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81화 (181/561)

#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8)

봉안당으로 향하는 차량 안엔 겨울철 맑은 날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에 열교환기를 거쳐 나오는 온풍이 더해지니, 차내의 온도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따뜻함이었다.

뒷좌석에 나와 나란히 앉은 수연은 차가 출발한 이래 줄곧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하얀 셔츠, 그리고 포 인 핸드 매듭으로 묶은 검은 넥타이. 손목에 찬 시계를 제외하면 어떤 장신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비스듬히 아래를 보는 시선과 담담한 얼굴에선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여기에 범인의 눈으로는 읽지 못할 신체징후들마저 이렇다 할 기복을 보여주지 않으니, 나로서도 이 녀석의 속내를 짐작하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이 와중에 정적을 깨는 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의 말소리뿐.

「최근 각국에서 나오는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말이죠,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일수록 초능력에 눈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거든요? 암 걸릴 확률도 덩달아 높아지지만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은, 저 북한의 평양에 거주하는 핵심계층, 그러니까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금수저가 되겠는데, 이 핵심계층의 각성 확률이 그 아래의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보다 훨씬 더 높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지배계급의 힘이 피지배계급의 힘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사회에 동요가 일어나면 얼마나 일어나겠습니까? 그 왜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한의 정치안정성이 낮아질 거라고 단정 짓는 건 너무 섣부르다 이거예요. 소위 말해서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밖에 안 된다는 말이죠.」

「김*은이 조만간 불사암 걸려 죽을 거라는 예측도 좀 무리가 있는 게, 임상적인 통계를 보면 이 불사암이 덩어리가 커질수록 다른 암의 발병 확률을 덩달아 높여버려서 그렇지, 불사암 자체는 전신으로 확산되는 일이 드물고 대개는 국소적으로만 번지더란 말예요. 위면 위, 폐면 폐, 피부면 피부 같은 식으로.」

「그러니 자주자주 정밀검진을 해주고 늦지 않게 제거시술을 해주기만 하면 불사암으로 죽을 확률이 확 떨어지는데. 이건 말 그대로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란 말예요? 북한에서 돈이 가장 많을 인간, 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김*은이가 귀찮음에 뇌를 파 먹히지 않은 이상에야 불사암으로 죽을 공산은…….」

나는 염동술식을 활성화하여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이에 수연의 시선이 조용히 돌아 내 무릎 언저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싫었던 건 아니냐?”

내 물음에, 눈을 깜박이던 수연이 의아한 듯 되묻는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지금 이렇게 같이 가는 것 말이다.”

“전혀 아닙니다.”

“그러냐.”

“예.”

평범한 회사에서조차 직장상사가 뭘 하자고 말을 꺼내면 아랫사람으로선 거절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게 주말 등산이고. 비록 수연이 강단 있기로는 조직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이긴 하지만, 항시 나에 대한 예절을 철저하게 지키는 만큼 싫은 마음이 있어도 끄덕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뜸을 들이던 수연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질문했다.

“혹시 제가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

내가 모르겠다고 한 건 강수연이라는 인간 그 자체였다. 원래는 나름대로 동기와 목적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자신이 없어진다고 해야 할까. 이 녀석이 내게 충성한다는 믿음은 있으되, 그 믿음의 근거를 논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확인하기 어렵다는 건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어쩌면 경태 녀석의 지적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황금기의 눈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러나 인간에 대한 완벽한 이해라는 건 인간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닐 것이다. 간혹 가다 상궤를 벗어난 이레귤러와 마주칠 때가 있을지언정, 사람을 헤아리는 내 안목은 나를 크게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

반복으로 강조한 수연이 기울어진 눈길을 정면으로 되돌린다. 조금 상심한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나, 여느 때처럼 단순히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죽은 부하들 가운데 특정한 개인의 영전(靈前)을 찾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은 별실에 둔 합동 영전에 배향하고 묵념을 하는 것으로 내가 죽은 부하들의 헌신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내가 행하는 추모는 조직 차원의 공식적인 행사인 것이다.

오래지 않아 도착한 봉안당은 옥외가 조금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각성수 하나가 굵은 뿌리로 주차장 외곽을 침범하는 바람에, 숲과 시설의 경계를 재보강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것.

