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호(大虎) (2)
대책본부에 들러 보증금을 납입하고 위치신호 발신기와 탄약을 지급받은 내 일행은, 그로부터 31분이 흐른 시점에서 교토 시가지의 북쪽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헌터들의 임시집결지는 카모가와(鴨川) 부립 공원에, 일본 수렵당국의 차단선 현장지휘소는 교토 산업대학 종합 운동장에 각각 마련되어 있었다. 임시집결지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이번 사냥에 목숨을 걸어보기로 결심한 헌터들의 치열한 이합집산이었다.
“누구 이 하남제일창(河南第一枪) 리추안시안(李传贤)과 손발을 맞춰볼 엽사들 없소? 나의 이 포창(砲枪) 한 발이면 아무리 큰 대호라도 맥을 추지 못할 게요! 나와 내 친구들은 신의가 있기로 이름이 높소!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눠봅시다! 내 이름을 걸고 균등한 배분과 안전한 동행을 약속하오!”
목청 좋은 중국인이 관화(官話)로 떠들어대는 소리. 별호는 하남제일창이지만 막상 들고 있는 무기는 총열이 규격 외로 기다란 주문제작 반자동 라이플이었다.
뭐, 중국어로는 소총을 보창(步枪)이라 부르니 굳이 따지자면 창이라 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 긴 총열에 총검을 꽂았으니 겉보기로도 단창과 닮아있는 모양새이고. 장비를 고를 때 무게보다는 부피에 더 구애받는 각성능력자에겐 그런대로 매력이 있는 무기라 하겠다.
경쟁자들을 맹수 이상으로 경계해야 하는 위험한 사냥에서, 무리의 규모는 곧 생존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곳의 모든 헌터들은 황금에 대한 욕망과 안전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저마다의 타협점을 찾는 중이었다. 서둘러 사냥을 시작하고는 싶지만, 한편으로는 최대한 보험을 들어두고도 싶은 이율배반적인 욕망 사이의 갈등.
이런 상황에서 타협이고 뭐고 곧바로 출발을 준비하는 우리는, 말과 눈치로 생존을 도모하던 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기어코 들러붙는 귀찮은 잡것 하나.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가려 하니, 잡것은 제 일행들과 함께 바쁜 걸음으로 움직여 우리가 갈 길을 가로막았다.
“아씨. 잠깐만요! 당신들 공능법인 「개마」 소속 일본 파견대 맞죠?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우리랑 이야기 좀 하자고요!”
“비켜주시죠. 할 이야기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리더를 맡고 있는 경호실 소속 부하가 냉막하게 대꾸하자, 잡것들의 리더로 추정되는 단발머리 여성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는다.
“아 거 되게 비싸게들 구시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이러기예요? 하여간 한국인들은 이래서 문제야. 도무지 서로 도울 줄을 모른다고. 저 짱깨들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로 나가면 뭉치는 게 기본인데, 우리는 그 반도 따라가지 못하니 경쟁이 될 리가 있나…….”
속사포처럼 구시렁대는 말이 적잖이 짜증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죽이지도 못할 노릇이고, 저쪽은 우리가 상대를 해줄 때까지 길을 막아설 기세인지라, 슬쩍 나를 돌아본 부하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원하는 게 뭡니까?”
“뭐겠어요? 이번 사냥, 같이 좀 뛰어보자는 거지.”
“거절한다면?”
“하아.”
이번엔 여자 쪽에서 한숨을 내쉰다. 목을 뒤로 꺾어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여자는, 이내 뒷덜미를 주무르며 이쪽을 설득하려 들었다.
“들어봐요. 당신들이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현상금 170억짜리 야생 각성체 사냥은 당신들도 이번이 처음일 거 아녜요? 무장공비들 잡을 적에도 지금처럼 경쟁자들이 많았어요? 아니잖아요? 그 경쟁자들이 언제 무장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마당에, 본인들이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돌겠네, 진짜.”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다면 이만 비켜주시죠. 한시가 급합니다.”
“바로 그거예요! 시간을 아껴야 하잖아요!”
마스크를 살짝 내린 여자가 손끝으로 제 코를 두드려 보인다.
