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93화 (193/561)

#22. 멸공의 횃불 (2)

예기치 못한 불청객들이 내 사유림의 경계를 침범할 당시, 나는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라이언 닐슨으로부터 추가적인 투자를 요청받던 중이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 닐슨은 시작부터 공손하게 감사를 표해왔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나는 모니터에 비서실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띄워놓고 통화를 이어갔다.

“추가 투자를 원하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예. 제가 유명세를 얻고 나니 새로 자금을 대주겠다고 나서는 투자자와 기관들이 많았지만, 기왕이면 선생님께 먼저 제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더턴 의용 경기병대」의 무뢰배들을 구조하러 나섰던 라이언 닐슨은 그 도덕적인 결단으로 말미암아 전미의 유명인사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은성무공훈장 수훈자라는 배경과 함께 악성고객들과의 소송전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연이 소문을 타면서, 민간 차원에서만 백만 달러가 넘는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고작 3백만 달러로 25퍼센트의 지분을 인수하고도 모자라 라이언 닐슨 개인의 호의까지 얻은 나는 얼마나 효율적인 투자를 한 것인지.

즉 닐슨은, 순수하게 사업상의 조건만 놓고 보아도, 유력한 스타트업의 창업자로서 단기간에 나와 정식으로 거래를 논할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전처럼 우연찮게 얻어걸린 기회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요즘은 감히 당신에게 대드는 단원이 없겠습니다?”

내 물음에 수화기에선 바람 새는 듯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자연스럽게 그리되었지요……. 제가 사람이 변했다며 이탈해버린 친구들이 있어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이게 맞는 것 같습니다. 기강과 서열을 확립하고 나니 그제야 여단 운영이 궤도에 올랐다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면, 저 개인이야 명성을 얻었을지 몰라도 여단은 어찌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사람이 변하긴 했지. 내가 변하게끔 유도한 것이지만. 이 모범적인 학생에게, 나는 투자자산을 관리하는 기분으로 경험과 공감을 던져주었다.

“조직 경영에 있어서 평등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리고 사업의 위험성이 높을수록 더 그러한 경향이 있지요. 질서를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람간의 위아래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군대에 있던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군대와 사회가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다르지도 않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알겠습니다.」

“그래요…….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두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예.」

“난 이미 25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입니다. 그런 내게 추가로 투자를 받는다는 건, 내가 당신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해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일 텐데……. 그럼에도 이렇게 연락을 줬다는 건, 다른 투자자들의 조건이 영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좋지 않다기보다는,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얽매이고 싶지 않다?”

「금전적인 조건은 다들 후하게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받아도 괜찮은가 싶을 만큼.」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요. 지금 고위험 사냥 수요에 비해 헌터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말로는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실제로 지분을 확보한 다음엔 특정 지역구에서의 활동을 우선하도록 압력을 넣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야 그렇겠지. 특히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자들이 그런 경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전성기인 셈이다. 능력자들의 고삐를 쥐는 건 공공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인지라, 보수진영에서도 마음 편히 비난하지만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헌터들의 입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시로 청탁이 들어오면 명목상의 경영권을 쥐고 있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렇게 압력을 행사하는 투자자에 정부가 포함되어있다면 말입니다. 심지어 정부는 투자자인 동시에 유력한 고객이기까지 합니다.」

“과연.”

「우리 여단의 기반은 유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 전력으로 유효하게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아직은 유타의 1할에 미치지 못하지요. 투자자들은 당장 겉으로 드러난 실적과 명성만 보고서 우리를 바깥으로 돌리려 들겠지만, 그렇게 되면 기존의 회원들이 체감하는 서비스의 질이 급격히 낮아지리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사업을 성급히 확장하다 망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많지요. 제품이든 서비스든 품질관리에 실패하여 고객 이반을 야기하는 경우도 많고.”

닐슨이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여단이 연고지를 벗어나 바깥으로 뻗어나갈 날이 올 테지만, 그게 절대로 지금은 아닙니다. 고위험 수렵은 결국 사람이 알파요 오메가인 사업인데, 어떻게 돈만 들인다고 곧바로 실속이 갖춰지겠습니까? 하다못해 신입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내실을 갖출 여유가 필수적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니, 말씀해보십시오. 내게 얼마를 바라시는지.”

