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멸공의 횃불 (5)
포획을 완료한 후, 사냥에 참여했던 부하들은 싸움터의 흔적을 정리하고는 후속으로 도착한 2군 인력과 교대하여 조직 본사로 복귀했다.
다 끝난 싸움에 2군 인력을 불러들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조직의 최정예가 국내에 발이 묶여선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 운신의 폭이 제한될 게 뻔하지 않은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귀찮은 관심들이 따라붙을 터인데.
지난날, 수연은 나와 조직의 주요 인력들이 이 나라의 애국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조언했었다. 향후 단순히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적인 영향력과 외교력의 도움을 받아야 할 지역 및 각성체들이 늘어날 테니, 그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인 명성과 실적을 쌓아둘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지금으로선, 핵심전력을 노출시키기보다는 2군에 속한 예비전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나야 위장신분을 활용하여 일개 대원급으로 이름을 올리면 무난할 듯하고. 어차피 국가로부터 받는 의뢰는 개인이 아닌 법인 단위로 받을 것이니까.
본사를 나설 때부터, 나는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심산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의도한 바는 아닐지언정 챙길 수 있는 이익은 챙겨보도록 하자고.
신고를 접수한 관공서들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 무장공비 말씀이십니까? 간첩이 아니고요? 예? 무장인원으로 열둘이요?」
안보지원사령부에서 전화를 받은 건 당직근무를 서던 일개 사병이었다. 사병의 어눌한 대응에선 전문성이라는 게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민의 신고에 대한 대응 매뉴얼 자체가 없다는 느낌.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구색만 갖춰놓은 시스템임을 알겠다.
사건의 상세를 묻는 데만 더듬더듬 3분을 쓴 사병은, 마지막으로 신고자의 신원과 연락처를 확인하더니 이런 말로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 확인차 연락을 드릴 수도 있으니까 전화가 오면 받아주시고요……. 음, 그리고, 당직사령님께는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고에 감사드립니다.」
통화를 하던 부하가 나를 곁눈질하더니 짐짓 난감한 어조로 물었다.
“지금 산 채로 붙잡아놓고 있는데, 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다거나 언제쯤이면 출동을 할 것 같다, 이런 것도 없는 겁니까? 전부 다 부상이 깊어서 죽는 놈이 나올지도 모르는데요?”
「어,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권한이 있는 게 아니고요……. 아무튼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통화 종료하겠습니다.」
이걸로 끝이었다. 이후 10분을 기다려도 확인전화 따윈 걸려오지 않았다. 하기야 명백한 후방지역에서 국군으로 위장한 무장공비들이 무더기로 붙잡혔다고 하면, 그것도 붙잡은 게 활로 무장한 민간엽사들이라 하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 말라고 하겠지. 아마 당직사령 선에서 뭘 이런 걸 보고까지 올리느냐고 잘라버리지 않았을지.
이어 신고를 넣은 112 상황실은 보다 전문적인 대처를 보여주었다.
「선생님. 이런 장난전화를 너무 가볍게 보시는 것 같은데, 선생님께선 지금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계시는 겁니다. 형법 제137조를 보면요,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있거든요? 요즘은 옛날처럼 장난전화를 가볍게 넘어가주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하, 참……. 다 선생님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일단 경찰이 출동을 해버리면 더는 돌이킬 수가 없다니까요? 요즘은 죄질이 나쁘다 싶으면 초범도 징역을 때리는 거 모르십니까? 게다가 신고로 인해 경찰력이 심하게 낭비될 경우엔 형벌과 별개로 손해배상 청구까지 당하실 수가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현저하게 저해하신 거니까요.」
「이 시대에 무장공비라니,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지.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쌍팔년도도 아니고…….」
「K2 소총이랑 수류탄으로 무장한 각성능력자 열둘을 활이랑 화살만 가지고 잡으셨다고요? 그것도 생포까지? 그게 말이 됩니까? 소설도 그렇게 쓰면 욕먹어요.」
「아무래도 약주를 좀 드셨는가 본데, 없던 일로 해드릴 테니 댁으로 들어가 쉬시기 바랍니다. 이만 끊습니다.」
사실 이게 상식적인 반응이긴 했다. 침입자들의 정체를 파악했을 땐 당장 나부터가 황당함을 금치 못했으니.
