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11화 (211/561)

#24. 인조여신(人造女神) (4)

외부마력에 침식당한 유기체들의 뇌는, 단시간의 비정상적인 활성화를 거쳐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들었다. 몸을 떨던 의식의 주관자와 입회자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언어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신?여신?여신?여신?여신?」

「오아밀라리아아아아아름다우신나의평화사랑안식을주시옵소서세상에평화를가져오시는나나나나나나를구원해줄사탕과나비와꽃이피는언덕위의낙원으로꿀이흐르는이끌어주실젖과엄마엄마엄마아항히힉좋은숲숲숲속의버섯버섯버섯나는버섯이좋아좋아」

「헤매이다헤매이다헤매이다왔노라길잃은어린양인나도무지어디에도집이없어그리운침대연체된고지서고지서고지서배고픈내딸병든내딸병원비병원비병원비딸딸딸딸나쁘신하나님봄빛무덤에올려둔묘비위에올려둔동전위에올려둔장례식비용이빚으로남아마음의평화를나의여신께바치나니의료보험과진통제와전기가끊어지면어떻게하지여보여보여보당신도죽었어왜여기에없어보고싶은여신님의품에서평화평화평화평화걱정하지마나는이제괜찮아괜찮아정말로괜찮아」

「나의안에계시는여신님의안에있는나의안에계시는여신님의안에있는나의안에-」

하나만 들어도 어지러울 난언이 얽히고 또 얽혀 하나하나를 알아듣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불협화음.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접신」의 실체인가…….

비록 침식당한 버섯숭배자들의 상태가 정상과는 거리가 멀지언정, 저들의 입에서 여전히 사람의 언어가 나오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황금기의 눈에 보이는 「접신」은 버섯의 마력이 인간의 뇌를 도구 삼아 인간의 의식을 흉내 내는 것 같은 현상이었다.

이해와 직관을 넘어선 이 영감은 쉽게 무시해도 좋을 것이 아니었다. 이건 황금기의 눈이 황금기의 정수 안에서 진리의 조각을 포착했을 때와 흡사한 감각이니까. 내가 직접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스승새끼의 기억 속엔 선명하게 남아있는 감각이다.

「아-하이-!」

발광하던 여사제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몇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사제는, 이내 낡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삐걱삐걱 흔들리는 몸으로 중심을 잡는 데 성공했다.

장식이나 다름없는 오망성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력의 물결이 일렁인다. 직후, 사제가 머리를 꺾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저기에? 저기에? 사람이? 있어요? 있어요? 있어요?」

이건 좀 소름 끼치는군.

「있네? 누구야?」

여기까지 지껄인 사제는 한 발짝 나아오려다 풀썩 넘어졌다. 그러더니 미친년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다시 일어날 생각은 않고 음정과 박자가 모두 엉망진창인 찬송가(Chant)를 부르는 게 아닌가.

「아름다우신 어머니 여신이시여,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내려주소서.」

사제는 더 이상 이쪽에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거리를 두고 의식을 지켜보던 다른 추종자들은 아니었다. 무리를 지어 신중하게 다가오는 하얀 옷의 각성능력자들. 나는 혀를 차며 자리를 털었다.

“이만 철수한다.”

“충분히 보신 겁니까?”

“그래.”

이 정도면 볼 만큼은 봤다. 부하들은 재빨리 철수 준비를 끝마쳤고, 나는 회로에 마력을 돌려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지웠다. 부드러운 염동력으로 지면을 쓸어 발자국들을 흙으로 덮어버리고, 때를 기다리던 씨앗들에게 「생명」으로 발아를 강제함으로써 누구에게도 밟힌 적 없는 초지를 연출했다.

산장으로 복귀하는 동안, 나는 조금 전 목격한 현상을 무겁게 곱씹었다.

‘균사체와 인간의 인지가 서로 교차하는 게 가능한가?’

여사제가 나와 경태 이하의 존재를 간파한 건 사제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거대균사체의 감각을 빌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만약 거대균사체가 인간의 인지와 사고를 빌려 세상을-나아가 자신을-인식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버섯이 인간과 동일한 형태의 지성을 얻기는 어려울 터였다. 남동쪽 멀리 있는 포플러 클러스터와 마찬가지로 퍼져있는 면적부터가 지나치게 넓지 않은가. 수평적인 면적으로만 비교하면 전율하는 거인조차 가볍게 압도하는 것이 이 국유림을 점령한 균사의 왕국이다. 이토록 생체질량이 거대한 생명체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라도 인간처럼 통합된 사고능력을 보유할 수가 없다. 설령 그 지성을 영적인 영역에 구축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혼과 회로의 분포로 인한 물리적 한계는 동일하게 적용될 테니까.

