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10)
2월에 접어든 세계는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 다수의 출현으로 소란스러웠다. 지난해 상반기를 초토화시켰던 지긋지긋한 중국발 폐렴이 보다 치명적인 변이들을 품고 다시 한 번 전 지구적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 번졌던 원형이 많은 나라에서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잔불처럼 끈덕지게 남아있었음을 감안하면, 변이 바이러스들의 2차 유행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대응은,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조차도 대부분은 좋게 봐줄 만한 것이 못되었다. 변이 바이러스의 최초 발견부터가 늦었거니와, 하나같이 초동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다. 아울러 개인의 자유와 방종을 혼동하는 멍청이들의 탓이기도 했고.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이렇게까지 멍청한 동물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만드는 바이러스라고 해야 할까.
만일을 대비하는 보험으로서 런던에 대한 생물학전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드는 사태였다.
마소와 마력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들불처럼 번지는 감염의 의외성. 이로 인해 정작 내가 생물학전을 걸어야 할 땐 런던의 대비태세가 지금보다 상향되어있을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까지.
이런 시국에 치르는 우리 조직의 시무식과 신규 조직원 연수과정은 방역당국이 보았다간 경기를 일으킬 단체행사였다. 한적한 산간의 대형 연수원에 연인원으로 따져서 네 자릿수에 달하는 인파가 모였으니, 폐쇄적 종교단체에 의한 대량감염의 악몽이 되살아나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니겠나. 심지어 본행사로 들어갈 땐 방역용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이런 행사를 대책 없이 치른 것은 아니었다.
“지금 들어오는 둘……. 그래, 그 둘. 돌려보내. 감염되었으니 조기에 치료나 받으라고.”
본격적으로 시무식을 시작하기 전, 나는 로비 바로 위층의 객실에 머무르며 모든 입소자들을 일일이 육안으로 검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그러므로 역병의 색채가 묻은 인원은 누구 하나 연수원의 정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런 내막을 모르는 일부, 즉 ‘신입사원’들은 최소한 체온은 재야 할 게 아니겠느냐며 불안해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이들 대부분은 마법을 경험하지 않고 오직 나의 자본주의적 권능에 기대어 목숨을 빚진 자들이었으므로, “회장님께서 친히 보증하시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지.”라며 태연하게 마스크를 벗는 선배 및 간부들의 행동에 한층 더 당황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인솔자들의 통제에 따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수에겐 내 전언이 전해졌다.
“너희의 목숨은 어차피 내 것인데 이 정도 지시도 따르지 못하겠나?”
여기까지 듣고서도 말을 듣지 않는 몇몇은 결국 퇴소 절차를 밟았다. 정규 조직원으로 써먹을 자원이 못되니, 추천인 및 승인자의 책임하에 협력자로 간접 고용을 하든 죽여서 후환을 없애버리든 하게 될 것이었다.
이후의 행사에서 나는 조직원들에게 대마법사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대마법사로서 보유한 마법적인 능력들을 천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 것.
이럴 때 가장 유용한 술식은 당연히 「생명」이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주고, 소경의 눈을 밝혀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는 이적(異蹟). 이미 마법을 경험한 조직원들이라도 직급이 낮으면 말로만 들어보았을 낯선 형태의 마법. 이러한 이적들을 행한 뒤에, 나는 지켜보던 모두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곤 한 호흡을 쉰 다음 이렇게 이어나갔다.
“구세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며, 적그리스도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지금의 인류에겐 아직 이른 힘과 지식을 지녔을 뿐인 한 사람의 인간이지. 허나, 현시대를 어지럽게 만드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잘 아는 자가 없으리라 확신한다.”
굳이 찾아보면 원탁의 대마법사들이나 악마숭배자들 가운데 지엽적인 앎으로나마 나를 능가하는 자들이 있을 테지만, 굳이 여기까지 입에 담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내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 자로서 단언하는데, 너희의 이해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모든 형태의 신비들은 세월이 흐르면 규명될 합리이자 연구가 더해질수록 투명해질 과학에 불과하다. 원시인들 앞에 던져진 스마트폰 같은 것이란 말이다.”