“계속해서 걸어.”
부하에게 이렇게 지시해놓고, 나는 포박당한 사냥감들에게 최소한의 「생명」을 베풀었다. 마력장을 마음껏 전개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고대의 제례검까지 활용하니, 포로들의 마력장을 억압하여 바이탈 사인을 유지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부하가 같은 신고를 반복하여 귀찮게 굴자, 경찰은 마침내 순찰차 한 대를 내보냈다. 아마도 공비가 아니라 신고자를 잡으려고 출동시킨 인력일 터. 가까운 도로로 마중을 나간 부하는, 숲 안쪽이 위험하다며 들어오지 않으려 드는 두 경찰을 상대로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현장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현장을 목격한 경관들은 기절한 채 줄줄이 묶여있는 공비들을 보더니 이 사람들 국군 아니냐며 기겁을 했다. 이에 미리 녹음해놓은 대화를 들려주자, 이번엔 정말로 공비였느냐며 다시 한 번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는 입장에선 한 편의 희극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재밌네.
“어, 어떡하죠? 선배님?”
후배 경관이 발을 구르며 묻자, 딱히 나을 것도 없는 선임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긴 뭘 어째! 지원 요청해야지! 있는 인력 다 보내달라고!”
최초 신고로부터 거의 1시간이 지나서야 삐걱삐걱 작동하기 시작한 대응체계는, 그러나 새벽녘 동이 트고 여러 언론들이 특종의 냄새를 맡을 때까지도 추가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고와 포획에 앞서 뜸을 들인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사냥한 놈들로부터 경고를 전파받았을 다른 침투조들은, 뒤늦게 시작된 군경의 추적에 꼬리를 밟히는 일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사태의 대미를 장식한 건 연천군 북서쪽, 28사단 관할의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발생한 소규모의 총격전이었다.
교전이 소규모에 그친 것은 해당 지점에 배치된 남한 측의 병력이 적었던 탓이다. 현역자원을 바닥까지 긁어 경계임무에 투입한들, 기나긴 차단선의 병력밀도를 높이는 데엔 명백한 한계가 있었던 것.
하물며 막아야 할 것이 이중능력 보유자가 다수 포진한 북한의 최정예 각성능력자 집단임에야.
하여 한데 집결한 북한 특작조는 소수의 경계병들을 숫자와 이능과 화력으로 압도하며 순식간에 차단선을 돌파해버리고 말았다……. 라는 게 오전 중의 생방송으로 중계된 국방부 대변인의 긴급 브리핑이었다. 말로는 열세인 와중에도 경계 병력의 분투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나, 얄팍한 수사를 걷어내고 보면 사망자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일방적인 교전이었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이날, 내가 본사를 둔 나라에선 폭발적인 혼란이 들끓어 올랐다.
나 같은 범법자에게 광범위한 사회적 관심은 스트레스 그 자체다. 내게 비밀스러운 사업장이 얼마이고 숨겨놓은 상품과 자산은 또 얼마란 말인가. 내 손으로 공비들을 잡아 신고를 넣음으로써 최악의 전개를 회피했고, 2군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직접적인 노출을 피했으나, 최악을 차악으로 바꾸었을 뿐 상황 자체는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본사로 복귀한 수연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운이 나쁘면 이번 일로 국정원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벌써 감시와 도청을 시작했을지도 모르지요.”
마찬가지로 오후가 되어 느지막이 복귀한 경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걔들이 왜요? 왜 우리를?”
“인재유출을 막아야 하니까. 이번 사건 때문이 아니라, 해외로의 각성자 유출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스크 포스를 운영해왔을 가능성이 높아.”
“아.”
경태는 그러네, 하고 끄덕거렸다.
“하긴, 지금 이 나라가 개나 소나 다 찔러보는 국제 맛집 신세이긴 하죠……. 불법사찰이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겠네요. 입찰조건을 알아야 최소비용으로 붙잡아둘 수 있을 테니.”
“아니면 외교적으로 항의라도 해보거나.”
