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호(大虎) (4)
이 세상엔 멍청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거 형씨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요? 밤을 좋아하는 짐승은 어두울 때 신선한 흔적들을 남기는 법인데, 밤낚시 나와서 잠이나 처자는 아재들처럼 그렇게 퍼질러져 있으면 쓰나.”
거머리 무리에서 보낸 메신저가, 함께 걸음한 일련의 무장인원들을 배후에 두고, 나와 내 부하들의 사선(射線) 앞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나직하게 물어오는 말.
“우리는 형씨들만 믿고 여까지 왔수. 우리 쪽 길잡이들이 아무리 봐도 이 방향은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도 말요. 보니까 여기서 뭐 잠을 자려는 것도 아닌 모양인데, 슬슬 무슨 생각인지 알려주셨으면 좋겠구만.”
경태를 비롯한 내 부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군요. 누가 따라와도 좋다고 허락이나 했습니까?”
서류상의 리더로 등록되어있는 부하가 반문하자 거머리들의 전령이 허허 웃는다.
“거 같은 한국인들끼리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맙시다.”
“…….”
“어차피 이제 와서 우리를 떨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서로한테 좋게 좋게 가십시다. 오케이? 오케이!”
뻔뻔함도 이 정도면 대단한 수준이다. 심지어 이게 애써 긴장감을 감추는 와중에 쓰는 억지이니. 내 부하가 반응이 없자, 배 나온 근육질의 전령은 미소 아닌 미소를 머금고서 위협하듯 말을 이었다.
“설마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한국 최고라는 헌터 분들이, 단지 심통이 나서 장사 공치는 셈 치고 우리를 의도적으로 골탕 먹이는 건 아닐 거라고 믿겠수. 만약 형씨들 때문에 우리까지 허탕을 치게 되면…….”
“치게 되면?”
“하하하. 이 바닥 의외로 좁다고만 해둡시다.”
음흉한 웃음으로 말을 얼버무린 전령은, 이후 근 10분여에 걸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실랑이를 벌이듯 이쪽을 탐색하고 돌아갔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세 시간을 넘어서면서 거머리들의 초조함이 임계점을 넘어선 결과였다.
한심하기는.
비록 매복을 하고 있기는 하나, 내겐 호랑이를 반드시 내 손으로 잡아야 할 이유가 없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호랑이의 죽음만 확인하면 그만인 것. 이런 내 속내를 알았다면, 무임승차를 꾀한 거머리들은 기차를 잘못 탔다며 침을 뱉었을 것이었다. 호랑이가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새로 갱신된 정보는 없나?”
내 물음에, 무전기를 짊어진 부하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시 순찰정보 이외에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우리가 엿듣는 건 경찰의 무전이었다. 우리 이외에도 많은 헌터 그룹들이 경찰의 무전망을 엿듣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대책본부의 정보공유를 불신하고 있고, 군의 무전망은 군사규격의 주파수 도약 때문에 도청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경찰의 무전을 엿듣기 쉬운 건 한국과 일본의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양국 모두 지방 경찰의 태반이 도감청에 취약한 아날로그식(VHS-CRS) 무전기를 쓰고 있는 까닭. 일본 수렵당국이 자국의 엽사들에게만 유리한 정보를 몰아주리라 의심하는 외국인들은, 들킬 우려가 희박한 범법행위로 사업의 안정성을 제고하기를 거리끼지 않았다.
‘그 줄무늬 고양이가 누구에게라도 꼬리를 밟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수고와 시간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희망해보지만, 홋카이도의 전례를 보건대 현실이 되기는 어려울 듯한 바람이었다.
상현과 만월 사이에 끼어있던 달은 새벽이 깊어짐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월광이 사라진 산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역시 민간인들이 대피해있는 학교 주변이었다. 야행성 짐승은 본능적으로 밝은 곳을 피할 것이다, 라는 나이브한 믿음에 따라, 학교와 그 바로 옆에 자리잡은 관공서(同庁舎)는 나 같은 각성자가 쳐다보기에도 조금 부담스러울 만큼의 광량(光量)을 장벽처럼 깔아놓은 상태.
이 강렬한 조명엔 물론 짐승을 쫓는 효험이 있겠으나, 강력한 포식자에겐 여기 먹이가 모여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할 것이었다. 이 일대의 주민들을 야간에만 수용하는 학교는, 범접치 못할 빛의 요새라기보다, 어두운 바다에 외따로이 떨어진 한 조각의 섬처럼 보였다. 태풍이라도 불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작고 위태로운 섬.
새벽 4시 13분.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태야.”
“예.”
“전투를 준비해라.”
