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호(大虎) (1)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우리는 일본 경찰에 사전신고를 한 뒤 교토로 이동했다. 타격대만 먼저 움직이고 지원팀과 장비는 나중에 따라오도록 한 긴급한 이동. 교토부에 설치된 재해대책본부 산하 민관합동기동대는 우리의 합류신청을 신청 당일에 받아주었다. 공능법인 「개마」의 이름값이 있다 하더라도, 평시 일본의 느려터진 재래식 행정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일처리라 하겠다. 그래봤자 곧바로 활동이 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내가 일본을 뜨기 전에 일이 터진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러시아가 5억 루블, 일본이 9억 8천만 엔의 현상금을 건 각성체 호랑이는 내 사업의 보안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중대한 위험요소였다.
오코노시마에서 이곳 교토까지는 채 250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바다가 끼어있긴 하나, 지나다니는 중대형선박이 많고 흩어져있는 섬도 많은 내해(內海)는 악명 높은 대호(大虎)에겐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활동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해야겠지.’
근래 원양으로 나가는 배들은 많은 수가 「크립 밸러스트(Creep ballast)」라 부르는 화물을 적재한다.
이 화물의 정체는 한 덩어리의 불사암으로 채워놓은 특수 컨테이너. 질량이 큰 불사암 덩어리의 마력장으로 해양 각성체들을 쫓아보겠다는 창의적인 발상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것이 선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국제적인 합의 하에 간단히 무시되었다.
이러한 배들은 대호에게 은신처이자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었다. 존재감을 숨긴 채 휴식을 취할 그늘로서의 은신처, 그리고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징검다리가. 벌써 세 번이나 바다를 건넌 호랑이 새끼에게 그 정도는 쉬운 일이겠지. 물결을 발로 차서 십 수 미터를 뛰어오르더라는 목격담까지 있는 마당에.
그렇게 되면 당연히 오코노시마의 비밀스러운 작업장도 위험해진다. 호랑이를 쫓는 자들이 꼼꼼한 수색 끝에 인공동굴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일본을 뜨기 전에 현상금 걸린 줄무늬 고양이의 최후를 봐두어야 한다. 내가 죽이든, 다른 누가 죽이든 간에.
교토부 재해대책본부는 옛 어소(御所) 서쪽의 경찰본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일본 특유의 아날로그 행정에 맞춰 서면으로 서류를 제출한 내 일행은, 합류허가와는 별개인 수렵활동 승인 및 탄약불출 승인, 역할 및 임무 배분 등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여야만 했다.
일선 공무원들이 아무리 진땀을 뺀다 해도, 이 섬나라의 경직된 행정체계로는 속도를 내는 데 한계가 뚜렷한 것이었다.
차에 기대어 선 경태가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댄다.
“에이. 그놈의 차단선 하나를 제대로 못 지켜서 이 난리를 치게 만들다니.”
어제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는 호랑이를 차단선 안에 가두었노라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주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달라고. 그랬던 것이 하루 만에 이렇게 되었으니, 계획에 없던 추가노동을 하게 된 입장에선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여기저기 폴리스라인이 쳐진 시가지는 우리처럼 급하게 이동해온 헌터들로 가득했다. 이들 또한 대부분은 장비를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으므로, 지금 당장은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처지들이 아니었다.
경태가 묻는다.
“뭔가 좀 찾으셨습니까?”
“음.”
나는 폴리스라인 안쪽 유혈 낭자한 현장으로부터 염동력으로 긁어모은 터럭 약간을 보여주었다. 후각을 강화한 채로 냄새를 맡아보니 난폭한 산짐승의 체취가 분명하게 남아있다. 풍향에 따라서는 수십 킬로미터 바깥에서부터 대호의 존재를 감지하도록 만들어줄 단서였다.
냄새를 기억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나는 대호의 터럭을 증거품 수집용 비닐에 담아 밀봉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추적을 개시하고 싶은데.’
일본 수렵당국은 야지활동을 하는 헌터들에게 글로벌스타 위성망과 연결된 4세대 위치신호 발신기 휴대를 강제하고 있었다. 총기범죄 예방 및 엽사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면서.
이 장치엔 맥박을 측정하는 팔찌와 연동되어 사용자의 생사를 확인하는 부가기능이 있는데, 이 부가기능은 한편으로는 팔찌와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서 발신기의 실제 휴대여부를 점검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이를 받지 않고 몰래 사냥을 시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호를 쫓는 도중 항공감시에 노출되거나 다른 지상수색조와 마주치거나 할 경우, 발신기가 없는 상태라면 그 즉시 수상한 무장인원으로 낙인 찍혀 새로운 추적대상으로 등록될 터인즉.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조금 돌아서 가는 편이 낫다. 헬기 운용허가까지 얻는다면 도리어 시간을 절약하게 될 테지만, 거기까지 기대하기는 무리겠지. 추가적인 행정 처리에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를 일이니까.
