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ⅮⅩⅭⅥ (6)
나는 거인의 영지에서 정확하게 삼 주야를 채우고 나왔다.
“어떻게, 수확은 좀 있으셨습니까?”
아지트에 머물며 퇴로 확보를 담당하고 있었던 경태의 물음. 얼굴엔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난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었지.
묵주나 나침반 같은 전리품도 전리품이지만, 그레이스-596의 노트 덕분에 거인이 꽃피운 새로운 마법들을 확인하기가 용이했다. 물에 대해서만 작용하던 마법적 구속력을 다른 물질로 확장 적용할 방법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전율하는 거인이 내 눈앞에서 선보인 낯선 구속력의 종류는 무려 13종에 달했다. 질소·인산·칼륨·마그네슘·황·칼슘 등의 다량원소, 철·붕소·망간·구리·니켈·몰리브덴 등의 미량원소, 그리고 대기 중에 분포하는 탄소에 이르기까지. 다량과 미량을 가르는 기준은 식물이 그것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에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경태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바로 실사용이 가능한 코드들입니까?”
“아니.”
“왜요?”
“효율이 낮아.”
“에이, 좋다 말았네요.”
말은 다량원소(Macro element)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숲이 원하는 절대치는 그리 많은 양이 못되었다. 물에 비하면 실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수준. 전율하는 거인은 기존의 술식에 저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효율로 덕지덕지 ‘플러그인’ 코드를 덧붙여놓았을 따름이니, 한 덩어리로 뭉쳐있는 여러 구속력들을 분해하고 개선하는 건 목마른 사람인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공간굴절은 어땠습니까? 형님 그거 기대 많이 하셨잖아요.”
재차 묻는 경태에게, 나는 조용히 눈살을 찌푸려 보였다.
“……사람이 쓸 마법이 아니었어.”
이번 탐사에서 가장 궁금히 여겼던 공간굴절은, 아직 인간의 힘으로 삼기엔 결함이 많은 지혜였다. 낭비되는 마력이 90%를 넘어갈 만큼 엉성한 술식을 무식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여서 구현하는데, 술식 구동에 필요한 마력의 최저치마저 터무니없이 높으니 대마법사인 나조차 시도할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못하다. 거인이 인간의 기준으로 마법을 개량해나가진 않을 테니까. 연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내 것으로 소화하기가 가능할지도 모르지. 허나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선 고려할 가치가 전무한 선택지였다.
경태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런 걸 보면 뭐랄까, 빛과 진리의 원탁이 보유한 지혜라는 것들이 좀 하찮게 느껴지지 말입니다.”
“하찮아?”
“어, 형님을 깎아내리려는 건 절대로 아니고요……. 단지, 그 잘난 황금기의 지혜가 자연계의 거대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마법보다 특별히 우월한 게 뭔가 싶어서 말이죠. 실용적인 마법의 가짓수부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고요.”
“그야 그렇겠지.”
“예?”
“네가 지금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거에도 실용적이었을 것 같으냐?”
“……아차.”
제 생각이 짧았음을 깨닫고 민망하게 웃어넘기는 녀석.
마소가 극도로 희박했던 과거, 현실에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대부분의 마법들은 실용성이 전무한 잔재주에 지나지 않았다. 염동? 신비한 현상이기는 하지. 물리우주의 근본적인 법칙에 간섭하는 격조 높은 마법이기도 하고. 그러나 마소의 고갈기를 기준으로, 인간의 영혼을 갈아가면서까지 쓸 가치는 없는 힘이었다. 발화나 열화 같은 것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자존심 강한 원탁의 대마법사들조차 그러한 현실을 부정하진 못했다. 염동이든 발화든 가끔 있는 제례의식에서나 상징적으로 사용할 뿐, 그 이상의 쓸모를 찾으려 들진 않았었다.
한때는 과학적인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라도 있었으나, 아무리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도 일말의 성과조차 나오질 않았으므로, 결국은 연구 프로젝트 자체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돈도 돈이지만, 산 제물을 무저갱처럼 집어삼키는 프로젝트를 유지하자니 영국 정부도 고민이 많았을 터.
그러므로 과거의 원탁은 그때를 기준으로 실용적인 진리들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것이 육체적 영생을 추구하는 길인 생명, 그리고 술자의 정신과 영혼에 작용하는 신비로운 마법들. 그 외엔 대마법사 개개인의 호오에 따라 지엽적인 연구들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었을 따름이다.
영국 정부로선 대마법사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곤욕스러웠을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금에 드문 연쇄살인마나 다름없으니까.