일출까지 한 시간 반도 남지 않은 이때, 하루 중의 가장 어두운 시간, 폭이 좁은 분지를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강물은 액상으로 흐르는 어둠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랑이는 이 어둠의 순류를 따라 부드러운 잠영(潛泳)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태어나기를 수중생물로 태어난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이 이채롭다. 애초부터 자맥질에 능한 짐승이 마법적으로 강화된 육체를 얻었으니, 격렬한 움직임을 삼간다면 몇 시간이고 수중에 머무르는 일이 가능할 터. 냄새도 뭣도 새어나오지 않을 은밀한 움직임의 극치라 하겠다.
‘결국은 내 예상이 맞았나.’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 잡아먹는 괴물은 빛이 부서지는 물결의 가장자리에서 멈추었다. 나무 그늘 아래의 수면으로 스르르 올라오는 호랑이의 머리. 밝은 곳을 바라보던 맹수는, 이내 귀와 코를 움찔거리며 시선을 돌려 주변에 내린 어둠을 차분하게 뜯어보았다.
그렇게 신중하게 관찰하기를 약 3분여. 호랑이가 드디어 물 밖으로 몸을 빼낸다. 자갈이 많은 천변으로 상륙하여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함. 남는 흔적이라곤 푹 젖은 몸통으로부터 줄줄 흘러내리는 물밖에 없다.
제방을 타고 도로로 오른 짐승이 노변의 전봇대에 몸을 기댄다. 커다란 맹수가 슬그머니 미는 힘만으로도 기우뚱 기울어지는 전신주.
「파직-!」
어둑하던 도로변이 푸르스름한 전광으로 번뜩인다. 전선이 끊어지고 변압기에서 스파크가 튀는 찰나, 멀리 대피소를 둘러싸고 있던 빛의 장막이 새까만 암흑에 삼켜졌다.
대체 저런 걸 어디서 학습한 걸까.
하긴, 극동 러시아의 깡촌들이 이런 지혜를 습득하기 좋은 환경이긴 하지. 드문드문 흩어진 가택들과 허허벌판에 서있는 낡은 전신주들.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벽지. 그곳에서 사람을 사냥하며 몇 번이고 써먹어보았을 노하우가 아닐는지.
사냥꾼들이 걱정하는 국가 단위의 정보독점은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조금 더 어두워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숲의 음영 저편으로부터 들려오는 거머리 무리의 혼란. 허공으로 번져나가던 빛이 일거에 사라지면서 산간의 어둠이 미묘하게 더 짙어진 탓이다. 그러나 삼나무 숲을 뚫고 분지를 감제할 투시력이 없는 버러지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호랑이는 허공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발판이 되어주는 것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순간적으로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형태의 염동력. 코드의 조악함으로 말미암아 순간순간 단발적인 작용으로만 투사가 가능한 투박한 힘을, 동물적인 감각에 힘입어 묘기에 가깝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도구를 가리지 않는 장인의 면모라 해도 좋겠다.
나는 소총을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하루 이틀 달려서 완성했을 솜씨가 아니야.’
순식간에 이쪽의 눈높이를 넘어서까지 솟구치는 기민한 모습은, 마법적으로는 별게 아닐지언정 기술적으로는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동작과 마법을 서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야기를 들은 경태가 끄덕인다.
“비장의 한 수를 감춰둘 만큼의 머리가 있는 놈이군요. 혹시 회로 상에 다른 능력은 없습니까? 발화나 방전 같은.”
“없어. 염동만 주의하면 된다.”
“옙.”
“조심해라. 술식은 조야해도 출력은 덩칫값을 하니까. 염동이 실린 발길질 한 번이면 너조차도 일격에 박살이 나버릴 거다.”
“수연 누님의 염동 체술과 비교하면 얼마나 더 센 겁니까?”
“적어도 열 배 이상.”
“어이구야, 괴물이네. 유념하고 있겠습니다.”
염동력은 마력장을 두른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투사하기가 까다로운 마법이지만, 직접 투사가 아니더라도 실전에서 활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그중 하나가 육체의 운동에 염동을 더하는 응용기술. 상황에 따라서는 공기를 쳐서 일으키는 충격파보다 훨씬 더 실전적인 기교다.
대피소 외곽에선 갑작스런 정전에 놀란 경찰과 능력자와 자경단원들이 저마다 손전등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흔들리는 불빛들이 그들 내면의 불안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나조차도 올려다보아야 할 높이로부터, 줄무늬 진한 포식자는 지그재그로 꺾이는 동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뒤늦게 맹수의 존재감을 느낀 능력자들이 소리를 질러볼 틈조차 없이.