멕시코처럼 기름을 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저건 또 뭐야?”
경태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생체질량이 비인간적으로 큰 남성 하나가 지나가는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따시 캉코꾸노 한타-다께도, 잇쇼니 오사케 노무까?(나 한국의 헌터인데, 같이 술이나 마실까?)”
“すみません. 話しかけないでください.(죄송합니다. 말 걸지 말아주세요.)”
마스크를 쓴 여성이 손을 내저으며 빙 돌아서 발걸음을 재촉하자, 멍하니 있던 ‘캉코꾸노 한타’는 곧 울분이 치미는 낯으로 쾅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굴렀다.
“젠장! 왜 아무도 안 받아주는데! 일본 여자들은 K-헌터에 환장하는 거 아니었냐고! 유튜브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연달아 구르는 발 아래에서 가루가 되도록 부서지는 보도블록. 각성자로서의 힘은 좋으나 인성과 상식은 수준 미달인 부류로 보인다. 유튜브 운운하는 꼴을 보건대, 십중팔구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모니터로만 세상과 소통하던 흔한 사회부적응자의 하나겠지.
어쩌다 저런 놈이 물을 건너왔을까. 한국에서도 나름 사람을 걸러서 보냈을 것인데. 공무원들의 일처리란.
한참을 쾅쾅대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겁먹도록 만들던 중증 비만환자는, 저를 보는 내 시선을 깨닫곤 어깨를 움츠렸다. 이쪽의 마력장을 감지한 것이겠지. 깜박이는 눈으로 나와 내 부하들을 빠르게 훑은 뚱땡이는, 곧 몸을 돌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원망을 입에 담았다.
“왜 저런 씹인싸 새끼들까지 각성자가 되는 거야? 나만, 나만 했으면 좋았잖아. 아니면 나한테도 큰 키랑 잘생긴 얼굴을 주든가. 누구한테는 다 주고, 나한테는 하나도 안 주고. 세상 씨발……. 나도 애미애비를 잘 만났어야 하는데…….”
이를 들은 경태가 동감이라는 듯 깊게 끄덕이며 읊조리는 헛소리.
“음, 나랑 형님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잘생기긴 했지……. 마스크를 써도 가려지지 않는 이 멋짐의 아우라를 어떡하면 좋을까.”
경태의 헛소리를 흘려들으며, 나는 멀어지는 뚱땡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서 뚱땡이가 하는 짓을 보고 있던 꾀죄죄한 몰골의 여자 하나가 머뭇거리며 다가와서는 뚱땡이의 옷소매를 붙잡아 멈춰 세운다.
“あの-(저기-)”
“뭐야?”
“い, 一緒にお酒飲むよ…….(가, 같이 술 마셔요…….)”
이렇게 말을 걸어온 여자를 뜯어보기도 잠시. 확신을 얻은 뚱땡이는 제 소매를 붙잡은 손을 난폭하게 떨쳐내며 악을 썼다.
“씨발, 꺼져! 몸 팔아서 먹고 사는 걸레년이 어디서 감히……!”
뭐가 그리 분한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씨근덕대는 사회 부적응자.
“너도 내가 만만해 보여? 난 창녀는 상대 안 해! 내 처음은 순수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너처럼 더러운 년이랑 떡치려고 일본까지 온 게 아니야!”
한국어로 내지르는 외침이었으되 어조와 행동만으로도 대충 의미가 전해지기엔 충분했다. 각성자의 분노에 겁먹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곁눈질로 한 번씩 쳐다볼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이 나라의 노숙자들은 뚜껑을 덮어놔야 할 오물이고, 보통은 노숙자들 스스로가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태가 묻는다.
“저런 놈을 뭐 그렇게 유심히 보십니까?”
“기억해두었다가 추적 중에 마주치면 죽이려고.”
“아하.”
저런 인성이면 언제든 사고를 쳐서 물의를 빚을 가능성이 있다. 저놈 하나로 인해 현지 언론이 「한국에서 건너온 예비 범죄자들, 이대로 풀어놓아도 괜찮은가?」 따위의 헤드라인을 띄워 혐한 여론을 부추기기라도 하면, 일본에 남아 오코노시마 작업장을 서포트할 지원팀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겠지.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기왕 눈에 들어왔으니…….’
