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호(大虎) (3)
산기슭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무수히 많은 모기들의 습격이었다. 적게는 두 자릿수, 많게는 세 자릿수까지 무리를 지은 모기떼가 피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 도쿄 분지 일대는 연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모기가 번식 가능한 환경이었고, 검은 몸에 하얀 줄무늬가 선명한 숲모기들은 공격성이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해서 염동술식을 운용했다. 편하기는 미세한 발화로 태워버리는 쪽이 편하겠으나, 그렇게 하면 바람을 따라 탄내를 풍기게 되는 까닭이었다.
안력이 탁월한 경태는 허공에서 실시간으로 갈려나가는 모기떼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
“어휴. 모기가 죽는 건 언제 봐도 기분이 좋구만.”
그러고는 덧붙이는 말이 이러했다.
“저희끼리 왔으면 얼마나 귀찮았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각성체가 아니면 기감에 잘 잡히지도 않으니……. 저희들 몫까지 고생하시는 형님께는 송구한 마음뿐이네요.”
신체강화는 각성자의 피부 또한 강화시켜 주지만, 소가죽도 뚫고 피를 빠는 모기들을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부하들이 황열병이나 뎅기열에 걸리는 꼴을 보느니 내가 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편이 나았다.
“고마워할 것 없다. 비전투손실 방지를 위해 불가피한 일인 것을.”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나는 경태의 말을 흘려들으며 후각에 집중했다.
꽃가루가 부옇게 떠다니는 숲엔 보통의 감각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후각적 혼란이 가득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내뿜은 유기성 황 화합물의 냄새들.
내게는 후각강화가 가능해진 이래 죽음이 만연한 현장들을 거치며 익숙해지고, 연구와 학습을 통해 그 상세를 알게 된 냄새들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포유류들은,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피부를 통해 황 화합물의 일종인 디메틸 트리설파이드(Dimethyl trisulfide)와 알릴 메르캅탄(Allyl mercaptan)을 배출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희미한 악취의 핵심. 이 악취는 후각 예민한 동물들이 냄새만으로도 불길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외에도 종마다 서로 다르게 분비하는 위험의 냄새들과 육식동물 특유의 체취 등이 중구난방으로 뒤섞여있다.
‘영역다툼이 일으킨 연쇄작용인가?’
피비린내 짙게 풍기는 진정한 산군(山君)의 출현은 이 지역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자연각성체들의 생존본능과 영역본능을 자극했을 터. 그리하여 그 강력한 것들이 평소보다 예민하고 날카롭게 굴고 있다면, 그 긴장상태가 지역 생태계 전체로 확산되는 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에 인간들의 활동 또한 동물들을 겁먹게 만들기는 매한가지.
두두두두두-
순찰비행을 도는 헬기의 엔진소음이 은은하게 울려온다. 고성능 열상장비와 기관포, 유도 로켓을 장착한 육상자위대 소속 공격헬기(아파치)는, 시가지에 진입하려는 중대형 맹수를 조기에 포착하여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체계였다.
고위험 각성체를 사냥하는 데 이 공격헬기만큼 좋은 수단도 드물다. 10초마다 항공유를 1.5리터씩 처먹고, 유지보수비용은 기름 값이 우스울 만큼 비싸게 먹히며, 유도 로켓이라도 한 발 갈겼다간 그 즉시 4백만 엔이 증발하는 돼지새끼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공격헬기의 정비비용이 작전시간에 비례하여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목표의 위치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무한정 순찰비행을 돌리는 건 허공에 돈을 뿌리는 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데에야 눈에 보이는 만큼의 도움이 되겠지만.
‘그나마 이번은 표적이 호랑이라서 사정이 좀 낫지.’
만약 잡아야 할 게 곰이나 멧돼지 등의 비교적 흔한 동물이었다면 골치 깨나 아팠을 것이다. 헬기의 열상장비로 봐서는 각성체와 평범한 짐승을 구분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저 보이는 족족 폭사시켜버리는 수밖에. 여기엔 당연히 사유림 파괴와 화재발생의 위험이 뒤따르니,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감수해야만 한다.
경태가 묻는다.
“몇 명이나 따라오고 있습니까?”
“마흔다섯.”
“많기도 해라.”
그렇다. 많다. 동선이 겹치는 관계로, 한 번에 몰살시켰다간 수사당국의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만큼. 엽사들의 떼죽음은 그들이 국적을 둔 나라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올 것이다. 수상한 정황이 있다면, 해당 국가는 당연히 외교적인 차원에서 정식으로 수사를 요구하겠지.
그 나라가 한국이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은 따돌리고자 시도는 해보았다. 그러나 염동력만을 활용한 발자국 지우기엔 한계가 뚜렷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부자연스럽게 쓸린 자국이 남으니까.
그렇다고 생명으로 씨앗을 틔워 발자국을 덮기도 곤란하다. 버섯숭배자들을 엿볼 때와 달리, 지금 우리를 따라오는 놈들은 확신을 가진 추적자들이니까. 사라진 흔적을 끈질기게 찾는 과정에서 분명 모종의 위화감을 느낄 테지. 이 위화감은, 새어나가는 경로에 따라서는 대마법사의 존재를 유추할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이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이 바로 이 저질스러운 숲이다.
