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멸공의 횃불 (4)
잡념을 끊은 나는 강력한 활에 무거운 화살을 재었다. 마력회로의 처리능력을 생체강화에만 몰아주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더블 기네스의 장력을 품은 시위는 당기기가 조금 빡빡한 느낌이었다.
투학-!
처음으로 쏘아낸 살은 사냥감들의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아직은 미숙한 활잡이로서 탄도를 먼저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몸의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흐트러지는 조준에 눈살을 찌푸렸다.
‘반동이 상당한데…….’
4백 파운드, 181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력의 작용은 총기와는 다른 형태의 투박한 반동을 자아냈다. 디딤 발 없이 염동에만 의지하여 자세를 제어하는 사격이라, 지상에 단단히 발붙인 채 습사(習射)를 할 때와는 차이가 있기도 했다.
무게가 통상적인 고중량 화살(6백 그레인)의 두 배인 각성체 사냥용 화살은, 시위를 놓을 때마다 강맹하게 그어지고 사라지는 실선으로 화했다. 탄통을 넉넉하게 띄워놓고 여남은 발을 시험 삼아 쏘아보니 자세제어에서 조준에 이르는 감이 잡힌다. 탄착군을 확인한 나는 조준기에 달린 다섯 개의 트리튬 가늠자를 조정하여 거리에 따른 조준점을 맞춰놓았다. 가늠자 핀을 고정하고 있던 육각볼트들이 스스로 풀리고 스스로 움직여 스스로 다시 조여진다.
사실 그냥 다 죽여 버릴 거라면 이렇게 고생을 할 이유도 없었다. 화살을 쏘는 데 왜 굳이 활이 필요한가? 그냥 염동력을 실어 무더기로 투사해버리면 끝인 것을. 교전거리가 짧으니 낮은 명중률은 양적인 만회가 가능하고, 흔적만으로는 활을 써서 싸운 것처럼 보일 터였다. 현장조사를 나온 군경 합동조사단은 자동화기로 무장한 적들을 전근대적 투사병기로 때려잡은 엽사들의 실력에 감탄하겠지.
그저 살려서 잡으려니 일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잡것들의 진술에 수상한 정황이 포함되어선 곤란할 테니까.
“시작하자.”
마침내 준비를 마치고서 날리는 담담한 무전. 미리부터 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대기하던 부하들은 불과 반 호흡 만에 줄을 당겨 첫 살을 날려댔다.
“적습! 적습!”
방심하고 있던 무장공비들이 혼비백산하여 전투태세를 갖춘다. 기껏 참호를 파놓고선 담배를 물고 각진 모서리에 걸터앉아있던 놈은, 여러 겹의 수풀과 나뭇잎을 뚫고 날아든 투사체에 시작부터 머리통을 얻어맞았다. 떠억-! 중량화살의 촉이 방탄헬멧을 꿰뚫는 둔탁한 소음. 확장칼날(Expandable blade)을 내장한 기계식 브로드헤드 화살촉이 삽시간에 뼈를 깨고 들어가며 세 갈래의 칼날을 펼쳤다.
그 결과는 광범위한 뇌손상과 그로 인한 즉사.
부하들과 동시에 시위를 놓은 난, 담배를 문 채로 드러눕는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운도 나쁜 놈이로군.’
아무리 내가 조준점을 정해주었다 한들, 표적을 보지도 않고 쏘는 제압사격에 급소를 맞아 즉사하다니.
“아악! 아아아악!”
내가 쏜 표적은 무릎 아래를 부여잡은 채로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원래는 발목인대를 끊을 생각이었지만, 살짝 빗나가 종아리에 맞은 것도 나쁘진 않았다. 브로드헤드 촉이 근육을 끊어 운동능력을 파괴하긴 마찬가지였으니.
교전이 종료될 때까지 과다출혈로 죽지만 않으면 된다.
뭐, 죽어도 어쩔 수 없고. 반수만 생포해도 넉넉한 성과이지 않은가.
입사호에 웅크린 공비들은 급박한 와중에도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질러대는 소리의 성량이 소음기 끼운 총성만큼이나 크다.
“갑자기 이 무슨 란리야?! 어디서 갈겨대는지 본 동무 있나?!”
“모르가시오! 사방이 다 적임메!”
뚜두두두둣! 참호 밖으로 총만 내밀어 쏘는 대응사격은 무의미한 실탄 낭비에 지나지 앉았다. 아무리 무기의 차이가 있다지만, 내가 끌고나온 애들의 수가 군대 기준으로 두 개 중대에 달하니 빨갱이들이 머리를 들 엄두도 못 내는 게 정상. 매초마다 백여 대씩 꽂히는 중량화살의 폭우는 시각적인 면에선 중화기 제압사격보다 강렬한 맛이 있었다.
