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3화 (223/561)

#27. 바다와 어머니의 노래 (1)

호랑이 시체인형은 29분을 작동한 뒤에 다시 한 번 심장이 멈추었다. 기능정지의 원인은 과다출혈. 사냥이 다 끝나갈 무렵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온 제트 바이크가 끼어들었으므로, 일본 수렵당국은 망령살해의 명예를 「0.1톤」의 것으로 포장해주었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엽사들은 이러한 처사에 불만을 품었으나, 현상금과 호랑이 사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당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 수렵당국에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냥꾼들의 지분 싸움은 수렵당국에 속한 조정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헌터들 개개인이 확보한 현장 영상과 동선 기록 등을 토대로 사냥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는 지루한 싸움. 이는 어떤 의미에선 법정에서의 다툼과도 닮아있는 것이었다. 1푼 1리의 가감에 살기등등한 고성이 오가는 지저분한 힘겨루기.

이 지분 싸움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자들의 출현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하겠다. 나는 현상금과 호랑이 사체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공능법인 「개마」까지 그래서야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울 터라, 지원팀으로 하여금 법률사무소 소속 현지 브로커를 고용하도록 지시했다.

“저희 사카모토 사무소를 선택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고의 성과로 기대에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표하는 변호사의 입가엔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번 일이 「고위험 수렵물 지분조정」이라는 신규 시장에서 명성을 높일 절호의 기회였을 뿐더러, 우리가 천만 엔의 착수금과 별개로 최종 보상 결정액의 2할을 추가 지급하겠노라 약속해주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변호사 수임료가 청구액의 2~4% 정도임을 고려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한 셈이었다.

브로커는 이 파격적인 조건을 엉뚱한 의미로 해석했다.

“이렇게 많은 지출을 결심하셨다는 건, 역시 현상금보다는 부산물을 더 중시하신다는 의미겠지요.”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늘어놓는 말들이 이러했다.

“수렵물 1차 감정결과를 보니 세슘 수치가 안전한 범위로 나왔더군요. 킬로그램 당 89베크렐. 이야, 정말이지 아슬아슬했지요. 백을 넘겼으면 아예 통관조차 불가능한 국가들이 많아졌을 테고, 그걸 빌미삼아 중국인들도 가격을 후려치려 들었을 게 뻔하니 말입니다. 호랑이가 사람을 주로 먹어서 다행이지 뭡니까.”

“귀한 앞발을 양쪽 모두 확보하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습니다만, 중국인들이 최고로 치는 오른쪽 앞발만큼은 상완골 위쪽까지 통째로 확보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대피소 보호로 받으신 가점과 높은 기여도 등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에도 요골까지는 잘라내기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지분조정이 마무리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큰돈이 필요해지신다면, 그때도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예상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은행을 소개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여러분들처럼 훌륭한 헌터분들은 가만히 있어도 투자자들이 줄을 설 테니 유동성 문제를 겪을 일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니까요. 갑작스럽게 초능력이 찾아오기도 하는 세상인걸요. 하하하!”

“이 일을 저희에게 맡겨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희 사무소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고객 여러분들의 이익을 대변할 것입니다.”

이렇게 의욕을 불태우는 데 그러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부수입치곤 나쁘지 않겠지.’

광저우에서의 활동으로 막대한 규모의 군자금을 마련하긴 했으나, 많은 돈이 더 많아진다고 나쁠 것은 없잖은가. 한편으로는 중국의 탐욕스러운 공산귀족 및 공산자본가들이 식인괴물의 앞발에 얼마를 불러댈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알리바이 형성에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 우리에 대한 수렵당국의 조사는 형식적인 수준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이는 홋카이도에서 도쿄에 이르는 비상대응체제가 너무 길었던 탓도 있었다. 주야를 불문하고 일이 일을 만들어내는 일본식 관료제의 폐해에 시달리던 공무원들은, ‘드디어 끝났구나.’라는 해방감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빠르고 무기력한 일처리로 내게 작은 호감을 샀다.

열도의 언론들은 온종일 「0.1톤」의 활약을 보도했다. 고단한 삶에 부대끼는 사람들에겐 어두운 현실에 즐거움을 더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라를 대표하는 각성능력자의 영웅담은 그런 용도로 적합한 소재였을 터. 같은 맥락에서 웃기는 별명과 우스꽝스러운 외모는 마이너스 요소가 아니었다.