일본의 삼나무 숲은 그 아래의 식생이 피폐하기로 악명 높다. 북미의 풍요로운 삼림과는 질적으로 다른 환경인 셈. 이 척박한 산지에서,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씨앗들의 마법적인 발아는 그만큼의 위화감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위이잉-
다섯 기의 드론이 우리를 앞질러 수관 위를 날아가며 내는 불협화음.
이 소리만 듣고도 상황을 파악한 경태가 허, 하고 냉소를 흘린다.
“죽여 달라고 비는 건가?”
드론들이 향하는 곳은 우리의 진로에 놓여있는 계곡이었다. 즉 추적자들은 우리가 거기서 물을 밟고 흔적을 지울 경우에 대비해 미리 카메라를 띄워둔 것이다. 삼나무가 솟은 숲에선 드론을 이용한 감시가 어렵지만, 위가 트여있는 계곡에선 사정이 다르니까.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수관에 숨은 드론의 존재는 각성자의 시력으로도 포착하기가 어렵다.
고로 단 한 기라면 모를까, 다섯 기 전부를 격추시켜버리기라도 했다간 이 또한 수상한 위화감을 남기고 만다.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화를 싹틔울 위화감.
……피곤하군.
이렇게 새삼스러운 자각이 몇 번째인지조차 모를 지경이지만, 뭘 할 때마다 원탁의 추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삶이란 심지를 얼마나 깎아먹는 것인지.
계속해서 비강을 간지럽히는 꽃가루들이 짜증의 무게를 더한다.
나는 호랑이를 쫓고 거머리들은 내 흔적을 쫓는 추적은, 사냥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어둠이 드리운 숲을 배경으로 진득하고도 지루하게 이어졌다.
따라오는 거머리들은, 남에게 빌붙어먹으려는 정신 상태와는 별개로 사냥꾼으로서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들이었다. 아니었으면 지나치게 바싹 붙어서 시비가 불가피한 거리에 들어와 버리거나, 반대로 거리가 너무 멀어져 추적에 실패하거나 했을 테지.
이는 남에게 빌붙어본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의미. 즉, 저것들의 실체는 사람을 사냥한 경험도 한두 번이 아닌 인간백정들일 터.
이런 쪽으로 강박증이 있는 입장에선, 쫓아오는 놈들이 아무리 조무래기들이라 할지라도 못내 심기가 불편해지는 상황이라 하겠다.
‘여기에 내 예상까지 빗나간다면 정말로 기분이 더러워지겠어.’
그간 쁘리즈라크가 보여주었던 행적들을 토대로, 나는 이 원한 가득한 식인괴물이 인간들을 의도적으로 농락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자신을 노리는 사냥꾼들에게 지능적으로 엿을 먹이는 경향이 있었다. 다종다양한 트랩들의 작동방식을 고르게 숙지한 머리 좋은 개체가, 어떤 사냥꾼을 조용히 뒤쫓으며 그가 트랩을 설치하는 족족 다 박살내고 다닌 사례마저 있을 정도.
지피지기는 싸움의 기본이다. 극동 러시아의 사냥꾼들이 겪은 낭패들은, 교토로 오는 길에 수집한 자료들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것들이었다. 대중들에겐 그저 비난의 소재에 불과할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내 생각이 옳다면, 일본 수렵당국이 홋카이도에 쳐놓았다 자신했던 차단선은 그저 착각과 자만의 산물에 불과했을 터였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포착한 차단작전의 사각지대를 은밀하게 드나들며, 배설물이나 영역표시 따위를 일부러 제한된 장소에만 남김으로써 사람을 기만하는 정도는 교활한 육식동물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 발자국이야 그 미칠 듯한 체력으로 사방 천지에 도배를 해놓고는 암반과 물줄기, 나뭇가지 등을 밟아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다. 그러고선 점차로 조여드는 포위망을 바깥에서 바라보며 비뚤어진 만족감을 만끽하지 않았을지.
여기엔 성동격서라는 실리도 있었다. 인간들의 대응능력을 한 지역에 집중시킨 연후에, 감시가 허술해진 다른 지역을 급습하는 것.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원령의 첫 번째 행동원리가 인간에 대한 증오라고 가정하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금은 짐승이 인간들의 주의를 다시 한 번 집중시키는 단계일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나는 호랑이의 체취를 직선으로 쫓아가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 그리고 흔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남아있는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공백지로의 전진.
‘내가 놈의 교활함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놈이 이 일대에서 작업을 치고 있으리란 가설이 빗나가면 오늘 내일은 허탕을 쳐버릴 테고, 그땐 수연이 챙겨 보낼 장비들을 수령한 후 기동력을 보강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룻밤에 천이백 킬로미터를 달리는 짐승을 발로 뛰어 추적한다는 건 무리가 많은 일일 테니.