내 스승새끼인 크로우허스트만 하더라도 직접 죽인 인간의 숫자만 만 단위를 헤아린다. 그나마도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진 제물들은 포함되어있지 않은 숫자였다.
‘그러고도 항상 불만에 차있었지.’
진리의 가치를 모르는 정부가 ‘연구용 소모재’를 충분히 공급해주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마법사들의 열망을 통제하려고만 든다는 불만에.
이제는 그들도 새로운 시대의 달라진 실용성을 추구하고 있을 테니, 「눈」에 대한 갈망은 결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지난날 날 어떻게든 구슬려보려 들었던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의 말에 현실성이 전혀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가 크로우허스트 본인이든 아니든, 원탁으로 가면 당장 눈알을 뽑으려 들어야 정상이니.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정수」를 위시한 진리의 조각들을 탐구함에 있어 나에게 주도권을 내어주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만다.
그 늙은 괴물들이 그런 처지에 만족할 리가 있나. 내가 눈에 보이는 진리의 단서들을 있는 그대로 공유해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올라온 보고서들을 검토했다.
일단 급변사태가 발생한 것은 없었다. 이는 숲을 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 만약 뭔가 중대한 사고가 터질 경우, 조직 계열사가 소유한 큐브 위성을 통해 약정된 신호를 송출하기로 계획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보고서에 둔 채로 경태에게 물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은 없었나? 느낌이 안 좋은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거나.”
묻는 이유는 경태 녀석의 동물적인 감각을 믿는 까닭.
“어, 글쎄요.”
경태가 다시 머리를 긁는다.
“딱히? 싶네요. 질이 좀 떨어진다 싶은 인간들이야 많았지만, 특별히 불길하다 싶거나 형님에 대한 위협이라고 느낀 놈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경태에게 그레이스-596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오우, 세상에.”
이제 내 질문의 진의를 이해한 경태가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댄다.
“참고할 만한 단서가 있습니까?”
“봐라.”
나는 스마트폰의 갤러리를 띄워 넘겨주었다. 경태는 액정 속 증거사진들을 남다른 집중력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레이스-596을 쫓던 자들의 무기, 장비, 피복과 장구류를 포함한 보급품 등은 소속이 같은 패거리를 찾을 단서로 써먹기에 충분했으니까.
내가 추적자들의 지휘관이라면 숲 내부로 사냥개들을 들여보내는 동시에 숲 바깥에도 경계망을 쳐놓았을 것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레이스-596이 백색 마경을 벗어나지 않으리라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으-음.”
앓는 소리를 내던 경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순찰한 범위 내에선 동일한 장비를 착용한 놈들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애들한테 돌아보라고 시키긴 하겠지만, 큰 기대는 안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탐색은 내일 정오까지. 그 이후엔 철수한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이상은 낭비야.”
굳이 경태의 말이 없었어도, 나는 여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았다. 같은 진영이라 한들 세부적인 소속이 다르면 보급품 따윈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터이므로. 빛과 진리의 원탁이나 악마숭배자들의 교단에겐 보급체계의 단일화에 목을 맬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사냥감을 기만하기에도 좋다. 장비가 다 통일되어 있으면 숲을 빠져나온 사냥감이 사냥꾼들의 존재를 멀리서부터 눈치챌 수 있을 테니.
나는 다만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따름이었다. 낮은 확률이라도 확인은 해보고 넘어가야 정상이지 않은가.
내일 정오는 기회비용을 가늠하여 정한 타협점이었다. 추적자들의 정체와 그레이스의 단서를 찾는 데 시간과 인력을 투자할 때의 기대이익과, 같은 자원을 다른 데 투입할 때의 기대이익을 저울질한 결과라고 해야겠지. 공연히 원탁이나 악마숭배자들의 신경망을 건드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고.
‘그레이스와의 협력은 그저 고려 가능한 선택지의 하나일 뿐.’
그레이스가 「황금기의 눈」에 욕심을 내지 않을 이유 따윈 없다. 원탁에 대한 증오와 마법사로서의 욕망은 별개로 봐야지. 그 미친년과 손을 잡으면 런던 공략이 그만큼 쉬워지긴 할 터이나, 협력하는 내내 그년의 행동거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게 뻔하다.
그러니 협력 여부와 무관하게, O7A의 세력정보는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파악해두고 있어야 합당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신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곰곰이 궁리하던 경태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 한국인 헌터들이 좀 보이던데 말입니다.”
“한국인?”
