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멸공의 횃불 (10)
신규 정책의 모범사례를 만들기 위한 한국정부의 행정은 3월의 마지막 월요일에 결실을 거두었다.
「대한민국 제1호 공능법인 「개마(鎧馬)」 출범 기념식」
이런 현수막이 걸린 컨벤션 홀엔 정부와 여야의 고위관계자들이 모여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에 얼굴을 비추는 중이었다. 모두가 웃는 낯짝이긴 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여당 쪽은 진심으로 웃고 있는 반면 야당 쪽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는 기색들이었다.
후자의 아쉬움은 단순했다.
‘어깃장을 놓고 싶었겠지.’
공능법인, 정식 명칭으로 특수공인능력법인이라 함은 민간 헌터들이 비공식적으로 클랜이니 길드이니 하던 것들의 제도적 양성화였다. 실질적으로는 한국형 각성능력자 민병대 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
대통령이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 후 채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결과물이 나온 셈이니, 속도전도 이만한 속도전이 다시없다 하겠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과반여당의 추진력에 바탕을 둔 이 속도전은, 날로 심화되어가는 안보위협도 위협도 위협이지만, 그 이상으로 내월 초에 치를 예정인 보궐선거를 더 의식한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서울과 부산 두 도시의 시장직이 궐위상태가 되어버린 터라, 일반적인 보궐선거와 다르게 내년 대선의 전초전쯤이 되어버린 행사.
야당으로선 여당이 하는 일에 재를 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랬다간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 시국이었다. 영웅들에 대한 포상을 지연시키는 꼴이 되어버리는 게 첫째요, 국민들의 생활안전은 뒷전이고 정치적 이권투쟁만 우선한다는 인상을 줘버릴 게 둘째다.
특히 생활안전 대책 마련은 정치인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이든, 도시권 이외의 선거구에서 활동하는 자들의 정치생명과 지지율 보전을 위해서이든. 여기서 대국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연달아 악재로 작용할 것이었다.
「개마」라는 법인명은 경태가 제안했다. 개마무사의 앞쪽 두 글자를 따오자고.
“여기서는 국뽕을 자극할 이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형님.”
“국뽕이라는 건 뭐냐?”
“아, 그게 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유행어 같은 건데 말입니다-”
이어지는 경태의 설명을 들어보건대 국뽕이란 쇼비니즘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요컨대 대중의 맹목적인 애국심을 지지기반으로 깔아두자는 취지의 작명이었던 것.
“한자표기는 다르지만 북한에 개마고원이 있기도 하니, 이름만 들으면 혹시 이게 그건가? 할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네이밍이 아닐까 싶은데요. 뭐랄까, 북진 운운하는 부류에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좋은 인상을 주겠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을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무난한 제안이었기에 나는 그러라고 허락을 내주었다. 이게 고작 이틀 전의 일. 그날 접수한 서류가 어제 통과되어 오늘 발족행사를 치르는 상황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수준으로 신속한 행정 처리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부 각료들과 여야의 국회의원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신 31인의 보국수훈자 여러분. 저는, 오늘이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날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연단에 선 대통령은 의례적인 연설로 기념식의 막을 열었다.
「우리는 그동안 과거와의 결별을 겪어왔습니다. 과거의 일상, 과거의 상식, 과거의 평화와 과거의 풍요. 그리고 과거가 되어버린 지난날의 질서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갈라놓은 이래,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리운 것들의 빈자리에서, 우리는 미지로 가득한 어둠 속을 더듬고 또 더듬으며 힘겹게 나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나아온 한 걸음 한 걸음은 바르게 나아가는 걸음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옆으로도 걸었고 뒤로도 걸었습니다. 저는 우리 정부의 행보가 국민안전의 횡보와 국민인권의 퇴보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의 영웅들은 놀라운 용기와 비범한 헌신으로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바른길을 밝혀주었습니다.」
「이는 많은 국난을 자발적인 민중의 힘으로 극복해왔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그 저력을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하다. 나는 이어지는 연설을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이쯤 되었으면 누가 되었든 쉽게 판을 엎을 엄두는 못 내겠지.’
조직 전반의 보안태세를 강화하고 적극적인 예방조치를 취해온 결과, 잠재적 위험성을 경계했던 어느 경로로도 조직의 실체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간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부가 내 애들을 정책적 모범사례로 끌어올렸으니, 적어도 경찰이나 안보지원사령부의 뒷조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현 정권과 정면으로 척을 질 각오를 해야 하니까. 대중의 반감도 고려해야 할 테고.
