도, 내 칭찬 한마디에 약이라도 맞은 듯 반응하는 녀석들을 마냥 불편하게 여겨서도 아니 될 일이다.
“최신 보고서에 아홉 번째 변이체에 대한 내용이 있던데, 최초 발견자가 누구지?”
내 물음에, 부동자세로 서있던 부하들 중 하나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대답한다.
“접니다.”
강한 긴장과 약한 기대감이 묻어나는 목소리. 나는 대답한 녀석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훌륭한 성과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라. 너희 모두의 수고를 언제나 유념하고 있으마.”
“……예!”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이 벅찬지 조금 늦게 나오는 대답. 신경과 혈관엔 흥분과 희열이 자아내는 화학적 변화의 색채가 가득하다.
실험용 건물로 들어선 나는 박물관을 돌아보는 관람객처럼 배양실의 선반들 사이를 거닐었다. 다층의 선반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배양접시들은 예외 없이 증식하여 덩어리(집락)를 이룬 페스트균을 담고 있었다. 서로 다르게 대를 이어온 균주들은, 누적된 계대(繼代)의 횟수에 따라 점진적으로 유의미한 분화들을 보여주었다.
‘29시간이라.’
번식이 가장 빠른 변이체가 최적의 성장환경에서 최초의 집락을 형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이는 과거에 비해 확실하게 느려진 것이었다. 마법이 돌아오기 이전의 연구 자료를 보면, 증식을 저해할 만큼 높은 온도에서도 24시간이면 집락을 관찰할 수 있다고 했었으니까.
그러나 이조차도 스승새끼가 알고 있던 원탁의 연구 결과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빠른 것이다. 마소가 범람하는 세상에서도, 질병은 여전히 거대한 죽음의 파도들을 불러일으킬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증식은 둔화되었을지언정 변이는 촉진되었으며, 새롭게 나타나는 변이들 중에선 생물무기로서 원본보다 나은 잠재력을 가진 것들이 존재했다.
느려진 증식을 만회할 강한 감염력과 낮은 치사율.
치사율이 너무 낮으면 생물무기로서의 매력이 감소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최대 백 퍼센트를 찍는 페스트의 치사율은 좀 낮아져야 생물무기로서의 위력이 극대화되는 것이었다.
나는 배양 접시들을 보며 이미 몇 번이나 곱씹어보았던 고민을 되새김질했다.
원탁의 실험은 어째서 실패했던 것일까.
단순히 실험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면 내가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원탁의 마스터들 가운데 하나가 연구 결과를 독점하고자 실험 결과를 조작한 것이라면?
‘조작의 주체가 영국정부일 수도 있지.’
해당 연구는 영국정부의 의뢰로 국가 차원의 인력 및 시설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던 것. 그러므로 실험과정에 의도적인 조작이 있었다면, 혐의는 원탁의 마스터들만이 아니라 영국정부에게도 돌아갈 수 있었다.
스승새끼의 기억에 남아있는 원탁과 영국정부의 관계란 마냥 우호적인 것이 못 되었다. 아무렴 정부가 사병집단을 보유한 사이비 교주들을 좋아할 리가 있나. 하물며 그 교주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신적인 존재로 거듭나 전 인류를 발아래 두는 것임에야.
그러므로 양자의 관계는 오월동주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한 배를 타고는 있으되, 언젠가는 반드시 상대를 무릎 꿇려야만 하는 두 개의 세력.
따라서 영국정부가 원탁의 마스터들을 단지 인간 갈아 마소 뽑아내는 도구로만 활용하고, 연구 성과를 독점하려 들었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었다. 하다못해 원탁의 기를 죽여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시도해볼 법한 일이었으니.
“으……어……!”
해결되지 않는 의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능성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가운데, 강화된 청각은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신음 소리를 잡아냈다.
나는 여러 개의 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처억 척 따라오는 둔한 발소리들은 방호복 안에 땀이 들어찬 내 부하들의 것.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 녀석들이니, 교대근무에 필요한 인력이 준비되는 대로 장기 휴가와 용돈을 챙겨주어야겠지.