쿠웅-!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낮은 음계의 땅울림. 가장 위협적인 각성능력자부터 짓밟아 터트리며 착지한 호랑이는, 직후 관성을 무시하듯 방향을 꺾어 직선으로 여섯 인간을 찢어발겼다. 최초의 절규는 그다음에야 울려 퍼졌다.
“망령(쁘리즈라크)이다아-!”
경황을 잃은 인간들의 대응은 눈뜨고 봐주기 힘들 만큼 처참했다. 피칠갑을 한 맹수는, 공황에 빠진 인간들 사이를 바람처럼 흘러다니며 죽음을 뿌리고 다녔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매뉴얼은 학살이 중반을 넘어서고서야 간신히 작동했다.
쐐애액-!
연기를 물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발광신호탄 한 줄기. 이는 인근의 모든 엽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빛이다.
신호탄을 발사한 여경은, 호랑이의 앞발질에 몸통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짧은 시간이나마 무전기를 붙잡았다. 과연 긴급한 지원요청이 제대로 닿았을지. 이 틈에 다른 누군가는 비상전원과 연결된 사이렌을 가동시킨다. 공습경보를 연상케 하는 전자음이 분지 전체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 정도면 알리바이는 충분하다. 슬슬 움직여도 괜찮겠지. 나는 부하들에게 턱짓을 해보였다.
“가자.”
거머리들은 벌써부터 정신없이 내달리는 중이다. 호랑이를 찾는 데엔 우리가 필요했어도, 잡는 데엔 자기들 실력만으로 충분하리라 확신하는 것처럼. 이 버러지들의 자신감에서 방어구와 화력, 그리고 황금에 대한 욕심은 각기 얼마씩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는지. 혹여 선수를 빼앗길까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는 꼴들이 우습다.
‘중무장한 인원이 마흔다섯이면 승산이 없지는 않지.’
전술적인 오판을 내리지 않고 시종일관 조직력을 유지할 때의 이야기지만.
나는 바깥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동선을 잡았다. 무식해서 용감한 버러지들이 호랑이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사이, 이쪽은 빠른 기동으로 유리한 방위들을 점할 요량이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전장으로 진입했을 때, 앞서나간 버러지들은 실시간으로 전열붕괴를 겪는 와중이었다. 먼저 호랑이를 맞이했던 경찰과 자경대는 네 발로 기어 숨을 곳을 찾기에 급급했다.
「크허엉-!」
쩌렁쩌렁 울리는 맹수의 포효.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내는 호랑이의 3차원적 입체기동은, 그 동선의 복잡성만으로도 오쿠노시마 붉은 토끼의 압도적인 상위호환이었다. 여기에 고양잇과 맹수의 유연성과 「팔일철기」를 상회하는 가속능력이 더해진 결과, 버러지들의 사격은 도무지 명중탄을 낼 줄을 몰랐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은!”
누군가가 절망적으로 내지르는 소리. 자신들의 대열로 삽시간에 파고든 맹수로 인해, 총을 마구 갈겨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어버린 상황. 사선(射線)의 개념을 이해하는 교활한 산짐승은, 제 움직임을 꺾는 점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선상에 집중시켰다.
그러니 집단의 생존성을 제고하려거든 냉병기로 조직적인 대응을 보여주어야 할 때였으나, 냉정함은 부족하고 욕심은 한가득인 연놈들은 총화기의 위력을 포기하지 못했다.
단 한 발. 단 한 발만 제대로 꽂으면 사냥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러나 맞을 듯 맞을 듯 맞지 않는 탄환들. 야시경을 착용하여 좁아진 시야는 사격의 난잡함을 가중시키는 요소였다.
제각기 엎드리거나 엄폐물을 찾은 채 난사를 멈추지 않는 중무장 용팔이들의 뇌에서, 나는 두려움의 해일 속에서도 환하게 타오르는 욕망의 색채를 엿보았다. ‘한 방’의 가능성에 매몰되어있다는 점에선 도박중독자의 흥분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색채를. 번번이 당기는 방아쇠는 슬롯머신의 레버이고, 저 대신 공격을 받아내는 동료들의 목숨은 레버를 당기는 데 필요한 코인에 불과하다.
대마법사의 전력을 발휘하기 곤란한 지금, 눈먼 탄환이 빗발치는 전장은 함부로 발을 들이기 부담스러운 사냥터였다. 부하들이 죽기라도 하면 손해가 얼마란 말인가.
하여 나는 희극을 보는 마음으로 버러지들의 발버둥을 지켜보았다. 버러지들이 이겨도 좋고, 호랑이가 이겨도 무방한 싸움.
결판이 나기까지는 30초도 걸리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