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4화 (224/561)

#27. 바다와 어머니의 노래 (2)

연구원을 상대하던 수연은, 시간이 갈수록 미인과 알코올과 분위기에 취해가던 연구원으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키요우타마히코는 종종 공격을 시작하기에 앞서 특정 패턴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개는 제 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선박…… 그러니까 소나(음향탐지기)를 갖춘 선박을 상대할 때 보여주는 행동인데, 항상 동일한 노래를 부르는 까닭에 높으신 분들이 그 의미를 궁금해하고 계시지요. 어떻게든 해석해보라며 우리를 닦달하는 건 덤이고요. 하아.”

“노래의 의미……?”

“고래의 노래는 사실 고래가 사용하는 언어체계입니다. 종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무리의 차이에 따른 사투리도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요. 어떤 학자는 고래들 가운데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개체도 존재할 거라고 주장합니다. 사람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처럼요. 고래들 사이에서 종을 초월한 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가설입니다.”

“신기하네요. 그럼 키요우타마히코는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걸까요? 마츠오(松尾)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마츠오는 연구원의 성씨였다. 상체를 기울인 수연이 차분한 시선을 맞춰주자, 연구원은 볼을 붉히고서 말을 더듬었다.

“어, 그게, 그게 말이죠. 하하. 저는, 그, 노래의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는 죽은 가족의 이름을 뜻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름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혈육의 복수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것일지도.”

“예, 예! 바로 그거지요. 근거가 불확실해서 확실하게 이거다, 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축적된 고래들의 음향 데이터 전체를 분석해본 바로는 역시 이름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를 가르친 교수님께서도 같은 의견이시더군요.”

이후 연구원은 자신의 은사가 학계에서 얼마나 명성이 높은 사람인지 열성적으로 떠들어댔다. 그 지루한 장광설을 성의 있게 들어준 후, 수연은 연구원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했다.

“그 노래, 혹시 제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

연구원은 술이 조금 깨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에,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그거는 자위대가 기밀로 분류한 데이터라서요. 새어나가면 제가 처벌을 받을 겁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건데 괜찮지 않나요? 꼭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 유명한 고래가 부르는 노래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마츠오 씨가 일하는 곳도 보고 싶고.”

“하, 하하하…….”

난처해하던 연구원은, 결국 수연의 구슬림에 넘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이라면 자기 후배가 재난현장에 설치된 대응본부에서 숙직을 서고 있을 시간이니, 잘 사정하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은밀히 지원팀을 붙여 보내고서 숙소로 복귀해 기다리기를 약 두어 시간. 수연은 펜처럼 생긴 녹음기에 각성체 고래의 노래를 담아 돌아왔다.

“수고가 많았다. 정말로.”

수연은 본디 이런 일에 투입할 만한 인력이 아니었다. 중요한 협상 관계자도 아니고, 일개 연구원 따위를 상대로 조직 본사의 비서실장 겸 기조실장이 몸소 나서다니. 격이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는 일이다.

시간상 이런 업무에 특화된 다른 부하를 불러올 형편이 아니었고, 수연 본인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기도 했지만, 귀한 도구를 함부로 쓰는 느낌이어서 못내 기분이 좋질 않았다.

녹음기를 건네받은 나는 수연에게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우선 식사부터 해라. 네가 끼니때를 놓친 게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예.”

공손히 답한 수연이 각진 테이블 한쪽에 착석한다. 준비된 음식은 예의 이자카야에서 한가득 포장해온 야키토리들이었다. 조리 후 시간이 제법 경과하긴 했으나, 기다리는 내내 마법을 써서 온도와 수분분포를 조율했으므로 음식의 상태는 포장한 직후와 달라진 게 없을 것이었다.

바스락거리며 포장을 뜯은 수연은, 훅 올라오는 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세정제로 손을 닦은 뒤 식기를 들고 정갈한 식사를 시작했다.

잘 먹으니 보기 좋군. 미뤄두었던 일 하나를 끝마친 느낌이다.

수연의 식사에서 눈을 뗀 나는 녹음기를 노트북에 연결하여 고래의 노래를 재생했다. 프로그램이 표시하는 노래의 파형은 물의 진동을 빚는 마법으로 얼마든지 재현이 가능한 패턴을 나타내고 있었다. 노래 뒤에 짤막하게 붙어있는 공격의 소음 또한 내게는 꽤 도움이 되는 참고자료였다.

이제부터 내가 꾸며내는 해난사고들은 한없이 실제와 닮은꼴로 수렴할 것이다.

