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멸공의 횃불 (7)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고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봄은, 인류에게 찾아온 원시마법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계절이었다. 기초적인 생체강화가 충분히 무르익어 또 다른 마법에 눈을 뜨는 능력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급격함에는 물론 그간 2차 각성 사실을 숨기고 있던 신중한 능력자들의 지분도 있을 것이었다. 남들에게는 없는, 혹은 있어도 극도로 희귀한 능력을 가졌다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가진 자의 신변을 위협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랬던 것이, 이제는 비슷한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더 이상 예전처럼 감춰야할 동기가 사라진 상황.
내가 손수 회로를 열어준 부하들 중에서는 이중능력 보유자의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치솟았다. 회로를 설계할 때 이른 각성보다 최적화와 잠재력, 그리고 안정성을 우선으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바깥의 평균치보다 아홉 배가량이나 높은 비율이었다.
2차 각성 당시엔 경태보다 한발 늦었던 수연은, 3월 중순 들어 염동력 구사가 가능해지면서 부하들 중 최초의 삼중능력 보유자로 거듭났다.
그렇다고 해서 경태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은 아니었다.
“보이십니까, 형님?”
방화복 차림으로 발화술식의 열기에 장시간 노출된 탓에, 또 수련을 한답시고 긴 시간 동안 마력회로를 혹사한 탓에 땀으로 목욕을 한 꼴이 되어버린 경태는, 까만 차광보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는, 타임워치를 들어 보이며 칭찬을 바라는 개처럼 나를 응시했다.
“9초 88! 이젠 철괴 하나 녹이는 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습니다.”
경태의 말대로, 마력을 태워 불을 지피던 화로엔 시뻘겋게 달아오른 쇳물이 고여 있을 따름이었다. 두꺼운 벽돌처럼 생긴 순철괴를 불과 몇 호흡 만에 녹여버렸다는 건, 경태가 쓰는 불의 최고온도가 철의 녹는점인 1,538도를 한참이나 웃돌게 되었다는 뜻.
높은 온도가 반드시 높은 전투력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불을 다루는 능력자라고 하여 화염의 열기에 면역이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 그럼에도, 최고온도의 높고 낮음은 능력의 크고 작음과 성장추이를 가늠하는 지표로 삼기에 적합했다.
나는 경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수고했다. 성장세가 좋구나.”
“하하.”
담담한 칭찬에도 좋아라 하는 경태 녀석.
경태가 땀을 닦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가 버리면 많이 서운하겠습니다.”
“흠?”
“이제 와서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긴 합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막연한 익숙함이니까요. 시간적으론 겨우 1년하고도 몇 개월쯤 흘렀을 뿐이고.”
“……그렇지.”
끄덕이긴 했지만, 내가 느낄 아쉬움은 경태의 서운함과 궤가 다른 감정일 것이다.
‘런던으로 가는 길이 끊어지면, 그 끝없는 불면의 밤이 다시 찾아올 텐데.’
평범한 밤을 누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요즘도 그리 잘 자는 편은 못되겠지만, 그럼에도 30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놓고 누워야 하던 시절에 비해선 정말로 많이 나아진 게 아닌가. 이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실감으로 말미암은 변화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가피한 투쟁에 대한 시각이 작년 이맘때와는 제법 달라진 이유였다.
서서히 식어가는 쇳물 옆에 털썩 주저앉은 경태가, 눈으로는 수연이 하는 훈련을 구경하며 묻는다.
“형님. 제가 마소 범람의 원인에 대해 머리를 좀 굴려봤는데 말입니다.”
“음?”
“그거, 혹시 저 런던의 원탁이 뭔가를 했다거나 한 건 아닐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전 세계에 걸쳐 마소의 밀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리는 건 신적인 존재나 발휘할 법한 권능이었다.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이 정녕 그러한 힘을 얻었다면, 세계는 결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가 없었다.
마법의 시대가 재래한 원인에 관해선 나도 가끔 한 번씩 궁구를 해보긴 한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연스레 떠올라 의식의 가장자리를 맴돌곤 하는 화두였으므로. 난 그간의 사색들을 느리게 곱씹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지만, 재작년의 겨울을 기점으로 지구가 모종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흐름이요?”
“그래. 별들의 공허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마소의 흐름에.”
이는 마소가 암흑물질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의 연장선상에서 세워본 가설이었다.