“내가 이래봬도 코가 진짜 좋거든요? 아산 생명과학연구원의 각성능력자 후각 테스트에서 참가자 1,892명 중 1위를 한 몸이라 이 말이에요. 그쪽 말로는 내가 개보다도 예민하다고 그러던데, 이 예민한 코가 호랑이를 찾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상상해 보, 보, 엣취-!”
봄철의 일본은 꽃가루의 지옥이었다. 특히나 올해엔 각성체 삼나무들이 말도 안 되는 양의 꽃가루를 내뿜어 국가적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 오죽이나 심했으면 수색에 투입된 군견과 경찰견들이 호흡기 질환과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있을까. 그나마 각성체가 된 수색견들만이 우수한 신체능력으로 견뎌주고 있을 따름.
보란 듯이 킁킁대다가 재채기를 한 여자는, 마스크를 도로 되돌려 놓고선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엣흠. 화, 환경이 다소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제 역할을 해낼 자신이 있다니까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호랑이 부산물의 값이 떨어질 건 그쪽도 이미 알고 있을 거고요. 그 미친 호랑이가 사람만 잡아먹는 게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쁘리즈라크의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건 방사능 오염 축적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야생 멧돼지 고기엔 1kg당 1만 베크렐 내외의 세슘이 축적되어 있었다. 이는 한국의 안전기준을 백 배 가까이 초과하는 수치. 이러한 오염은 일본에서 나오는 고위험 수렵물들이 쓰레기 취급을 받게 만드는 원인이자, 일본 수렵당국의 재정 부담을 심화시키는 환경적 악재이기도 했다.
쁘리즈라크가 열도의 야생동물들을 죽여 배를 채우는 기간이 길어지면, 사냥꾼들은 이 호랑이에 대해 현상금 이외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만다. 중국의 권력자들이 비밀리에 걸어놓은 포상금만 하더라도 호랑이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호랑이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 양도의 대가였으니까.
“어디 그뿐인가요?”
여자가 허리에 손등을 얹는다.
“내 코는 추적자들을 감지하고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난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의 냄새를 기억해뒀거든요. 여기에 전투력이 더해지는 것까지 고려하면 우리를 안 받아줄 이유가 없지 않아요?”
“없습니다.”
“예?”
“할 말 다 하셨으면 이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하게 만든다면 실력행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다소 귀찮긴 했으나, 우리에게로의 합류를 노리는 거머리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으므로, 한 번쯤은 이렇게 확실히 쳐내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긴 했다.
“이ㅆ…….”
더 붙잡을 명분이 없었는지 아랫입술을 깨문 채 물러서는 여자. 잠시 후, 나는 그녀가 우리의 등에 대고 소리치는 저주를 들을 수 있었다.
“진짜 X나게 잘나신 분들이네! 가다가 짱깨들 총 맞고 후회하지나 마라! 너네 죽으면 일본 경찰이 수사라도 해줄 것 같아? 그냥 사고사로 내사종결이라고!”
사고사로 내사종결이라는 말에 경태가 오호, 하고 반응한다.
“의외로 기본은 되어있는 친구 같은데요?”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최소한의 현지조사조차 없이 사업을 벌이는 얼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일본 수사당국에 대한 불신을 입에 담은 저 여자는 적어도 평균 이상은 가는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일본의 치안 지표는 행정적인 분식회계나 다름없지.’
일본이 자랑하는 우수한 치안은 예전부터 이 나라 특유의 음습한 행정이 빚어낸 보기 좋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검찰의 영창 기각률이 채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경찰이 그만큼 확실하게 실적이 되어줄 법한 사건들에 대해서만 영장을 청구한다는 뜻이니까.
애초에 이 나라는 의문사와 자연사를 일선 경관들이 판단하는 나라다. 부검은 어디까지나 담당자가 필요성을 제기할 때에만 이루어질 따름. 고로 목에 피멍이 든 변사체나 뒤통수가 깨진 두개골 따위가 발견되더라도, 신원을 알 수 없으면 그냥 자연사나 사고사로 처리하고 끝내버리는 게 이 나라 치안행정의 실체였다.
