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85화 (185/561)

#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12)

류린페이는 2월 14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휘 오빠!”

터미널까지 직접 마중을 나간 나를 본 린페이는, 내가 잠깐 맨얼굴을 보여주자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달려와 뛰어오르듯이 내 품에 안겨들었다. 거슬리는지 마스크도 벗어버리는 꼴이 가관이다. 가슴어림에 번지는 더운 숨결은 영 거북하게 느껴지는 인간의 온도였다.

더불어 비강으로 밀려드는 방향(芳香) 섞인 체취. 어차피 인공적인 향기라면, 나는 달콤한 향수보다는 차라리 트리아세톤 트리퍼옥사이드(TATP)의 과일 향을 더 선호했다. 설탕처럼 하얀 가루 형태의 그 폭약은 향기로운 죽음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나와 린페이의 관계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친밀함이 더해진 상태였다. 하루 앞서 그 친밀함을 보고받은 나는, 비록 그 보고서와 첨부 데이터의 내용에 눈살을 찌푸리긴 했으나, 내게 주어진 배역을 그럭저럭 소화해낼 수 있었다.

오빠(歐巴)라는 호칭은 한국어의 오빠를 그대로 음차한 것이 맞다. 나를 가장한 비서실 소속 부하와 린페이 사이에서 오간 문자 대화를 읽어보건대, 한국 드라마(한쥐/韓劇)의 유행과 함께 젊은 층들이 쓰기 시작한 표현이라는 모양이다.

여기에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로 떼어 애칭으로 삼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류린페이를 페이라고 줄여서 불러야 했다. 이 또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정해진 바. 돼지머리니 돼지꼬리니 하는 이상한 애칭들보다야 낫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페이.”

린페이는 이 말을 듣고서야 내 품에 묻었던 얼굴을 들더니, 피부 너머의 신체징후가 넘치는 환희로 미쳐 날뛰고 있음에도 입술을 비죽이며 토라진 체를 해보였다.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담담해요? 그동안 저만 보고 싶었나봐요.”

“미안하다. 내가 감정표현이 서투른 사람이라.”

“말로만 미안해요?”

이렇게 추궁하며, 린페이는 오른손 검지로 제 입술을 두드려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2차 유행이 하늘길의 수요를 말려 죽이는 시기였으므로, 새벽녘의 공항은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조용한 공간이었다. 하여 나는 사냥감의 요청에 선선히 응해주었다.

입술을 겹치고 혀로 혀를 건드리는 입맞춤은 사냥감의 숨이 가빠진 뒤에야 간신히 끝이 났다. 린페이는 발갛게 물든 얼굴로 내 가슴께에 이마를 부비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용서해줄게요.”

“고맙다.”

“……나도 고마워요.”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

준비된 숙소로 이동한 다음의 순서는 당연히 침대 위의 노동이었다. 이 해후를 목마르게 기다려왔을 린페이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흐느끼며 경련을 일으킨 끝에 아침을 먹기도 전부터 혼절하다시피 늘어지고 말았다.

2월 14일은 중국에서도 정인절(情人节)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정오가 다 되어 때늦은 식사를 마친 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린페이가 내게 내민 편지와 초콜릿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자, 드셔보세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편지는 나중에 읽어보시고요.”

“바쁜 와중에 용케 이런 걸 만들 시간을 냈구나.”

“어차피 제 촬영 일정이야 연휴 전날에 다 끝났는걸요. 그리고 제가 바빠 봤자 오빠보다 바쁘겠어요? 이번에도 겨우 시간을 낸 거라면서요.”

“난 일이 일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요. 그렇게 바쁜 사람이 이틀하고도 한나절이나 시간을 만들어 준 게 고마운 거죠.”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연 린페이는 각진 초콜릿을 집어 내 입속으로 넣어주었다. 그러곤 가루가 묻은 엄지와 검지를 핥으며 두 눈 가득 기대감을 내비쳤다.

“어때요?”

“맛있다. 아주.”

“에이, 반응이 너무 심심하다……. 그럼 이건 어때요?”

제 입에 초콜릿을 넣은 린페이가 그대로 키스를 시도했다. 남의 구강에 들어간 음식을 혀로 주고받으며 나눠먹는 짓이라니. 솔직히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것도 결국 일이었으므로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침에 녹은 단맛이 그나마 역함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우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맛있었어요?”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어오는 말에, 나는 혀가 오가는 동안 궁리해두었던 대사를 읊었다.

