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22화 (222/561)

#26. 대호(大虎) (6)

“형님.”

타고난 감으로 위험을 감지한 경태가 나직하게 나를 부르기에, 나는 손을 들어 이미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공격헬기의 모든 조종기록은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그럼에도 저 새끼들이 살인멸구를 생각한다는 건, 윗선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자.”라고.

이 나라의 음습한 조직문화를 고려하면 충분히 해봄직한 일이다. 더구나 요즘은 상급자들 역시 생활이 팍팍하기 짝이 없을 시기인즉, 뚜껑을 덮어주는 대가로 돈을 나누는 조건이라면 응할 가능성이 높다…… 라는 게 욕망에 이성이 마비된 두 조종사의 판단일 터. 현상금의 30%를 고스란히 받을 수만 있다면, 각자의 몫을 나눠가져도 수억 엔 단위에 이른다.

무장 패널의 마스터 암 스위치(Master arm switch)에 손가락을 얹은 채 한참을 갈등하던 파일럿은, 눈을 질끈 감으며 스위치를 올려버렸다. 패널 우상단의 상태표시등이 황색으로부터 녹색으로 전환된다. 이는 헬기에 달린 모든 무장들이 사용 가능 상태로 전환되었다는 의미.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파일럿의 검지가 기관포의 트리거에 걸리는 순간, 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전개했다. 가까이에 있던 일본인 각성자들이 하던 짓들을 일제히 멈추고 놀란 숨을 들이켜는 가운데, 난 파일럿이 하는 양을 묵묵히 노려보았다. 조종사의 헬멧에 연동되는 기관포는 이미 나와 내 애들을 겨냥하고 있다.

「……?」

연신 트리거를 당겨대도 기관포가 발사될 생각을 않자, 땀으로 흥건한 파일럿의 낯짝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후방좌석의 상급자와 급하게 다시 이야기를 나눈 이 잡것은, 웨폰 컨트롤 스위치를 올려 기관포 제어권한을 상급자에게 넘겨주었다.

그 전부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상급자는, 권한을 넘겨받기 무섭게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트리거를 당겼다. 그러나 기관포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는다. 내가 트리거로 흘러야 할 전력을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난감해진 두 파일럿이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입모양을 보며,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냥 이대로 살려서 보내야 하나? 회로를 좀 태워놓으면 정비 불량이 있었다 치고 무난하게 넘어가도록 할 수도 있을 터인데.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저기, 당신께서는 대체……?”

그 문제 중 하나, 내 존재감에 눌려있던 각성자 경관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경험한 이 골치 아픈 각성자들을 죽여 없애려면, 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파일럿들이 살아서 돌아가선 안 된다.

파일럿들은 현상금을 독차지할 요량으로 아직 현장상황을 보고하지 않았을 테니, 죽이려면 지금이었다.

내가 살심을 담아 회로에 술식을 장전하는 이때, 기관포를 단념한 두 파일럿은 열상 유도 로켓의 제어 스위치를 올린 상태였다. 열추적 센서가 냉각되는 즉시 발사할 작정인 것. 어떻게든 현상금을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돋보인다.

그 악취 가득한 결의를 존중하여, 나는 공격헬기의 조종석을 보호하는 방탄유리를 강력한 염동충격파로 박살내주었다.

투캉-!

둔중한 파열음이 울린 직후, 부서진 파편들이 복좌로 앉은 두 비각성자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놓는다. 개중 목에 박힌 파편들은 내가 추가적인 염동력 투사로 섬세하게 궤도를 잡아준 것들이었다. 경동맥이 끊어진 파일럿들이 빠른 속도로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의식을 상실한 파일럿의 손아귀 안에서, 막대형 조종간은 전방 대각선으로 확 밀려버린다. 위이이잉-! 방탄유리 깨지는 소리와 치솟는 엔진 소음에 눈길을 돌린 일본인 경관은, 헬기를 손가락질하며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어? 저, 저거! 떨어진다!”

