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멸공의 횃불 (6)
“그러고 보면 강중성 도지사 쪽도 쵸큼 불안요소가 있지 않습니까?”
경태의 말에 난 까딱 끄덕여 긍정했다.
“다른 업무들로 바빠 되새김질 따위 할 겨를이 없었으면 좋겠다만, 그렇게 성실한 인간은 아니니까.”
그 포퓰리스트는 일찍이 의정홍보용 촬영팀을 끌고 내 앞마당의 문을 두드렸었다. 비록 내게 언쟁으로 밀려 그날의 영상이 어딘가에 올라가진 않았으되, 시기적으로 오래 지난 일이 아니므로 기록된 영상 자체는 고스란히 남아있을 공산이 컸다.
당시 도지사의 앞길을 가로막은 건 조직 행동타격대의 1군으로서 조직 본사의 기동경비를 담당하는 녀석들이었다. 고로 해당 영상은 내가 고용한 엽사집단의 규모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 내 부하들이 얼굴의 반절씩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좋은 장비로 기록된 영상은 보이는 것 이상의 정보들을 품고 있으니까. 하다못해 단순히 음성분석만 돌려도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공비사냥꾼」들과는 다른 인적구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겠지.
그러면, 단지 겉으로 드러난 규모만으로도, 도지사가 보는 나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낭비하는 수상쩍은 재력가가 되는 셈이다.
그게 그저 찜찜함에 불과한 의구심이라 한들, 도지사쯤 되는 고위공직자의 의구심이라면 나 같은 사람에겐 달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요즘은 폐쇄성 강한 사이비 종교단체들이 많고 그 종교단체들이 꾸리는 엽사조직도 많으니, 혹시 여기에 신흥 사이비종교가 똬리를 틀었나 하는 엉뚱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이렇듯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경태가 어깨를 으쓱였다.
“형님. 그냥 단순하게 가시죠.”
“어떻게?”
“누군가 트집을 잡고 싶어도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게끔 판을 키우는 겁니다. 애국이랑 반공 마케팅에 올인 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있는 대로 다 끌어모으면, 누가 의혹을 제기하더라도 우리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파묻어주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영웅을 좋아하니까요. 정치가들은 지들끼리 싸우느라 바빠질 거고요.”
“흠…….”
“그렇잖아도 이번에 노출된 애들한테 온갖 인간들이 추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특히 야당 쪽에서 적극적이던걸요? 이번 이슈를 선거까지 끌고 가고 싶은 거죠. 이 기회에 본사 부근을 공식적인 차원에서 우리 조직의 앞마당처럼 만들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나라고 이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떠오른, 그리고 사실상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대응방안이 이것이었지.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어 외통수로 두는 한 수인지라 마음에 들질 않는 것이다.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유일한 선택지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드는 거지. 사업가로서, 그리고 사냥감으로서 상황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건 언제라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
“수연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미련이 담긴 내 물음에 수연은 조용히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있는 열쇠를 얼마나 잘 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가.”
경태가 히죽 웃는다.
“간만에 본사 홍보실이 이름에 어울리는 일을 하게 해보시죠.”
조직 본사의 홍보실은 이름은 홍보실이지만 실제 업무는 홍보가 아닌 은폐였다. 언론계에 심어둔 조직 장학생들을 관리하고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여, 진실과 거짓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흩어놓음으로써 계열사들의 알리바이를 확충하며 조직의 실체를 숨기는 데 기여하는 것.
“프로젝트 이름은 「멸공의 횃불」 어떻습니까?”
수연이 식은 시선으로 경태를 나무란다. 나는 그런 수연에게 재차 물었다.
“잘될 것 같으냐?”
“해내겠습니다.”
이렇게 단언할 정도면 믿고 맡겨도 좋을 것이다.
“그럼 해 봐.”
사업을 경영함에 있어서 잘못된 결정보다 해로운 것이 때늦은 결단이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허가를 내주었다.
비록 남파공작원들이 서울의 경계를 밟지 못한 채로 돌아가긴 했지만, 파주·동두천·양주·포천·의정부·고양시 일대를 무인지경으로 활보하며 담아간 영상 기록들은 그들이 말하는 ‘남반부 괴뢰도당’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재료였다.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는 유튜브를 위시한 동영상 호스팅 플랫폼들을 통해 근 백여 개에 달하는 비디오 로그들을 공개했다. 한국 정부는 이 영상들의 게시 및 확산을 차단코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론 노력에 비례하는 만큼의 망신을 추가로 얻었을 따름이었다.
하여 이 「무장공비 브이로그」 사건은 말 그대로 나라 전체를 뒤집어놓았다. 국내외의 언론이 연일 특집기사를 내보내는 가운데, 재액을 맞이한 정치권에선 유례가 없는 수준의 책임공방이 벌어졌다.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진화될 턱이 없는 불길인 것이다.