“맛있긴 한데, 네가 맛있는 건지 초콜릿이 맛있는 건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이 임기응변이 통하여 린페이는 나를 끌어안고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러더니 팔을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하는 말.

“잠시만요. 준비한 게 있어서.”

“준비한 거?”

“기다려요. 잠깐이면 되니까.”

눈웃음을 치며 자리를 비운 린페이는 드레스룸에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짜잔(锵锵)!”

린페이가 착용한 의상은 색이 하얀 아오자이였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돈 린페이는 발등까지 닿는 긴 자락을 흔들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알아보시겠어요?”

“네가 설야회에 입고 나왔던 옷 같은데.”

“정답입니다!”

춘절기간에 진행되는 방송은 민도(民度)의 배양을 위하여 중앙정부와 공산당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공정이다. 어려운 시기 중국을 빛낸 미담, 즉 가오슈센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미담의 주인공으로서 춘절 전야의 생방송에 얼굴을 내민 린페이는, ‘중국의 전통의상’으로서의 아오자이를 입은 채로 무대에 올랐었다. 아오자이임에도 바지를 입지 않은 것은 치파오와의 연관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일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원본은 치파오이고, 아오자이는 치파오의 파생형에 불과하다는 암시.

덕분에 현재 린페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는 몸이 되었으나, 이 자리에서 보건대 본인은 그런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해당 방송의 편집된 영상을 본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빨갱이들이 계속해서 악수를 두는군. 아니, 외통수라고 해야 하나?’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여 내부적인 단결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중국이 내보이는 국수주의적인 행보들은 궁지에 몰린 채 가시를 곧추세운 고슴도치를 떠올리게 했다.

중국이 남방해역에서 시사군도(파라셀 군도)와 남사군도(스플래틀리 군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건 그러한 행보의 일환이었다. 미국 함대가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와중에 영국 항모전단은 남방해역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신경을 긁어대니, 중국으로서도 뭔가 대응을 하기는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지 않았다간 일찍부터 국수주의에 경도되어있던 국내여론이 베이징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중국은 시사군도와 남사군도에 함대를 파견하여 위력시위에 돌입했다.

여기에 대하여 베트남은 정부 차원에서 유감을 표시했다. 해당 군도들은 베트남 역시 영유권을 주장하는 땅이었던 까닭.

그러자 중국은 외교부장의 성명으로 대응했다.

「두 군도는 중국의 역사적인 영토이다. 소국이 대국의 강역을 침범함은 패망의 지름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소국을 운운한 결과는 베트남 전역에서 발생한 대대적인 반중폭동. 베트남 정권의 빨갱이들 역시 마법이 돌아온 시대에 사회결속을 다질 계기가 필요했을 터라, 베트남의 공권력은 화교와 중국인들에 대한 폭행 및 약탈, 강간, 살인 등을 방관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이번 폭동은 지난 14년과 17년, 18년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폭동이 중국의 공중파를 타자 이번엔 중국에서도 반 베트남 폭동이 일어났다. 3만을 넘는 베트남인들이 피난길에 올랐고, 세 자릿수에 달하는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린페이가 입은 순백의 아오자이엔 그렇게 현재진행형인 갈등이 녹아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이걸 입고 오빠에게 안기려고 했었는데, 막상 휘 오빠 얼굴을 보니까 자제가 안 되는 바람에 그만…….”

아쉬움을 담아 칭얼대는 린페이.

여기선 나도 아쉬워하는 티를 내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하면 안 되나?”

“안 돼요! 그럼 오늘은 다른 걸 아무것도 못 하게 되잖아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그, 그래도 안 돼요. 준비한 게 더 있단 말예요.”

“뭐가 더 있지?”

내 물음에 큼큼 목청을 가다듬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 린페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방송인으로서 다듬었을 처연한 감정연기를 담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비도 그대를 붙잡아둘 수 없었죠. 골짜기에 부는 바람이 저를 따라 울었어요.(那夜的雨也没能留住你. 山谷的风它陪着我哭泣.)」

평범한 사랑노래인가 하고 듣던 나는 잠시 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그대와 함께 눈 덮인 산과 고비 사막을 넘어 함께하고 싶었건만, 작별 인사조차 없이 떠나간 그대는 소식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네요. 사랑하는 그대여, 저는 커커퉈하이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我愿意陪你翻过雪山穿越戈壁, 可你不辞而别还断绝了所有的消息. 心上人我在可可托海等你)」

고비 사막이라는 지명이 나올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뒤이어 커커퉈하이라는 지명이 튀어나온다. 커커퉈하이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커커퉈하이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구절은 애절한 음률의 후렴구로서 두 번이나 더 반복되었다. 이리(伊犁)나 나라티(那拉提)처럼 위구르에 속한 다른 지역들의 이름을 함께 되뇌면서.

