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09화 (209/561)

#24. 인조여신(人造女神) (2)

캐니언 시티로부터 거대 균사체를 품은 국유림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길이었다. 서부 3개주를 종단하는 2차선 국도(US Route 395)가 계곡의 상류로 접어들기 전, 남북으로 긴 도시의 남쪽 끄트머리에선 종교인들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높으신 주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을 숭배하는 무리에게 심판이 있을진저.」

이런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은 전통적인 교회의 신도들이었다. 시위대가 점거한 장소는 버섯숭배자들의 교회 앞 도로. 차창 밖으로 성난 그리스도인들의 행렬을 구경하던 경태가 실소를 터트렸다.

“이야, 죽이네. 어떻게 자리를 골라도 이런 데를 골라서 건물을 올렸을까요?”

이는 버섯숭배자들의 부지 선정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위로는 성공회 교당이, 아래로는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이 있는 땅에 보란 듯이 자기들의 성소를 건설해 놓았으니, 구시대의 신앙을 따르는 자들에겐 선전포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잠시 내려서 구경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밴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현지인이 어깨를 으쓱이곤 다른 차량들로 무전을 보내었다. 고객이 ‘버섯 교회’를 잠깐 보고 싶어 한다고.

투시력이 있으니 굳이 나와서 둘러볼 이유가 없었으나, 내리지도 않고 상당 시간 멈춰있기를 바라는 건 당연히 이상해 보일 것이었다.

종교인들의 3파전은 분위기가 제법 험악했다. 저들의 성소를 지키겠다고 나온 아밀라리아 교회 측의 능력자들은 인의 장벽을 둘러친 채 구시대의 신앙인들에게 눈을 부라렸고, 성공회와 여호와의 증인들 또한 각성능력자들을 내세워 시위대를 보호하려 했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사탄에게 영혼을 판 자들아!”

성공회 목사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 이에 질세라 버섯숭배자들도 소리를 질러 맞선다.

“우리는 사탄을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레이디 아밀라리아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멀찍이 선 나는 버섯숭배자들의 교회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교세 확장이 빠르다 싶더니, 마법숭배신앙을 흡수했나?’

교회 안쪽엔 과거부터 존재해온 마법숭배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여신의 종자처럼 배치된 염소머리 목상들은 본디 마법숭배교단의 뿔 달린 남성신(Horned god)이 원형일 터. 벽에는 오망성을 새긴 염소 머리뼈를 걸어놓았고, 바닥엔 역시 오망성을 수놓은 양탄자를 깔아놓았으므로, 지난 시대의 종교인들이 보기엔 빼도 박도 못할 악마숭배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그저 밀교 우도(바마마르가)의 영향을 받은 서구식 신비주의일 뿐이었다.

물론 서구식 신비주의엔 「붉은 여인 바발론, 혐오스러운 것들의 어머니」와 같은 악마숭배적 요소들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버섯숭배자들의 성소엔 진짜배기 악마숭배자들처럼 피와 죽음으로 제물을 바친 흔적도 없고, 뒤집어놓은 별과 신성모독의 72문자도 없으며, 인신공양의 별을 기리는 문구와 상징들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리화나나 코카인 등의 마약이 좀 눈에 띌 따름.

‘칠각기사단이 포교 욕심을 낼 법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원탁의 제국주의자들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선택지였다. 너무 뻔한 행동을 하느니, 차라리 감시자들이 있을 곳에 가짜 마녀들을 풀어 감시자들로 하여금 헛발질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새로운 종교가 과거의 종교를 참고하거나 흡수하는 건 역사적으로 전례가 많은 일이다. 딱히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접신」은 버섯이 있는 숲에서만 가능하다 들었으므로 여기서 더 봐둘 것은 없을 듯하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출발합시다.”

운전석의 현지인은 아까처럼 어깨를 으쓱이더니 기어를 바꾸고 엑셀을 밟았다.

눈을 감고 마법적인 묵상 속에서 이제껏 수집해온 코드들을 분석하기를 약 한 시간. 과거에 비해 경계가 확장된 국유림의 입구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영어와 중국어로 붉게 병기된 커다란 경고문이었다.

「法律禁止收集蘑菇. 如果发现未经授权的收款, 可能会被罚款. (버섯 채집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무단 채집이 적발될 경우 벌금이 부과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경태가 아까처럼 실소를 터트린다.

“중국인들이 버섯을 자주 뜯어가는 모양입니다?”

질문을 받은 가이드는 넌덜머리를 냈다.

“얌전한 버섯이 화를 낼 정도로 많이 뜯어갑니다. 평범한 사람의 힘으로는 따기도 어려운 걸 톱질을 해서까지 가져가더군요. 자기네 나라에서는 그게 영험한 약재로 통한다나 뭐라나. 공원 순찰대(Park ranger)의 단속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버섯이나 버섯숭배자들에게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해도 어찌나 말을 안 들어 처먹는지 원…….”

이러면서 덧붙이는 말.

“미리 말씀드리는데, 순찰대 경관 나리들이 수시로 불러 세우더라도 이해하십시오. 그 사람들은 개념 없는 중국인들 덕분에 동양인 알레르기가 생겼거든.”

예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현지인 가이드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고.

숙소에 짐을 풀고 돌아보기 시작한 균사의 왕국은 진입로 언저리에서부터 발전된 「침식」의 발현을 보여주었다. 각성수의 마력장을 중화하고 생리적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습은 마법사로서의 나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역시 곁가지였나?’

「침식」의 정도는 인간과 수목이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이건 서로 다른 종이 지닌 영혼의 차이일까, 아니면 거대 균사체의 ‘입맛’이 작용한 결과일까. 인간의 마력장 또한 침식의 파동에 영향을 받긴 했으되, 파동이 피부 아래까지 침투하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감각이 둔한 자연각성능력자들은 그저 버섯의 마력장에 자신의 마력장이 위축된다고만 느끼고 있을 터.

