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84화 (184/561)

#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11)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사흘간, 나는 연수원에 머물며 신입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지켜보았다. 신년사와 우수 조직원 표창 등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빠질 수 없는 행사들을 치를 때, 그리고 기존 조직원들 및 간부들의 새해인사를 받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 모두를 인적자원 감정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쓰는 시간은 결코 아깝게 여길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일의 성패는 대개 그 일을 성공시킬 인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라지는 바이니까.

그렇기에 사업은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일이어야 한다. 사업의 불법성은 사람의 중요성을 더하는 요소일 뿐.

조직의 인사교육팀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서도 조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력들을 모아놓은 곳이었고, 그런 교육팀이 정비하는 정신교육은 해가 바뀔 때마다 효율성과 새로움을 더해갔다.

올해의 신입교육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2일차의 「유서 작성」이었다. 신입들에게 ‘만약 자신이 한을 풀지 못하고 울분에 못 이겨 자살을 결심했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여 유서를 써보라고 한 것. 문장과 내용이 좋은 유서는 모두의 앞에서 낭독하도록 했다. 배경이 되는 사연과 함께. 이는 단순히 사연만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교육 방식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종목의 협동체육, 바깥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토론과 사례 공유-를 가장한 공감대 형성 및 적개심 강화, 조직이 관리하는 보육원들의 소개와 기부행사, 인성 및 성격유형검사 등이 행해졌다.

이후 모든 신규 조직원들은 금일봉을 분배받았다.

“이건 회장님께서 조직의 큰 어른으로서 여러분께 주시는 세뱃돈입니다.”

홍영식이가 떨었던, 평소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너스레.

“회장님께선 지난 사흘간 줄곧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올해 신입들은 행사에 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평소보다 많은 금액을 넣도록 하셨다더군요.”

봉투에 든 것은 현금이 아니라 조직 산하의 계열사 중 하나인 「연성저축은행」의 예금통장. 군대에서 신병들에게 통장 만들어주듯 미리 도장과 서명을 받아 일괄 개설한 계좌들이었고, 들어있는 금액은 모두 동일하게 천만 원이었다.

“이번 설은 많은 분들에게 조직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한가위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몸은 이제 여러분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과거 저축은행들의 부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여 백화점, 지역 방송사, 게임 제작사는 물론이고 야쿠자와 선이 닿아있는 일본계 사채업자들에게까지 닥치는 대로 인수허가를 내어주던 시절, 그러고도 매수자를 찾지 못해 마흔 개의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말았을 때, 내 조직은 세 개의 저축은행을 서로 다른 명의의 법인으로 인수한 바 있었다.

이러한 비상장 저축은행들은 조직 계열사 간의 자금이동을 은폐하고 검은돈을 세탁하며 조직원들에게 시중은행보다 우수한 금리와 금융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충성심과 소속감을 배양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조직원은 언제고 조직의 보안을 저해하는 일탈을 저지를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니 나로서는 조직원들의 재산을 내가 지키고 또 감시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두고자 노력하는 수밖에.

당연히 세 은행의 운영은 언제나 적자였지만, 나는 그 적자를 인적자원 관리에 들어가는 고정지출로 간주하고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돈(Money), 이념(Ideology), 자의식 고양(Ego). 여기에 나와 조직의 보복 가능성이라는 위협(Coercion)을 더하면 사람을 포섭하는 데 핵심적인 MICE의 모든 요소가 갖춰지는 셈이었다. 보통은 간첩을 만드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나, 비밀엄수가 생명인 범죄조직들의 생리는 간첩조직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다.

이 정도면 조직의 견실함으로는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능가한다고 자부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각기 17세기와 18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 있고, 무수히 많은 기업들과 합법적 사업장들을 경영하며 내부교육이 철저하기로 이름 높은 「카모라」와 「은드랑게타」라 할지라도 내 조직만큼의 건전성과 합리성을 갖추고 있진 못하리라 확신한다.

설 연휴의 첫날과 이튿날에는 인력배치의 기본적인 틀을 잡는 데 골몰했다. 말하자면 신규 인력의 품질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여 등급을 분류하는 일. 인사과는 추후 이 정리를 토대로 배치계획을 작성하여 보고할 것이었다.

그 계획에 따라 신입들은 짧게는 1~2주, 평균적으로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넘는 추가교육과정을 부여받을 터.

이렇게 바쁜 와중에 집무실에 들어온 경태는 대뜸 바닥에 엎드려 큰절부터 올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형님.”

“그래. 너도 많이 받아라.”

“이제 세뱃돈 주십시오, 형님.”

“…….”

이미 몇 년 겪어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서랍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봉투를 꺼내어 책상 위로 밀어놓았다. 싱글거리며 두툼한 봉투를 챙긴 경태가 옆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기엔 여분의 책상을 차지한 채 업무에 전념하는 수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누님은 올해도 안 하십니까?”

“안 해.”

“사실은 하고 싶으시면서.”

“…….”

수연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경태의 헛소리를 무시했다.

지금의 경태처럼, 조직의 간부들 가운데 부모가 없는 녀석들은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나를 찾아와 인사를 올리곤 했다. 그러나 내게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까지 받아가는 녀석은 오로지 경태가 유일했다.

봉투를 벌려보더니 오! 하고 놀라는 경태에게, 나는 조용히 한마디 했다.

“이번에는 이상한 거 사오지 마라.”

“예? 이상한 거라뇨? 제가 언제 이상한 걸 사왔습니까?”

“그럼 저건 뭐냐?”

내가 가리킨 방향엔 집무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보랏빛 테디 베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큰 것이 하나에 작은 것이 둘. 재작년의 경태는 세 개가 한 세트인 이 인형을 5만 달러나 주고 사왔노라 자랑스레 이야기했었다. 한화로는 거의 6천만 원이다.

