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03화 (203/561)

#23. ⅮⅩⅭⅥ (2)

마침내 숲에 들어선 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 무기를 꺼내었다. 방탄소재 케이스는 좌우로 펼쳐 염동력으로 들고 다닐 방패로 삼는다.

스스스스-

포플러 나무의 가지들이 바람에 부대껴 무수히 흔들리는 소리. 그 외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 숨 막힐 정도로 내려앉은 정적.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감각을 강화한 대마법사의 귀에 그 흔한 새 울음 하나 들리지 않는 건 명백히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숲의 반응을 시험해볼 겸, 그리고 그동안 빚어냈을 새로운 술식들을 관찰해볼 겸, 나는 일부러 사문(死門) 너머로 발을 들여 보았다. 거인의 유효한 마력회로가 밀도 높게 작동하는 위험지역으로.

「-」

전율하는 거인의 마력장이 잔잔하게 출렁인다. 내가 전개한 장악력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훑고 지나가는 마소와 마력의 물결. 이는 마치 숲이 마력장을 감각기관으로 삼아 내 존재를 더듬는 듯한 작용이었다. 거미줄을 흔들어 시야 밖 먹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거미와도 같이.

숲의 마법적 격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니.

다음 순간, 나는 수관 아래 안개의 저편에서 빚어지는 현상을 보고 눈을 찌푸리며 엄폐물을 확보했다.

“이거야 원.”

콰아아아아아-!

좁은 면적의 정면으로부터 중력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쏟아지는 강력한 소나기. 안개를 응결시켜 만들어낸 물방울들에 염동력을 실어 쏘아 보내는 이 굵은 빗줄기들은, 하나하나가 살인적인 운동에너지를 품은 강력한 산탄 알갱이들이었다.

내 마력장 안으로 마법을 직접 투사하기가 불가능하니, 이런 식으로 간접적인 공격을 가해오는 것이다. 마치 나 정도의 대마법사를 상대로 여러 번 싸움을 치러보기라도 한 듯이.

엄폐물로 삼은 쓰러진 고목이 산탄에 맞아 실시간으로 부서져 나간다. 바박, 바바바박! 부서진 나뭇조각들이 거칠게 튀어 오르며 죽은 나무 특유의 텁텁한 향을 퍼트렸다.

내 방패가 되어준 이 고목은, 전율하는 거인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밀어버린 본래의 땅 주인이었다. 주변엔 비슷하게 죽어 넘어진 다른 나무들이 널려있었다. 이를 인간사에 비유하면 침략자에게 학살당한 원주민들의 시체 무더기쯤이 되겠지.

이번엔 머리 위다. 머리 위의 허공에 수직으로 구축되는 염동술식의 흐름.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과는 눈에 들어온다. 내가 즉시 자리를 피하니, 완성 직전이던 술식이 흩어짐과 동시에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방위각에서 동일한 술식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물에 대한 마법적 구속력과 염동술식을 연계한,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인 고효율의 교차포화.

‘나를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난 건가, 아니면 강력한 마력장의 보유자를 상대로 안 좋은 경험이라도 있는 건가…….’

전자라면 일찌감치 숲에 시체를 공양했던 악마숭배자들의 공로가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었던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긴 했겠지만.

숲의 소나기 공격은, 숲 바깥에서보다 최대출력이 감소한 염동력으로도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내 마력장의 경계를 넘어오는 순간부터 구속력을 잃고 공기저항에 부딪혀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한번 막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퍼부어댈 터라 웬만하면 피하는 쪽이 더 이익이었다.

하여 계속해서 공격을 간파하고 회피하던 나는 숲의 공격에 한 가지 당연한 규칙이 있음을 파악했다.

이 거인은 저가 다칠 방향으로는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요컨대 숲이 가하는 모든 공격들은, 저를 이루는 일부에 맞을 우려가 없거나, 혹은 빗나가더라도 물방울을 감속시킬 공간적 여백이 존재하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의 기화폭발을 쓰지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터.

그렇다면 회피하긴 더 쉽지.

요령을 파악한 내가 계속해서 공격이 까다로운 위치를 점유하자, 전율하는 거인도 이 패턴을 학습했는지 사냥의 방식을 바꾸었다.

갑자기 확 넓어지는 통상시야의 시계(視界). 한순간에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라진 안개는 숲의 그늘을 흐르는 수십 갈래의 물줄기들을 빚어냈다. 이 급격한 변화에 따라, 안개가 사라진 자리엔 고지대의 냉기가 칼바람처럼 몰아쳐 내려온다. 수직으로 부는 바람이 옷자락을 아래로 펄럭이게 만들었다.

‘익사라도 시킬 작정인가?’

