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국제협력사업 (1)
수연은 언제나 나의 장자방이었다.
“우리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민간인들을 죽여야 합니다.”
두어 달 전의 내부 전략회의에서 녀석은 이렇게 서두를 떼었다.
“원탁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싸움은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찾아내기부터가 위험하고, 죽이기는 그 이상으로 위험하지요. 그러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헌터들은 다릅니다. 그 민간인들은 눈에 잘 띄는 표적들이며, 원탁의 가병(家兵)들에 비해 죽이기도 쉽습니다.”
세계 고위험수렵 인력시장에서 영국 출신 헌터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국의 인구와 국토환경을 고려할 때 비정상적으로 높은 축에 들었다. 그 많은 자연각성능력자들의 탄생배경엔 분명 드러나지 않는 원탁의 조력이 있었을 터. 영국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원탁이 운신할 폭도 넓어진다.
“국제시장에서 인정받는 헌터들은 능력자로서의 자질이 평균 이상은 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질적으로 우수한 헌터들은 보다 열등한 것들의 물량으로 대체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자원이지요.”
거대한 자연각성체들이 분포하는 환경에서, 수준미달의 마소 장악력을 보유한 능력자들은 가진 바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꼭 그런 환경적인 요소가 아니더라도, 각성능력의 격차에 따른 전투능력 및 생존능력의 격차는 머릿수로 극복하지 못할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장갑차가 아무리 많다 한들 전차 한 대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그런 그들을 잡아 죽임으로써, 우리는 원탁의 기회비용을 간접적으로 증발시킬 수 있습니다. 사냥개들을 다른 용처에 배치하도록 강제하거나, 마스터들의 인시(人時)를 낭비하도록 만들거나……. 그들은 가진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많은 자들이니까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수연은 담담한 어조로 바다를 입에 담았다.
“그런 의미에서 해난사고는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바이어던」이나 「와다츠미키요우타마히코(海神凶玉彦)」같은 해양 각성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만큼, 특정 국적의 헌터들을 집단으로 몰살시키고 나서도 여간해선 인위적인 사고라는 의심을 받을 일이 없겠지요. 비대칭전력으로서 형님의 강점을 살리기에도 적합합니다.”
그렇게 죽이고 또 죽이다 보면 심증과 스트레스가 쌓인 원탁이 손을 쓰기 시작하겠지. 허나 그래봐야 한계는 명백하다. 바다는 지나치게 넓고, 그 넓은 싸움터에서 환경적 우위를 누리는 나에겐 좋은 사냥의 기회가 늘어나는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라는 게 수연이 상신한 바의 핵심이었다.
이 적절한 조언을 유념해두었던 덕분에, 나는 모처럼 눈에 들어온 기회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쿠궁-! 끼우우웅-」
파도 아래에 울려 퍼지는 금속성의 불협화음. 이는 가라앉는 배가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수밀격벽이 터지는 저음과 선체가 찢어지는 고음의 부조화가 지금의 내게는 듣기 좋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았다.
‘이것도 슬슬 손에 익는군.’
수중에 머무는 나의 새로운 무기는 진동이었다. 물에 대한 지배력으로 빚어내는 초지향성 음파. 강철 선체의 고유진동수에 주파수를 맞춘 음파는 기계적 공명(Mechanical resonance)을 통해 대형 참사를 빚어냈다. 이는 사람의 목소리로 유리잔을 깨는 것과 동일한 원리였다.
「황금기의 눈」은 어떤 물질이든 보는 것만으로 고유진동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영국 놈들이 앞다퉈 바다로 뛰어내린다. 낙하의 관성으로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입수하는 사냥감들.
“……!”
개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곤 두 눈을 크게 뜬다. 나는 이 관찰력 좋은 인간을 향해 진동을 쏴주었다. 수중에서의 음속은 공기 중의 4배 이상. 초속 1,500미터로 쏘아진 진동에 직격당한 영국산 각성능력자는 붉게 피는 꽃처럼 화려하게 폭발했다. 뭉글뭉글 번지는 핏물 아래로 인간의 파편들이 침강한다.
우웅-!
마력을 방출하자 파르르 이지러지는 통상시야. 진동을 발할 때마다 퍽퍽 터져나가는 몸뚱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지는 광경이었다. 각성능력자만 죽일 경우 수상한 정황이 남기에, 내 마법은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가리지 않고 휩쓸었다.