만들어진 영웅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중의 즐거움을 위해서 소비되었으며, 호환을 당한 피해자들의 비극은 보다 나중의 관심사로 밀려났다. 이 같은 언론의 보도행태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시민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의도적으로 조성된 축제 분위기는 채 하루도 계속되지 못했다. 성난 고래의 내습으로 군항 하나가 박살이 나버린 까닭.

구레(呉) 항구가 수중으로부터의 공격에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은, 대호의 죽음을 기점으로 잠시나마 반등하는가 싶었던 일본 열도의 분위기를 또 한 차례 심연의 밑바닥으로 처박아 버렸다.

“우리 일본은 해난(海難) 대응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버렸어요.”

일본 국립 해양연구소(JAMSTEC) 소속 연구원이라는 사내는 술 한 잔이 들어가기 무섭게 탄식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악화된 건 전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과잉대응이 원인입니다. 처음부터 그냥 포경을 중단하기만 하면 끝날 가능성이 높은 일이었는데, 원흉을 제거하겠답시고 민간 어선단을 무더기로 동원하고, 피해가 커지니까 해자대 호위대군까지 투입해서 무차별적으로 고래들을 잡아 죽였으니…….”

푸욱 한숨을 내쉰 연구원이 수연을 힐끔거리며 말을 잇는다.

“키요우타마히코, 그 사나운 바다 신(海神/와다츠미)은 일본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셈이죠. 지금도 조업을 나가는 용감한 어민들에겐 한 가지 금기가 있다고 합니다. 「바다에 나간 뒤엔 최대한 작은 소리로 말을 하라.」라는. 일본어로 나누는 말들이 물 밑으로 내려가면 바다신의 분노를 불러오리라 믿고 있는 겁니다.”

이곳은 구레 시내 소재의 야키토리(焼き鳥) 이자카야. 앉을 자리가 열댓 개에 불과한 노포(老鋪) 내부는 서로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하게 말이 오가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냥 미신 아닌가요?”

수연이 묻자, 연구원은 청자의 관심에 굶주린 재담꾼이 되었다.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인조종 선박에 마네킹과 스피커를 실어 시험을 해봤는데, 스피커에서 일본어가 나오는 선박이 해양각성체의 공격을 받을 확률은 그렇지 않은 선박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공격을 가하는 건 대부분 고래나 돌고래 류의 각성체들이었죠. 놈들이 수면 위의 대화를 듣고 언어를 구분해서 공격을 가하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밀렵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입장에선 썩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예컨대 코끼리만 하더라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인간의 위험도를 달리 판단하곤 하니까. 밀렵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와 관광객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를 학습한 것이다.

청각이 예민한 고래하목의 동물들이라면 원거리에서 수면 위의 대화를 엿듣는 일도 가능할 테지. 원시마법 각성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고.

수연은 다시금 조용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저는 왜 그런 사실을 처음 듣는 걸까요? 실제로 그렇다면 뉴스를 통해서라도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인데요. 어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널리 홍보해야 할 내용이 아닐는지…….”

“아아, 일단은 이게 대외비라서 그렇습니다. 연구소 차원에서 공식 발표가 나가버리면 그걸 근거로 또 해상보험 위험요율이 오를 수가 있어서 말이죠. 어민분들이야 뭐, 이미 다들 금기를 지키고 있으니 굳이 홍보를 할 필요가 없고요. 바다 신을 모시는 신사의 신관과 무녀분들이 안전교육을 대신해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하하!”

세상천지에 8백만의 신이 있다 하는 일본 신토의 전통적 신앙관은, 강력한 해양각성체를 살아있는 신(生神)으로 수용하는 데에도 저항감이 없었다. 산과 폭포도 신으로 모셔지고 임무 중 사망한 자위대원들도 신위에 오르는 판국에 각성체 혹등고래가 신이 되지 못할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그런 대외비를 이렇게 말씀해주셔도 괜찮으신가요? 나중에 이것 때문에 곤란을 겪진 않으실까 걱정스럽네요.”

미인의 염려를 받은 연구원은 입이 헤벌쭉 찢어진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요즘 검증되지 않은 헛소문이 좀 많습니까?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만 않으면 무수히 많은 루머들 중 하나가 될 뿐이죠.”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아무튼, 수렵당국은 타이지 쵸(町)가 국지성 쓰나미에 쓸려나갔을 때 이번 사태를 예견했어야 했습니다. 자연과의 전쟁을 선포할 게 아니라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였어야 해요. 우리 인류는, 적어도 바다에서만큼은 더 이상 만물의 영장을 자처할 수 없게 되었다는 냉엄한 현실을요. 바다의 진정한 지배자들 앞에서는 최첨단 전투함조차 조각배나 마찬가지인걸요.”