물론 조직의 보안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고비는 넘긴 셈이므로, 최고결정권자인 내가 조직 본사에 붙박이로 붙어 추이를 지켜볼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불가피하게 웅크리고 있던 기간이 길었다. 이젠 슬슬 행동의 자유를 회복해야 할 때. 내가 부재할 본사에는 수연 녀석을 회장대행으로 남겨두면 족할 것이다.
흘려듣던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사회를 맡은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차례를 진행했다.
「이어서 훈장수여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수여대상자분들께서는 연단 위로 올라와주시기 바랍니다. 병환으로 불참하신 한 분의 훈장과 감사패는 공능법인 「개마」의 대표이신 공혁수 엽사님께서 대신 받아주시도록 하겠습니다.」
병환으로 불참하신 한 분이란, 집무실에 앉아 행사 진행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나를 이름이다. 위장신분에 실리콘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라도 얼굴과 체격이 팔려서 좋을 게 없기에, 행사장에는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애들만이 나가있다.
전염병 방역이 한창인 시기여서 다들 방역용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정치인과 욕심 많은 언론인들이 경우가 아닌 요구를 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 기념비적인 날에 좋은 사진 한 장쯤은 뽑아놔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통령과 내 부하들이 마주서자 사회자가 재차 입을 연다.
「공능법인 「개마」의 대표 공혁수 이사님께선 다섯 단계의 보국상훈 중 네 번째인 보국훈장 삼일장을, 나머지 팀원분들께선 한 단계 아래인 광복장을 받게 되셨습니다.」
「훈장증. 특수공인능력법인 「개마」 대표 공 혁 수. 귀하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엽사로서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남파공작원 다수를 제압, 공공안보의 증진에 이바지한 바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내 부하들에게 차례차례 훈장증을 건네고 훈장을 수여한 대통령은, 내친김에 ‘대한민국 제1호 감독관’들까지 임명했다. 군·경의 신고센터와 연동되는 연락망을 구축하는 한편, 화기를 보유한 민간 헌터들의 활동을 감독하며, 상황에 따라 헌터들에게 확장된 시민체포권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할 인력.
「임명장. 경감 송혜령. 위 사람을 공능법인 개마의 파견대장으로 임명함. 2021년…….」
군 소속이 넷에 경찰 소속이 넷인 이 인력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절반씩이었다. 군경의 현장대응능력 강화가 뜨거운 화두일 수밖에 없는 요즘, 공무원 성비균형 맞추기를 치적으로 삼는 현 정권의 입장에서, 공능법인 파견감독관직은 비각성자 직업군인 및 경관들의 자리 만들어주기는 기본이고 성비균형을 보전하는 데도 보탬이 될 수단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여기서 찍는 영상과 사진 몇 장으로 지지층 결집에 힘을 실어보려는 거겠지. 표팔이 딴따라들의 속내에 그 이상의 고상함이 있을 리 있나.
나야 남자든 여자든 이용해먹기 좋은 인간이면 그만이지만.
「다음으로 총기 전달식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이제껏 총기 보관함을 지키며 서있던 일반병들이 거치대에서 소총을 꺼내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정면으로 나섰다. 이를 지도하는 건 조금 전 임명된 군 소속의 감독관들이었다. 지도라고 해봐야 방송용 보여주기식 행사의 역할분배일 뿐이지만.
“총기번호 14967113! 14967113! 총기확인 이상 무!”
내 부하들과 마주보며 횡대로 나란히 선 병사들이 차례차례 총기번호를 복창한다. 개중 하나가 총을 떨어뜨릴 뻔하자 지켜보던 장교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잠깐 새 이마가 반들거리게 된 병사는, 내 부하에게 뻣뻣한 움직임으로 탄창이 없는 소총을 건네주었다. 구체적인 탄약 불출 및 관리계획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안다. 당분간은 보관함 속 장식품이나 다름없을 총이라는 뜻.
소총은 모두 국군 제식이었다. 장차 자격을 갖춘 민간 엽사들이 제식이 아닌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줄 예정이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유사시 군사적 동원 가능성을 고려하여 제식소총은 한 사람당 하나씩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군수보급의 편의성을 위해선 장비가 통일되어 있어야 이상적인 까닭이었다.