그러니 이번 사냥에서 외국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치른다 한들, 그 여파가 민간인들에게 미치거나 외교적인 문제가 되거나 일본인 엽사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거나 하지 않는 이상, 치안당국은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방에 각성수가 산재한 환경에 더하여, 호랑이 사냥이 인간 사냥으로 변질되기 십상인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대책 없이 죽여대도 곤란하겠지만.’
맥박 센서와 연동된 위치신호 발신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명백하게 수상한 정황이 있고 체면상 뭔가 하기는 해야겠다 싶으면, 일본 검경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무기한 구속으로 저들의 체면과 행정적 편의를 도모할 터.
다른 나라들은 구속 후 일정 기간 이내에 재판을 실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은 그런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였다. 명목상으로는 2개월 제한이 있긴 하나, 한 번에 1개월씩 무제한적인 연장이 가능한 것. 검경의 승산이 확실해질 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재판 없이 가둬놓는 짓거리가 합법인 유사 민주주의 국가라 하겠다.
그 유명한 옴 진리교의 교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체포 후 첫 재판을 받기까지, 장장 16년을 구속 상태로 수감되어 있었으니까.
콰아아아-!
멀리서부터 요란한 굉음 하나가 빠르게 접근해온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해당 방위를 확인한 경태가 이채롭다는 듯이 말한다.
“오. 그 유명한 「하늘을 나는 0.1톤」이로군요. 여기서 실물을 보게 될 줄이야.”
「하늘을 나는 0.1톤」은 일본이 자랑하는 정상급 능력자들 가운데 하나의 별명으로, 강력한 「발화」를 구사하는 이중능력 각성자였다.
내가 자료를 통해 접한 바, 이 인간이 일으키는 불은 강력하기만 할 뿐 제어능력이 바닥이라 실전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조금만 크기를 키워도 사용자까지 태워 죽일 불을 어떻게 실전에서 쓰나. 그 단점을 보완해주는 게 바로 주문제작으로 만들어진 보조적인 도구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제작했다는 제트 바이크다. 화염 능력자의 불을 체임버 내에서 터트려 노즐로 분사하는 형식의 날아다니는 탈것. 지난날 경태가 입에 담았던 발상을 고스란히 구현해놓은 이 물건은, 사람 생각이 대부분은 다 거기서 거기임을 보여주는 물증 같은 것이었다.
내게는 잘된 일이다. 웬만하면 시장에서 알아서 기성품이 나와 주는 편이 좋지. 조직 차원에서 저런 물건들의 설계와 제작에 관여하면 불필요한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될 테니까.
임시집결지의 중심에 보란 듯이 착륙한 0.1톤은, 자신을 보고 수군대는 엽사들을 삿대질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 0.1톤 아니라고! 살 뺐다고! 거기 너! 방금 플라잉 돼지라고 지껄인 새끼! 죽고 싶냐?!”
듣는 것만으로도 열등감의 응어리가 느껴지는 날카로운 외침. 체내에 흐르는 원시마법의 흐름을 본 나는, 그것이 수천만 분의 1에 해당할 상위 각성능력자의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눈여겨볼 가치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소리 요란한 제트 바이크가 수시로 사냥터를 들쑤시고 다니면 사냥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탑승자의 한계-중량과 능력-로 속도가 그리 빠르지도 않으니, 대책본부에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바깥쪽에서 포위망을 좁히는 역할이나 맡기겠지.
경태가 빙그레 웃는다.
“저걸 보니 좋네요.”
“왜?”
“슬슬 저희가 능력을 드러내도 될 때가 다가온다는 게 체감이 되어서요.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뭐, 그렇지. 이만 가자.”
상당수 엽사들이 저 0.1톤에게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지금이 사라지기에 좋은 기회다.
우리가 집결지를 이탈하여 산기슭으로 접어들자,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거머리 일부가 나와 내 애들의 흔적을 좇아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보나마나 우리의 명성과 자신감, 빠른 행동 등을 보고 믿는 구석이 있으리라 여기며 쫓아오는 것이겠지.
귀찮은 버러지들 같으니라고.
어쩐지 북미에서 삼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나를 끈질기게 쫓아오던 중무장 심마니들. 그들을 상대로 느끼던 살심이 지금에 와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