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국제협력사업 (4)
다라-아담-켈은 한때 안전지역에 위치한 탈레반의 조병창 역할을 수행했으나, 작금에 이르러 양측의 관계는 굉장히 나빠진 상태였다.
관계악화의 원인은 탈레반의 근거지,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변화였다. 과거의 탈레반은 알라의 이름으로 외세와 싸우느라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가난한 광신도 집단이었지만, 현재의 탈레반은 미군 철수의 빈자리를 두고 IS 잔당과 세력다툼을 벌이는 정치적인 군벌 연합이 되었으니까.
아편 재배로 자금을 조달하여 최고급 장비를 보급하는 군벌들에게, 다라-아담-켈이 생산하는 열화판 복제품들은 더 이상 구매할 가치가 없는 열등재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열등재가 아무렇게나 팔려나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마을과 부족들의 자위력을 강화시키고 있기까지 하니, 어찌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다라-아담-켈은 파키스탄 정부의 규제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적대 사이에 끼어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면서 무기 수요가 늘어 숨통이 트이기는 하였으되, 세계 3대 마약시장의 마지막 하나, 「황금의 초승달 지대」로부터 흘러나오는 자금을 쭉쭉 빨아들이던 과거에 비하면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인 정도에 불과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늙은 공장장은 내가 제시한 투자금을 아주 달게 받아들였다.
「알-함두 일라하(الحمد لله)!」
기독교의 할렐루야에 대응하는 이슬람의 관용어구. 아부 알 까심은 신을 찬미하며 흡족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내렸다.
「알 바시르, 그대의 말처럼 그대의 돈이 그대의 진심을 보여주는구려. 그 정도 자금이라면 나머지 공장들도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게요.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위구르 인들에 관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 한, 그대는 우리와 거래하는 유일한 해운업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지. 부족의 명예를 걸고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바요.」
공장 하나당 천만 달러. 그리고 아부 알 까심 개인에게 다시 천만 달러. 합계 6천만 달러의 현찰은 다섯 공장의 톱니바퀴를 돌리고도 넉넉하게 남을 양의 윤활유였다.
아부 알 까심은 추가협상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판이 엎어질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투자금의 10%는 3주 이내에 선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머지 90%는 기술자들이 흑해자당에 합류한 이후 경과를 지켜보며 분할 지급하는 것으로 합시다. 당신의 땅에 머무르는 내 부하들이 보증인이 되어줄 겁니다.”
「최종 지급기한은?」
“올해를 넘어가선 안 되겠지요.”
「좋소. 그대의 사람들은 부족 전체의 손님으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을 거요.」
여기서 말하는 보증인은 사실상의 인질이었다. 그동안 부하들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은 바, 모니터 속의 늙은이는 그들에게 인질로서의 가치가 충분함을 진즉에 깨달았을 터였다. 애초에 오대양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해상밀수의 실무진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재들이 아니다.
“이 투자의 대가에 기술이전과 교육비용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이오.」
“그럼 기술자들의 규모와 기술이전 항목들을 확정해보도록 하지요.”
내륙에 웅거한 흑해자당과 마오공의 연합세력이 외부로부터의 공급만으로 필요한 무장을 다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체적인 생산능력을 보유해야 마땅하다. 동네 대장간에서 대전차포를 찍어내는 파슈툰족 장인들은 이상적인 교육자가 되어줄 수 있었다.
기술이전 항목에 관한 합의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철저하게 실전성만을 추구하는 요구를 들은 공장장은 흠, 하며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그대가 이번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군.」
“생산과 보급체계는 단순할수록 좋은 거지요.”
「알겠소. 그 정도라면 1년 내로 쓸 만한 수습장인들을 양성하고 자생적인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겠지. 교육생들의 자질과 열의에 따라, 그리고 현지의 작업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내가 요구한 것은 개인화기 2종, 대전차화기와 대공화기 각 1종, 그리고 수류탄과 지뢰를 포함하는 폭발물 약간의 제조기술뿐이었다.
‘이 이상은 쓸데없는 욕심이지.’
게릴라의 무기는 일정 성능 이상으로 값싸게 많이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최고다.