21세기의 과학은 선사시대 기준으로는 기적 그 자체다. 이 시대의 인류에겐 마법이 바로 그러했다.
“그러니 너희가 그나마 똑똑한 원시인이 되고 싶다면, 언필칭 자기가 미륵보살이니 메시아니 하는 잡것들과 마주칠 때마다 오늘의 내 말을 떠올리도록. 알겠나?”
이것이야말로 내가 올해의 시무식에서 가장 당부하고 싶었던 바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조직 내에서 사이비에 홀린 멍청이가 하나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본디 내 마법적인 역량을 백 퍼센트 공유하는 대상은 중간간부 이상의 직급들, 그리고 행동타격대와 국제사업부 등 조직의 핵심적인 인력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비밀이란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태로워지는 것이니까. 그 외의 인력들이라도 나의 이상성을 아예 모르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나는 근래의 세상을 어지럽히는 온갖 종류의 사이비와 신흥종교들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다들 그런 쪽으로는 예방접종을 맞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형님을 겪었기에 오히려 더 홀리기 쉬울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과학과 상식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신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마법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신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뭐겠습니까? 운세, 금기, 저주 같은 것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수연이 내놓은 촌평. 나를 만남으로써 무너진 세계관이 사이비가 파고들 틈이 되었으리라는 분석이었다.
수연 녀석은 이렇게 권고했다.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비밀엄수를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데서 비롯되는 이득보다 정신적 오염의 확산을 예방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더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조직 전체가 형님을 더욱 경외하도록 만드심이 어떠실는지.”
숙고하는 나에게 수연은 침착한 설득을 더해주었다.
“때로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말하는 우월한 신비보다 스스로를 신이라 속이는 저급한 신비가 더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형님이 지니신 힘의 우월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진정한 마법에 무지한 조직원들은 언제고 이번처럼 뇌를 파 먹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비밀유출에 맞먹는 위험요소겠지요.”
합당한 지적이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근원적인 공포를 종교적 의탁으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형님에 대한 경외는 그 자체로 조직원들의 입에 채워질 자물쇠의 무게가 됩니다. 이건 형님의 힘을 제대로 알고 높은 등급의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인원들이 그간의 시간으로 증명해준 바, 여기에 조직의 보복능력에 관한 강화교육을 시행하면 비밀유지의 깊이는 오히려 전보다 더 깊어질 것으로 사료됩니다.”
시종일관 설득력이 높은 통찰이었으므로 나는 수연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종교적 광신에는 종교적 경배.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의 조직운영에서도 나에 대한 조직원들의 종교적 숭배가 없었던 게 아니다. 내가 스스로 인간이라 이르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날 인간을 넘어선 초월자로 받아들이는 부하들이 많았음을 왜 모르겠는가.
경태나 수연 같은 경우가 오히려 소수에 속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녀석들을 더 아끼는 것일지도 모르고.
여하간 시무식에서 행한 「생명」의 이적들은 예상한 그대로의 결과로 돌아왔다.
단지, 유독 반응이 좋았던 게 모발재생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다소 미묘한 감상이 느껴졌다. 장님에게 빛을 돌려주는 등 영구적인 장애를 치료하는 것에 비하면 그깟 머리카락을 자라나게 하는 것쯤은 하찮다고 해도 좋을 잡기가 아니겠는가.
인체를 보는 시야가 근본적으로 다른 나로서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심리들이었다. 내겐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서 통상시야에 해당하는 시각정보만을 분리해낼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매양 막대한 양의 다른 정보들이 뒤섞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조직의 새로운 가족이 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부터 사흘간 신규 조직원 오리엔테이션의 진행을 맡게 된 본사 비서실의 홍영식 차장입니다.”
오전의 전체 시무식이 끝난 후, 신규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 진행을 맡은 홍영식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여기 있는 모두는 대면으로든 비대면으로든 조직의 큰 어른이신 회장님과 개인적인 계약을 하신 분들일 겁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풀어야 할 한을 푸는 데 조직과 회장님의 힘을 빌리고, 그 대가로 본인의 남은 인생을 조직과 회장님께 맡기기로 한 계약을 말입니다. 혹시 아닌 분이 계신다면 손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손을 드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홍영식은 조용한 객석 앞에서 말을 이어갔다.