선형으로 집중된 음파는 다른 방향으론 아주 미미한 울림만을 퍼트릴 따름이었다. 비록 술식의 운용난도와 회로점유율이 높아져서 문제이긴 하지만, 기화폭발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쓰기 좋은 공격기였다. 수중에서의 기화폭발은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할 경우 나까지 피해를 각오해야 할뿐더러, 내 장악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만 투사가 가능한 기술이니까.
카르텔 기사단장 「엘 마에스뜨레」를 상대할 적엔 고작 갑옷을 세척하는 용도로나 써먹었던 물의 진동. 그땐 그렇게 시시한 잡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이제는 많은 궁구와 명상들을 거쳐 선박 파괴가 가능할 만큼의 고급 응용기로 발전시켰으니,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흡족함을 금할 수 없다 하겠다. 앞으로도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겠지.
「형님.」
무전기 리시버로 들어오는 경태의 목소리.
「슬슬 정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대잠초계기 편대가 떴다고 합니다. 주변 선박들은 잠시 항로 좌우로 물러나라고 경고하네요.」
이 무전은 유선으로 이어 스티로폼 조각에 붙여놓은 안테나로 수신하는 것이었다. 밖에서 보면 흔한 부유물 쓰레기처럼 보일 안테나 부표인 셈. 이를 통해 경태는 일본 해상보안청 해상교통센터가 내보내는 실시간 항행경보를 중계해주었다.
여기는 세토 내해. 일본의 바다였다. 머리 위로 음향탐지부표(소노부이)와 폭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번거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알았다. 금방 돌아가마.”
나는 회로에 돌던 마력을 새롭게 조율했다. 이에 따라 직경이 40미터에 이르는 마법적 증폭관이 형성된다.
우우우웅-!
조금 전까지는 실전연습삼아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밀조준으로 터트렸지만, 지금 방출한 음파는 원뿔 형태로 확산되는 광범위한 학살기였다. 너른 물결이 음속으로 진감하는 순간, 아직까지도 살아보겠다고 버둥대던 몸뚱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갈라진 선체에서 새어나온 연료가 강렬한 진동마찰을 받아 불의 파도로 솟구쳐 올랐다.
일본 정부와 장기계약을 체결한 영국의 헌터 단체, 「HC 미들즈버러」의 1개 파견대(Expedition group)가 허망하게 전멸하는 순간이었다.
목표를 완수하고 현장에서 이탈하기 무섭게, 파도치는 수면으로부터 터보프롭 항공기의 엔진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오기 시작했다. 묵직하게 쿵쿵대는 대형 선박들의 심장소리와는 궤가 다른 소음이었다.
‘빠르기도 하지.’
이곳 히로시마 동남쪽 게이요 제도(芸予諸島) 인근 수역은 해운항로로서의 중요도가 높고 주요 군사기지들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지금 가까워지는 대잠초계기는, 날아오는 방향을 보건대 히로시마 서쪽의 이와쿠니(岩国)에서 출격한 기체일 터.
비행속도를 감안하면 이와쿠니 비행장으로부터 이곳까지는 6분 안팎으로 도달하는 게 가능했다. 내가 목표 선박에 최초의 파공을 뚫은 것이 대략 7분 전의 일이니, 해상자위대 항공군(第31航空群)의 긴급출격이 그만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투학-
원통형 음향탐지장치들이 해수면을 뚫고 줄지어 입수한다. 하나하나의 가격이 1,300달러에 달하는 최신형 능동 소노부이였다. 재활용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이곳처럼 물살이 빠른 수로에선 손망실을 각오하고 뿌려야 하는 값비싼 소모품.
고위험 수렵도 결국은 경제논리를 따른다. 초계기 편대가 소노부이를 아낌없이 뿌려대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 해양 각성체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까닭이었다.
‘일본 근해 수역의 위험요율이 평시 대비 40배까지 올랐다고 했었나?’
세계 각국의 해운 보험사들이 책정하는 위험요율은 영국 보험업계가 내놓는 수역별 위험도 평가를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 평가는 분선밀수가 주력인 조직 국제사업부에게도 중요한 사항이라 내게도 비정기적으로 보고가 올라오곤 하는데, 마지막으로 본 보고서엔 영국 로이드 그룹이 일본 근해를 고등급 위험해역으로 지정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위험해역을 항해하는 배들은 일반적인 선박보험으로는 혜택을 볼 수가 없어, 특약으로 전쟁보험을 들어야만 한다.