내가 발전시켜온 「침식」과는 방향성이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균사체가 구사하는 마법 술식은 세상 어디서도 비슷한 것을 찾기 어려울 영감(靈感)의 보고였다. 전율하는 거인이 그러했듯, 버섯의 회로 운용은 재작년 겨울에 비해 정갈함이 더해진 상태. 객관적으론 여전히 난해하지만 혼돈 그 자체였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하겠다.

“이이익……!”

수풀의 사각지대에서 웬 얼간이 하나가 버섯을 뜯으려 용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나름 회로가 열린 각성자임에도, 그 수준이 대단치 않고 마력장도 위축되어있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다. 생체강화로 질겨진 버섯과 씨름을 하던 얼간이는, 이윽고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앗.”

주저앉아 웃던 얼간이가 뒤늦게 이쪽을 발견하고 당황한다. 얼굴을 가리며 황급히 달아나는 그녀는 동양계가 아니었다.

같이 있던 가이드가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인다.

“어쨌든 중국인들이 나쁜 겁니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파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파는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딱히 묻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괴상한 변명이다. 나는 관심 없다는 투로 다른 것을 물었다.

“듣자니 이 숲에선 버섯숭배자들이 특별한 의식을 거행하곤 한다던데, 그걸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질문을 받은 가이드는 뜬금없이 휘파람을 불며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도 버섯교회에 관심을 보이시더니, 고객님도 그 소문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소문?”

“어허,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하시긴. 버섯숭배자들이 야외에서 벌인다는 집단 난교를 보고 싶으신 거잖습니까.”

“…….”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레딧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도는 ‘썰’을 보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섹스는 만인의 관심사지요. 하하하!”

한 차례 웃음을 터트린 가이드가 휘휘 머리를 흔들었다.

“고객님껜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직 썰만 있을 뿐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전엔 낮에 주로 활동하던 버섯숭배자들이 요즘 들어 갑자기 야행성으로 바뀌니까, 그걸 가지고 상상력 풍부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뭔가 남에게 보이기 껄끄러운 게 있으니까 어둠을 좋아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즉 근거는 전혀 없다?”

“근거, 근거라……. 야간순찰을 돌던 공원 순찰대원들이 때때로 버섯숭배자들이 모이는 곳 근처에서 음란하게 헐떡이는 소리를 듣는다곤 합니다만, 멀찍이 떨어져서 들은 거라 확실한 증거는 못 됩니다. 가까이 가려고 하면 그쪽 교단의 각성능력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더군요. 그러니 계속해서 소문만 무성해지는 거지요. 우리 같은 헌터들도 공연히 부딪힐 일은 피하고 있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미리 충고해두겠는데, 그 현장을 보겠다고 늦은 시간에 몰래 구경을 나오시면 안 됩니다. 특종에 목을 매는 기자들과 개인방송인들, 호기심에 찬 관음증 환자들, 사탄숭배의 증거를 찾으려는 종교인들, 그리고 버섯을 몰래 뜯어가려는 중국인들 때문에 버섯숭배자들의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서요. 어두울 때 돌아다니다간 진짜로 봉변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유념하도록 하지요.”

나는 무성의한 답변을 돌려주며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곱씹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섹스 마직(Sex magick)」에 빠져있나?’

오르가즘을 통한 영적 고양은 마직의 주요 구성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O7A의 왜곡된 마직뿐만 아니라, 유명한 가짜 마법사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델레마(Θελημα)」 체계를 따르는 정통파 마직에서도 성적인 엑스터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의식이자 수련법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마법의식으로서의 섹스는 야외에서-정확하게는 별들의 아래에서-하는 것이 정석이다. 알레이스터 크로울리가 「율법의 서(Liber Al vel Legis)」에 그렇게 적어놓았기 때문.

「앞으로 나오라, 아이들아. 별들의 아래에서 너희를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라! 나는 너의 위에도 있고 너의 안에도 있도다. 나의 엑스터시는 너의 엑스터시 안에 있으며 너의 즐거움을 보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기도 하니라.

(Come forth, o children, under the stars, and take your fill of love! I am above you and in you. My ecstasy is in yours. My joy is to see your joy.)」

이러한 섹스 마직에서 최고의 의식을 완성하도록 해주는 기술이 항문성교다. 과거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항문성교를 사악한 음란행위로 규정했던 핵심적인 이유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벌써부터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 더러운 꼴을 굳이 엿봐야 하는 건가…….

가진 눈이 눈이다 보니, 눈깔병신인 나는 배변기관에 좆질을 해대는 걸 역겹게 볼 수밖에 없었다. 「브라츠키 크루그」의 간부들에게 초대장을 받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을 때, 잔뜩 취한 간부 한 놈이 준비도 안 된 여자를 상대로 그 짓을 하는 걸 보고는 비위가 많이 상했었지.

그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짓거리에 진정으로 마법적 효과가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섹스는 그냥 섹스일 뿐. 남녀의 결합을 통해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를 마법에 활용하니 어쩌니 하는 건 단순한 헛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짓을 하는 와중에 섹스와는 전혀 무관한 현상이 함께 빚어질 가능성은 있었다.

결국은 직접 확인해봐야 알 일.

마법숭배교단의 야외 섹스 행사인 「위대한 의식(Great rite)」은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의 몸을 정결하게 한 상태에서 행하는 게 원칙이므로, 버섯숭배자들의 교리가 마법숭배의 영향을 받았다면 최악으로 더러운 꼴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야음을 틈타 산장을 빠져나올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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