“계약을 하실 땐 많이들 긴장을 하셨을 겁니다. 이제부터 나는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걸까, 하고요. 그러나 다들 수습기간을 통해 어느 정도 경험하셨겠지요. 평상시의 조직은 그저 하나의 기업 그룹일 뿐이라는 것을. 비록 조직의 사업 일부가 불법적인 영역에 걸쳐져 있긴 하지만, 우리의 사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바깥사회의 그 알량한 법은 결국 여러분을 지켜주지 않았던 ‘그들만의 규칙’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이번에도 손을 드는 사람은 있을 리가 없었다. 지켜보는 나는 객석에 흐르는 공감의 분기(憤氣)를 뚜렷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피해를 준 자들이 돈과 권력과 인맥으로 법을 가지고 노는 꼴들을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법을 지켜야 할 사람과 지키지 않아도 될 사람이 따로 있고, 그나마 법이 지켜지는 경우에도 당한 자의 억울함은 풀 길이 없는 경우가 태반인 게 저 바깥사회의 현실이건만, 여러분이 찾을 새로운 울타리가 굳이 법규에 얽매여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 감정이 흘러넘친 누군가가 목청 높여 외치는 소리. 잠시 좌중의 시선이 모였으나, 소리 지른 장년인은 주변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팔짱을 낀 채 연단 위만 바라보았다. 홍영식은 이에 미소를 곁들인 끄덕임으로 화답했다.
“조직은 필요할 때 계약에 따라 조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여러분을 가족으로서 철저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특히 바깥사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마법적인 영역에 있어서도 말이죠. 제대로 지켜주지도 않으면서 애국심이니 뭐니 희생만 잔뜩 요구하는 바깥사회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 하겠습니다.”
가족이라…….
의례적으로 쓰이는 표현이 내게는 못내 껄끄러웠다. 구체적으로 어떻다 설명하기는 어려운, 형태가 모호한 감정이었다.
“하다못해 여러분의 자녀가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을 당하는 경우에도, 요청이 접수되면 내부 심의를 거쳐 조직 차원의 개입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 문제의 해결에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여러분이 손을 보탤 수도 있지요.”
홍영식이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에 짧고 가벼운 웃음이 흘렀다.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우리 회장님께선 아랫사람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이 윗사람의 소임이라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언젠가 여러분은 조직의 일원으로서 여러분이 받은 것과 같은 구원을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데 일조하게 될 테니까요. 장담하는데, 여러분은 본인이 조직의 일원임을 자랑으로 여기게 되실 겁니다.”
이어 홍영식은 실제 사례들을 소개했다. 단순한 사실관계 설명을 넘어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경험담을 보탰으므로 호소력이 이보다 더 높기가 어려웠다.
내가 보기에 청중이 가장 몰입했던 순간은 최고령 조직원인 89세 황말자 노인이 목격자로서 거짓진술을 하여 다른 조직원의 한풀이에 기여했노라 이야기할 때였다. 황 노인의 진술은 실종자를 찾던 경찰의 수사를 미제로 종결짓도록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이보다 더 좋은 정신교육이 어디에 있을까.
이다음으로는 의사, 판검사, 경찰 간부, 급수가 좀 되는 행정직 공무원, 은행 지점장, 국가유공자, 독립운동가 후손 등 통상적으로 범죄조직의 구성원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조직원들이 나서서 신변잡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신규 조직원들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전하기도 했다.
한낱 신천지 같은 교단에서도 각급 정부기관마다 신자들을 심어 화제가 되었는데, 내가 키운 조직 장학생들이 그보다 못할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홍영식은 1일차 정신교육의 마지막을 이런 멘트로 마무리 지었다.
“여러분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장님께 충성하며 계약으로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한, 조직은 언제까지고 여러분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성새이자 울타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조직의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