그러나 호랑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냥꾼이다. 내가 놈에게 거는 기대는 종을 초월하는 사냥꾼 공통의 소양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길도 없는 수림을 가로지르며 밤이슬을 맞는 추적행은 교토 외곽으로부터 12킬로미터 떨어진 산등성이로 이어졌다. V자형으로 갈라진 좁은 면적의 침식분지와 대피소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능선. 이 고지에서 지도와 지형을 면밀히 대조해보던 나는, 반쯤 사냥꾼의 감에 의지하여 모험적인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해가 뜰 때까지 매복한다.”
이 능선으로부터 마을 외곽까지의 거리는 채 2백 미터가 못 되었다. 각성한 삼나무들이 나와 내 애들의 존재감을 감춰주는 동시에,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돌입을 가능케 할 좋은 매복지라는 뜻. 지형 굴곡을 따라 남쪽으로 빠지는 바람과 마을 외곽의 물굽이는 각각 냄새와 소리의 유출을 차단해주는 환경적 장막들이었다.
위치를 확인한 경태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녀석이 저 마을을 들이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어쩌면.”
“확률은요?”
“높게 잡아도 절반쯤.”
전성기에도 인구가 1만을 밑돌았을 작은 정(町)의 대피소는 지대가 다소 높게 솟아있는 학교 건물이었다. 쁘리즈라크가 작업을 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역으로부터 미묘하게 벗어나있는 위치. 달리 말해, 그 영역을 조금 더 넓히는 변덕 한 번이면 피바다가 될 장소라는 의미다.
무장한 경찰과 능력자들이 번을 서고 있고, 또 창문마다 철창을 둘러 막아두었기는 하나, 대피소 자체의 방어력은 대단치 않은 수준이었다. 두 개의 계곡을 따라 두 줄기로 갈라지는 분지의 폭은 가장 넓은 곳조차도 2백 미터 미만. 여기에 냄새와 자취를 지우기 좋은 세 갈래의 물길에 이르기까지.
이 정도면 각성체 호랑이가 벼락처럼 학살극을 벌이고 유령처럼 증발할 수 있는 조건이다. 원한을 품은 식인괴물이 유혹을 느낄 법한 사냥터라 하겠다.
‘놈이 인간의 피에 얼마나 목말라있느냐가 관건이겠지.’
만약 내가 녀석이라면, 그리던 그림을 망칠 아주 작은 가능성조차도 감수하지 않을 터. 그러나 놈이 지금까지의 행보를 통해 보여준 순수하고 맹목적인 증오를 볼 때, 손쉬운 사냥의 기회가 눈에 들어온다면 잠깐의 일탈을 통해 피 맛을 보려 들 수도 있을 듯했다.
“반반이라. 애매하네요.”
이렇게 아쉬워하면서도, 경태는 부하들을 부려 신속하게 매복용 진지를 구축했다. 호랑이보다는 사람을 더 경계하는 조치였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한 대비. 상식적으로 빈대 붙은 거머리들이 우리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올 이유는 없겠지만, 인간이 언제나 상식이 통하는 동물이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
불필요한 싸움은 총성과 초연을 퍼트리는 악재다. 거머리들이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저 잡것들과의 신경전을 변명거리로 쓸 수도 있겠군.’
일본 수렵당국이 우리들의 위치정보 기록을 토대로 왜 하필 여기서 시간을 허비했느냐,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식으로 트집을 잡을 수도 있으니.
공문서를 팩스로만 주고받는 시대착오적 행정체계 아래에서, 가뜩이나 업무과다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그렇게까지 면밀하게 상황을 살펴볼까 싶긴 하지만.
바직-
멀찍이에서 들려오는 나뭇가지 밟는 소리. 홀로 나아와 이쪽의 동태를 살피던 거머리들의 정찰병은, 제 실수에 놀라 굳어서는 한참을 그대로 멈춰 있다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움직여 제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경태가 고개를 흔들며 넌더리를 낸다.
“형님, 무시하고 식사나 하시죠.”
“……그러지.”
엽행 중의 식사는 언제나와 같은 에너지 팩이었다. 다른 때와 차이가 있다면 인공적인 향이 일절 들어가 있지 않다는 것뿐.
젤 형태의 열량을 느릿느릿 삼키며, 나는 약자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를 내려다보았다.
교실과 강당을 가득 채운 이재민들은 이 나라의 자랑인 골판지 침대 위에서 추운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일본 정부가 도무지 버릴 줄을 모르는 골판지에 대한 애정은, 이 유사 민주주의 국가의 부패가 마법의 시대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같은 것이었다.
경험 많은 호랑이는 냄새만으로 인간의 강약을 구분할 줄 안다. 남자의 냄새, 여자의 냄새, 어린이의 냄새, 늙은이의 냄새, 살찐 자의 냄새, 마른 자의 냄새, 겁에 질린 자의 냄새, 굶주린 자의 냄새, 병든 자의 냄새, 쇠붙이와 화약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냄새…….
나는 저 학교에 모여 있는 약자들의 체취가 식인괴물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