혼비백산한 일본인들이 앞다퉈 엎드리거나 자세를 낮추어 헬기의 추락에 대비한다. 내게 몰려있던 시선들이 자연히 추락현장에 집중되었으므로, 나는 부하들에게 이 틈을 타 조금 거리를 두고 물러나있으라는 무언의 신호를 주었다.

콰드드드드-!

기울어진 헬기가 기수부터 땅에 처박힌다. 머물던 고도가 낮았던 탓에 곧바로 폭발까지 이어지진 않았으되, 고속으로 회전하던 날개가 부러져 살벌한 기세로 튕겨져 나간다. 개중 하나가 일본인 한 명을 칼처럼 치고 지나간 것은, 이제부터 감수해야 할 귀찮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작은 행운이었다.

개 같은 파일럿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귀찮아질 일이 아니었건만.

나는 또 한 번의 한숨을 내쉬며 새로운 술식의 구축에 들어갔다. 목표는 호랑이의 시체. 아낌없이 전개한 마력장으로 막대한 양의 마소를 빨아들이고, 그 마소를 동일한 양의 마력으로 정제하여 「소생」의 원리를 구현한다.

내가 구사하는 「소생」을 죽은 인형술사가 보았다면 애들 장난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웃었을 터. 그러나 나의 「소생」엔 단 한 가지, 웨스트버튼의 인형술보다 우월한 점이 존재했다.

마력으로 영혼의 부재를 채우는 기술.

본디 「소생」은 시전대상이 죽는 순간, 흩어지는 영혼을 강제로 붙잡아 고정시켜 술식 구동의 기반으로 삼는 마법이다. 회로는 오직 영혼에만 새길 수 있는 것이니까. 이는 아티팩트나 탤리스만의 제작에 반드시 산 제물의 영혼이 필요한 이유와 같다. 대마법사들이 선호하는 소재는 호환성이 우수한 인간의 영혼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소생」은 이미 죽어있는 시체에 대해선 사용이 제한되는 술식이다. 인형술사의 제례검 같은 마도구에 영혼을 저장해두거나, 아예 다른 생명의 영혼을 뽑아 접붙이지 않는 이상에야.

하지만 내 스승새끼는 영혼을 다루는 마법의 대가였고, 나는 그런 스승새끼의 마법을 계승한 대마법사였다.

‘사람의 영혼을 갈아 마력을 뽑아내는 게 가능하다면, 마력을 집중시켜 영혼을 대신할 무언가를 빚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물론 이 기술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생을 연구하더라도 끝을 보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드는 불완전한 지혜.

그러나 호랑이 한 마리를 짧은 시간 움직이게 하는 것쯤은 그 불완전한 지혜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후욱-

일본인 능력자들이 헬기의 추락에 정신이 팔려있는 이때, 죽어있던 호랑이의 호흡이 재개된다. 죽음으로부터 아직 5분이 흐르지 않았으므로, 큼지막한 뇌의 신경세포는 여전히 신선한 상태. 나는 넘쳐나는 마력을 끝도 없이 퍼부어 「소생」의 부족함을 출력으로 만회하는 한편, 시체에 남은 상처들을 고속으로 수복해주었다. 호랑이가 식인으로 섭취한 풍부한 양분이 재생에 필요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마법의 안정성이 궤도에 오르는 순간, 나는 내장된 프로그램이라곤 한 맺힌 분노와 증오뿐인 생체기계를 작동시켰다.

크르릉-

드디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는 식인괴물의 시체. 생전에 망령의 이름을 지녔던 호랑이는, 이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망령으로 부활하여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인공적으로 부여된 가짜영혼의 마력장을 두른 채로.

술식을 완성한 나는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신속하게 물러났다.

“어라?”