이 와중에 내가 쏘는 화살은 소나기에 더하는 물 한 방울처럼 은밀한 것이었다. 사정 모르고 보면 수백 발 중 우연히 꽂히는 한 발처럼 보일 따름.
그러므로 내가 도합 서른일곱 대를 쏘았을 때, 빨갱이들의 분대엔 자력으로 운신 가능한 이가 남아있질 않았다. 표적이 열둘인데 세 배 이상을 쏘아야 했던 건 순전히 내 미숙한 실력 탓이었고.
“그만. 사격 중지.”
교전이 실질적으로 종료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물론 합동조사단에겐 기습을 가하고도 10분 이상 교전을 벌였노라 둘러대야 할 것이다. 투입인원을 축소, 은폐하기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그저 잠깐의 뜸 들이기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빨갱이들은 조만간 의식이 오락가락한 상태가 될 테니까. 그런 상태에서 사로잡아 숨만 가늘게 붙여놓으면, 군경으로선 공비들이 증언하는 체감상의 교전시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겠지.
그 정도는 수상한 정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한층 더 그러하고.
한편으로 이 뜸들이기는 쓰러진 놈들이 다른 침투조들에게 경고를 전파할 여유를 주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려면, 이번 사건에서 군경이 뒤늦게라도 제 역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선 곤란하니까.
“끄흐으으으읍-!”
체온을 잃어가던 사냥감 하나가 탄창을 입에 물더니 다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낸다. 와작 찌그러지는 탄창과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억눌린 비명. 이미 날이 벌어진 기계식 브로드헤드 화살촉은 거꾸로 뽑기보단 그냥 관통시키다시피 빼는 쪽이 더 나았다.
이어 땅에 못 박힌 왼손 또한 화살깃 쪽으로 당겨 뽑은 이 사냥감은, 눈이 풀린 상태에서도 마법의 불을 일으켜 제 상처를 지져댔다.
“……!”
이번엔 차마 비명도 나오지 않는 모양. 산간의 바람에 단백질과 지방이 익는 고소한 냄새가 섞인다. 다른 고기를 구울 때와 다르지 않은 이 냄새는 인간 또한 먹이사슬에 속한 동물임을 알려주는 자그마한 증거였다.
이 애처로운 시도를 감상하던 나는 시위에 새로운 화살을 먹였다.
“동지, 정신 차리기요……! 동지!”
주영호 중사라 불렸던 빨갱이가 ‘소대장 동지’를 위해 새로운 불을 피워내는 순간, 나는 놈의 등판에 가늠자 발광점을 두고 릴리즈(Release)의 트리거를 눌렀다.
투웅-!
화살은 소리보다 많이 느린 투사체다. 하여 야생의 짐승들은 시위가 진동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뛰어 화살을 피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도르래를 쓰는 컴파운드 보우도 본디 위력증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발사소음을 줄이기 위해 탄생한 것. 활은 결코 조용한 무기가 아니다.
북한 전체에서 가려 뽑았을 각성능력자의 반사신경이 각성도 못한 야생동물보다 못할 린 없다. 팔 한 짝 다리 하나를 못 쓰는 병신이 몸을 굴려 화살을 피해낸 이유였다.
이것 봐라…….
아까는 나 이외에도 화살을 날려대는 사수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나 홀로 저격을 행한 것이다. 그러니 그 소리가 유난히 튈 수밖에. 하물며 사냥감이 각성자의 귀를 지녔음에야.
투웅, 퉁! 화살 두 대를 속사로 날리니 이제야 악! 하는 비명이 돌아온다. 한 대는 옆구리를 갈랐고 남은 한 대는 쇄골에 꽂혀 사냥감이 발광을 하도록 만들었다.
펼쳐진 칼날이 폐를 찢었으니 오래 살기는 글렀다. 아직 의식이 남아있는 소대장 놈이 이를 목격했기에 「생명」을 쓰기도 뭣하게 되었다.
그냥 첫 발을 얌전히 맞았으면 좋았을 것을. 필요한 건 목 위쪽이라, 척추를 끊어 반신마비를 만들어주고자 했을 뿐인데.
땅으로 내려오자 대기하던 부하가 고개를 숙인다. 경호실에서 경태의 수족 노릇을 수행하는 부장급 간부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장님. 다 끝난 겁니까?”
“좀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잡아오면 된다.”
“생포입니까?”
“그래야 나중이 편하겠지. 후속 팀은 오고 있나?”
“예. 앞으로 3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김경태 실장도 최대한 빨리 복귀하도록 하겠다는 전갈입니다.”
“경태 녀석은 일 다 보고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해.”
“알겠습니다.”
