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14화 (214/561)

#25. 국제협력사업 (3)

“부하에게 듣자니 꼭 화상통화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요청하셨다던데, 어차피 이름도 가명을 쓰는 마당에 굳이 얼굴을 보고 대화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최초의 계획은 협상을 부하들에게 일임하는 것이었다. 가진 패가 충분하니 그렇게 해도 손해를 볼 일은 없으리라고. 내 물음에 늙은 파슈툰 인이 점잖게 웃는다.

「이름은 감출 수 있소. 얼굴과 목소리도 바꿀 수 있지. 그러나 눈은 아니오. 사람의 눈은 곧 마음의 창이니, 나는 화면 너머로나마 당신의 창을 들여다보며 보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뿐이외다.」

“그렇군요.”

구태의연한 지혜를 믿는 늙은이의 고집인가.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뒤늦은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소.」

“무엇에 대한 감사와 사과입니까?”

「우리 부족의 아이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준 데에 대한 감사이고, 긴 시간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든 것에 대한 사과이올시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왜 연락이 늦어졌는지 이유를 알려주시면 더욱 고마울 것 같습니다. 제게 그 정도는 들을 자격이 있지 않을는지요?”

「허허. 성미가 급하시구려.」

“저는 다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따름입니다.”

「기회, 기회라……. 그렇지. 알라께선 아무 때나 기회를 내려주시는 게 아니니.」

천천히 수염을 쓸어내리던 아부 알 까심이 진중한 어조로 사정을 털어놓았다.

「로야 지르가가 끝나고서도 그대에게 바로 연락을 주지 못한 것은, 또 다른 신앙의 형제들이 성전에 일조할 의사를 전해왔던 까닭이오. 그것이 너무 갑작스러웠기도 하거니와, 진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함부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지. 그대의 말처럼 이대로 가다간 신께서 내려주신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또 한 번의 로야 지르가를 열었을 게요.」

“또 다른 신앙의 형제들?”

「그렇소. 「이티하드 알-지하드 알-이슬라미(اتحاد الجهاد الإسلامي)」의 전사들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티하드 알-지하드 알-이슬라미」는 해석하면 「이슬람 성전 연합」이라는 뜻. 이는 무기상으로서의 내가 이름을 들어본 집단이었다. 분명 중앙아시아 일대에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는 2선급의 테러 단체였을 것인데.

“대체 어쩌다 그들에게까지 이야기가 새게 된 겁니까? 그들의 활동영역은 당신들과 겹치지도 않고, 그들이 노리는 표적은 유럽 쪽에 집중되어 있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함께할 사업의 보안성이 우려되는군요.”

파키스탄 내에도 이슬람 성전 연합의 추종자들이 있기는 하나, 파슈툰 족의 폐쇄성을 뚫을 정도는 아닐 터였다. 내 우려 제기를 들은 공장장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합당한 말씀이오. 당연히 그러실 테지.」

“어떻게 된 겁니까?”

「육로를 확보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이다.」

“육로라면, 중국으로 가는 길 말입니까?”

「맞소. 우리의 땅으로부터 중국으로 이어지는 계곡, 와칸 회랑의 일부는 그들의 영역에 들어있지. 그대의 부하들에게서 그대의 구상을 전해 듣긴 했소이다마는……. 성전의 보급로를 상인의 바닷길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는 게 로야 지르가에 참석한 부족대표들의 판단이었다오.」

“…….”

「그대는 불신자이자 암상인이요, 알 바시르. 그런 그대가 위구르의 형제자매들을 돕겠다며 다섯 공장을 움직일 자금을 대겠다고 나서니, 우리로선 그대의 속내에 다른 계산이 존재하리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소이다. 흑해자당이 제아무리 매력적인 구매자라 할지라도, 알라를 믿지 않는 상인이 성전을 위하여 제 이윤을 깎아내리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즉 그대는 필시 중국의 위기로부터 이득을 얻는 자일 것이오. 어쩌면 암중에서 활동하는 서방 국가의 대리인일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말하고서, 알 까심의 공장장은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겠다는 양. 나이를 헛먹지 않은 늙은이의 예리하고도 건조한 시선 앞에서, 나는 부분적인 진실을 인정했다.

“빨갱이들의 위기가 곧 내 이익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으로 당신네 무슬림들의 신용을 사고 싶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신용을? 어째서?」

“그것이 내게는 사람과 상품의 판로가 되어줄 테니까요.”

