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94화 (194/561)

#22. 멸공의 횃불 (3)

모르는 척 보내준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빨갱이 새끼들이 무슨 속셈으로 남하했는지는 몰라도, 놈들이 목적을 달성한 다음엔 필연적으로 인근지역의 군경이 총출동하여 빨갱이들의 흔적을 찾으려 들 테니까. 만약 교전이라도 벌어진다면 그보다 더 나쁜 상황도 드물 터.

사건의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의 첨병들이 내 사유지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꼴을 보느니, 침입자들을 산 채로 붙잡아 간첩신고로 넘겨주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야 진술을 확보한 군경이 수색범위를 동선 주변으로만 한정지을 게 아닌가.

하다못해 지금 보이는 놈들이 휴전선을 넘어온 전부라면 좋았을 것이다. 모조리 죽이고 묻어서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므로.

허나 미리 파둔 참호의 수로 미루어, 별개로 움직이는 분대급의 침투조가 적어도 셋은 더 존재하는 듯하니, 결국 사건을 조용히 묻어버리기도 불가능한 선택지가 되어버린다. 그랬다간 오히려 사라진 놈들을 찾겠다고 더 철저한 수색이 진행될 게 아닌가.

‘조직에서 보훈유공자들이 쏟아지게 생겼군.’

나는 어이가 없는 심정으로 때아닌 인간사냥에 나섰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동화기를 사용할 순 없었다. 어디까지나 야간엽행에 나선 민간 엽사들이 수상한 자들을 발견, 추적 끝에 교전을 벌여 체포하는 상황을 연출해야 하기에.

교전도 무턱대고 시작하긴 곤란하다. 공비 새끼들이 진술하기를 우리가 다짜고짜 선공을 가했다고 한다면, 군경은 우리를 두고 경쟁자 제거를 일삼는 양아치 헌터 집단이라 의심할 터.

헌터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고려할 때, 그리고 산야(山野)에서 발생하는 실종사건의 끝 모를 증가추세를 고려할 때, 우리 조직은 표창을 받기는커녕 잠복수사와 감시의 표적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빌미를 찾아야 한다.

고로 내가 부하들에게 챙기도록 지시한 장비엔 집음기와 녹음기 세트가 포함되었다. 일반 헌터들이 충분히 지니고 다닐 법한 물건들 중에서 채증에 필요한 도구를 골라낸 결과다.

거리에 따른 소리의 세기는 평균적으로 백 미터가 멀어질 때마다 40데시벨 가량 감소한다. 사람의 일상적인 대화가 40데시벨 이상 60데시벨 이하의 범위에 속하므로, 백 미터의 간격을 두면 배경소음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조차 그 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것. 소리를 듣더라도 ‘저 사람들이 뭔가 말을 하고 있구나.’ 정도가 한계다. 설령 듣는 이가 청각 예민한 각성자라 한들, 배경소음이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그러니 가청거리를 세 배 이상 늘려주는 집음기는 상황에 따라 헌터들에게도 요긴한 물건이 된다. 소프트웨어 보정을 더하면 백 미터 밖의 대화라도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으니,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많고 감각을 교란하는 마력장도 많은 숲에선 탐색 및 위협감지용으로 제격인 것이다.

‘결국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니.’

엽행에 나선 헌터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강력한 각성체 따위가 아니다. 무기를 든 동업자 집단이지.

하여 헌터 집단의 길라잡이들 사이에선 집음기 휴대가 유행처럼 번졌다. 조폭들이 나와바리를 두고 다투듯 사냥꾼들도 사냥터를 두고 갈등을 빚는 일이 잦으니, 상대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해야 집단의 생존성을 제고할 수 있다.

현장에 도착하여 부하들의 매복상태를 점검한 나는, 식사준비가 한창인 놈들에게로 파라볼릭 안테나를 겨냥했다.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중간에 끼는 장애물이 최소화되는 자리를 잡자, 곧바로 귀에 들어오는 대화가 이러했다

「준비를 하긴 했지만, 여기서 실제로 싸움을 벌일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거 8.3 새끼 걱정도 많다. 재수 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처먹으라. 여기까지 헐하게 내려왔으면 반쯤 락착을 본 거나 마찬가지인데 싸움은 무슨 놈의 싸움이간? 우리가 무슨 테로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분대장 동지, 너무 성내지 마시요. 걱정위원장 동무가 위원장 노릇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잖습니까.」