이 우주엔 무엇 하나 멈춰있는 것이 없다. 지구도, 태양계도, 그리고 태양계가 속한 은하까지도. 그러니 새까만 공허 속을 항해하던 별들이 우주적인 규모로 흐르는 마소의 지류에 잠기는 일도 일어날 법하겠지.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는 가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화두는 몰두할 때마다 까마득한 허무함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그냥 그렇게 알아둬라. 어차피 큰 의미는 없으니.”
“옙.”
불의의 사건으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느라 본사에 발이 묶인 요즘, 나는 마법사로서의 실력을 배양하고 부하들의 성장을 꾀하는 데 전보다 배 이상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원시마법의 단련을 지도해주는 나는, 일반적인 신체단련으로 비유하자면 근육의 피로와 내구한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해가며 가르치는 트레이너와 같았다.
평범한 능력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려면 회로파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이르기까지 위험한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가파른 절벽 위에 선 귀머거리 장님이, 자신의 앞에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와 들리지 않는 파도가 있음을 알면서도, 몸을 뒤흔드는 강풍 속에 고르지 못한 땅 위를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레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 감독을 받는 부하들은 그런 위험부담 없이 언제나 최선의 강도와 방법과 횟수로 반복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엔 여기에 마력회로의 작용을 도식화하여 보여주는 과정을 추가했다. 발화술식의 열선(熱線)으로 회로구조를 그려내고, 열선에 흐르는 빛의 세기로 마력의 강약을 표현하는 방식. 회로의 피로한계는 색채의 변화로 나타낸다.
부하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여 시작하긴 하였으되, 당사자들이 체감하는 도움의 정도는 내 기대를 명백히 웃도는 듯했다.
이를 처음 경험할 당시 수연의 감상이 이러했다.
“제 회로에 마력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군요……. 구조와 흐름 모두, 감각으로 느끼던 것과 많이 다른 느낌이 듭니다.”
마소와 마력의 흐름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회로구조를 인지하는 것은 마법사의 기본적인 자기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기본이지 쉬운 일은 아니다. 회로배열이 난잡할수록 구조 이해의 어려움이 커지고, 마력의 흐름이 복잡해질수록 마력을 느끼는 감각 그 자체가 한계에 부대끼게 되는 탓. 결국 이 또한 회로의 연산능력과 제어능력에 비례하는 것이었다.
고로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자연각성능력자들의 능력 사용은 해보니까 되더라는 식의 막연한 회로운용에 기초한다. 자신의 회로구조를 뚜렷하게 인지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회로배열이 일체의 낭비 없이 최적화된 내 측근들조차 자기 회로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는 마당이니, 다른 각성자들의 사정이야 볼 것도 없이 뻔하지.
애완견을 다루듯 경태의 머리를 헝클어놓고 수연에게 다가간 나는, 턱짓으로 하던 연습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수연은 염동과 전기의 동시사용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접지선을 늘어뜨린 다수의 금속 구슬을 띄워놓고, 각각의 구슬에 서로 다른 궤도와 속도의 순환운동을 부여한 뒤, 각각의 구슬을 표적으로 삼아 손끝에서 시작되는 방전을 유도하는 것.
능력의 강약을 떠나, 마력운용의 정교함만을 평가한다면 원시마법의 극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
“…….”
지도에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수연은 허공에 빛과 열로 그려지는 자신의 회로운용을 참고하여 묵묵히 단련을 이어나갔다. 이미 내가 가르친 모범답안을 숙지한 상태에서, 그 답안에 가깝게 실천을 바로잡아가는 과정.
내 마력장의 범위 내에서 부하들이 훈련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내가 부하들이 발휘하는 장악력을 용인해주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대마법사의 배려가 없다면, 부하들은 지난날 「대통령」 앞의 내가 그러했듯 마력장의 위축과 그에 따른 마력 부족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었다.
‘능력의 발현도, 성장하는 속도도 모두 예상 밖이란 말이지.’
생체강화 다음으로 얻은 능력이 전기였던 것부터가 의외였던 수연은, 이제 회로운용의 정밀함으로 내 예상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타고난 자질의 뛰어남이나 본인의 노력만으로 설명 가능한 결과가 아니다. 황금기의 눈을 가진 대마법사의 지도가 그만큼 효과적이라는 방증이라 봐야겠지.