요컨대 보험업계는 인간과 자연의 대결을 이미 전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선박의 전쟁보험은 선박 가격에 위험요율을 곱하여 보험료를 결정한다. 현 시점에서 일본 근해에 적용되는 위험요율은 0.7%. 건조가가 100억 엔을 넘나드는 대형 선박들은 일본 근해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7천만 엔 이상의 추가지출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인상되는 보험요율이 서서히 일본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일본으로선 한낱 소노부이 따위를 아낄 때가 아닌 것이었다.
“추가로 전파된 정보는 없나?”
내 물음에 경태가 답한다.
「딱히 특별한 건 없네요. 속보가 나오고 있긴 합니다. 「와다츠미」가 또다시 선박을 공격했다고…….」
잘된 일이다. 감을 전혀 못 잡고 있군.
편의상 「와다츠미」나 「키요우타마히코」로 쪼개어 부르곤 하는 혹등고래 「와다츠미키요우타마히코」는 음파를 무기로 쓰는 자연 각성체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초저주파를 감지하고, 3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제한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30톤짜리 생물이, 타고난 능력을 토대로 개화시킨 마법적 공격기술.
마력으로 음파를 빚는 고래가 이 녀석 하나뿐인 것은 아니나, 이중구조 강철 선체를 일격에 파쇄할 만큼 강력한 개체는 와다츠미가 유일했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관측한 개체들 가운데 유일한 것이긴 하지만.
부우우우우-!
머리 위를 스쳐가는 비행소음. 소노부이에 잡히는 신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초계기들은 탐색범위를 넓혀가며 항로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다. 현재 와다츠미에게 걸려있는 현상금은 55억 엔. 작전 중인 자위대원이라도 각성체 현상금의 30%를 분배받을 수 있다는 게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으니, 초계기 파일럿들이 눈에 불을 켜고 수색을 이어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산스러운 바다를 남하하여 인적 끊어진 해변으로 상륙하자, 대기하고 있던 경태가 나를 맞이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고생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네요. 어떻게, 바로 숙소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러지. 조금 출출하기도 하고.”
“옙.”
일본에서의 활동을 위한 임시숙소는 이마바리(今治)시 소재의 호텔이었다. 이 해변에서는 국도를 타고 남으로 20분을 내려가야 하는 위치.
시가지로 진입하니 경찰차 한 대가 따라붙어 검문을 시도했다. 우리가 탄 차에 고위험 수렵용 차량의 전용 번호판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용 번호판은 녹색 바탕에 하얀 글씨, 검은 테두리와 가로로 긴 판형, 일본식 한자 「렵(猟)」으로 시작하는 번호체계를 공유했다.
“잠시 자격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관 하나는 멀찍이 서서 사격 준비자세로 대기하고, 남은 한 명은 홀스터에 손을 얹은 채로 다가와 발음 나쁜 영어로 자격증 제시를 요구한다. 각각이 지닌 총기엔 발포와 동시에 자동으로 신호가 나가도록 만들어진 발신기가 달려있었다.
“한 명씩, 순서대로, 천천히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꺼릴 것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 한국과 일본의 국제협력사업에 따라 합법적으로 파견된 헌터 신분이었으므로. 신분증을 겸하는 자격증을 차례로 받아 번호를 조회해본 경관은, 우리에게 미등록 총포류가 없음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날카롭던 눈매를 누그러뜨렸다.
“협조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오신 헌터분들이시군요. 사전에 신고한 활동범위를 벗어나시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주시고, 엽행을 나가거나 담당지역 변경을 희망하는 경우 반드시 관할 경찰서 수렵안전기획과의 승인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외워서 뱉는 티가 진하게 나는 당부.
“걱정 마십시오. 주의사항은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조회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지금은 불출 받은 탄약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관님.”
경태가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화답하자, 눈을 조금 크게 떴던 경관은 이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조금 전 제시한 자격증은 한국에서 치른 고위험수렵기능사 및 특수공인능력기능사 시험의 결과물이었다. 북미에서 본사로 복귀한 뒤 이틀 만에 받은 이 자격시험들은 인성검사와 구술면접, 전술사격 테스트를 포함하는 실기평가, 그리고 체력측정 및 강화계수 측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자격시험은 실기평가의 무제한 반복응시를 허용하는 등 여러모로 관대한-혹은 허술한-부분들이 많았으나, 1년 주기로 갱신 시험을 치르고 자격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케 함으로써 헌터들의 질적 수준을 제고해 나가겠다는 게 정부가 세운 방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