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16화 (216/561)

#25. 국제협력사업 (5)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주변을 배회하던 토끼의 울음소리가 끊어졌다. 코를 킁킁거리던 경태가 찜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냥을 포기한 것 치고는 냄새가 그대로인데…….”

여기저기 뿌리를 내린 각성수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마력장을 느끼는 감각으로는 토끼 사이즈의 각성체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러나 경태의 말처럼 공기 중엔 희미하게나마 더러운 짐승의 냄새가 떠돌고 있었다.

군데군데 털이 빠져 진물 흐르는 맨살이 드러나고, 남은 털은 검붉게 물든 자그마한 육식괴물. 이 괴물은 불사암 증식으로 울룩불룩해진 피부로부터 시체를 닮은 썩은 내를 풍겼다. 경태 정도의 각성자라면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도 맡을 수 있을 악취를.

붉은 토끼는 지금 수풀이 우거진 길목에 매복해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그리로 지나갈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어느 각성수의 굵직한 뿌리 아래 출구가 여럿인 땅굴을 파놓고는, 길에 면한 출구 안쪽에 웅크린 채로 도약지뢰처럼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달빛을 가리는 그늘 밑의 굴은, 평범한 시력으로는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발견하기 어려울 매복지였다.

땅굴을 집이 아니라 사냥의 도구로 써먹는 포식자의 지능. 제 능력에 적응한 자연각성체의 변화란 이렇게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제 장악력을 큰 폭으로 저해하는 각성수의 마력장 안에서, 느릿느릿 마력을 축적하여 기습을 위해 아껴두는 지혜도 이채롭다. 저 작은 골통을 굴려 이만큼의 손익계산을 해내다니.

이야기를 들은 경태가 허, 하고 감탄한다.

“경찰부터 시작해서 자위대까지 피를 봤다고 들었을 땐 좀 어이가 없었는데, 직접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만약 저게 풍향마저 염두에 둘 만큼 경험을 쌓았으면 저조차도 속여 넘겼겠는데요?”

식인토끼의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방문객 센터 근무자의 죽음이었다. 해당 센터의 폐쇄회로에 근무자를 습격하는 작은 괴물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화된 덕분.

벽과 천장을 발판 삼아 공처럼 튀어 다니는 각성체는 평범한 성인 남성의 힘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재액이었다. 문자 그대로 제 몸을 탄환처럼 사용하는 소형 각성체의 육탄(肉彈) 공격. 심지어 이 각성체는 사냥감의 무릎관절을 꺾고 안구부터 터트리는 교활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앞서 섬 주민 몇 명을 잇달아 실종시키며 쌓았을 사냥꾼의 경험이었을 터.

눈알이 터지고 피를 토할 정도로 두들겨 맞은 근무자는 사무실로 피신하여 농성을 시도했으나, 결국 나무 문짝을 몸통으로 부수고 들어온 괴물에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는 일본 열도를 경악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특종이었다.

당연한 흐름으로 경찰과 자위대가 출동하여 섬을 수색했으나, 능력자들이 각성수들의 존재감 사이에서 헤매는 동안 비각성 경관 및 자위대원들만 습격을 당했을 따름. 그 과정에서 자그마한 식인 괴물은 사람의 턱을 후려쳐 기절시키는 새로운 기교를 습득했다.

보다 능력 있는 엽사들을 고용하여 장기수색을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 없지 않으나, 정부와 관할 지자체는 아직까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뭐, 사정은 짐작이 간다. 당장 쁘리즈라크 상륙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추가예산을 편성해야 하느니 어쩌니 하는 판국에, 겨우 열 명 남짓 거주하는 섬에다 돈을 뿌리긴 싫었을 테지.

턱을 쓰다듬던 경태가 묻는다.

“지금 죽여 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굳이?”

“찜찜하니까요. 저게 지하로 침입해 오기라도 하면 백 상사나 선원들이 다칠 수도 있고요. 설마하니 사람이 당하지야 않겠지만, 추출장비가 고장이 나거나 상품을 담은 용기가 파손되거나 할 가능성은 있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거기까지 무슨 수로 파고든단 말이냐.”

내가 마력으로 파놓은 지중 터널과 선착장, 그리고 추출작업장은 지표로부터 10미터 이상 아래에 위치했다. 여기에 암반이 아닌 벽면은 3미터 두께로 구워서 굳혀놓기까지 했으니, 각성체 토끼의 굴이 아무리 깊어진다 한들 그 벽을 뚫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깊은 굴을 파는 짐승도 아니고.