콰직. 가장 먼저 호랑이의 부활을 깨달은 경관이 가장 먼저 호랑이에게 피살당한다. 인간의 뼈와 살이 으적으적 씹히는 소리. 저가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호랑이의 육체는 상처를 회복하는 데 들어간 양분만큼의 허기를 느끼는 듯했다.

괴물의 부활을 목격한 경찰과 자경단원들이 삽시간에 공포에 빠져들었다.

“호, 호랑이가 되살아났다!”

“말도 안 돼! 저건 분명 죽어있었다고! 내가 확인했단 말이야!”

이렇게 비명들을 지르는 일본인 각성자들은, 내가 전개한 마력장의 영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반면 호랑이는 내 배려를 받으며 마음껏 마소를 끌어다 쓰는 상황. 이 일대의 모든 마소를 지배하는 나의 편애가 죽은 호랑이와 산 인간들 사이의 격차를 심화시켰다.

망령의 전투능력이 결코 생전과 같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인 학살이 펼쳐지게 된 이유였다.

“아아아아! 싫어! 아파! 살려줘! 엄마아아!”

실시간으로 하반신을 씹혀 먹히는 인간의 절규. 호랑이에게 총을 쏴대는 이들이 없지 않았으나, 일반인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수준으로 감소한 신체능력으로는 구경이 큰 자동화기의 반동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반동을 못 이긴 사수들이 여기저기서 엉덩방아를 찧거나 뒤로 넘어지거나 하는 모습들은, 멀리서 보면 한 편의 슬랩스틱 코미디와도 같은 것이었다. 명중률은 당연히 바닥을 기었다.

결국 일본인 각성자들은 교전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을 도모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도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우웅-!

내가 방출한 음파 공격이 생존자들의 평형감각을 파괴한다. 다중창으로 울려 퍼지는 다채로운 비명들. 양쪽 귀에서 붉은 피를 줄줄 흘리는 일본인들은 이제 혼자 중심을 잡을 능력조차 상실했다.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네발로 기는 인간들은 차례차례 호랑이의 사냥감으로 전락하여 죽어나갔다. 시신을 수습할 엄두도 나지 않을 죽음들이었다.

크허어어엉-!

인간의 피로 온몸을 적신 호랑이가 사납게 포효하니, 학교 안의 생존자들은 감히 바깥을 내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괴물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듯이.

처음부터 줄곧 웅크리고만 있던 이들의 현명함은 내 수고를 적잖이 덜어주는 것이었다. 아니었다면 호랑이를 학교 안으로 몰아넣어야 했을 것이고, 즐겁지 않은 광경도 보아야 했을 터. 어린아이들의 떼죽음은 나로 하여금 오랜 악몽의 시발점인 어린 날의 보육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이니까. 필요하다면 감수하겠으나, 결코 달갑지는 않은 일인 것.

“저거 도망가는데요?”

경태가 말하는 ‘저거’는 학살과 포식을 마친 호랑이였다. 죽기 직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지, 우리가 상황을 끝내고자 접근하니 도주를 시작한 것이다. 이만하면 뇌의 기능보전 하나만큼은 기대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할 수 있겠으나…….

‘형편없군.’

전력을 다해 달아나는 호랑이의 움직임은, 「소생」의 수준을 반영하듯 미묘하게나마 부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여기에 더해 인공영혼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아 영육의 거부반응이 신경세포를 파괴하고 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가 만들어낸 시체인형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몇 시간 후면 활동을 정지할 엉성한 생체기계에 불과했다.

그래도 쫓아가지 않을 순 없다. 동선에 따른 알리바이를 확보해야 하니까.

“쫓아가라. 금방 뒤따라가마.”

내 말에, 경태는 속뜻을 바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시간을 끄는 편이 좋겠죠?”

“글쎄……. 그러는 편이 더 자연스럽긴 하겠지. 네가 알아서 해라.”

“옙.”