여기에 추가로 모든 총기에 적용 가능한 총기용 블랙박스를 개발한다는데, 이는 기존에 경찰용으로 개발해둔 스마트 리볼버 전자모듈이 있기에 현실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터였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어도.
「마지막으로 기아자동차의 민수용 오프로드 전술차량 기증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군수의 국산화 및 자주국방에 기여해온 기아자동차에서는, 국가안보에 기여한 바가 큰 공능법인 개마에 4대의 신형 전술방호차량을 기증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를 대표하여 참석해주신 김종원 부사장 겸 홍보실장님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에, 낮은 밀도로 객석을 채운 좌중이 의례적인 박수갈채로 호응한다. 자리에서 일어선 기아자동차 부사장은 방향을 바꿔가며 허리를 숙였다.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간다. 바뀐 화면이 비추는 곳, 컨벤션 홀 한쪽엔 환한 조명 아래 군과는 다른 패턴으로 위장색이 들어간 전술차량 네 대가 장식품처럼 서있었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빚어낸 쇼였다.
우선은 기업. 기업이 원하는 바는 당연히 시장선점과 그에 따르는 이익일 것이다. 고위험 수렵에 종사할 헌터들에게 자사의 방호차량을 팔아 판매고를 올리는 것. 대한민국 제1호 공능법인의 전술차량쯤 되면 광고효과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헌터들의 입에서 호평이 나온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 기아자동차가 기증품 한정으로 무기한·무제한 품질보증 및 정기 출장점검을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었다.
다음으로 정부. 정부가 얻을 이익은 하나가 아니다. 전술차량의 민수전환을 허용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여 조달단가를 낮출 수 있겠고, 판매량 증가에 비례하는 세수확보가 가능할 것이며, 헌터들을 군사적으로 동원해야하는 상황에서 정비·운용 효율성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으리라.
식이 무난하게 끝날 듯했으므로, 난 생중계 화면으로부터 관심을 거두었다.
“후…….”
짧게 숨을 내쉬며 내려다보는 책상 위엔 마력으로 키우다 만 분재 하나가 놓여있었다. 키우다 말았다고는 하나, 조금만 더 디테일을 갖춰주면 완성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단계. 생명술식으로 인위적 생장을 유도하며 영양액으로 양분을 공급하는 단순한 가공법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그럴듯한 생김새의 분재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밑동에서 갈라지는 두 개의 줄기. 굵은 줄기는 둥글고 풍성한 수관을 형성했고, 작은 줄기는 반대로 뻗어나가 공간감을 더하는 한 획이 되어주었다. 일본풍 소우칸(双幹)으로 모양을 잡은 이 분재는 일상적인 술식 수련의 방편인 동시에 야쿠자 두목에게 보낼 선물이기도 했다.
받을 사람은 「로쿠다이메 야마구치구미(六代目山口組)」의 구미쵸(組長).
모양이 잘 잡힌 분재의 거래가는 기본 수십만 달러를 호가한다. 단순히 금전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자금세탁과 자산은닉에도 탁월한 수단. 정치인에게 줄 뇌물로 이만큼 적합한 것도 얼마 없지. 역추적을 통해 내 존재가 노출될 확률이 낮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즉각적으로 현금화를 할 법한 물건이 아니니까.
이런 걸 대여섯 개쯤 만들어 건네주면, 야마구치구미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줄 정도는 될 것이다. 야마구치구미의 보스는 건강문제로 사퇴한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와 동향사람이라, 자민당과의 커넥션이 공고한 인간이었다.
그 영향력을 빌려 내가 얻고자하는 바는 세토 내해의 비밀스러운 정박지 다수.
혼슈, 큐슈, 시코쿠 사이의 바다인 세토 내해는, 지형 특성상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조류가 매우 강한 편이다. 이런 바다에 체급 가벼운 잠수정을 보낸다 치면, 자칫 강한 물살에 휩쓸려 엉뚱한 곳으로 표류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내가 잠수정을 보내고자 하는 섬은 근처에 크고 작은 섬들 다수가 포진하여 물길이 좁아지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그러니 가급적 잠수정 초도함이 진수되기 전에, 표류와 난파에 대비한 피난처를 여러 곳 확보해두어야 바람직하겠지.
어쩌면 그저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를 걱정.
그러나 싸우기 전에 승리를 확정짓는 장수야말로 최고의 장수이고, 위험에 대비하지 않는 지도자에겐 사고를 일으키는 부하를 책망할 자격이 없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