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08화 (208/561)

#24. 인조여신(人造女神) (1)

오래된 포플러 숲과 균사의 왕국 등을 섬기는 애니미즘적 종교들이 등장했을 때, 학자들은 조심스레 각성체에 의한 정신오염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거대한 각성체들이 과학적 계측을 벗어난 영역에서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이에 대한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정신오염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

기자들과 직접 대면한 미국 대통령은 넌더리가 난다는 투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거대 각성체들을 접한 능력자(Aetherist)들은 예외 없이 동일한 증상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아니지요?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낀다고 증언하는 능력자들은 많지만,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괴상한 종교에 빠집니다.」

「까놓고 말해, 이거 솔직히 지능 문제 아닙니까? 나무와 버섯을 신으로 숭배할 만큼 지능이 낮은 사람들은 그냥 지능이 낮은 행동을 하라고 내버려두면 됩니다.」

「뭐 장차 거인의 영지가 세상을 뒤덮을 때 오직 거인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살아남으리라 어쩌고 하는 헛소리가 들리던데……. 옛날이라고 해서 비슷한 종말론이 없었던 건 아니잖습니까? 아밀라리아 어쩌고 하는 버섯 숭배자들도 그렇습니다. 제 눈엔 단순한 사이비 종교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안 보이는군요.」

「우리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멍청한 사람들이 멍청한 신앙에 돈과 인생을 버리는 게 참으로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그들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미국의 공권력 역시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버섯을 여신이라고 우기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창조주로 섬기든 다 개인의 자유라 이겁니다.」

「말하자면 그 정신오염 운운하는 개소리들은 지구온난화와 비슷한 수준의 허망한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그놈의 지구온난화도 자칭 과학자입네 교수입네 환경운동가입네 하는 잘나신 위선자들이 과학적이라고 우기는 증거들을 들이댔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공포를 조장해서 추종자들을 얻고 돈이나 좀 벌어먹으려는 얄팍한 수작질에 지나지 않았지요.」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기꾼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겁니다.」

「민주당은 거대 각성체가 있는 재난구역마다 차단선과 감시망을 구축하고 병력을 배치해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 멕시코 국경처럼 정말로 필요한 장소에 장벽을 건설할 땐 그렇게들 반대를 하더니, 이익 한 푼 나오지 않을 일에 돈 낭비를 하자고 나서는 꼴들이 우습지 않습니까? 대체 거기에 얼마나 많은 예산과 병력이 들어갈 거라 생각하는 건지 원.」

「잠시 클린턴 대통령의 말씀을 빌려보겠습니다. “문제는 경제입니다, 바보들아(It's the economy, stupid).” 우리 미합중국은 그런 쓸데없는 일에 단 한 푼의 예산도 헛되이 낭비할 수 없습니다. 순찰자가 필요하면 주정부 예산으로 경찰인력을 확충하거나 민간 헌터들을 고용하거나 하라고 하세요! 골 빈 민주당 주지사들이 자기네 예산을 내다 버리겠다면 나는 그걸 굳이 막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연방정부는 오직 실질적인 이익이 보장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각성체들에 대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할 것입니다. 가뜩이나 고위험 수렵 보상이니 각성능력자 특화 의료체계 구축이니 불사암 의료보험이니 해서 돈 나가는 구석이 넘쳐나는 상황이 아닙니까? 이 나라의 결식아동이 무려 4천만이랍니다, 4천만. 세상이 지금처럼 이상해지기 전에 비해 무려 두 배나 증가한 수치예요! 연방예산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라고 있는 겁니다!」

「난 솔직히 무의미한 연구와 탐사 프로젝트들도 중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건 경제가 안정화된 다음에 해도 충분하잖아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나인데 왜 의회가 국정운영에 간섭을 하려고 난리를 쳐대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외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미국이 가장 먼저여야 하건만, 상하원 의석을 차지한 꼰대들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할 것 없이 죄다 다른 나라들만 좋을 일을 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중국 공산당원들 압류자산의 2차 현금화를 가로막고 있는 건 또 어떻고요? 아직 대화로 해결할 여지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등등의 개소리들을 지껄이면서 말입니다. 대화는 무슨 놈의 대화입니까? 중국은 깡패이고, 깡패는 두들겨 맞아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나라의 대통령은 나예요! 의사당에 앉아 거드름이나 피우면서 잘난 척하는 게 일인 위선자들은 죄다 눈 찢어진 공산주의자들과 손잡고 이적행위를 하고 있-」

뒤로 갈수록 삼천포로 빠지며 막말과 불평불만을 쏟아내기에만 바빴던 브리핑이 보는 입장에선 어찌나 희극적이던지.