“살려줘……. 너무, 아파…….”
“쿨럭! 쿨룩쿨룩, 카아악!”
“날…… 여기서, 꺼내, 줘…….”
계단을 내려오는 나를 발견한 페스트 감염자들이 폴리카보네이트 음압 격리장 안에서 비척비척 몸을 움직인다. 전성판을 넘어오는 답답한 목소리들. 사지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고, 자비를 갈구하는 눈빛들은 고통과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서 죽어가는 마루타들은 모두 국제사업부와 국내사업부가 합작으로 잡아들인 조선족 사기꾼들이었다. 다단계, 보이스 피싱, 몸캠 사기, 결혼 사기, 사기도박장 운영과 자금세탁 등등에 종사하던 조선족 점조직의 밑바닥들.
이들 실험체들은 건강할 땐 섬 곳곳에 감금해놓고서 개미에 의한 감염확산 과정을 관찰하고, 감염된 후엔 이곳으로 끌고 와 죽는 순간까지 균주의 유형에 따른 증상 및 특성을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부분적으로 한국어 구사가 가능하여 증상에 대한 질의응답이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실종되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실험체들이었다.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부수적인 수익이 발생한다는 점도 좋고.
“컥! 쿠웨엑!”
아까부터 기침을 하느라 정신없던 실험체가 입 밖으로 피가 섞인 가래를 토해낸다. 이는 페스트균에 폐가 감염되었을 때의 증상이었다.
뿌득-뿌득-
유심히 들여다보는 내 시선 아래에서, 토혈을 한 각성능력자가 강한 악력으로 투명한 벽을 긁어댔다. 손톱이 뭉개지면서 썩은 피가 기다란 핏자국을 남기는 와중에, 나를 노려보는 핏발 선 눈엔 증오가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격리장을 부수고 나와 내 목을 쥐어뜯고 싶다는 양. 그러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소용없는 일이었다.
“개보대 같은, 쿨룩, 씹애새끼! 내, 니, 반드시, 웨에엑!”
제법 독기가 있는 놈이로군. 증상으로 미루어 하루가 지나기 전에 죽을 것 같지만.
이런 실험은 역시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특히 각성능력자의 감염 특성은 동물실험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먼저 인대를 끊은 뒤 내가 손수 회로를 뚫어 공급하는 특별한 실험체들은, 페스트가 각성능력자를 상대로도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일반인에 비해 저항력이 다소 강하긴 하나, 그럼에도 열 중 일고여덟은 죽음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살려, 살려 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
나는 소리가 나는 다른 케이지로 시선을 돌렸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가 붉게 부풀어 오르고 손끝과 발끝이 괴사하여 검게 썩은 알몸의 여자는, 병의 진행과 무관하게 얼굴이 뭉개진 상태였다. 이는 내가 사냥개들에게 특별히 지시한 사항.
특정 형태의 사기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여자들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미인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의 미색은 장기간 실험을 진행하는 부하들의 정신에 피로를 더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되새기건대, 보통의 인간은 아름다움의 노예이니까.
하여 나는, 이런 실험체들의 경우, 안면을 훼손하는 1차 가공을 한 다음에 납품을 하도록 지시를 내려두었다. 이런 종류의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혹시 실험체 공급이 부족하지는 않나?”
내 물음에 이 섬의 책임자 격인 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숙소’에서 보관 중인 예비 실험체들은 지금도 수량이 충분한 것으로 압니다. 오늘부로 추가공급이 끊어진다 해도 앞으로 두 달 정도는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실험을 진행하는 게 가능할 거라 하더군요.”
“두 달?”
“예.”
“흠. 두 달, 두 달이라…….”
예비 실험체들을 이 섬에 몰아서 보관할 경우 병원균 유출로 인해 한꺼번에 폐사할 공산이 있었기에, 여분의 실험체들은 별도의 시설에서 수용·관리하는 중이었다.
‘일본산 겨자가스의 효력시험을 병행한다면 일시적으로 재고가 부족해질 수도 있겠어.’
한동안 사냥을 좀 늘려보라고 할까?
