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02화 (202/561)

#23. ⅮⅩⅭⅥ (1)

본사를 수연 녀석에게 맡겨둔 나는, 4월 2일, 미국 유타의 오래된 포플러 클러스터와 다시 마주했다.

1년 3개월여 만에 재회한 「전율하는 거인」은 그 사이 자신의 면적을 2천 7백 에이커까지 넓혀놓은 상태였다. 처음 보았을 때에 비하면 스물다섯 배 이상 팽창한 셈.

안개 자욱한 숲 주변지역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통상시야로는 채 10미터 앞을 보기 힘든 안개 속에서 함박눈처럼 흩날리는 하얀 꽃가루 덩어리들. 정확하게는 꽃가루가 아니라 거인의 씨앗을 품은 종자솜털이라 해야겠지만, 어쨌든 시각적으로는 꽃가루에 더 가깝다. 숲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눅눅하게 뭉쳐진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거대한 파도로 화하여 수십 겹의 커튼처럼 물결친다.

번식은 생명의 원초적인 방향성이었다.

「인류의 적을 불태워라!」

불태워라, 불태워라!

군사기지가 위치한 방향으로부터 아스라이 들려오는 시위대의 외침.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스피커의 출력이 높아 여기까지 메아리가 울린다. 이렇듯 인류의 명운을 건 성전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있는 반면, 다른 쪽엔 전율하는 거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숲의 신도들도 존재했다.

여기에 각종 연구단체들과 환경단체들, 거지꼴을 한 히피들, 사이비에 가까운 유사과학 단체들, 관광객들, 자연의 기를 모으고자 태평양을 건너온 중국의 도사들, 검고 누런 피부의 주술사들, 정부 의뢰를 수행하는 각성능력자 헌터 및 패스파인더들에 이르기까지.

거인의 영지와 접한 경계지대는 재작년보다 한층 더 혼잡해진 오만 잡것들의 시장바닥이 되어있었다. 따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내 대적들의 감시능력이 과부하상태에 이를 환경.

“안녕하세요. 당신도 숲의 순례자이십니까?”

숲으로 다가가는 길에 마주친 사내가 미소를 곁들인 인사와 함께 던지는 물음. 사내는 아들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생김새가 꼭 닮아 누가 보더라도 혈연임을 알 것이었다. 나이는 대충 십 대 중반쯤일까?

나는 대충 무난한 답을 골랐다.

“뭐, 그냥 구경이나 하러 왔습니다.”

이 일대를 배회하는 인간들이 워낙에 많아, 도보로 숲에 접근한다 치면 어느 경로를 이용하더라도 이 같은 불의의 마주침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사람을 적게 마주칠 경로에 이 사내와 아이가 있었던 것.

“그러시군요. 이곳은 처음이신가요?”

대충 “좋은 하루 되십시오.” 하고 스쳐지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숲으로 향하는 사내는 가는 방향이 겹치는 김에 나를 말동무로 삼고 싶은 모양이었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배낭을 멘 여행객들이 초면에 서로 말동무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니까. 이런 곳에선 일행을 늘릴수록 안전해지는 법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지.

수상한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나는 냉정하게 무시하거나 발걸음을 재촉하는 대신 무난하고 특색 없는 답변을 이어갔다.

“이 주변이 이렇게 되고 나서는 처음이라고 해두지요.”

“숲의 세례를 받으러 오신 건 아니고요?”

“세례요?”

“그 왜, 있잖습니까. 거인의 숲 주변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가끔 숲의 선택을 받아 기적을 경험한다는 소문. 그걸 다들 숲의 세례라고 표현하더군요. 초능력을 얻었다는 사람도 있고, 불치병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고…….”

“듣고 보니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괜히 말을 붙인다 싶었는데,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더하고 싶은 불안한 심리의 발로였던가 보다. 묵묵히 제 아빠를 따라 걷는 창백한 소년의 체내엔 난치병의 색채가 완연했다. 혈관에 흐르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양이 정상인에 비해 아득하게 많다. 사람을 서서히 죽여 가는 종류의 혈액암이었다.