그러나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예컨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부분이 그러했다. 과거의 지구온난화는 학계 전반이 공인한 인류의 위기였으나, 현재에 이르러선 사정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숲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율하는 거인은 지난해 미국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총량의 3할 이상을 혼자서 먹어치워 버렸다. 탄소 흡수량 증가는 생장에 박차를 가하는 다른 각성수들 역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므로, 오랫동안 상승일변도였던 대기 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미미한 감소 추세에 접어듦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봐야 했다.

‘어느 정도는 마력으로 열과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의 지분도 있을 테고…….’

오죽하면 중국의 가짜 빨갱이들 입에서 「우리 중국이 기후변화 위기에 맞서 인류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는 희언이 다 나왔을까. 지구온난화는 없다고 굳세게 믿어온 백악관 미치광이와 그 지지자들로선 신명이 날 만한 상황인 것이다.

4월 7일 오후, 나는 오리건 주 동부의 캐니언 시티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완만한 협곡(Canyon)을 따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이 도시는, 카운티 지역 공항과 가까운 덕분에 균사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 자리 잡은 그랜트 카운티 지역 공항은 경비행기용 활주로 두 줄이 깔려 있을 뿐인 소규모 공항으로서, 본래는 여객 수요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곳이었다. 내가 여기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자그마한 항공 택시 따위가 하루 네다섯 번쯤 뜨고 내리는 게 고작이었을 정도.

그랬던 것이 이제는 확장공사를 거쳐 중형 터보프롭 여객기가 수시로 드나들게 되었으니, 깡촌의 주민들 입장에선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을 터였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신발을 신지 않은 백의의 선교사들이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픈 자들이여! 거친 세파에 상처 입은 어린 양들이여! 거룩하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십시오! 자비로우신 우리 여신의 품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삶을 누리십시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민병대의 호객꾼들.

“쌉니다, 싸! 아밀라리아 순례길 트레킹 패키지가 왕복 교통비 포함 단돈 5백 달러! 카운티 공인 민병대 「스트로베리 레인저스」의 우수한 헌터들이 여러분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드립니다! 야생 각성체나 범죄자들의 습격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마법의 숲을 거닐어 보세요! 추가요금을 지불하시면 각성체 사냥 체험 코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민병대는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니 안심하시고 이용해주십시오!”

피켓을 든 호객꾼들의 뒤쪽으로는 여행자들을 태우고자 대기 중인 다인승 밴들이 있었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중화기를 거치한 민병대 무장차량들이 보인다.

공항에서 헬리콥터를 대여하여 균사의 왕국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면 이 번잡함을 겪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 각성체’에 항공 테러를 가하려 든 인간들이 있었기에 균사의 왕국 가까이로는 항공기를 통한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쨌든, 이 광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균사의 왕국이 위치한 멀루어 국유림은 전율하는 거인의 영지만큼 위험한 곳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젠 평범한 사람들도 「레이디 아밀라리아」라는 별칭으로 즐겨 부르는 거대 균사체가 인간에 대하여 위협이 되는 현상을 일으킨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지난해 9월, 농업용 경비행기로 편대를 짜서 균사의 왕국 상공에 제초제를 살포했던 얼간이 능력자들은 하늘을 뒤덮은 방전의 그물에 휩쓸려 전멸했다. 스크램블에 나섰던 주방위군 무장헬기도 기능 고장과 비상착륙을 면치 못하도록 만든 고전압의 해일에. 이는 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사고사례였다.

그러나 제초제 살포만큼 강렬한 자극이 아닌 이상, 국유림을 뒤덮은 거대 균사체는 저를 찾아오는 무수한 인간들에게 한결같이 ‘너그럽게’ 반응했다.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자신의 일부를 뜯어가도 어지간해서는 무반응으로 일관할 정도로.

“아밀라리아의 관문, 캐니언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얼룩무늬 위장복 차림의 삐끼 한 마리.

“혹시 무장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노던 딕시」의 헌터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받아보시죠.”