내 물음에 경태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어, 기억 안 나십니까? 프린세스 다이애나 비니 베이비(Beanie Baby) 세트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비니 베이비고 뭐고, 저걸 어디다 쓴단 말이냐.”

“어디다 쓰냐니…….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습니까?”

“…….”

“저 세 마리가 저래 봬도 요즘 시세로 10만 달러를 넘습니다. 용도를 떠나, 투자라고 치면 대단히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해야겠죠. 하하하!”

투자는 무슨. 차라리 술을 마시는 데 쓸 것이지. 내가 보는 인형의 구성성분에 평온함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경태 녀석의 소비는 매양 이런 식이었다. 돈을 벌어 저 좋은 곳에 쓰는 경우는 드물고,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선물을 주기를 즐기는 것이다. 저가 익명으로 후원하는 고아들이 시설을 나갈 때가 되면 홀로서기를 응원한다며 수천만 원씩을 쾌척하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술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렇게 돈을 쓰는 편이 더 만족스러운 모양.

경태의 소비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체감상 절반을 웃돌았다. 옷, 신발, 시계, 넥타이, 필기구, 자동차 등. 형님께 어울릴 것 같다며 사오는 물건들의 값어치가 해마다 억 단위를 기본으로 찍으니까. 주식으로 크게 벌었다며 마세라티 스트라달레의 열쇠를 가져온 적도 있었으니, 세뱃돈 5백 받고 6천짜리 인형을 사온 건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수연도 간혹 비슷한 짓을 할 때가 있었다. 옷가지 따위를 살 적에 조직 공금으로 결제해야 할 것을 제 카드로 긁어버리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따름.

참으로 질박하기 짝이 없는 충성경쟁이라 하겠다.

“오늘 같은 날은 형님이랑 누님도 쉬시면 좋을 텐데.”

경태가 아쉽다는 듯 하는 말에 난 담담한 대꾸를 돌려주었다.

“너나 가서 쉬어라. 모처럼의 기회에 본사에만 붙어있지 말고. 할 게 없으면 여행이라도 다녀와.”

“에이, 제가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가뜩이나 내일은 손님맞이도 해야 하는데요.”

“뭐 얼마나 대단한 손님이라고 신경을 쓰나. 물리적 위험은 제로라고 해도 좋을 여자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냥 제가 구경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형님. 하하.”

“…….”

“그게 아니더라도 사흘 후엔 와우키울릭인지 뭔지 하는 성지에서 폭탄이 터질 텐데, 그 순간에 제가 휴가랍시고 자리를 비우고 있으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희박한 확률로나마 미국이나 멕시코까지 출장을 나가게 될 수도 있는데요. 형님의 해외수행을 밑에 있는 애들에게만 맡기는 건 이 김경태의 자부심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항시 뽑아두는 칼날은 예리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여 나는 타격대로 분류되는 부하들에게 연간 180일의 휴무를 보장해주고 있었다. 출장을 나가면 주말이고 뭐고 없는 생활에 때때로 전투 스트레스까지 겪게 되는 녀석들이니 몰아서라도 쉬게 해주어야 전력 유지가 가능하겠지.

간혹 여기 있는 둘처럼 말을 안 듣는 녀석들도 있기야 하지만.

경태가 말하는 손님은 내주 수요일까지인 춘절 연휴의 한중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겠다는 류린페이였다. 정확히는 내게 허락을 구하고 오는 것이지만, 냉담한 모습을 보이기 곤란한 입장에선 귀찮으니 오지 말라 하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허구의 약점을 관리하는 데 허비할 시간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사가 뒤틀리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그 땡중은 어떻게 됐지? 찾아냈나?”

내 물음에 경태가 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말씀드린다는 게 깜빡했네요. 잡긴 했는데 아직 죽이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왜?”

“이용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요.”

“무슨 이용가치?”

“잡힐 때 자기 신도들 중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고, 경찰청장도 있고 구청장도 있고 어쩌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기에 그 부분을 좀 캐보는 중입니다. 기왕 죽일 거, 돈이든 이권이든 공직자들 약점이든 뜯어낼 수 있는 건 다 뜯어내고 죽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욕은 그 땡중이 다 먹어줄 테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경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겸사겸사 피해자들이랑 그 가족들 중에 영입할 만한 인력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말이죠. 그렇게 건의가 올라와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알았다. 나중에 결과만 보고하도록.”

“옙.”

지금 말이 나온 땡중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부처로 만들어주겠다는 교언으로 내 인적자산을 홀리려 들었던 자칭 미륵, 사이비교주 새끼를 뜻했다.

세상에 재물을 탐하지 않는 사이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그레이스의 악마숭배교단조차도 다양한 방식으로 신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을 터.

경호실 산하 감찰과에서 사이비에 홀린 조직원을 감지할 수 있었던 건 저축은행에서 올라온 보고 덕분이었다. 계좌에서 용처 불명으로 일정 액수 이상의 돈을 빼는 조직원은 직위의 고하를 불문하고 감찰과의 감시대상으로 등록된다. 그렇게 해당 조직원을 감시하다 보니 웬 미륵 나부랭이에게 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부하가 자칭 미륵에게 홀린 이유는 간단했다.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주는 천도제, 라…….’

억울하게 죽은 자식이 매일 같이 꿈속에 나오던 와중에, 그 자식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떠돌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니 같잖은 천도제 한 번에 1억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고.

인간의 사후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나는 부하들에게 그런 종류의 종교적 위안을 제공할 수 없다.

이런 걸 보면 가족이라는 건 역시 개인의 생존성을 저해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