한국의 수렵당국이 최소 한 번은 걸러서 보냈을 헌터들 가운데 저렇게나 몰상식한 인간이 많이 있지는 않을 터. 하니, 저놈 하나만 치워놓아도 한국에서 온 외노자들이 구설수에 오를 확률은 적잖이 낮아질 것이다.
나는 경호실 애들을 데리고 폴리스라인이 쳐진 곳을 찾아다니며 꾸준히 호랑이에 대한 단서들을 수집했다. 파손된 차량, 화단에 남은 발자국, 사람 셋을 앞발질 한 번에 쳐 죽이며 생긴 핏자국 등을 토대로 대략적인 크기와 체중, 강화계수 등을 유추해 보는 과정.
재해대책본부에서 공개한 자료들이 있긴 하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내가 직접 보는 것만큼 정확할 순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빈번하게 다가오는 노숙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죄송합니다만, 돈이나 먹을 것을 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굶고 있습니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진다. 곁에 일가붙이를 달고 있는 아버지의 구걸. 표정엔 고단한 송구함이 가득하다. 이렇게 길거리를 전전하는 인구의 증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사내는 운이 나쁜 각성자였다. 불사암에 걸린 것은 아니지만, 각성 그 자체가 질병이 되어버린 경우. 근골의 강화가 불균형하여 각성자의 힘을 쓰면 뼈가 부러지게 생겼고, 면역체계 또한 불균형하게 강화된 탓에 중증의 아토피 피부염마저 앓고 있다. 얼굴에 흉한 자국이 가득하니 당일치기 일감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초라한 어깨를 가진 가장을 무언으로 무시하고 지나갔다. 동정을 베풀 이유도 없거니와, 이런 건 한 번 내어주면 주변에 있는 모든 노숙자들이 몰려와 귀찮게 굴 터이기에.
열한 번째로 마주친 폴리스라인 앞에 서서, 나는 턱을 매만지며 사냥감에 대해 생각했다.
‘체급도 체급이지만, 강화계수가 굉장히 높아. 신체강화 이외의 원시마법에도 눈을 뜬 듯하고…….’
시베리아 호랑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왜소화가 진행되어 왔다. 원인은 영양부족과 서식지의 축소. 사람에게 쫓기고 곰과의 경쟁에서도 밀리며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 호랑이들은, 전성기의 조상들에 비해 덩치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놈은 아니다. 무게만 놓고 봐도 북미에서 보았던 티-호그에 뒤지지 않을 듯하다. 체중이 1천 파운드가 넘어가는 각성체 호랑이는, 일반적인 사냥꾼들의 기준으로는 괴물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이 녀석에 비하면 인도네시아에서 잡았던 식인 호랑이는 진짜로 고양이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형님.”
경태가 제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승인이 떴습니다. 신호기와 탄약을 불출 받은 후 감독관의 인솔 하에 중간집결지까지 이동하라네요. 그렇게 모여서 통제선 바깥으로 나간 다음엔 독립적인 행동권을 부여하겠답니다.”
“잘됐군.”
독립적인 행동권은 아무에게나 내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잠수정을 기다리며 위장활동으로 꾸준히 실적을 쌓아둔 보람이 있다 하겠다. 명성과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차단선을 구성하는 정적인 역할이나 맡아야 했겠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실력 있는 엽사들에게 자율행동을 허가하는 건 최선과는 거리가 먼 방침이다. 몰이사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면 통합된 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엽사들을 통제하는 편이 이상적일 터.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지.’
사냥꾼들을 움직이는 건 일확천금을 향한 욕망이다. 각성체에 걸린 현상금과 수렵물을 팔아 얻는 부수적인 수입들. 이는 협력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보상이었다.
이러한 사냥꾼들에게 지휘체계로의 종속과 상호간의 협력을 강제하려면 반대급부로서의 보수 지급이 수반되어야 한다. 허나 위험수당을 포함한 각성자들의 인건비는 결코 저렴할 수가 없다. 세수감소와 세출증대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일본 정부로선 부담이 지나친 선택지인 것.
그러므로 일본 수렵당국은 절충안을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활동을 원하는 값싼 인력들만을 강한 통제력 아래에 두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비싼 인력들은 자기 돈을 써가며 자기 목숨을 걸도록 행동의 자유를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헌터들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 자비로 위성통신장비까지 마련하곤 하니, 정부 입장에선 통신망 구축비용까지 절감 가능한 일거양득의 선택지라 하겠다.
이는 여러 나라들이 대동소이하게 도입한 재난대응전략이었다. 현실이 강요하는 정책적 수렴진화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에겐 이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