「거 어찌 그럽니까? 가장 어려운 고비가 남았는데 당연히 걱정을 해야 정상 아닙니까?」

「고비? 무슨 고비?」

「음식점 들어가서 음식 시켜먹고 먹는 거 록화해서 나오는 마지막 임무 말입니다.」

「그게 왜 고비야? 들어가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다 숙지하지 않았니? 그 유투브인지 뭔지 하는 걸로다가. 옷도 갈아입을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숙지를 했어도, 거기서 일하는 접대원 동무들이 보기엔 뭔가 수상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신고가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가기 어려울 겁니다.」

「나 참, 그럴 일 없다니까. 여차하면 새터민이라고 꽝포 놓으면 된다 하지 않았니. 너는 임무 도중 처녀들 얼굴에 홀려 자유주의나 하지 말라. 남조선의 예쁜 처녀들은 다 얼굴에 그림을 그린 위장술이라고 하니까는.」

분대장이라는 인간의 농담 섞인 핀잔에 낄낄거리는 웃음이 흐른다.

‘미친놈들인가?’

휴전선 철책을 넘어온 놈들이라기엔 긴장감이 없어도 지나치게 없다. 평균 이상으로 강한 힘을 지닌 각성능력자들의 교만이라고 봐야 할까?

말하는 걸로 봐선 이제까지의 침투가 굉장히 쉬웠던 모양인데, 여기에 각성능력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자신감과 선민의식을 더하면 저들의 편안함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삼각대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세팅한 놈들이, 마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듯 화면을 보면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남조선의 동포 여러분.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527 특작대의 리두철 소위가 인사드립니다. 오늘이 벌써 남조선으로 내려오고서 3일째가 되는 날인데요, 래일이면 아마 서울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실 때쯤이면 우리는 벌써 북으로 돌아간 다음이겠지요. 하하!」

「자, 오늘은 남조선에서 사냥한 메돼지 고기로 식사를 할 것입니다. 각성체 메돼지는 과연 어떤 맛이 나는지, 직접 먹어보고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굽기는 여기 주영호 중사가 맡겠습니다. 중사, 손 한 번 흔들어주지?」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야경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날거리가 꽤나 맑지요? 저어기 LH라고 적힌 아파트들이 있군요. 불빛이 밝고 사이사이 거님길이 깔린 게 아주 보기 좋습니다.」

「비록 남조선이 미제에 굽석대며 붙어살이를 해서 잘 사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보니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공화국에서도 평양 바깥의 밤이 저렇게 밝아질 날이 와야 할 텐데, 우리민족의 원쑤 미제의 탄압과 이간질이 그치질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살다 살다 별 해괴한 꼴을 다 보겠군. 개소리 엿듣기는 이 정도면 됐다. 뭔 의도에서 내려왔는지도 알 만하고.

녹음을 종료한 나는 집음기를 부하에게 넘겨주었다. 부하는 녹음된 파일을 즉시 본사로 전송했다. 이렇게 증거를 확보했으니, 사냥을 개시한 경위를 오랜 진술로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20억짜리 사냥감으로 보였다고 하면 조사단도 납득하겠지. 포상금을 두당으로 쳐줄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조금 더 높게.”

나는 부하들의 배치를 조정하는 동시에 대략적인 조준점까지 정해주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시야가 있으므로, 부하의 뒤에 서서 눈동자와 조준기의 트리튬 발광점이 이루는 직선을 직접 봐가며 조준점을 고쳐줄 수 있는 것이다. 수풀과 이파리들을 꿰뚫는 불투명한 사격을 위한 사전준비다.

“천천히 왼쪽으로. 멈춰. 너무 갔다. 그래, 거기.”

부하들이나 나나 들고 나온 무기는 활이었다. 고위험 수렵용으로 나온 기성품이므로 평균 장력이 2백 파운드(약 91킬로그램) 이상으로 맞춰져 있었다.

‘세간에선 이걸 「오버 기네스」라 부르던가.’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기 이전, 사람의 힘으로 당길 수 있었던 최대장력의 활이 바로 2백 파운드였다. 하여 이 2백 파운드는 기존 인류의 한계점으로서 「기네스 파운드」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이 한계를 넘어서는 장력은 「오버 기네스」라 하여 허세에 찌든 헌터들이 힘을 과시하는 하나의 지표로 기능하는 중이었다. 4백 파운드는 더블 기네스, 6백 파운드는 트리플 기네스라고 부르는 식이다.