이렇게까지 공들여 육성할 수 있는 전력의 규모엔 한계가 뚜렷하다. 고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속이 쓰릴 귀중한 인적자산들이었다. 들어가는 공에 비례하여 애착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근래 들어 들기 시작한 자그마한 의심 하나.
과연 나는, 필요할 때, 이 녀석들을 냉정하게 잘라버릴 수 있을까?
‘버려야지.’
조직은 내 생존을 위한 도구이며, 조직에 속한 부하들도 마찬가지이다. 목숨을 빚 지워 목숨으로 돌려받는 계약은 궁극적으로 ‘내’ 목숨을 확보하기 위한 것. 도구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에 노출된다면, 주객전도도 그만한 주객전도가 다시없을 터였다.
이런 걸 보면 결국은 나도 인간이다. 끊임없이 비효율적이고 감정적인 결함에 노출되는 불완전한 생존기계. 이 같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부단한 자기성찰과 채찍질 외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형님?”
수연의 부름에 부단히 흐르던 상념이 끊어진다.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
“예.”
잠시 말뜻을 헤매던 나는, 내가 빛으로 그려내던 마력의 흐름이 정지화면처럼 멈춰있음을 깨달았다. 수연은 자신의 마력운용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멈추었나 싶었을 것이었다.
“아니,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을 뿐이야.”
“……피로하시다면 이만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남은 훈련시간은 저희들만으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고 있던 생각이 생각이라, 평소처럼 담담하게 걱정하는 말을 들으니 못내 불편한 심정이 든다. 실시간으로 겪는 또 하나의 감정적 결함이었다. 단호한 대답을 듣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수연은, 예,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의식적으로 사고의 방향을 비틀었다.
「처음엔 억양이 좀 특이한 양키들인 줄로만 알았지.」
예의 그 거래, 카르텔 소유였던 압류자산을 매각하는 일로 어젯밤 내게 다시 연락을 해온 마르띠네즈 제독은, 용건을 마친 통화의 말미에 사소하다면 사소할 항구의 근황을 덧붙였다.
「하지만 아니더군.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온 포주들이었소.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가난한 나라의 여자들을 싼값에 후려치러 온 노예상인들이었단 말이오.」
이것 자체만으로는 그리 특별한 일이 못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노예상인들의 국적이 영국이라는 데 주목했다.
“오직 여자뿐입니까?”
「뭐요?」
“그들이 사가는 게 오직 여자뿐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오?」
당연한 게 아니다. 상품으로 취급할 가치가 있는 여자는 희소성이 높은 상품이라, 서로 경쟁하는 상인들에겐 보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줄 다른 상품들이 필요한 까닭. 매춘시장에선 어린 소년들도 마니아층의 수요가 있고, 나이가 찬 사내들은 약에 중독시키거나 장기간 두들겨 패서 정신을 무너뜨리면 그만인 노동력이었다.
상인들의 국적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도 수상했다.
난 인형술사를 살해한 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 홍콩 남쪽의 바다에서, 인형술사가 타고 있던 거대 크루즈선의 객실은 둥관식 서비스에 종사하던 매춘부들로 가득했었다. 나는 그 많은 여자들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겼으나, 여자들을 모은 이유가 무엇이든, 인형술사 본인이 죽어버린 이상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여자들을 필요로 했던 게 인형술사 개인이 아니었다면?’
빛과 진리의 원탁이 각성 여부와 무관하게 성별이 여자인 실험체를 긁어모으는 중이라면, 그 목적이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던 나는 이렇게 부탁했다.
“제독. 그 상인들에 관한 정보를 꾸준히 모아주십시오.”
「뒤를 밟아달라는 거요?」
“아닙니다. 일부러 조사하실 것까진 없지만, 귀에 들어오는 소식이 있으면 모아서 제게 전해달라는 뜻입니다.”
「한낱 포주들에게 왜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구려.」
이렇게 미심쩍어하면서도, 제독은 내 부탁을 선선히 받아주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제독에게 더 깊은 조사를 부탁하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원탁의 끄나풀일 경우, 제독이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부탁을 한 나까지 꼬리를 밟힐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제독에게 원탁의 존재와 실체를 알려주고서 주의를 당부할 수도 없는 노릇.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야 할 상황이 된다면, 멋모르는 제독에게 부탁하기보다 동종업계의 노예상인들에게 선을 대어 간접적으로 알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