야당 측은 여권에 책임을 돌리며 현 정권의 정책 전반에 대한 공세를 전개했다.
「이번 일로 이 나라의 안보와 치안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초기대응은 둘째치고서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능력을 사용하는 민간 헌터들이 공적 영역의 능력자들보다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과연 우연의 소치이겠습니까?」
「그러게 우리 당이 뭐라고 요구했습니까? 공적 능력자 확충이니 뭐니 하는 헛수작 집어치우고, 최대한 빨리 미국 민병대 운영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감독관 파견하고! 총기 소지 확대하고! 시민체포권도 같이 확대 적용하고! 그 공산당스러운 고위험 수렵물 공공수매 정책도 때려치우고!」
「현 정부가 자유 벙어리, 인권 장님 소리 들어가며 능력자 관리정책에서 무리수만 둬온 결과가 이거예요! 공적 관리를 받는 능력자의 수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한다는 쓸데없는 고집이! 이번 참사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란 말입니다!」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말씀해보십시오. 안보? 이번 일로 수준이 나왔지요? 치안? 마찬가지로 이번 일로 바닥 아래의 바닥을 보여줬습니다! 신고를 받고도 안일하게 무시한 군과, 출동은커녕 신고자를 협박하기까지 한 경찰은 윗물을 보여주는 아랫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서울 집값은 올 들어 평균 177%나 올랐고, 식료품 물가는 반년 만에 92%가 올라서 쇼크 소리까지 나오고 있어요! 지방에선 각성체 유해조수들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안하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고! 이대로 가면 1년 내로 소멸하는 지자체가 팔십 개가 넘는다고 그래요, 팔십 개가! 기본 생활조차 불안한 판국에 농사라고 뭐 안심하고 지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강원도는 지금 완전히 고사하기 직전이라는 거 알아요?」
「정부는 뭐 격오지에서의 실종사건 급증이 대부분 엽사들의 소행일 거라고 하면서 민병대 모델에 부정적인데, 이건 사실상 민간 엽사들을, 죄도 없는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거지요? 유죄추정하는 거지요? 그렇지요?」
「통계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이 독선적인 범죄 정권,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여권에선 볼멘 항변이 튀어나왔다.
「안보가 위험하니까 더더욱 공공 능력자 풀을 확충해야지! 철책선 경비를 민간인들한테 맡기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뭡니까?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그런 식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국방을 용병에 기대서 망하지 않은 국가가 있기나 하냐 이거예요!」
「서울 집값도 그래요! 비도시권이 위험해지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권의 집값이 오르고, 그중에서도 제일 안전한 곳이 서울이라 서울의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르고 있는 건데! 군 소속 능력자들이 줄어 대민지원도 축소된다고 칩시다! 가뜩이나 예산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에서 무슨 돈으로 엽사들을 고용해가지고 그 공백을 메운단 말입니까?」
「해수구제 포상금 지급조차 긴급예산 편성으로 간신히 때우는 지자체들이 구십 프로, 무려 구십 프로를 넘어가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사육장 각성체 감별이나 농산물 창고관리처럼 사소한 작업에서조차 각성체를 골라낼 능력자들이 필요해요! 각성능력자 공익근무요원 공급이 끊어지면 그게 다 돈 나가는 구멍이 됩니다, 구멍이!」
「근데 여기서 각성체 공공수매 정책을 폐기한다 치면, 지방에 있는 지자체들은 앉아서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됩니까? 먹거리 물가는 더욱 개판이 나고 서민경제도 파탄이 나겠지요! 우리가 기어이 치킨 값 5만 원 시대를 열어야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은 공적 능력자 확충이야말로 유일한 답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번 브이로그 사태는 정책이 아직 충분히 집행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참사이지, 정책의 방향성이 잘못되어서 발생한 결과가 아닙니다!」
「야당측 주장처럼 미국 모델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간! 가장 기본적인 생활안전 측면에서도 지자체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게 뻔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뭐, 미국처럼 완전히 총기자유화라도 해버릴까요? 농민들 스스로 자위능력을 보유하도록? 진짜 그러길 바랍니까?」
「미국에서 올 들어 강력 범죄로 재판을 받은 능력자들 가운데 자칭 배X맨이 마흔다섯 명이고 원더X먼이 서른한 명이라고 그래요! 저는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 이 나라의 국방과 치안을 그토록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드는 데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여당의 항변엔 작금의 현실이 질박하게 녹아있었다.
‘그걸 오로지 강제노동 확대만으로 해결하려는 게 문제지.’