균사체가 보유한 인지 네트워크의 질적 한계는 그다음에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인지 네트워크에 오랜 시간 숭배자들의 정신이 남긴 잔향- ‘인간의 메아리’가 누적된다면, 나로서도 장기적으로 일어날 변화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넓고 깊은 호수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인간의 메아리 역시 아스라이 울리며 흩어질 뿐이거나, 혹은 쌓이고 쌓인 메아리들이 언젠가 거대한 자아를 탄생시킬 밑거름이 되어주거나.

산장의 객실로 돌아와서도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던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사색을 이어나가던 끝에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버섯이 들여다볼 인간 대가리들의 샘플을 악의적으로 통제한다면……. 특정 대상에게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가짜 신의 탄생을 유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컨대 거대균사체가 제 숭배자들에게 무너지는 런던 다리, 불타오르는 웨스트민스터 궁전 따위의 환상을 계시처럼 보여준다거나 하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엄밀히 말해 이는 거대균사체 안에 강한 메아리를 남겨, 접신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메아리를 보고 듣도록 만드는 것에 가깝겠지만, 내게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현상의 본질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날이 밝은 뒤 이 발상을 들은 경태는 대단히 꺼림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형님께선 무섭지 않으십니까?”

“무서워? 뭐가?”

“가짜 신의 탄생 그 자체가요.”

볼을 긁으며 말을 잇는 경태 녀석.

“어마어마한 힘과 잠재력을 지닌 자연각성체가 인간의 인지를 빌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깨달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데……. 그게 불완전한 깨달음이라도 저한테는 엄청 무섭게 느껴집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겁나게 쎈 공이 아닙니까? 스스로를 신이라고 착각하는 오류투성이 자율주행 렉킹 볼(Wrecking ball)이요.”

나는 경태를 보는 시선을 기울였다.

“핵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예?”

“이 「아밀라리아」가 앞으로 어떤 존재로 거듭난다 한들, 최악의 경우에도 탄도탄 한 발이면 정리가 끝날 텐데 뭐가 걱정이냐는 말이다.”

“어…….”

“네가 우려하는 상황이 현실화되면 굳이 내가 나서서 핵을 밀수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러기 전에 백악관이 핵투발 결정을 내릴 테니까.”

“……어, 음,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렇잖아도 ‘인류의 성전’을 부르짖는 자들이 넘쳐나는 마당에, 「아밀라리아」가 정도 이상으로 자신을 깨닫는다면 그때는 당연히 핵공격이 가해지겠지. 대기권 밖에서부터 기습적으로 내리꽂히는 다탄두 핵미사일을, 일개 자연각성체가 무슨 수로 대비하고 무슨 수로 방어하나. 무중력 공간으로부터 불타오르며 낙하하는 핵탄두의 속도는 음속의 열다섯 배에 달하며, 한 발 한 발의 탄두는 대도시 하나를 날리기에 모자람 없을 열량을 방출한다.

나는 그렇게 되기 전까지만 인조여신(人造女神)을 이용해먹어도 남는 장사다. 원탁의 주의를 흐트러트리고 역량을 소모시킬 장치로써.

문제는 하나.

거대한 호수를 유독성의 늪으로 변모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독을 부어야 하는가.

인간 대가리에 담아 버섯에게 먹일 독은 진하기도 진해야 하거니와 양적으로도 많아야 한다. 이성적인 혐오는 충분한 독성을 품고 있지 못하니, 결국 종교 레벨의 적개심을 품은 광신도들의 장기적인 헌신이 필요하다는 뜻. 시간에 맞추려면 접신이 가능한 사제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그건 나와 내 조직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무수한 악마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누구라면 모를까.’

그레이스를 생각하니 약간의 심란함이 찾아온다.

지금은 그녀도 기회비용을 셈하느라 이곳의 버섯숭배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겠지만, 이런 이익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 당연히 태도를 바꿔 적극적인 포교에 나서겠지. 소모품으로서의 사제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딸들을 제물로 삼을 터.

……그레이스-596의 체취가 떠오른다. 그 복제체를 마주함으로써 느낀 그레이스의 광기는, 스승의 기억을 통해 엿보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현실감이었다. 그렇잖아도 꺼려지던 그레이스와의 협력에 다른 차원의 거리낌을 더해줄 정도로 진한 현실감.