내 마력장이 미치는 범위를 통째로 침수시키려면 수량(水量)이 많이 모자라 보이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난 숲이 저의 거대한 회로에 연계기로 장전하는 또 다른 술식을 확인하곤 헛웃음을 머금었다. 대체 이 거인이 얼마만큼의 경험을 쌓았기에 이렇듯 체계적인 응용을 해내는가 싶어서.

숲이 장전한 술식의 정체는 방전. 원시마법 수준에서는 중장거리 정밀유도가 불가능한 술식이다. 그러나 전율하는 거인은 좌르르르 갈라지는 물줄기들을 피뢰도선 겸 접지선으로 삼아 스스로를 보호하며, 물줄기 사이에 흘리는 무제한적인 방전으로 광역공격을 가할 작정이었다. 일정 범위를 모조리 뒤덮어버릴 강렬한 번개의 그물.

청백색의 전광이 눈을 찌르는 찰나, 나는 물줄기보다 훨씬 더 많은 갈래의 이온화 도파관 채널들을 빚어 주변 공간에 그물망처럼 도배해버렸다.

파즈즈즈-!

내 살을 핥으려 들던 창백한 방전의 줄기들이 전하를 띠게 된 공기 채널을 따라 땅으로 내리꽂힌다. 이렇듯 공기를 이온화하여 전도성 높은 채널을 형성하는 건, 본디 마법적으로 빚어낸 전류를 유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보조적인 술식이었다. 보통의 경우 기본 술식에 결합하여 사용하는 플러그인 코드라고 표현해도 무방하겠지.

이는 수연 녀석이 단순한 공기절연파괴 이상의 방전을 해내도록 만들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격의 차이가 현격할지언정 원리 자체는 동일한.

줄기차게 벼락의 폭포를 쏟아내던 숲은, 내 마력장이 지워지지 않자 한참 만에야 공격을 중단했다. 귀를 아프게 만들던 굉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숲에는 다시 밀도 높은 정적이 내려앉는다. 삐이- 울리는 이명도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연막처럼 밀려온 안개가 침습했던 냉기를 빠르게 몰아낸다.

「-」

처음과 같은 탐색이 다시 한 번 진행된다. 묘하게 출렁이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 겪는 입장에선 마치 거인의 뱃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어찌 보면 이 느낌이 현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건 전율하는 거인 전체의 의지가 아닐 테니까. 다만 식물 특유의 분산된 인지 네트워크가 국소적으로 반응하고 있을 따름.

인간이라고 해서 장기의 운동이나 생체적 화학작용 따위를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상대하는 거인의 일부는 일정 수준의 지성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오류가 많을 현상이긴 하겠지만.

만약 전율하는 거인 전체가 나를 적으로 인식했다면-

‘대마법사고 나발이고, 일찌감치 시체가 되어있어야 정상이겠지.’

힘은 기교를 상쇄한다. 막대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공격에 저항할 재간이 있기나 할까?

그러나 물리적으로 분산되어있는 식물의 지능은, 정말로 특별한 상황과 조건이 아니고선 통합된 의지로서 작용하기 어려울 터.

현시점에서 거인이 보유한 인지 네트워크는 한쪽 끝으로부터 반대쪽 끝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데에만 최소 150초 이상의 딜레이가 생길 만큼 거대한 것이다. 집중된 인지구조를 보유한 인간으로선 구체적인 작용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낯선 형태의 지성이라 하겠다.

‘이거 즐겁군…….’

예전보다 훨씬 더 정갈하게 다듬어진 숲의 회로를 관측하고, 회로에 흐르는 술식운용을 탐구하여 코드를 추출할 궁리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적인 만족감을 선사하는 경험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거인의 예민한 영역을 거닐며 술식의 운용을 관찰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킨 듯한 물에 대한 구속술식, 정교한 맛은 없으나 회로 점유율 대비 높은 효율을 보여주는 염동술식과 발화술식, 술식상에 존재하는 결함을 순전히 출력으로만 때워버리는 방전술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술식들을 구성하는 코드들은 구체적인 목적과 작용을 알 수 없는 다른 코드들과 한꺼번에 묶인 채로 작동하였으나, 전율하는 거인의 각성 초기에 봐둔 회로의 구조도, 그리고 재작년에 얻은 난해한 코드 뭉치를 두고두고 궁구한 보람이 있어, 어떻게든 청사진을 엿보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난날 내게 좌절감을 선사했을 때보다 훨씬 더 명료해진 맛이 있어 의문이 남는다. 뭐랄까, 의미 불명인 정크 코드와 그렇지 않은 코드들의 분화-또는 계통 정리-가 이루어졌다는 느낌. 이는 단순히 회로 운용의 최적화가 진척된 결과로 봐야 할까?