가오슈센을 꽌시로 삼고 세 경독을 대자로 거둬들인 이래, 조직 국제사업부의 인간사냥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중국 공안과 국가안전부의 정보망을 이용하며 진행하는 사냥이란 땅 짚고 헤엄치기 이상으로 손쉬운 일이었기 때문. 이젠 일이 잘못되었을 때 공안의 수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일선 경관들이 내 애들에게 굽신거리는 마당인 것을.
물론 사냥이 쉽다고 너무 잡아들였다간 어장의 황폐화로 곤란을 겪을 수도 있겠으나, 요즘 같은 불황 속에선 자연발생에 가깝게 늘어나는 것이 같은 인간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들이었다. 조직 운영의 노하우를 아는 대가리들만 방생해주면 물고기들은 끊임없이 보충될 터. 나중에라도 실험체 수급곤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흑, 흐흑…….”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흐느낌들을 뒤로 하고 층계를 올라 실험동을 나선 나는, 섬을 ‘초기화’하기 전에 미리 구상해두었던 마법적인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유리컵 속의 거미로부터 얻었던 영감. 그 영감을 미친 개미들을 상대로 조금 색다르게 써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너희는 이만 각자 할 일들을 해라. 필요하면 따로 부를 테니까.”
“예!”
내가 시도해보려는 건 개미들의 페로몬 분비체계를 교란하는 마법 술식의 개발이었다. 불사암을 만들어낼 것까지도 없이, 일시적으로만 분비체계에 간섭하여 개미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방편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
일단 마법을 완성하고 나면, 한계가 뚜렷한 내 마도구 제작 실력을 새로운 차원에서 활용하기가 가능해지겠지. 개미에게나 영향을 미칠 저출력의 마법 부여가 대마법사들의 주의를 끌 확률도 희박할 테고. 갑작스럽게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개미들은, 결정적인 순간 역병의 기수가 박차를 가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흐릿한 하늘 아래에 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을 조합해보던 나는, 이러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개미를 괴롭히는 아이라도 된 기분이군.’
작은 생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이기며 즐거워하는 동심. 그 순진무구한 악성이 어린 시절의 내게도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스승새끼에게 거두어지기 전까지의 유년기는 매일매일이 비슷하여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 굶주림으로만 가득했으니까.
애옹.
가만히 있는 내게 병든 고양이 하나가 다가와 도움을 청하듯 울어댄다. 이 섬에서 기르는 각성체 고양이들은 페스트 유출을 방지하는 안전장치의 하나였다. 날짐승이 들어오는 족족 잡아 죽임으로써 이 섬에 보이지 않는 창살을 더해주는 것. 한편으로는 쥐와 고양이가 많은 런던의 환경을 부분적으로 재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고양이들이라고 페스트에 면역인 건 아닌지라, 주기적으로 건강한 고양이들을 채워 넣을 필요는 있었다.
수연은 이 문제를 유기묘 보호시설을 세우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원시마법에 눈을 뜬 애완동물을 내다버리는 주인들이 넘쳐나는 요즘이기에, 각성체 고양이 공급은 한순간도 끊어질 일이 없었다. 내 시간을 따로 할애할 필요가 없는 자동화된 공급체계라 하겠다.
수연 녀석이 지나가듯 입에 담은 바, 주인이 애완동물을 찾으러 돌아온 경우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었지.
사람들의 평균적인 도덕성이 보증하는 공급체계의 안전성이다.
새로 탄생한 여왕들이 기존의 콜로니에 합류하는 습성을 가진 미친 개미를 상대로는 이 정도 안전장치만 있으면 충분했다. 개미들의 번식비행이 섬 바깥으로 감염을 퍼뜨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저 섬 전체가 포화상태가 되기 전에 주기적으로 지저를 구워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애옹…….
털이 빠진 살갗에 농양과 고름이 가득한 고양이는 더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도구였다. 난 고양이의 마력장을 억누른 뒤 염동력으로 목을 꺾어 안락사를 시켜주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내가 새로운 주문의 기초를 완성했을 때, 고양이의 시체엔 검누른 개미떼가 빼곡하게 들러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