그러나 경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파고드는 게 아닙니다. 냄새를 맡고 입구를 찾는 거죠.”

“냄새?”

“예. 잠수함 타는 사람들이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다잖습니까. 항해가 끝날 때쯤 되면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심하다고. 크기가 작은 잠수정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겠죠.”

“흠.”

“각성체 토끼의 후각이면 해안 동굴로 새어나오는 체취를 백 퍼센트 잡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 벽을 밟고 좌우로 튀어 다니는 기동성이 더해지면 뭐, 끝나는 거죠. 수직 암반을 타고 오르내리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닐 테고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손을 보태도록 하지.”

“예?”

경태가 당황한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토끼 한 마리인데요? 그냥 굴 입구가 어디어디 있는지만 알려주셔도…….”

“잠수정이 오고 있다.”

그러니 빨리 끝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만에 하나 놓치거나, 작은 괴물이 마음을 바꿔먹기라도 하면 괜한 시간낭비가 더해질 테니.

토끼굴이 각성수의 뿌리 아래에 있었으므로 마법으로 간단히 끝내기는 곤란했다. 큼지막한 각성수의 장악력을 밀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해, 내가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한다 한들, 뿌리에 바짝 붙다시피 도사리고 있는 토끼로선 내 존재감의 변화를 감지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굴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좁아지는 간격에 비례하여 단계적으로 짙어지는 악취.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곁눈으로 지켜보는 시야 속에서, 인육을 갈망하는 생체지뢰는 근육과 신경을 긴장시키며 저에게 가능한 최대속도의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2시와 4시 방향을 경계해라.”

“옙.”

공교롭게도 토끼가 파놓은 굴의 출구는 셋이었다. 교토삼굴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 짐승이 달아날 경우에 대비해 경태로 하여금 여분의 출구를 경계하도록 지시한 나는, 태연한 발걸음을 옮겨 남은 거리를 줄여갔다.

5미터, 4미터, 3미터, 2미터…….

파박!

온 힘을 다해 튀어나오기 무섭게, 도약지뢰의 눈이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다. 갈급한 욕망으로부터 공포로 뒤바뀌는 감정의 색채를. 그러나 너무 늦었다. 내 주먹이 허공을 걷어차며 몸을 비트는 산짐승을 후려쳤다. 펑-! 가죽이 터지는 듯한 타격음이 울리고, 짐승은 허리가 꺾인 채 튕겨지며 오염된 피와 내장 조각들을 토해냈다.

바로 앞에 있는 내 얼굴을 향해서.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을 만큼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치는 힘이 강렬했던 만큼 뿜어지는 기세도 격렬했기에.

“…….”

망할. 생각지도 않게 더러운 꼴을 겪는군. 이번엔 내가 생각이 짧았다. 상대를 쉽게 보아 염동방호를 두르지 않았으니.

피와 내장이 안면과 턱선을 타고 흘러 뚜욱 뚝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내 기분을 한층 더 더럽게 만드는 건 식인 토끼의 피에 녹아있는 다종다양한 유해물질들이었다.

어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먹이사슬 연쇄에 따른 오염축적의 종착지다. 따라서 동족도 잡아먹고 사람도 잡아먹은 토끼의 체내엔 지저에서 유출된 오염물질이 해로운 농도로 축적되어 있었다.

당황하여 손수건을 찾는 경태를 손을 들어 제지하며, 나는 마력으로 청수(淸水)를 그러모아 더럽혀진 얼굴과 옷을 씻어냈다. 내 눈엔 물에 녹아나는 독성물질의 상세가 적나라하게 비쳐졌다.

‘웃기는군. 이러고도 비치사성 가스만 사용했다고.’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자기네가 단 한 번도 대량학살을 목적으로 화학무기를 쓴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살상용 가스는 오직 연구용으로만 생산을 했고, 실전에선 오직 비치사성인 구토 가스만을 사용했노라고.

그러나 구토 가스의 실제 용도는 살상용 가스에 섞어 넣을 첨가물에 지나지 않았다. 구역질을 하느라 호흡기를 막을 틈이 없게끔 만들기 위한 악의적인 첨가물.

아니었다면 미군은 매장이 아닌 소각처리를 고려했겠지. 양이 얼마 안 되니까. 나는 과거의 악의를 시추하여 현재의 이득으로 삼을 수 없었을 것이다.

「끼이이이이-!」

용케 즉사를 면한 식인 토끼가 광견병 말기인 라쿤처럼 버둥거린다. 난잡한 염동력의 파장이 가까운 지면의 흙을 빗자루처럼 쓸어대고, 주변의 대기에선 퍼벅 퍽 소리와 함께 작은 폭죽 터지듯 샛노란 불꽃들이 일어났다.