「……먼저 이것부터 알려드려야겠군요. 저는 차등의결주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차등의결주라 함은 지분을 2종 이상으로 구분하여 주주로서의 발언권에 차등을 두겠다는 의미였다. 대표적인 예는 워렌 버핏이 경영하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A와 B로 나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은 A주가 B주보다 1만 배 더 많은 의결권을 보유한다.

나는 담담하게 물어보았다.

“의결권의 비율은 어떻게 됩니까?”

「선생님께 드릴 B주의 경우 표면적인 비율은 A주와 동일하게 두는 대신, 취득 후 10년이 지나야 온전한 의결권을 행사 가능한 방식으로 가고자 합니다. 처음엔 10분의 1로 시작해서 매년 정해진 비율로 의결권이 증가하는 거지요. 소유주가 바뀌면 기간은 다시 초기화되고요.」

“말 그대로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로군요.”

「예.」

“그래서, 지분과 금액은?”

「B주로 10퍼센트에 천이백만 달러, 어떻습니까?」

의결권에 제한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율로 따지면 처음 투자할 당시에 비해 열 배나 높아진 금액. 그러나 파이오니어 사냥꾼 여단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가치산정이라 평할 만했다. 일반회원 가입자가 급격하게 늘어 단기간에 1만 7천을 헤아리게 되었고, 가입 희망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채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인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으며, 가장 큰 돈이 되는 정부계약 수주에서 가산점을 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데다, 자진하여 합류를 청하는 민병대 역시 나날이 수가 늘어나는 상황이라 하니까.

이토록 장래 유망한 민간보안업체의 시가총액이 1억 2천만 달러라면 그리 많은 금액도 아니었다.

‘상장조건만 갖추었어도 배 이상을 받아낼 수 있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끌어나가려던 나는, 내선 전화기 단말에 불이 깜박이는 것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미안하지만 끊어야겠습니다. 아래에서 뭔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라.”

「어, 그러시죠.」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무작정 기다리진 마십시오.”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종료한 나는 본사 경비실에서 직통으로 들어온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이냐?”

「본사 부지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보통 놈들은 아닌 것 같아, 조치하기 전에 먼저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나는 삐딱하게 머리를 기울였다.

“보통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복장과 장비만 보면 육군에서 편성한 각성능력자 엽병분대로 보입니다만, 국방부에서 해수구제작전을 위한 협조공문을 보낸 적이 없고, 한데 모여 이동하고 있어서 사냥감을 모는 중으로도 보기 어려우며, 규모는 분대급이지만 분대 편성이라기엔 머릿수가 맞지 않습니다.」

“몇 명이기에?”

「열둘입니다.」

듣고 보니 하나하나가 정말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국방부의 사유지 이용 협조공문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땅주인으로서의 권리 때문만이 아니라, 군의 해수구제 활동은 반드시 자동화기 사용을 동반하기 때문. 즉 이는 민간인들의 안전이 걸려있는 문제다.

사격장에서 사격을 실시하기 전 깃발을 올리고 경고방송을 실시하여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사고를 예방하듯이, 국방부는 협조공문을 보내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작전내용을 고지함으로써 인명사고를 예방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지휘관들 입장에선 정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공문 발송과 사전경고에 소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연금도 제대로 못 받게 되면 그 얼마나 큰 손해란 말인가.

이동대형도 수상하긴 매한가지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가는 중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하겠으나…….

‘그럴 거면 왜 굳이 길도 아닌 야산을 타나?’

각성능력자 헌터는 희소가치가 높은 인적자원이다. 군은 군에 속한 해수구제 엽병대를 광역 기동부대처럼 운용하고 있었으니, 열둘이나 되는 머릿수가 야밤의 산중을 돌아다니는 건 명백히 이상한 징후라 할 만했다.

마지막으로 머릿수.

한국군의 분대 편성은 열 명이 표준이다. 그나마도 출산율 저하로 인한 병역자원 부족으로 말미암아 열 명을 다 채우는 건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전방사단들로 한정되고, 후방부대들은 8명 편성에 결원이 있는 경우마저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원탁의 사냥개들일 확률은 낮았다. 누렁이들은 대마법사들이 선호하는 품종에 들지 못하니까.

「화면을 공유해드릴까요?」

“그래.”

잠시 후, 나는 모니터에 비쳐지는 분할화면들을 보면서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갔다.