요컨대 이는 사랑노래의 탈을 쓴 세뇌가요이자 문화적 식민통치 프로파간다였다. 일제강점기의 친일가요에 조선과 만주, 화북 땅의 지명들이 지나가듯 자연스레 언급되던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떠나, 이 여자는 역시 「천인계획」의 첨병임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된다. 훔치고, 홀리고, 베끼고, 빼앗고. 중국공산당의 제국주의자들에겐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생리.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얼마나 많은 연구자와 사업가와 각성능력자들이 이런 수작질에 낚여 중국행을 결심하거나 중국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을 것인가.

낚싯대를 늘어뜨린 채 입질을 기다리는 가오슈센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미끼는 자신이 미끼임을 의식하지 않을수록 더 유용했다.

“듣기 좋군. 제목이 뭐지?”

노래가 끝난 후 묻는 말에, 린페이는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커커퉈하이의 양치기」예요. 이번 음력설야회에서 새롭게 발표된 곡인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어요. 저도 배연(리허설)을 볼 때부터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들었죠. 이 노래를 휘 오빠에게 불러주고 싶다, 라고요.”

“네가 부르는 노래라서 더 각별한 것 같다. 한 번 더 들려줄 수 있을까?”

“얼마든지요!”

무관심을 감추는 앙코르에 기쁨으로 응하는 린페이. 그러나 실제로는 가사 하나하나가 조소를 유발하는 곡이었으므로, 나는 두 번째 노래가 후렴구에 닿기도 전에 린페이의 허리를 감아 침대로 끌어들였다.

“안…… 되는데…….”

저항은 미약했다.

“네가 예쁜 것이 잘못이다.”

“……제 잘못이 맞네요.”

린페이의 키득거림은 이내 감각의 급류에 압도당하는 헐떡임으로 바뀌었다. 까다로운 배역을 맡은 채로 바깥을 돌아다니느니 침대 위의 노동으로 대신하는 편이 백배는 더 낫다. 낮 시간에 고단하게 만들어야 밤이 편할 것이기도 했고.

“그건…… 없이……!”

허덕이는 와중에도 린페이는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었다. 피임을 하지 말자는 소리. 그게 린페이가 아는 공산귀족 및 자본가들의 일반적인 난행이기도 할 터이다. 어차피 적자녀와 서자녀 사이엔 극복 불가능한 신분격차가 존재하니, 난행으로 생기는 아이는 첩에 대한 일종의 ‘정년보장’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한들, 독신으로 첩을 두는 공산귀족들은 얼마든지 많다. 린페이 자신이 정처로 인정받아야만 아이도 비로소 대를 이을 자식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난 망설이는 척 뜸을 들이다가 끄덕임으로써 린페이를 기쁘게 만들었다. 이 기쁨은 가오슈센에게도 전달되어 그의 착각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었다.

「생명」을 활용한 피아간의 생체제어 및 회복으로 다섯 시간에 걸쳐 수행한 노역은, 사냥감에게 먼젓번에 경험했던 것보다 한층 더 상궤를 벗어난 경험을 새겨주었다.

행위가 끝난 후, 나는 축 늘어진 린페이의 선천적인 마력장을 억압한 뒤 체내로 마력을 투사하여 임신의 가능성을 말려 죽였다.

더불어, 각성의 싹을 틔울 기미가 보이던 린페이의 마력회로 또한 구조를 뒤틀어 마소가 드나들 경로를 막아버렸다. 지닌 바 마력장이 강해지면 「생명」을 써먹기가 곤란해지니까. 이 사냥감은 끝까지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으로 남아 있어줘야 한다.

내가 뒤틀어놓은 회로로 말미암아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있나? 적어도 십 년은 더 흐른 다음에 일어날 일일 텐데.

기분 좋게 실신한 사냥감을 방치해둔 채로, 나는 14일의 남은 시간을 원격사무와 마법적 묵상으로 보내었다.

애리조나 주가 속한 미국 산악표준시와의 시차는 열여섯 시간.

북미 원주민들의 성산에서 터질 폭탄의 여파는 내일 자정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가 있는 곳까지 전해질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