이는 물리적 충격으로 깊은 손상을 입은 불사암 덩어리들이 거친 마력을 내뿜어 숙주의 회로에 간섭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식인 괴물에게 잠재적으로 배태될 가능성이 있었던 모든 능력들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중인 것.

안정궤도에 오르지 못한 능력들의 폭주는 곧 마력회로의 파열을 의미했다.

「끼륽! 끽! 끼에에엑!」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서서히 균열이 벌어지는 영혼의 회로. 기괴한 형태로 몸을 꺾어대는 토끼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고통 그 자체였다.

경태가 떨떠름하게 묻는다.

“저거 왜 저럽니까?”

“회로가 깨지고 있는 거다.”

“회로가 깨진다고 저럴 수가 있습니까? 보통은 그냥 발광이나 좀 하다가 죽지 않나요?”

“불사암이 변수지.”

덩어리가 커진 불사암은 독립적인 마력회로를 보유한다. 대개는 세포의 형태만큼이나 회로의 형태도 뒤틀려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유의미하게 작동하는 회로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숙주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리고 숙주의 생사와도 무관하게 마법적인 현상을 빚어낼 수 있는 암세포가 되는 것.

잠시 후, 현상금이 걸린 토끼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최후의 숨을 토해냈다. 숙주의 심장이 멎은 후에도, 암세포들은 꿈틀꿈틀 약동하며 시체의 양분을 빨아들여 저가 입은 손상을 복구하려 들었다.

암세포와 각성수 뿌리 사이의 양분 쟁탈전이 토끼의 사체를 실시간으로 분해시키는 모습. 아마 반시간쯤 후면 토끼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있을 것이었다.

“이만 가지. 슬슬 도착할 때가 됐다.”

우리는 북북서의 해변에 대어놓은 보트를 타고 인공 동굴수로로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수면 위로 올라온 잠망경이 보트를 뒤따르듯 물살을 가르며 들어온다.

정위치에 도달한 잠수정은 밸러스트 탱크를 비워 물 위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해치를 열고 나오는 건 선장 역할을 맡은 백영훈 상사. 뒤를 이어 차례차례 밖으로 나오는 선원들에게선 경태가 이야기했던 숙성된 인간의 악취가 듬뿍 묻어났다.

나는 지독한 악취에 개의치 않고 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격려해주었다.

“본격적인 항해를 해보니 어떤가? 자네가 빠져도 남은 녀석들만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 같나?”

질문을 받은 백 상사는 무표정한 얼굴과 기복 없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신뢰성이 높고 조향성도 양호한 배입니다. 같은 항로를 왕복하는 것뿐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애초에 원본부터가 빡대가리 마약쟁이들이라도 조종 가능하도록 설계한 카르텔의 잠수정이었다. 여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개선과 제어계통의 첨단화가 더해졌으므로, 원래부터 해상밀수에 종사하던 부하들은 새로운 탈것에 쉬이 적응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제 백 상사는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새로운 숙련선원들을 길러내는 데 전념할 것이고, 남은 선원들은 이 섬과 헤이군시마(平郡島) 북쪽 버려진 조선소 폐허를 오가며 일본제국의 유산을 실어 나를 계획이었다.

오쿠노시마에서 헤이군시마까지는 편도로 약 53해리(100킬로미터). 잠수정의 느린 속도를 고려하더라도 매주 40톤이 넘는 화학무기가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웬만한 도시 하나쯤은 가볍게 초토화시킬 액상형의 죽음이.

‘일부는 로켓 탄두로 가공해서 흑해자당에게 넘겨야겠지.’

중국 공산당은 흑해자당 토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면, 흑해자당에게도 응당 동일한 무기가 주어져야 할 터.

흑해자당 게릴라들이 설탕 로켓에 달아 날릴 겨자가스 탄두들은, 베이징의 공산귀족들로 하여금 무장반군과의 신사협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도록 강요할 것이었다. 우리 최소한 비인도적 대량살상병기는 사용하지 말기로 하자고. 이는 알 까심의 기술자들을 독가스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예방조치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여기서 할 일은 끝난 셈이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는, 아침이 밝아올 무렵 골치 아픈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쁘리즈라크. 저 멀리 홋카이도에 있다던 미친 호랑이 새끼가 단 하루 만에 1천 2백 킬로미터를 남하하여, 한밤의 교토 시가지를 핏빛으로 관통하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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