짧게 오가는 대화가 현 상황을 명료히 압축하고 있다. 미국이 앞장서서 들쑤셔놓은 한국의 ‘헌터 인력시장’은 이제 경제력이 좀 된다 싶은 나라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기웃대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바닥으로 변모했다. 깡패 같은 미국이 앞장서서 욕받이 노릇을 도맡아주고 있으니, 민간 업체를 내세워 조용히 영입제안을 뿌리는 정도라면 외교적인 부담도 별로 없는 것이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서 선진국들이 보여주었던 자국우선주의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현상이었다. 방역 및 의료용품들을 독점하고자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각축전을 벌였듯이, 야생의 각성체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마법적 재난에 대처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외교적 결례는 신경 쓸 바도 아닌 것이다. 국토가 넓고 야생이 풍부하여 당장의 위기대응이 급한 국가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한국 정부로서는 가용한 수단을 다 써보는 수밖에. 갈수록 더 늘어날 기미를 보이는 각성자 유출, 그리고 그에 따라 가중되는 사회적 불안과 나날이 커져만 가는 불만스러운 여론까지. 권도를 취할 이유는 얼마든지 넘쳐난다.
‘들통난다 한들 주류 여론의 역풍이 그렇게까지 거세지도 않을 테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노라 해명하면, 타인의 인권보다 자신의 안위에 더 관심이 많은 부류는 미지근한 비판과 적극적인 지지 사이의 어딘가에서 현 정권의 힘이 되어줄 터.
소위 「공비헌터」랍시고 명성을 얻은 내 애들이 만에 하나라도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면, 그 후폭풍은 정치적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닐 것이다.
삽질을 자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일국의 첩보기관인 국정원, 이번 일로 체면이 상한 경찰과 군 안보지원사령부, 특종에 미친 언론, 인력수입을 맡은 외국기관 및 기업들의 배경조사, 개인방송을 한다고 설치는 각성자 유투버 나부랭이들, 흥미본위로 사설탐정 흉내를 내는 불특정다수의 인터넷 이용자들, 내 애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질시를 보내는 헌터들 등등. 잠재적 불안요소들을 떠오르는 대로 헤아려본 나는 한숨을 쉬며 수연을 응시했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조치했겠지만, 각 사업장의 보안과 내부단속을 다시 한 번 강화해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될지 모르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안 사고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내게 보고하도록. 사후승인으로 처리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가 모르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예.”
바싹 말라있는 숲에선 작은 불씨 하나가 삽시간에 거대한 화마로 몸을 불리듯이,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주 작은 보안 사고라도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거대한 도미노의 첫 번째 블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예컨대 저 유명한 「버닝썬 게이트」만 하더라도 시작은 단순한 폭행사건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초기대응만 잘했어도 간단히 묻을 수 있었을 일을, 저능아들이 병신 같은 대응을 일삼아 감당하기 힘든 대사건으로 키워놓은 경우다.
나는 그런 멍청이들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경찰이 뭔가 냄새를 맡은 기미는 없고?”
“북부청 장준구 차장에게 따로 선물을 보내두었습니다. 최소한 무방비하게 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표면적으로 나와 내 애들은 그저 공비를 사로잡은 공로자들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수사를 걱정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했다.
‘범죄 혐의로 옭아매는 것만큼 국내에 붙잡아두기 쉬운 방법도 없으니까.’
현재 고위험 수렵의 결과물을 정부와 지자체가 독점적으로 수매하는 이 나라에서, 각성체를 사냥하는 헌터들은 크고 작은 밀수꾼들과 선이 닿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도지사 강중성이만 해도 내 부하들을 보고서 곧장 밀수부터 의심하지 않았던가. 이만한 수의 헌터들을 고용하려면 그 돈이 얼마냐고 따지면서.
그러니 밀수 혐의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외국으로 갈 헌터들을 붙잡는 데 굳이 많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 사법거래의 일환으로 정부에 유리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기우가 아니라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무수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다. 여기에 대해선 다른 나라들이 인권 운운하며 간섭할 여지도 없다.
또한 경찰과 안보지원사령부는 나와 내 애들을 깎아내림으로써 망가진 체면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 게 가능하다. 정확하게는, 머리가 굳은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해야겠지. 여기엔 당연히 음험한 뒷조사가 뒤따를 테고.
한동안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이자, 공비 새끼들을 본 순간 내가 짜증부터 느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