‘설마 북한에서 내려온 놈들인가?’

아니겠지, 아니겠지……. 하면서도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하는 의심.

12인 분대편제를 쓰는 나라는 한국 주변에서 중국과 북한밖에 없다. 분대처럼 작은 단위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독립행동과 화력우세를 추구하던 옛 공산권 군대의 특징인 것이다. 중국은 군 현대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미군과 같은 9인 편성을 채택한 탓에 12인 편제는 소수의 흔적만 남아있는 정도지만, 나라가 병신이라 현대화를 꿈도 꾸지 못하는 북한은 대부분의 부대에서 고집스럽게 12인 편제를 고수하고 있었다.

숲에 깔린 감시망에 더해 군용등급의 드론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침입자들은, 멀리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조를 나누어 주변을 살피고는 배낭에 결속한 야전삽을 풀어 원형의 참호진지를 파기 시작했다.

난 능력자들의 근력과 지구력에 힘입어 빠르게 완성되는 진지의 형태를 보고 반쯤 확신을 얻었다. 분대 단위 원형 방어진에 안으로 파고드는 대피호를 두고 바깥으로 교통호를 배치하는 방식이 옛 공산권의 전범과 꼭 닮아있었던 까닭이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와 한숨이 연이어 나온다.

갑자기? 무장공비? 정말로?

한숨 소리를 들은 수화기 저편의 부하가 조심스레 묻는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마법의 시대가 돌아오기 이전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뚫리던 것이 휴전선 철책이고 해안선 감시였으니, 아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시대적 감시 시스템으로 각성능력자들의 침투를 차단하긴 어렵겠지.

그러니 시대착오적인 공비 새끼들이 휴전선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일이야 있을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미친 빨갱이 새끼들이 왜 하필 내 땅에서 저 지랄들을 떠는 거지?’

이런 생각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으나, 감정을 삭이며 곱씹어보니 이것도 그저 운이 나쁘다고만은 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알겠다.

경기도지사 강중성이가 불만스레 말했듯이, 나는 도내 최대의 사유림 소유주다. 하여 공비놈들이 민가를 피해 연속해서 이어지는 침투동선을 그린다고 치면, 이 부근을 지날 때 내 땅을 경유하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운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원형참호 구축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추가로 합류할 병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러 개의 참호를 파는 게 아닌가. 참호의 배치는 한눈에 보기에도 추적자들을 상대로 한 방어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유사시 이북으로의 퇴각로를 확보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닐는지.

삽질 한 번에 땅을 들어내다시피 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 모습들을 보건대, 이 불청객들은 북녘 전체에서 가려 뽑았을 최정예 각성능력자들이었다.

그래 봐야 나와 내 애들의 기준으로는 좀 귀찮은 사냥감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글쎄…….”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만약 저들에게 유사시 합류할 동료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휴전선 철책이든 해안선 감시든 국군의 감시가 아주 제대로 뚫렸다는 소리다.

그럼 저것들의 목적은 뭘까?

‘설마하니 남침 준비는 아닐 테고.’

조선인민군의 실태는 전면전 수행이 불가능할 만큼 열악하다. 식량도 없고 연료도 없으며 식량과 연료를 수송할 차량도 없다. 전차부대에선 엔진과 배터리를 빼서 간부들의 가정집에 연결하기가 예사이고, 보병부대에선 연사가 가능한 기관총이 열에 하나 꼴도 되지 않을 지경인데 남침은 무슨 놈의 남침이란 말인가.

부족한 연료는 남조선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 해결하겠다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능력자들과 보병만 가지고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계획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딴 짓을 했다간 북한도 절대 무사할 수가 없다. 자기보신이 최우선인 북한의 권력자들에게, 전면전은 무엇 하나 고를 이유가 없는 선택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사보타주, 혹은 전에 없었던 형태의 군사적 도발이다.

이렇게 사색에 잠겨있는 사이, 참호구축을 완료한 무장공비 패거리는 경계조를 배치한 후 배낭에서 먹거리를 꺼내어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개중 하나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먼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듯 포즈를 취했다. 불법침입자의 태연자약한 행동을 본 나는 짜증과 두통이 동시에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 대기하고 있으라고 전해.”

나는 신경질적으로 통보했다.

“이 잡것들은 내가 직접 잡아서 처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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