이런 상황에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내 부하들은 홍보실에서 내려오는 주문들을 어렵지 않게 소화해내었다.
우선은 보기 좋은 영웅행세.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죠. 보상금으로 얼마가 나오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하려고 합니다. 하하, 가급적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요즘 밥을 굶는 애들이 급격히 많아졌다던데……. 보상을 공작원들 머릿수로 쳐서 최대액수로 계산하면 한 사람당 20억씩 240억이지요? 그 돈이면 애들 밥 많이 먹일 수 있겠네요.」
「무섭지 않았느냐고요? 당연히 무서웠죠. 상대는 총을 들었고 우리는 활을 들었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헌터들은 언제나 비슷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무기들만 가지고 각성체 야생동물에게 맞서는 건, 뭐랄까,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 공작원들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위험할 수가 있거든요. 목숨을 건다는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거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솔직히 망설임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는데, 그래도 이건 여기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료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어서는 정책적 여론을 본사 방어 및 타격대 운용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그래도 좀 더 좋은 무기와 장비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기는 하죠. 동료들 중에 다친 사람이 나오지 않은 건 실력이 3에 운이 7이었다고 보거든요. 꼭 이번 일만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유해조수 사냥에서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국토가 좁고 식생이 제한적이라곤 해도, 고위험 수렵은 결국 고위험 수렵입니다.」
「집채만 한 각성체 멧돼지가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달려들 때, 활이나 투창만 들고 맞서는 기분이 어떤지 아십니까? 딱 한 번만 빗나가도 최소가 중상에 최대는 사망이에요. 하다못해 고라니를 상대로도 방심하기 어렵죠. 멧돼지보다 체급이 좀 가볍다뿐이지,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들이받히거나 뒷발질에 제대로 걷어차이기라도 하면 생명이 위험해지니까요. 껑충 뛰어서 포탄처럼 날아오는 꼴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은 각성체 고라니를 절대로 얕보지 못할 겁니다.」
「우리에겐 총이 필요합니다. 각성체에게도 먹힐 만큼 크고 강력한 총이.」
「차량도 체급이 가벼운 상용 차량으로는 영 위험하죠. 각성체 멧돼지가 들이받으면 곧바로 전복되거나 박살이 나버리거든요. 저 미국, 러시아, 호주, 프랑스 같은 나라들처럼, 정부 차원에서 튼튼한 전술차량이나 헬기 같은 것들을 대여해주면 좋겠어요. 예산이 부족하다면 뭐, 돈 주고 사서 쓸 수라도 있게 해주거나.」
「지금은 하다못해 보조 장비인 야시경조차 2세대까지만 수입 및 사용 허가가 난단 말이에요? 3세대는 증폭관이 수입제한품목이라 소지만으로도 처벌을 받죠. 근데 2세대는 밤에 그렇게 멀리까진 잘 안 보이거든요. 헌터들에게 중거리 이내에서의 야간사냥을 강요하는 겁니다. 아무리 안보를 위해서라지만 좀 너무한다 싶어요.」
「옆에 일본만 해도 헌터들이 캐나다 경유로 3세대를 수입해서 써먹는데, 이게 성능지수로는 몇백 점씩 차이가 난다고 그러거든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미국이 아니라 일본 쪽 취업시장을 알아보는 엽사들도 많고…….」
마지막으로는 위정자들의 불난 집에 새로운 불을 질러주기.
「각성체 사냥은 헌터들의 팀웍이 아주 중요합니다. 누구나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해줘야 다치는 사람 없이 안전하게 사냥을 끝낼 수 있죠. 근데 정부 방침대로라면 조만간 팀이 해체되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 왜 있잖습니까. 앞으로는 엽사 자격을 얻으려면 군 복무 경력이 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리 팀엔 가정환경 때문에 군대를 못 간 친구가 있어요. 그놈의 ‘과도기적 허용’인지 뭔지가 없어지면 팀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겠죠. 1 더하기 1을 3으로 만드는 전문가들을 굳이 서로 떨어진 1로 나누어놓을 이유가 있는 걸까요?」
「정치권에서는 민간인들에게 안보를 맡겨도 되느냐 아니냐로 싸우고들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님, 안보라는 게 뭔가요? 국민의 안전보장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벌써 안보에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비도 잡고, 각성체도 잡고.」
「그냥 우리에게 맡기면 잘 해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터들이 너무 거칠어서 문제라고 하는데, 환경이 열악하면 사람도 거칠어진다는 생각은 못하는가 봅니다. 처우부터 개선을 해줘야죠. 지금처럼 구태의연한 규제들로 발목을 잡고 위험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그,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책임 미루기를 좀 그만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젠 국민을 위한, 그리고 우리 엽사들을 위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