이렇게 부하들을 먼저 보내놓고, 나는 연기를 피워 올리는 헬기로 다가갔다. 나중에 내 위치신호를 분석한 대책본부가 혼자 남아 추락현장에 접근한 이유를 묻는다면, 파일럿의 생사를 확인하려 하였노라 둘러댈 요량으로.

나는 정교하게 성형한 염동력으로 ‘성난 호랑이의 발길질에 박살난 헬기 잔해’를 연출했다. 앞서 죽은 거머리들이 각성체 증명용 숄더 캠을 달고 있었으니, 시체를 수습할 수렵당국은 호랑이에게 허공을 밟고 달릴 능력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탐색을 위해 저고도에 머물던 헬기가 호랑이에게 격추당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것이 내가 연출하려는 시나리오였다.

헬기 동체를 적당히 부수고 긁어놓은 나는, 최종 결과물을 눈으로 훑은 뒤 마지막으로 블랙박스를 파괴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이러고서 부하들을 뒤따라잡으니 호랑이 시체에 새로운 벌레들이 꼬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사냥을 시작하기 전 내 앞을 가로막고 제 코를 자랑했던 여자가, 저와 힘을 합치기로 한 무리와 그 무리에 붙은 다국적 거머리들을 이끌고 시체인형의 진로를 차단한 것. 이들이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을 보건대, 구조신호의 빛이 닿는 범위에 운이 좋게 들어와 있었던 모양이다.

여자의 무리엔 내가 교토 시내에서 눈여겨보았던 돼지, ‘캉코꾸노 한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확천금의 욕심에 눈이 벌게진 이 돼지는, 쿵쿵거리는 걸음으로 전투대형을 깨고 혼자서 앞으로 돌출했다. 저를 부르는 다른 헌터들의 만류도 무시하면서.

“170억! 170억! 170억!”

구호처럼 외치는 금액이 마비된 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생전에 비해 초라해진 시체인형의 마력장으로부터 자신감을 얻기도 했을 터. 몸에 두른 중량으로 허덕이는 돼지는, 거친 숨결에 침을 튀겨가며 비뚤어진 에고로 가득 찬 전투함성을 내질렀다.

“와라! 내가 경기도 시흥의 영웅철기 박영웅이다!”

박영웅이라……. 여러모로 이름값을 못하는 놈이로군. 영웅철기는 또 뭐고. 별호 붙이기에 심취한 중국 놈들의 유행이라도 따라가는 건가?

돼지의 힘은 생전의 힘을 내지 못하는 시체인형과 승부를 겨뤄 봐도 좋을 만큼 강했으나, 유연함으로는 고양잇과 맹수를 따라잡지 못했다. 생체기계의 뇌리에 남아있는 풍부한 전투경험은 양자 간의 차이를 더 크게 벌려놓는 요소였다. 마력장과 화력의 우세만 믿고 만만하게 봐도 좋을 상대가 아니라는 뜻.

쾅! 쾅! 쾅! 호랑이의 배후에 내 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겨대던 건방진 돼지새끼는, 방아쇠 당기는 소리에 반응하는 기민한 생체기계를 상대로 단 한 발의 명중탄도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호랑이가 경악한 돼지의 곁을 스치듯 지나가는 순간-

“어……?”

돼지의 살찐 목덜미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예리한 발톱에 긁혀 피부가 날아가고 혈관이 끊어진 탓.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진 돼지는, 대자로 드러누운 채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쌕쌕거렸다.

“내가…… 왜…….”

목에서 핏물이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 간신히 입 밖으로 내놓는 죽어가는 자의 목소리. 아무도 돼지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는다. 제 욕심만 앞세워 대열을 무너뜨린 이기적인 새끼를 도와줄 의리 따윈 없다는 것이겠지. 중요한 건 170억 어림의 현상금과 플러스알파의 부수입이 걸려있는 고가치 표적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영웅……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

이렇게 중얼거리던 돼지는, 뒤늦게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최후의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라고. 참으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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