타이지 쵸는 매년 돌고래들을 무더기로 몰아 죽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학자들은 이 마을을 쓸어버린 미증유의 재해- 국지성 쓰나미가 각성체 돌고래 집단의 합동공격이 아니었나 의심하고 있었다. 원한을 품은 각성체 돌고래들이 세 자릿수쯤 모여 원정을 나왔다 치면, 마을 하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리라고.

따로 떨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경태가, 옆에 앉은 내게 빙그레 웃으며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저 사람, 미팅 자리에 나와서 대전 엑스포 다리가 무너지지 않는 원리를 설명하는 공학도 같은 느낌이 드네요.”

“…….”

여자에 면역이 없다는 말을 참 괴상하게도 표현하는군.

화장은 사업에 요긴한 변장의 기술이었고, 계획적으로 꾸미고 나온 수연은 본판과는 완전히 달라진 부드러운 인상으로 연구원을 홀려놓았다. 뭔가 특별히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끄덕이고 조용하게 호기심을 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나 같은 눈깔병신이 아니라면, 대개의 인간은 아름다움의 노예다. 나를 대신해 협상장에 나갈 일이 많은 수연은 저의 강점을 이런 식으로 활용해본 경험이 많았다. 상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 프로파일링을 진행하여 꾸밈의 방향성을 달리하는 건 기본. 비서실엔 이와 같은 업무를 전담하는 프로파일러 팀과 스타일리스트 팀이 있다. 나, 그리고 수연과 경태를 위시한 주요간부들의 협상력을 간접적인 영역에서 보태어주는 녀석들이.

“형님.”

나를 부른 경태가 가운데 놓인 접시를 가리킨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으신 건 알겠지만, 그래도 좀 드셔보시죠.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웬만해선 찾기 어려운 가게가 아닙니까.”

찾기 어렵다 함은 마법의 시대가 씨를 말린 양심을 이르는 것이다. 연구원의 뒤를 밟아 들어온 이 노포는 보기 드물게 깨끗한 재료들만 사용하는 음식점이었다. 단 하나, 잡육을 갈아 빚는 고기경단을 제외하면 먹기에 거북한 메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고기경단을 먹는 손님들은, 이따금씩 부러움과 상실감과 그리움이 담긴 시선으로 이쪽의 접시들을 흘끔거리곤 했다.

값싼 경단에 들어가는 잡육의 정체는 불사암 배양육이었다. 마법적 특성이 없는 종양들을 선별하여 덩어리를 키운 뒤, 증식속도에 맞춰 겉면을 갈아내는 식으로 뽑아내는 저렴한 가격의 고기. 불가피한 합법화에 힘입어 우후죽순 늘어나는 불사암 공장들이 공급하는 분쇄육은, 가난한 자들일수록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시대적 흐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경태에게 까딱이는 눈짓을 해보였다.

“추가로 주문할 땐 저것도 하나 시켜봐라.”

“어, 드셔보시려고요? 굳이?”

“음.”

갸우뚱하면서도 알았다고 끄덕이는 경태.

“그럼 저도 하나 먹어보죠 뭐.”

접시들을 비워가는 속도가 속도인지라, 경태는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추가주문을 넣어버린다. 우리가 막 들어올 때만 해도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주인내외는, 경태가 넣은 여덟 번째의 추가주문을 환한 미소와 함께 굽실거리며 받아주었다.

나는 연구원을 상대하는 수연을 곁눈질했다. 연기에 공을 들이느라 먹을 것에 관심을 줄 틈이 없어 보인다.

‘저 녀석도 슬슬 허기가 질 때인데.’

먹는 것은 모든 충성의 밑바탕이다. 일 때문에 먹을 때를 놓치고 있는 측근을 보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자, 나왔습니다.”

5분쯤 기다려서 받은 기다란 접시엔 내가 원한 잡육 경단이 포함되어 있었다. 혐오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으되, 앞날을 생각해서 미리 거부감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는 먹거리. 그나마 원형이 남아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심리적인 역겨움과 별개로, 경단의 맛 자체는 제법 괜찮은 것이었다. 일본 요리의 자극적인 간은 수면부족으로 식욕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입맛을 돋우는 측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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