말이 6백 파운드지, 트리플 기네스면 과거의 역도 최고기록(214킬로그램)보다 3할은 더 무거운 무게를 한 손으로 당겨내는 셈이었다. 이 나라에선 나와 경태, 그리고 경호실 일부 인원들을 제외하면 실전에서 가능한 자가 없을 터. 있다손 쳐도 한 자릿수를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포위망을 구성한 매복조 하나하나의 조준점을 잡아준 나는 모두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너희는 모두 속사에 전념해라. 제압사격을 한다는 느낌으로. 적이 접근을 시도하면 무조건 거리를 벌리도록.”

아무리 사격위치와 조준점을 미리 정해줬다 한들,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쏘는 화살이 명중할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내 부하들은 숙련된 사수조차 아니었다. 자동화기라면 그게 무엇이든 제 몸처럼 다룰 수 있겠으나, 활은 그렇지가 못하니까.

그러니 부하들의 역할은 제압으로 충분하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기초로 빨갱이 새끼들이 감히 머리를 내밀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기만 하면, 나는 미숙함 많은 활쏘기로도 느긋한 사냥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준비를 마친 나는 염동력으로 몸을 휘감아 낮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허전한 발아래에 어두운 수관(樹冠)들의 융단이 깔린다.

남파 공작원 놈들은 신체강화 이외의 다른 능력을 보유한 이중능력자가 여럿이었다. 개중엔 꽤 뛰어난 수준의 발화능력자도 있어, 미리 손질해놓은 커다란 고깃덩이를 내부에서부터의 발화로 익히는 중이었다. 고기가 질겨지지 않게끔 섬세하게 온도를 조절하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앞서 ‘분대장 동지’로부터 주영호 중사라 불렸던 놈이었다.

곧 닥쳐올 운명도 모르고, 모여 앉은 놈들이나 경계를 서는 놈들이나 태평하기 짝이 없는 꼴들이 우습다.

‘원탁 연놈들을 상대로도 이런 식의 사냥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것은 하늘에 뜬 채 저격으로 치고 빠지는 방식의 전투와 암살. 상대적 약자인 내겐 이보다 더 괜찮은 교전방식도 드물 터. 지금이야 활을 쓰느라 체공 고도가 낮지만, 중화기를 사용한다면 최대 수 킬로미터의 안전거리를 두고 화력을 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을 상대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인체의 레이더 반사면적은 유럽에서 만든 병신 전투기(유로파이터 타이푼)의 다섯 배 이상이다. 요컨대 전투기보다 다섯 배 더 선명하게 레이더에 잡힌다는 뜻.

난 일전에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을 쳐 죽일 때도 조기경보기의 존재를 경계했었다. 만약 런던에서 맨몸으로 비행을 시도한다? 조기경보기까지 갈 것도 없이, 반경 111킬로미터를 커버하는 히스로 공항의 관제레이더가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포착할 게 뻔했다.

쉽게 말해, 섣불리 공중저격을 시도했다간 대공미사일에 맞아 죽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다. 내가 아무리 대마법사라 한들, 최소 아음속으로 쇄도하는 요격체와 파편탄두의 폭발은 방어도 회피도 불가능한 죽음 그 자체다.

여기에 마력장 전개로 말미암은 존재감의 확산도 문제다. 비행, 소음차폐, 신체강화, 자세제어와 반동흡수, 연막차장 및 레이더 교란을 대신할 구름 형성 등에 회로를 할당하고 마력을 쏟다 보면, 마력장의 반경은 자연히 킬로미터 단위로 늘어날 터. 내가 발휘하는 장악력의 바깥경계가 다른 대마법사의 경계와 접촉하는 순간, 그 대마법사가 누구이든 곧바로 내 존재를 감지해낼 것이었다.

저 하늘 위에 대적(大敵)이 있노라고.

떠올릴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은 없다.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 속이라면 모를까, 날짐승들의 공간인 하늘에 무슨 거대한 각성체가 있어 대마법사에 필적하는 존재감을 과시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마법사와 대마법사의 진정한 간합(間合)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노출시킬 처지가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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