경태는 지금 잠시 본사 밖으로 나가있는 상태였다. 감찰실무의 책임자로서, 그리고 조직의 어느 누구도 범접치 못할 전적을 보유한 인간사냥 경력자로서 국제사업부의 1/4분기 인간사냥을 지도·감독·조율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사냥은 수익곡선의 기복이 극심한 사업이다. 특히 해외로 도주하여 잠적하는 데 성공한 사기꾼들을 찾아내는 일은, 하나하나가 다년간에 걸쳐 인력과 비용을 잡아먹는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버리기 십상. 그 프로젝트들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 따윈 없다. 투자 상품으로 치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상품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인 수익성은 우수한 편이지만, 같은 돈과 인력을 들인다면 그보다 더 나은 사업은 얼마든지 많다. 특히나 항상 빡빡한 일정과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밀수처는 정예인력의 추가 배치를 쌍수 들어 환영할 터.
그럼에도, 조직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인간사냥은 수익성과 무관하게 무게를 실어줘야 할 분야였다. 이 인간사냥이야말로 조직원들에게 조직의 보복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까닭이다.
조직을 배신한 자는 세상 어디에 숨더라도 안심하고 살아가지 못하리라는 암시.
그에 비하면 이 불법침입자들의 일은 딱히 중요한 사안도 아니다. 그냥 다소 어이없는 해프닝일 따름이지.
나는 공교롭게도 수연 녀석 또한 본사를 비운 상태임을 떠올렸다. 실질적인 조직의 2인자로서 날 대신하여 연초의 사업장 시찰을 나간 탓이다. 이러한 시찰은 멀리 뛰고 길게 달리기 전의 숨고르기와도 같은 절차였다.
‘두 녀석 모두 곁에 없기는 오랜만이로군.’
둘의 부재를 새삼스레 인지하니, 어쩐지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든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는 반성이 필요한 정신적 나태다. 나는 언제라도 혼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사람이니.
공비들의 바이탈 사인을 눈어림으로 지켜보던 나는, 가장 불운한 사냥감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야 까딱 손짓을 해보였다.
“가자.”
지시를 기다리던 부하들은, 민간 엽사들도 흔히 들고 다니는 방패를 앞세워 기민하게 전진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내 부하들의 접근을 알아차린 공비 일부가 필사적으로 소총 손잡이를 움켜쥔다.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가까스로 이쪽을 향하는 총구가 셋. 그러나.
티잉-!
1,200그레인 중량화살의 펀치력에 직격당한 총기들이 불티를 튀기며 나뒹군다. 활을 다루는 부하들의 실력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수준이었다. 온종일 전투훈련에만 매진하는 인력들이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합당하겠지.
총을 놓친 셋 중 하나가 입에 피를 물고 욕설을 내뱉는다.
“이, 남반부, 씩새리, 새끼들…….”
놈이 눈을 부릅뜨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발생했다. 앞서나가던 부하가 마력장의 흔들림을 감지하곤 반사적으로 방패에 경사를 먹였다. 쾅-! 충격파에 실린 힘을 흔들림 없이 흘려낸 부하는 그대로 전진하여 염동술사의 턱을 방패로 후려쳤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맞은 놈의 의식이 끊어진다. 원시마법을 곁들인 대련을 일상적으로 소화하는 내 부하들이, 조악한 염동력으로 빚어낸 공기 충격파 따위에 당할 리가 있나.
저항다운 저항은 이게 끝이었다.
“어마이…….”
누군가는 체념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같이…… 죽자……!”
또 다른 누군가는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동귀어진을 기도하려 든다. 허나 혈류량 부족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안전핀의 고리를 붙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부하가 달려들어 수류탄을 걷어차니, 좌절한 사냥감이 분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입사호 안쪽 벽에 기대어 가쁜 호흡을 허덕이던 ‘걱정위원장 동무’는 극독의 색채가 일렁이는 앰플을 꺼내어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쥐는 힘이 부족하여 툭 떨어지고 마는 앰플. 이에 걱정위원장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몸을 쓰러트리더니, 버르적버르적 움직인 끝에 앰플을 주변의 흙과 함께 씹어 삼켜버렸다. 그러고는 비장한 눈으로 참호 위의 나를 올려다본다. 네가 날 산 채로 잡아갈 순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
태연하게 손 놓고 보기만 하는 내가 이상했던지, 걱정위원장의 표정에 찰나의 의아함이 스친다.
‘명색이 공비인데, 한 놈쯤은 음독자살을 해줘야지.’
그래야 여러 사람 보기에 그림이 좋지 않겠나. 불법침입자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었으므로, 나는 거품을 물고 몸을 뒤트는 걱정위원장이 신경마비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