「기술자들은 이번 달 안으로 준비하겠소.」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대가 치른 값에 부끄러울 일은 없을 게요. 오히려 너무 많을 것 같아 걱정이라오. 우리 공장에서만 벌써 오십 인의 장인들이 대기 중이니, 도시 전체에서 지원자를 모집할 경우 도제를 제외한 기술자로만 거뜬히 기백을 헤아리지 않을까 싶소.」
그 정도면 확실히 모자라진 않겠군.
「이쪽으로 시신을 인도할 때 솜씨를 보았고, 라왈이 겪은 바도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군. 이들이 무사히 흑해자당에게 합류하리라 믿어도 좋겠소? 성전에 자원할 만큼 신실한 신앙인들이 싸워보기도 전에 무더기로 죽어나간다면 그만큼 참혹한 비극이 다시없을 것이오.」
“염려 놓으십시오. 내가 직접 현장에서 지휘를 할 생각이니.”
「몸소 움직이시겠다? 이번 일에 당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거요?」
“굳이 말하자면 그런 셈입니다. 장인들에게 손을 대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먼저 나부터 처리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허……. 각오가 대단하시군. 당신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바요.」
그렇잖아도 공적을 편하게 받아먹는데 재미가 들린 가오슈센이 가끔 한 번씩 와서 흑해자당 토벌을 도와달라고 보채던 참이었다. 그러니 못 이기는 척 부탁에 응하여, 미주 아래에 있는 병단을 움직여 연막을 치고 그 기회에 기술자들을 밀어 넣으면 충분할 것이다. 가오슈센과 경독 3인방 몫의 공적, 내가 투자한 사영병단의 실적과 입지, 그리고 기술자들의 안전한 도착과 그 이후의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 정도면 대마법사의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아깝지 않을 일감이겠지. 공산귀족의 개인적인 보답 또한 쏠쏠할 것이다.
노인과의 대화 말미에, 나는 내게로 올 성전 연합 관전무관의 정보를 물었다. 뭔가 아는 바가 있다면 말해달라고.
「나도 자세한 신상내역은 알지 못하오. 다만 이름과 능력 정도를 간략히 전해 들었을 따름이지.」
“그거라도 좋습니다. 아예 모르고 맞이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알 까심의 늙은 주인은 뜸을 들인 끝에 관전무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의 이름은 마무르 만수로비치 바바예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성전사로서, 성전 연합의 동북아지부를 무에서부터 만들어내다시피 한 인물이라 하더이다. 알라의 축복을 받은 언어의 천재라던가.」
“언어의 천재?”
「그렇소. 푸스하와 다섯 암미야 외에도 7개 국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는 자라더군. 그들의 자존심이 자존심인 만큼 과장이 없지야 않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범상한 위인은 아닐 듯하오.」
푸스하와 다섯 암미야는 표준 아랍어와 다섯 방언을 의미한다. 그것만으로도 사실상의 6개 국어인데, 여기에 7개 국어를 추가로 구사한다니.
너무 똑똑한 놈이 와도 곤란한데 말이지…….
나는 유대감 형성 외에 아무 쓸모도 없는 대화를 조금 더 이어간 끝에 아부 알 까심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일본엔 「냄새 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臭いものには蓋をする).」는 속담이 있다. 뭔가 문제가 있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덮어두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 세계인들이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의 뒤처리를 통해 목격한 일본 특유의 집단정서이기도 하다.
밀수잠수정 초도함의 목적지인 오쿠노시마는 일본 정부가 뚜껑을 덮어놓은 ‘냄새 나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 섬을 그저 관광지인 줄로만 안다. 평화롭게 풀을 뜯는 수많은 토끼들. 그리고 관광 코스로 개발된 옛 화학무기 제조공장의 흔적들. 이 섬의 방문객들은 이 섬의 어두운 역사가 그저 지나간 과거라고만 여기게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론 그렇지가 않았다.
한때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군사기지였던 이 섬의 지저엔 엄청난 양의 액화 독가스가 매장되어 있었다. 일제가 제조하고 연합군이 묻어놓은 것.
미군과 함께 이 섬을 점령했던 호주군은 전후 이 섬에 쌓여있는 모든 화학무기를 소각처리하자고 제안했다. 다 태워버리지 않고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 그러나 종전 직후부터 예산감축의 압박을 받고 있던 미군과 군정당국은, 시설 구축에 들어갈 돈과 연료비가 아깝다며 매장처리로 방침을 선회했다.