물론 키요우타마히코의 주된 활동영역을 벗어난 곳에서까지 고래에게 누명을 씌우는 건 주의가 필요한 일이겠지. 그러나 혹등고래는 서식범위가 오대양 전체를 아우르는 종. 일개 호랑이가 하루에 천이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마당에, 각성체 혹등고래의 활동범위는 또 얼마나 넓게 잡아야 할 것인가.

내가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남쪽 부두에서 목격했던 각성체 고래의 기동력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일본 열도 전체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중인 괴물 고래는 당연히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합당하겠지. 그러니 일본 해상교통관제 방송에 꾸준히 귀를 열어두기만 한다면, 시간적인 알리바이를 깔아두고 전 세계의 모든 바다에서 참사를 꾸미기가 가능할 터였다.

나는 눈과 귀로 노래의 특성을 숙지하며 생각했다.

‘자위대 데이터베이스를 한번 털어보고 싶어지는데.’

해상자위대 데이터베이스엔 분명 고래에 관한 더 많은 기밀 자료들이 저장되어 있겠지. 외부와의 접점이 존재하지 않는 군용 인트라넷이라도, 물리적으로 침입해서 제로 데이 모듈을 박아버리면 무저항으로 보안이 뚫릴 수밖에 없었다.

구레 항구 남쪽 부두엔 해상자위대 보급공작부와 연습함대 사령부가 들어서있다. 연습함대 사령부 산하 잠수함교육훈련대는 수중 음문(音紋) 데이터의 보고와도 같을 터. 그 데이터엔 당연히 고래의 음문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두 가지 난관이 있다.

하나는 불야성을 이룬 자위대 기지에 침투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 각성능력자 자위관들이 24시간 배치되어 있는 만큼, 대마법사의 역량으로도 일체의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서 들어갔다 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 하나의 난관은 같은 부두를 쓰는 미군의 존재다. 주둔 규모 자체는 작을지언정 분명 자위대와 전산망이 연결되어 있을 것인데, 거기에 대고 영국산 제로 데이 모듈을 찔러 넣으면 자위대는 몰라도 미군은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었다. 영국은 미국의 1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며, 영미 양국은 첩보 영역에서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미군 역시 실시간으로 자위대 데이터를 빼먹는 중일지도 모르고.’

미국이라고 왜 희대의 해양각성체에 대한 정보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와중에 내가 추가로 난입한다면, 그 즉시 영국은 자기네가 만든 칼이 엉뚱한 곳에서 출현했음을 통보받게 될 테지.

고래의 노래 샘플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잠을 아껴가며 구레까지 걸음한 보람은 있다 하겠으나,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 부족한 수면을 조금이나마 보충한 나는,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구레 중앙부두에 인접한 공원을 방문했다. 전함 야마토(大和)의 전방 갑판 절반을 실제 사이즈로 형상화해놓은 제국주의적 기념공원. 이곳에선 여명의 바다를 배경으로 성난 바다 신을 달래기 위한 신토 마츠리(祭)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츠리는 보통 축제로 번역되곤 하지만, 그 본질은 신령에게 신찬(神饌)과 폐백(幣帛)을 공물로 바치고 보살핌을 내려줄 것을 청하는 종교적인 제사다. 지금 같은 경우는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의식이라고 해야겠지. 1억 2천만 일본인들의 운명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고래는 액신(厄神)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공개된 장소에 설치된 신단(神棚)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장소를 찾아 차려놓은 제사상 같은 것이었다. 삼베와 비단(폐백)을 상징하는 하얀 종이(御幣)를 지그재그로 접어 늘어뜨린 고헤이(幣束)들은 신령에게 이곳에 임하여 줄 것을 청하는 의미였고, 고헤이 아래 벌려놓은 밥과 술, 각종 과일과 해산물 및 당과자 등은 바다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서의 음식들이었다.

혹등고래가 이런 인간적인 먹거리들을 반길 리 없겠지만, 제사는 결국 인간을 위한 행사이니까. 제례가 끝나고 나면 이 음식들을 나누어먹음으로써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신토의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마법의 시대에 최적화된 신앙 같기도 하고…….’

최적화라 함은 무분별한 광신의 범람을 저지할 방파제로서의 최적화를 말하는 것이다. 비록 옴진리교의 분파들이 저마다 공중부양의 기적을 내세워 교세를 넓히고는 있으되, 일본의 종교적 혼란은 사회 전반의 혼란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이가 얕은 측면이 존재했다. 그러니 초월적인 자연각성체들이 선사하는 충격을 전통 깊은 신토 신앙이 흡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지는 것.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혼란과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이 빚어내는 질서 사이의 차이에 가깝지 않을는지.