「사람과 상품의 판로인가…….」

“지금은 유례가 없는 변혁의 시대이고, 나는 무기를 파는 상인입니다. 당신들이 가는 곳엔 새로운 시대의 성전들이 있을 것이며, 성전이 있는 곳엔 당연히 무기에 대한 수요와 부수적인 이익들도 있겠지요. 더욱이 다라-아담-켈은 경쟁력 있는 상품 생산자이기까지 합니다. 나는 새로운 시장과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하여 아주 많은 투자를 할 의향이 있습니다.”

「흐음, 과연. 우리의 유통까지 맡겨 달라는 말씀이신가.」

“그래서 어떻습니까? 나를 믿기가 어렵습니까?”

내 물음에 노인은 시선을 누그러뜨리며 도구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오, 아니오. 그대는 이미 우리의 친구요. 고로 그대가 무어라 하였든 나와 우리 공장은 당신에게 한 번의 믿음을 허락해주었을 것이오. 기술자들의 유해가 고향 땅에 묻히도록 해준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은즉. 다만-」

“다만?”

「우리 부족 이외의 다른 동포들까지 설득하긴 어려웠겠지.」

교활한 노인네 같으니. 결국 본인도 그 핑계를 대고 이리저리 발을 뺄 작정이었을 것이다. 말로는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

「요컨대 그대는 진심으로 우리의 우정을 구한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내 초기투자는 그 자체로 담보가 되기에 충분한 수준일 겁니다.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기엔 지나치게 큰 금액일 테니까.”

가만히 수염을 쓸던 노인이 눈을 반개했다.

「구상을 들어볼 수 있겠소?」

“무슨 구상을 말씀하시는지.”

「라왈이 그대 아래 위구르 형제들의 말을 전하기를, 그대가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성전을 약속했다 하더이다. 분명 ‘백만이 넘는 불신자들을 공포에 떨도록 만들 일’을 꾸미고 있노라 하였지. 이 늙은이는 그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오.」

나는 눈을 찌푸렸다.

“당신 같으면 그런 비밀스러운 계획을 함부로 공유하겠습니까? 당신은 내 행동과 그 결과로써 내 진심을 알게 될 겁니다. 지금으로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싶습니다만.”

「신뢰는 쌍방으로 주고받아야 굳어지는 것이잖소. 계획의 상세를 다 알려달라는 게 아니오. 난 그저 그대가 약속한 영광이 참된 영광일지, 위구르 형제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알고자 할 따름이니. 계획의 대략적인 방향성만 귀띔해주어도 충분하오.」

“방향성이라 하심은?”

「말 그대로요. 나는 성전사를 자처하는 무슬림들의 투쟁이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고 믿소.」

“그것이 그릇된 일이기 때문에?”

「그럴 리가.」

노인이 껄껄대며 웃는다.

「전사가 아닌 자들을 죽이는 게 명예롭지 못한 일이긴 하지. 비겁한 짓이기도 하고. 허나 이교도와 무신론자들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자들인데, 어차피 가게 될 곳으로 조금 더 빠르게 보내주는 일이 무에 그리 큰 죄가 되겠소이까. 나는 단지 보다 가치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믿을 뿐이외다.」

“…….”

「무력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건 결코 효과적인 투쟁 전략일 수가 없소. 불신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 무슬림들에 대한 시각을 악화시키는 것이 문제요. 서구의 양지에서 활동하는 무고한 형제자매들에겐 더욱 무거운 차별과 억압의 족쇄를, 올바른 신앙을 지키는 나라들에겐 외교적인 부담을 더해주는 꼴인 것을. 성전이라는 게 매번 그런 식이어서야 끝없는 투쟁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나름 사업을 하는 인간답게 사고방식이 꼴통과 거리가 멀다.

「위구르 형제들의 처지는 특히 더 그러하오. 그들이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교적인 지지가 절실하지. 그런 그들의 대외적인 명예를 똥통에 처박는 건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오. 그들은 전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해야 마땅하외다.」

이 영감이 의외로 성전에 진심일지도 모르겠군. 하기야, 종교의 힘이 강해지는 시대이니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지…….

비록 5,500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화면 저편의 생체신호를 읽을 순 없었지만, 노인의 안색을 살피던 나는 이 인간이 어느 정도 진심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지금과 같은 소리를 늘어놓음으로써 딱히 얻을 만한 이익이 없었기 때문.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니 말입니다.”