그러고도 남은 소량은 일본 정부가 바다에 던져버린 것으로 안다. 이 역시 예산을 아끼기 위함이었을 터.
그깟 비용이 얼마나 든다고.
어쨌든, 그 결과로서, 일제가 이 섬에 비축해두었던 화학무기들은 태반이 생산지의 지표 아래 파묻힌 채 오늘날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관광객들은 대도시 수십 개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독극물 위에서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캠핑을 하며 해변의 산책길을 거닐었던 것이다.
‘내게는 고마운 일이지.’
덕분에 내가 이렇게 득을 보게 되었으니.
화학무기의 매장지는 극비에 부쳐졌다. 11개소로 나누어 비밀스럽게 매장한 뒤 위치정보를 폐기한 것. 그러나 그런 조치는 황금기의 눈이 제공하는 시력 앞에선 의미가 없었다. 나는 11개 매장지들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했고, 액상으로 저장된 과거의 악의를 현재로 추출해낼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잠수정 초도함의 행선지를 이 섬으로 결정하게 된 경위였다.
잠수정이 들어올 물길은 해변의 암반을 깊숙이 파고드는 동혈(洞穴)이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마법으로 뚫어놓은 인공적인 통로. 입구를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내어, 지나가는 배들이 보더라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게끔 조치했다. 음파와 공명을 이용한 파쇄는 굴착에 쓰기에도 좋은 기술이었다. 염동력보다 조용하고, 정교하며, 깔끔하기까지 한.
“형님께서 이렇게 하나하나 준비를 갖춰 가시는 걸 보면, 꼭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 모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말입니다.”
지대가 높은 옛 포대의 유적 위에 나란히 서서, 함께 잠수정을 기다리던 경태의 말. 나는 시선을 기울였다.
“타노스? 인피니티 스톤?”
“아, 모르시겠구나. 그게 뭐냐면 말입니다-”
경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락영화의 우주적 악당에 대해 떠들어댔다. 인이어 리시버에 후방지원을 맡은 수연의 한숨 소리가 흐른다. 이쪽에 줄곧 귀를 열어두고 있었던 모양.
나는 경태가 하는 말들을 흘려들으며 섬의 전경을 슥 돌아보았다.
바다를 향해 뿔처럼 돌출된 북서쪽 모서리엔 속이 꽉 찬 검은 비닐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저게 그 후쿠시마 오염토인가 하겠으나, 실제로는 화학무기에 오염된 토양을 긁어서 보관해놓은 것이었다.
지저 깊은 곳으로부터 꾸준히 새어나오는 유독성 물질들은 이 섬의 주민들 대부분이 고향을 등지도록 만든 원인이었다.
그나마 온천과 숙박업소 등을 운영하며 버티던 이들도 지금은 사업장을 포기하고 피난을 떠난 상태였는데, 그 원인은-
「삐이이이-」
높고 날카로운 토끼 울음소리. 평범한 개체가 낼 법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경태가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저 녀석, 계속해서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맴도는 게 맞다.”
내 확언에 경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쪽의 마력장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 테고, 설마 배가 고파서 돌아버렸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토끼는 고기 맛을 아는 잡식동물이다. 다른 동족의 새끼를 잡아먹음으로써 제 새끼의 경쟁자를 제거하기도 하고, 스캐빈저로서 야생에 방치된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기도 하니까.
이 같은 육식성에 암세포를 품은 각성체(옴니페이거)의 허기와 난폭함이 더해진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붉은 토끼」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명을 지닌 식인 토끼 한 마리였다.
관할 지자체는 돈을 들여 헌터를 고용하기보다 그냥 토끼가 병사할 때까지 섬을 비우고 기다리는 편이 더 경제적이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번 기회에 수익성이 바닥을 친 관광지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거나. 바닷길을 통하지 않으면 올 수도 없는 외진 섬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시대에 좋은 관광지가 되기 어려웠다.
내 입장에선 소소한 행운이라고 해야겠지. 버려진 섬에서 더욱 편하게 사전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