여하간, 이 행사에 몰린 인파에 자연스럽게 섞여든 나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마음 놓고 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부두를 감상할 수 있었다.

“휘유.”

탄내 섞인 바람이 밀려오자 경태가 휘파람을 불었다.

“연기 색깔을 보니 군항 쪽은 아직까지도 불을 다 못 잡은 모양이네요.”

이 위치에서 조선소 부두 너머 군항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되, 경태는 높은 하늘까지 닿아있는 연기의 색상으로 군항의 상태를 파악했다.

성장기와 최성기의 화재는 검은 연기를, 발화 초기와 감퇴기의 화재는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린다. 고로 백색과 흑색이 뒤섞여 만들어진 음영 깊은 회색 연기는 화재 진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피해가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아직까지도 불타고 있는 겁니까?”

경태의 질문에 나는 짧게 답해주었다.

“그냥 포기한 거지.”

“와우.”

경태가 감탄사를 흘린다.

“높으신 분들이 속깨나 쓰리겠네요.”

지금 군항에서 불타고 있는 배들 중엔 항공모함으로의 개장이 예정되어있던 2만 7천 톤짜리 다용도 운용모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카가라는 이름의 이 배 한 척을 잃은 것만으로도 일본은 한화로 1조 2천억의 손실을 본 격이었다. 여기에 싣고 있던 헬기나 부수적인 기자재 등의 손실을 더하면 피해액은 1조 5천억까지 올라간다.

고래의 공격에 파괴당한 건 이 배 한 척으로 끝이 아니었으므로, 현재진행형으로 불타고 있는 일본의 자산 총액은 한화 3조 원을 가볍게 넘어설 것이었다. 지금의 일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감이 있는 손실.

더군다나 오늘 아침의 뉴스 토픽이 일본 근해의 해상보험료 추가 할증 예고였으니, 마법의 시대가 저물지 않는 이상 일본이 이 피해를 복구할 일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전통의 포경대국인 노르웨이가 비슷한 꼴을 겪고 있음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모든 국가들이 고래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 들 터.

이번 참사를 기하여, 바다는 내게 한층 더 유리한 환경으로 변모한 셈이다.

쐐애애액-

이미 몇 번 들어서 익숙해진 소음이 귓가에 메아리친다. 일본의 자랑인 「0.1톤」이,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제트 바이크에 올라탄 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해양각성체의 마력장을 감지하겠답시고 낮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소리였다.

비위도 좋군.

표면적인 이유야 어쨌든, 실질적인 역할은 이번에도 국민들의 정신적 자위를 위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부루퉁한 본인의 표정을 보건대 허상뿐인 명성과 광대 노릇이 즐겁지는 않은 모양. 빡빡하게 굴리는 스케줄 역시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테고.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불타는 배들로 가득한 항구를 바라보았다.

강한 진동에 의한 연료 발화는 고래의 공격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확인사살 같은 것이었다. 초기엔 발화로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었다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깝게 추가적인 발화가 발생하게 된 것. 이는 고래가 화재를 유발하는 파장을 학습했다는 간접적인 상황증거였다.

‘이게 고정 감시망까지 회피했단 말이지…….’

군항으로 들어오는 물길은 좁았고, 그 좁은 물길엔 고정식으로 깔린 수중 음향감시 라인들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선박들이 부두에 매인 상태 그대로 격파당했다는 건, 고래의 침입을 감지하지 못해 대응을 해볼 겨를조차 없었음을 의미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가장 유력한 건 역시 키요우타마히코가 삼중능력 각성체일 가능성이다. 염동력이나 물에 대한 지배력 등을 활용하면, 육안으로 포착당하지 않는 이상 수중에선 스텔스나 다름없는 상태가 될 수 있으니까. 이 말은 즉 해난을 빚을 때 꼭 음파공격에만 집착하지 않아도 무방하리라는 뜻.

내겐 실로 존재 자체가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괴물이라 하겠다.

상쾌하지 못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참사현장을 눈에 담기를 약 반 시간. 얻을 것을 다 얻어낸 나는 매캐함이 감도는 바다와 겁먹은 자들의 제례를 등지고 돌아섰다. 일본에선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으니, 이제는 본사로 돌아가 다음에 둘 수를 고민할 때였다.

이날 오후 한국으로 복귀한 나는, 이슬람 성전 연합의 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노라는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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