요약하면, ‘이렇게까지 미쳐있는 인간에게 동맹이라는 개념이 성립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제 자궁을 배양공장삼아 저와 똑같이 생긴 자식들을 공산품처럼 찍어내고, 그 자식들을 다시 버리는 패로 써먹는다는 건 내가 미처 상상해보지 못한 종류의 광기였다.

그러니 여기선 일단 이런 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데서 만족하는 게 좋겠지. 침식의 코드를 개선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바쁜 일정을 쪼개어 시간을 낸 보람은 있는 셈이고.

경태가 목소리를 낸다.

“한 가지 더 여쭤 봐도 됩니까?”

“음?”

“어젯밤에 버섯교 여사제가 우리의 존재를 파박 하고 알아차렸잖습니까? 그거 사제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초대형 버섯의 힘을 빌린 거죠?”

“그런데?”

“그럼 형님 같은 대마법사가 접신인지 접속인지를 하면 그 여사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휘두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

그게 마법적인 자살이 되기 십상이라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군. 경태는 내 표정을 보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장 위험한 짓인가 보네요.”

“짐이나 챙겨라. 공항으로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으니.”

“어디요?”

“아밀라리아 교회.”

가능하다면 여사제 본인에게 접신을 이루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들어두고 싶었다. 여사제 본인이 어렵다면 함께 의식에 참가한 입회자들에게서라도.

오전에 다시 찾은 아밀라리아 교회에선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배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배식이 시작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음에도, 초라한 행색의 빈자들은 벌써부터 교회 울타리 바깥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장사진에 적잖게 끼어있는 원주민들이 눈에 띈다. 원주민이 아니면 소지 자체가 불법인 독수리 깃털 장식들은, 낡고 헤지고 때가 타서 그 소유자들에게 더러움과 초라함만 더해주는 무가치한 장식품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깡마르고 무표정한 원주민들은 그 장식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합법적인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북미 원주민들에게 독수리 깃털은 일반적인 장식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줄을 선 원주민들은 과반수가 보란 듯이 깃털을 달고 있는 상태.

소외당하거나 박해당하는 자들에게 나타나기 쉬운, 한 맺힌 응어리로서의 동질감이자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저들이 왜 밥 한 끼를 먹겠다고 여기까지 와야 했겠는가. 저들의 터전인 보호구역을 떠나면서까지.

‘유익한 현상이지.’

내 목표인 여사제는 어젯밤 그 난리를 친 탕녀답지 않게 말끔한 모습으로 배식 준비를 총괄하고 있었다.

여사제와 독대할 기회는 돈으로 구입 가능한 상품이었다. 버섯교단의 사제들이 돈독이 올랐다는 뜻이 아니라, 헌금을 미끼삼아 요청을 관철시켰다는 뜻.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드문 법이었다.

“여신님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시다고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대며 마주앉은 여사제는 구면인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얼굴의 절반에 화상을 입은 대머리 중년인이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운용기술이 일정 경지를 넘어선 시점에서, 생김새를 바꾸기 위해 꼭 실리콘 마스크의 신세를 질 필요는 없었다.

여사제는 여신과 하나가 되기 위한 의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하나가 된 이후의 감각에 대해서는 숨길 이유가 없다는 듯 즐거운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가끔은 여신님께서 호기심 많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호기심 많은 아이, 입니까?”

“네. 여신께선 제 눈으로 보는 풍경, 제 귀로 듣는 소리, 제 코로 맡는 냄새, 제 피부에 와 닿는 촉감, 제가 혼자 하는 생각 같은 것들이 많이 궁금하신가 봐요. 저는 그 호기심을 느낄 수 있죠.”

호기심? 걸러 들어 마땅할 광신도의 진술이긴 하나, 적어도 거짓을 말하는 생체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사제는 꿈꾸는 소녀와도 같은 얼굴로 증언을 이어갔다.

“여신님께선 한없이 높으신 분이시니, 한없이 낮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궁금하실 수도 있겠죠. 그렇게 우리 인간들을 이해하려 애쓰시는 여신님의 사랑이란 얼마나 깊고도 아름다운 것일까요?”

“그렇군요.”

이후 한참을 신이 나서 떠들던 사제는, 말미에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들어보니 어떠신가요? 너무 터무니없게 들리진 않았나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사제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어머나…….”

공치사를 돌려받은 사제는 나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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