「그렇소이까?」

“예. 전사는 전사를 상대로 싸워야지요. 나는 위구르인들에게 전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승리를 선물할 겁니다.”

전사의 명예는 파슈툰 율법(파슈툰왈리)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다.

「어떻게 말이오?」

“중국의 군사력을 공격하고 중국의 명예를 똥통에 처박음으로써.”

「설마 군대의 주둔지를 타격하겠다는 거요?」

“이 이상 구체적인 계획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당신은 내 진심을 행동과 결과로 알게 될 겁니다. 우리의 국제적인 협력은 그 이후로도 이어져야 할 테고요.”

군사기지를 치는 게 중국 군대를 공격할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내 목표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거대한 봉화가 피어오르는 날, 나와 내가 후원하는 위구르인들은 이슬람 세계 전반에 걸쳐 불가침의 명성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 명성은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을 움직일 지렛대가 되어주겠지. 일부는 부추기고, 일부는 끌어들이고. 런던은 언제나 지하디스트들의 표적이었던 도시다. 런던의 불길에 자발적으로 뛰어들 수많은 부나방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포만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 내가 밀어주는 경독들에겐 미리 정보를 제공해줄 것이다. “베이징에서 위구르인들의 테러가 예상된다. 주동자의 이름은 알림 샤히디다.”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두루뭉술한 첩보에 불과할지라도, 거사 직후 샤히디 그룹의 성명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하면 세 경독들은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되겠지.

그 3인방이 경감으로 승진하여 핵심적인 요직들을 차지하고 나면, 나는 비로소 저 원탁에 뒤지지 않는 정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게 의존도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3인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낌없이 국가기밀들을 팔아넘길 터.

여러 수의 이득을 보장하는 단 한 수.

내게는 그 한 수가 바로 베이징 테러였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내가 그 「성전 연합」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까?”

내 물음에 노인이 진중한 어조로 답한다.

「그들은 이미 「정의와 복수(نياو او بدل)」를 함께 이룰 것을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소. 따라서 그들의 신용은 다라-아담-켈, 나아가 파슈툰 전체가 함께 보증하는 바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유감스럽지만 우리의 성전에서 그대의 역할은 없을 것이오. 당신이 보여준 우정의 대가는 다른 방법으로 정산해야 할 테지.」

“…….”

일방적인 선언이 조금 불쾌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 영감이 파슈툰 율법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정의와 복수」를 입에 담은 이상, 영감의 말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파슈툰 전체의 합의라고 보아야 옳았다. 그 진위는, 나와 영감의 협력이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 향후 5대 공장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하는 게 가능할 터. 어설픈 거짓으로 나를 속일 때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믿어 봐도 좋을 것이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벤데타」 이상으로 집요하고 지독한 것이 파슈툰 사람들의 「바달(بدل/복수)」이니, 중앙아시아 지역에 뿌리를 뻗고 있는 성전 연합으로선 쉽게 배신을 하기가 어렵겠지.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에야.’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건 넘어가도록 하지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받아들여야 할 조건이 하나 더 있소이다.」

“……이번엔 뭡니까?”

「성전 연합의 성전사들 가운데 동북아에서 활동하는 하부조직이 있다 하오. 정보 수집과 자금 마련, 지원자 모집 등을 담당하는 자들이지. 그들 가운데 하나를 연락 담당자로 받아주셨으면 하오.」

“연락 담당자, 라……, 내 곁에 감시자를 둘 셈입니까?”

「감시자보다는 관전무관에 가까울 거요. 향후 우리의 사업이 궤도에 오르거든, 이쪽에 대한 연락은 그에게 맡겨주시길 바라오.」

톡, 톡, 톡. 손끝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있기를 잠시. 나는 신뢰가 더 깊어진 다음에 꺼낼 예정이었던 ‘보험’ 이야기를 조금 앞당겨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내 쪽에서도 하나 사업에 관한 제안을 드리도록 하지요.”

「어떤 제안이오?」

“당신네 기술자들을 위한 긴급탈출계획입니다.”

「허어.」

노인이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렇잖아도 나 또한 생각은 하고 있던 참이었소.」

당연히 그렇겠지.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했다면 내 진의가 어디에 있을지도 알아차렸을 것이고.

역시나, 나를 응시하는 노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진다.

「신성모독을 일삼는 유물론자들의 죽음은 편을 가리지 않고 많으면 많을수록 유익한 것이지. 우리는 좋은 가격에 합의를 볼 수 있을 것 같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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