“예.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국제협력사업 뭐시기가 있다는 모양이던데요. 우방국의 요청에 따라 정부가 승인한 파견은 공공의뢰 점수를 적립해준다고. 그걸로 외화벌이를 한다나요.”
“우리에게도 제안이 왔었나?”
“아뇨. 가장 좋은 패는 손에 쥐고 있겠다는 심산이 아닐까 싶지 말입니다. 값이 더 오르기를 기다리든, 한국 내에서 돌리든 간에. 아직 정식으로 헌터 시험을 치르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니, 준비가 덜 되었다는 식으로 둘러댈 여지가 충분했겠죠. 내부 심사기준 운운하면서.”
“아무튼, 그래서?”
“여기에 인력을 둬도 그만큼 눈에 덜 띄게 되었다 이거죠. 원래도 온갖 잡종들의 난리판이긴 했지만.”
“……의미 없다.”
내가 여기에 없더라도 감시망을 두는 것쯤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의 고급인력들을 급변사태에 대응 가능한 규모로 고정 배치해두는 건, 반대급부로 낭비되는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커지는 방안이었다. 그렇다고 어중간한 거미줄을 쳐두었다간 꼬리를 밟혀 역추적을 당할 우려가 있고.
당초의 방침대로,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과 같은 ‘순진한’ 현지협력자들을 통해 튀지 않을 만큼의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수연 아래의 비서실에서 잘 해주고 있는 일.
‘그나마 돌아다닐 때의 부담은 좀 덜겠지.’
그렇잖아도 보고서 검토를 끝내고 직접 한 번 돌아볼 참이었다. 애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고, 넘쳐나는 사이비들 사이에서 악마숭배의 흔적이나 사탄의 선교사들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으니.
전자문서의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파슈툰족의 대의회 「로야 지르가」가 슬슬 종료될 기미를 보인다는 보고를 발견했다.
2월 말엽부터 소집을 개시한 대의회가 한 달 조금 넘는 회기를 거쳐 폐회를 앞두고 있다, 라……. 이게 사실이라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봐도 좋겠다. 내게 있어서든, 마오쩌둥식 유격전으로 방향을 틀어 버티는 중인 흑해자당에 있어서든.
파키스탄에서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내 부하들이 비밀스러운 부족의회의 내부사정을 알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아부 알 까심」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이었다.
바꿔 말해, 이게 반드시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외부정보는 일단 의심부터 해봐야 하는 법이니까.
같은 보고서 말미엔 아부 알 까심이 가까운 시일 내로 나와 대화를 해보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가 중국을 겨냥한 성전(지하드)에 대해 어떤 견해와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다는 전언. 아직 회기가 남아있으니 천천히 연락해도 좋다는 사족이 붙어있다.
이번에도 ‘천천히’인가.
「알라께선 천천히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
내가 부하들을 통해 빠른 일처리를 요구했을 때, 아부 알 까심이 돌려준 대답이 이러했었다. 이미 본인이 주도한 사업에서 한 차례 발을 헛디딘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는 건 이해하지만, 나로서는 영 좋게 봐주기가 어려운 태도였다.
난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에게 단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내어주고 싶지 않으니까.
사흘치의 보고를 모두 소화한 나는 경태를 동반하여 번잡하기 짝이 없는 마경의 앞마당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반면 경태가 언급한 한국인들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비단 국제협력사업인지 뭔지가 아니더라도, 세계 최대의 자연각성체에 관심을 가지고 온 인간들이 많았던 것이다.
개중엔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꼴값들을 떨고 있는 광대 3인조가 존재했다. 나는 이 3인조를 동물원 원숭이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대한민국 정상을 꿈꾸는 헌터 삼형제! 헌터 크루 「삵」의 팍삵!”
“폭삵!”
“그리고 칡! 인사드립니다!”
“지난 영상에서 예고한 대로, 저희는 지금 마경 중의 마경이라 불리는 포플러 숲, 전율하는 거인이 보이는 장소에 와있습니다. 저기 뒤에 보이는 저 폭포 같은 안개가 바로 거인의 땅으로 접어드는 경계지대인데요-”
천진난만한 것들의 생업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스럽게 묘한 기분이 든다. 분명 같은 땅에 발붙이고 있음인데, 저것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의 음영이 너무도 선명하게 갈라져있는 것 같아서. 돌아온 마법의 시대는 밝은 것들과 어두운 것들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늘려놓았다.
제 눈으로 내 시선을 좇은 경태가 고개를 갸우뚱 한다.
“저들에게 뭔가 특이사항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별것 아니야.”
대수롭지 않은 대답을 돌려주며, 나는 양지의 삶을 사는 자들로부터 관심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