이쪽에서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삐끼는 마스크 안에서 츳츳츳 혀를 차며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이드 없는 투어는 꿈도 꾸지 말아요, 친구들. 유명한 관광지라고 호위 없이 다니다가 흔적도 없이 증발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특히 당신들 같은 아시안들은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믿음직한 무장 가이드와 붙어서 다녀야 합니다!”

요즘은 동양계에게 특히 더 험한 세상이니까요, 라며 피부 하얀 삐끼가 웃는 낯으로 눈을 찡긋거렸다.

“본인의 힘에 자신이 있는 각성자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초능력이 총알을 막아주지는 못하잖습니까? 당신들의 조국이 중국만 아니라면, 이 고장 토박이 헌터들의 모임인 「노던 딕시」는 여러분 같은 단체관광객들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같잖기는 하나, 관광지에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족속들의 수준이 높아봐야 얼마나 높겠는가. 어차피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탐사를 할 요량이었고, 귀찮은 일을 피하자면 역시 가이드는 있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경찰의 검문을 받을 때도 가이드의 유무가 큰 차이를 낳을 테니. 하물며 그 가이드가 이 지역의 토박이 출신이라면야.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경태가 나서서 물었다.

“자유 트레킹도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기간은 얼마나 잡고 오셨는지?”

“1박이면 됩니다.”

“1박이요? 겨우? 멀루어 국유림은 정말로 넓은 숲이고, 신비한 현상을 목격하려면 1주일도 부족할 수 있는데요? 친구가 하는 싸고 좋은 산장을 소개해드릴 테니 더 길게 머무르다 가시죠. 우리 요금표엔 기간제 할인도 있습니다.”

“하하. 저도 좀 아쉽긴 한데, 회사 차원에서 계획한 야유회다 보니 일정이 정해져있거든요.”

“아, 저런. 안타깝군요.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삼림욕이나 하다가 돌아가게 되실지도 모르는데.”

삐끼의 말처럼, 외부자극에 둔감한 균사의 왕국은 이상적인 관찰대상이 못 되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침식」의 코드가 어찌 바뀌었는가만 확인해도 남는 장사일 것이다. 그 이상의 수확을 거두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미 전율하는 거인에게서 습득한 코드들만으로도 시간적인 수용한계가 빠듯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화할 여유가 없는 지식을 그저 쌓아두기만 하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나.

다만 한 가지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근래 버섯을 숭배하는 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기이한 경험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

‘환상 속의 여신……이란 말이지.’

종교인들이 환각을 겪는 건 드물게나마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신앙은 대뇌 측좌핵(Nucleus accumbens)의 보상회로를 작동시키는 요소이고, 해당 기전이 반복학습을 통해 강화되면 마약 없이도 소위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거룩하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교회」의 얼치기 드루이드들이 경험한다는 「접신(接神)」은 그 빈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 실체는 아마도 마약을 통해 경험하는 시시한 황홀경과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무의식의 결합효과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거대 균사체가 마법적인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향정신성 마법이라는 개념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했다. 거대 균사체가 모종의 화학물질을 생성하여 사람을 홀리는 거라면, 그 영향은 비단 아밀라리아의 신도들만이 아니라 숲을 찾는 모든 인간들에게 미쳐야 정상일 터. 또한 균사의 왕국에 설치된 다양한 계측장비들이 해당 물질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그런즉 「접신」의 근원에 마법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마법은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지혜일 게 분명했다. 나로서는 낮은 가능성이라도 확인해두고 싶을 수밖에.

이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각성체로서의 거대 균사체가 지닌 마법적 변칙성이다.

‘처음 각성한 능력이 침식이라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았어.’

나는 이것이 공생생물이자 기생생물로서의 버섯류가 지닌 태생적 방향성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붙어있던 나무들 다수가 각성수로 거듭나 과거처럼 양분을 주고받기 어렵게 되자, 해당 각성수들의 마력장을 중화하기 위해 침식의 파동이 필요했던 건 아닌가 하고.

그러나 뚜렷한 목적성을 띠고 만들어진 도구의 쓰임새가 개발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건, 인간 세상에서도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

만약 거대 균사체가 어떤 특성을 공유하는 인간들의 마력장을 완전하게 중화할 능력을 보유했다면, 그 안의 알맹이에 대해서도 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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