백혈병은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그러니 상식적으로는 숲의 기적에 기댈 게 아니라 병원을 찾아가야 마땅할 일이겠지만-

‘여기는 미국이지. 웬만한 사람은 아플 때 그대로 죽는 편이 나은 나라.’

미국인의 파산원인 1위가 바로 의료비 지출이다. 백혈병이면 치료비가 가뿐히 억 단위를 넘어갈 텐데,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병든 자식과 더불어 이곳을 찾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확실치도 않은 소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서.

이 남자가 소문으로 들었다는 기적은 필시 비정제 마력에 피폭당하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 각성자들의 경험담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경험담은 생존자 편향의 오류로 범벅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으니까.

아들과 함께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다면, 이 이름 모를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들의 내장엔 이미 자그마한 불사암 덩어리가 자리를 잡았다. 반대로 아버지 쪽은 영혼의 회로가 개방될 기미가 보인다. 이는 안개 속을 하루 이틀 걸어서 생길 법한 일이 아니었다. 어긋난 기대를 품고 성실하게 산보를 다닌 나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는지.

“오, 이런. 벌써 여기라니.”

동행하던 사내가 발걸음을 멈춘다. 안개 속에 서있는 경고 표지판 때문이었다.

「위험. 접근금지. 이곳은 치안행정이 제한되는 구역(No-go zone)입니다.」

「표지판 설치일(12.27.20) 기준, 현 위치에서 숲의 경계까지 1마일.」

표지판 뒤쪽으로는 기나긴 윤형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불 따위를 덮고 넘어간 흔적들이 많아 차단선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기야 거창한 장벽을 지어서 뭣하겠는가. 오래지 않아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하는 압도적인 질량의 거인에게 집어삼켜지고 말 것을. 재작년에도 한창 거인을 저지할 도랑을 판다 어쩐다 난리를 쳤지만, 그 모든 공사의 흔적들은 일찌감치 거인의 왕국에 파묻힌 지 오래다.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광신도들이 운 좋게 안전한 탐사경로를 찾아낼 가능성도 있겠고.’

기나긴 숲의 경계 전체에 걸쳐 감시망을 구축하기는 곤란하다. 설령 인력이나 드론으로 순찰을 돌린다 한들, 짙은 안개는 순찰의 효율을 극단적으로 떨어트릴 터. 그러니 정부로선 출입을 통제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다. 여차할 때 써먹을 변명거리나 만들어두자는 심산이겠지.

가정집 프린터로 뽑은 듯한 「순례자를 위한 거인의 숲 안내지도」를 살피던 사내는, 이내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혹시 이보다 더 안으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쪽은?”

“으음.”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진다. 사내가 든 지도는 이 너머 멀지 않은 곳에 ‘교전현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인신의 사도들」을 자칭하는 광신도 민병대 집단이 숲으로 진입하려던 각성능력자 패스파인더들에게 매복 공격을 가한 장소. 혹자는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숲의 마력에 홀린 결과라고 떠들기도 했다.

그러므로 멋모르는 이들은 충분히 불길하게 여길 법한 장소다. 숲의 저주를 받아 안개 속을 떠도는 망자의 영혼을 보았다느니 하는 헛소문까지 도는 마당.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자, 잠깐.”

망설이던 사내가 혹을 떼어내려던 나를 붙잡는다. 정말이지, 귀찮게 구는군. 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둘 다 죽여서 숲속에 던져버릴까?’

비록 내가 지금 위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흔적 지우기에 관한 강박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토록 시계(視界)가 제한되는 환경에서 귀찮게 달라붙는 인간에겐 살인멸구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하물며 그 인간이 품속에 총기를 은닉하고 있음에야.

이해는 간다. 이 부근의 치안이 좋다고 할 순 없고, 또 야생의 각성체와 조우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우니까. 자식을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라면 자위용 총기 하나쯤은 가지고 다녀야 정상이겠지. 신뢰성 높은 콜트 리볼버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소 낡았어도 관리가 꽤 잘 되어있는 물건이었다.

나는 비합리적인 충동을 억누르며 사내를 돌아보았다. 사내의 체내에선 아드레날린 분비량이 소폭 증가했으나, 이는 단순히 긴장의 증거일 뿐 공격의 전조는 아니었다.

“뭔가 더 용건이 있습니까?”