여하튼 재작년 겨울의 실망감을 기억하는 입장에선 다시 먼 걸음을 하는 데 얼마간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균사의 왕국에선 또 어떤 수확들이 기다리고 있을는지. 그 거대한 버섯 역시 전율하는 거인과 같은 길을 걸어왔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바이올린 케이스의 겉면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사지(死地)에 얽힌 마법을 시험하던 나는, 안개에 서서히 늦은 오후의 색채가 섞여들 무렵, 땀으로 목욕을 한 꼴이 되어 안전한 장소에 발을 디뎠다.

안전한 장소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안전함에 불과했지만.

「-」

숲의 마력장이 다시금 탐색 패턴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번 탐색은 나를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내가 마력장을 적당한 반경으로 축소해놓은 탓. 이 위치에서 숲의 탐색은 해상도가 높지 못했다. 유효하게 작동하는 회로의 밀도가 낮은 장소인 까닭이었다. 회로가 곧 영적인 감각기관으로 기능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

나는 부러진 고목의 그루터기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허기가 진다.

탐험가의 식사는 호사스러울 수가 없다. 배낭에서 꺼낸 압축식량을 염동력으로 분쇄한 나는, 안개를 끌어모아 만든 청수(淸水)의 구체에 그 가루를 섞어 마력을 태우는 불로 가열하기 시작했다. 가하는 열이 강력했으므로, 구체는 금세 끓어오르는 죽으로 변모했다. 딱딱한 압축식량을 그나마 먹을 만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 모든 수분이 완전한 통제하에 있고 식량 자체도 무향에 가까웠으므로 새어나가는 냄새는 극히 미미하다.

별도의 식기 따윈 불필요했다. 죽이 된 구체를 염동력으로 조금씩 나누어 먹으며, 눈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인간의 유해들을 응시한다.

부서진 텐트 주변에 다섯 사람분의 유골이 중구난방으로 깨어져 흩어져있는 현장은, 전율하는 거인이 제 뱃속으로 들어온 인간들을 포식하고 남긴 흔적일 것이었다. 살점 하나 없이 뼈만 남은 유골을 보면 사후로부터 적잖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아직 빛이 바래지 않은 텐트 원단과 작은 성조기, 그리고 벌겋게 녹이 슬긴 했어도 발포 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는 총화기 등은 탐험가들의 집단 몰살이 최근에 벌어진 사건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쪽으로 와서 숙영을 했다면, 적어도 다음 날 뜨는 해는 볼 수 있었을 것을. 저쪽에 존재하는 거인의 감각은 밀도가 미묘하게 더 높은 편이었다.

텐트를 치고서 봉변을 당한 걸 보건대, 저기서 죽은 각성자들의 마력장은 저기 깔려있는 거인의 감각에 걸릴락 말락 한 수준이었을 터였다. 탐험가들은 당장의 반응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했겠지. 캠프를 설치해도 좋을 장소를 발견한 듯하다고. 그리고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이곳의 좌표만 가지고 돌아가도 적잖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전율하는 거인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결국엔 저들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녹아있는 고깃덩어리들의 존재를.

전율하는 거인이 과연 살아있는 동물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질적인 마력장이 느껴질 때, 그 마력장이 꺼져 들어갈 때까지 공격을 가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은 양의 양분을 얻을 수 있더라……. 딱 이 정도의 경험적 학습에 따른 사냥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애초에 공격이나 사냥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상태일 가능성도 있고.

이전에도 언젠가 숙고한 바, 동물과 식물 사이엔 그 정도의 간극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의 인지적인 간극이.

식사를 마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그 공간굴절이라는 걸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

전율하는 거인이 드물게 사용한다는 공간굴절은 「장엄한 황금의 책」에 기재되어있지 않은 낯선 형태의 마법이었다.

어쩌면 원탁이 「황금기의 정수」로부터 비슷한 종류의 지혜를 추출해내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스승새끼의 기억 속, 이제는 스승새끼에게 살해당하고 없는 「왼쪽 눈의 사서」가, 언젠가 정수를 들여다보던 중 비슷한 종류의 영감을 포착한 적이 있다고 했었으니.

그러나 정수의 안쪽을 들여다볼 열쇠인 「눈」 두 짝이 모두 나에게 있으므로 희박하기 짝이 없는 가능성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귀에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인적인 위력의 수성(水性) 산탄 소나기가 지형지물을 두드려 만들어내는 잔잔한 진동.

누군가가 또 숲에게 잡아먹히려는 참이구나, 라고 가벼이 넘기기도 잠시.

나는 진동과 소음의 근원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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