“잠시 둘만 좀…….”

자식을 두고 5미터쯤 거리를 벌린 아버지는, 어렵고도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서, 내게 자그마한 소리로 속삭이듯 부탁했다.

“저기, 혹시 뭐라도 먹을 것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눠주실 수 없겠습니까?”

“……음식을?”

“예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시겠지만, 요즘 먹거리 물가가 워낙 비싸지 않습니까? 저야 끼니를 좀 거르거나 불사암 덩어리 같은 걸 뜯어먹어도 상관이 없는데, 자식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건 아버지로서 너무도 견디기가 어려운 일이라……. 염치없지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휴대한 식량이 있기는 하다. 이는 사흘간의 단독 탐사를 위해 준비한 것. 일정상의 필요량을 초과하는 여분이 있긴 하나, 이 여분은 전투상황 발생 시 열량을 보충할 수단이었다. 즉 쓸데없이 낭비해도 좋을 식량 따윈 없다.

그러나.

‘아버지라…….’

비굴하게 웃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동전을 던지는 심정으로 나답지 않은 변덕을 한 번 부려보기로 했다.

“그러지요.”

“정말입니까?”

나는 먼저 무기와 탄약이 들어있는 방탄소재 바이올린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다음으로는 배낭을 벗어 바닥에 두고, 식량이 들어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크게 열어보였다. 이는 식량보다는 동그랗게 돌돌 말아 여백에 쑤셔 박은 현금 뭉치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비상시를 대비한 도피용 자금을.

“받으십시오.”

내가 건넨 것은 성인 남성의 하루치 필요열량과 비타민, 필수 무기질 일체를 제공하는 5백 그램짜리 압축식량 한 팩. 내 연민을 구걸했던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식량을 받아들었다. 난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딘가 많이 불편해보이시는군요. 괜찮은 겁니까?”

“아, 아니, 아뇨. 괜찮습니다.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감신경의 흥분도가 급격히 높아진 사내는, 핏기가 진해진 이마를 식은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입이 마르는지 자꾸만 혀로 입술을 적신다. 거칠어지는 호흡은 깊어지는 갈등의 징후일 터. 짐을 다시 챙긴 내가 재차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그럼 여기까지로군요.”

“예.”

“이제 가보시죠. 아드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혹시 제게 다른 용무라도 있으신지?”

“음, 그것이…….”

뜸을 들이던 사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힘겨운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께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선 사내는 도망치듯 서두르는 걸음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병든 아들을 데리고 안개 속으로 나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은 인간이로군.

관심을 거둔 나는 가벼운 도약으로 철조망을 뛰어넘었다. 철조망 안쪽에도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많았기에, 숲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는 계속해서 구부러지는 곡선의 연속이었다.

이쯤이면 슬슬 마력장을 전개해도 괜찮겠지.

내 마력장이 닿을 범위 내에 몇몇 각성능력자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어중이떠중이의 수준으로는 거인의 장악력과 대마법사가 발휘하는 장악력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숲의 마력장이 좀 흔들리는구나, 정도로 느끼는 게 고작일 테지.

내가 최대로 전개한 마력장의 반경은 이상적인 환경에서 펼쳤을 때에 비해 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숲의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건 덤이었다. 난 마력장에 가해지는 거대한 압력, 회로의 정밀함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할 출력의 격차를 느끼며 생각했다.

‘역시 혼자 오기를 잘했어.’

평범한 비각성자 관광객의 신분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사전 항공정찰을 실시해본 결과, 전율하는 거인은 이제 제 영혼에 새겨진 회로의 3할가량을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회로의 거대한 흐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던지.

그 3할만으로, 거인의 숲은 아마존을 능가하는 세계 최흉의 마경으로 거듭났다.

염동, 발화, 발광, 방전, 생명, 그리고 물 이외의 물질로 영역이 넓어진 마법적 구속력과 제한적인 공간굴절에 이르기까지. 외부에 공개된 탐사결과만 모아놓아도, 전율하는 거인은 이미 신으로 숭배받기에 손색이 없는 세계최강의 자연 각성체였다.

이 살아 숨쉬는 마경의 안쪽에선 내 지식과 능력으로도 부하들의 생존을 백 퍼센트 보장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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