본관으로 들어가니 검은 정장을 입은 직원들이 공손하게 묵례한다. 죽은 조직원들의 유가족들 가운데 조직의 실체를 아는 이들을 채용하여 일하게 한 경우였다. 이렇듯 내게 빚을 진 당사자가 아니어도 조직의 협력자로서 일하는 인원이 상당수 있었다. 내가 생활을 보장하고 또 조직의 사업에 대해 아는 바가 적으니,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고발자가 되기를 거리낄 안전한 인력들이다.

사기관리 차원에서 돈을 들인 시설답게, 내부로 들어서자 외부의 소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시설 안쪽의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운 저택의 서재처럼 꾸며져 있었다. 벽걸이 등(燈)으로 붙은 연한 주백색의 조명 아래, 같은 색조의 대리석을 바탕으로 삼아 부드러운 갈색의 유골함 수납장들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다. 수납장 사이의 공간감은 넉넉하고, 구획으로 나누어진 각각의 공간마다 추모객들을 위한 의자와 테이블이 존재했다.

눈높이에 유골함과 향로를 둔 수납장은 위쪽이 앨범을 꽂아두는 칸이었고 아래쪽은 유품을 보관하는 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 바닥과 닿는 가장 낮은 칸엔 추모객들이 편지를 넣는 함이 위치했다.

본디 기제사는 기일 전야, 정확하게는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인 자정에 치르는 것이지만, 수연은 이곳에 제사를 지내러 온 게 아니었다. 그저 추억을 더듬으러 왔을 따름.

나는 사후를 믿지 않는 자였고 수연도 마찬가지였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제사상이 죽은 이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고인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연락을 주고받는 친척 한 사람 없이 질박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가를 모이게 하는 전통으로서도 의미가 없는 행사인 것이다.

고로 수연과 내가 차리는 예는 향로에 꽂는 향 한 대와 영정 앞에서 눈감는 묵념뿐이었다.

한참을 망부석처럼 서서 영정만 바라보던 수연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가장 아래에 있는 편지함을 열었다.

딸깍.

함 안쪽의 상자에는 꽤 많은 수의 편지들이 쌓여있었다. 그야 고인의 인망이 좋은 편이었고, 1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쌓였으니 양이 적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이는 형식상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므로 유가족이라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경우는 드물다. 여기서 읽고 도로 넣어두는 게 보통인 것이다. 결국엔 이 또한 형식에 불과할지라도.

편지 상자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린 수연은 지난 1년간 새로 도착한 편지들을 추려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아, 전대 비서실장과 전대 기조실장이 쓴 것을 제외하면 겨우 세 통이 남을 따름이었다.

하기야 10년이면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부하들의 기억 속에서도 흐릿해질 때가 되었다. 수연 녀석을 곁에 두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슬슬 가물가물해질 즈음이었겠지.

솔직히 말해, 조직에 미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죽은 수혁은 수연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당시에 내게 「생명」을 구현할 마력이 있었더라면 이 녀석은 아직까지 살아서 활동하고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수연은 조직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전대 비서실장은, 나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수연을 두고 수혁의 죽음으로 완성된 인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사자 앞에선 절대로 하지 못할 막말이긴 하나 내가 보기에도 틀린 소린 아니었다.

그러니 나로서는 수혁의 죽음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고 해도 좋을 터.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지금의 나는 이 강수혁이를 살려두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나답지도 않은 생각이라 의아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나는 여길 왜 온 거지?

표면적인 동기는 충성심 관리였다. 수족이라고 해도 좋을 최측근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예외적인 행동이 대수일까. 그러나 이게 전부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에 못내 찜찜함이 남는다. 뭔가가 더 있기는 있는데, 그게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찜찜함.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수연이 묻는다.

“읽어보시겠습니까?”

“편지를?”

“예.”

“내가 봐도 괜찮은 거냐?”

“예.”

“……그렇다면야.”

기왕 여기까지 왔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함께 고인에 대한 추억을 곱씹는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나는 상자에 담긴 편지들을 무작위로 집어 내 앞으로 꺼내놓고, 종이가 상하는 일이 없게끔 신중하게 펼쳐 읽어보았다.

‘그냥 뭐……. 평범한 내용들이로군.’

행간에 묻어나는 감정이야 내 알 바가 아니었기에, 내가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조직의 내부사정이 적혀있는가 여부였다. 망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혹시라도 추적자의 손에 들어가 나를 찾아내는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이 점이 신경 쓰여서 편지함을 만들지 않거나, 아니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도 예외 없이 검열을 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수연의 전임자 녀석이 나를 만류했다. 부하들에게 미리 민감한 내용은 적지 말라 당부를 해두는 것으로 충분하리라고. 그리고 인적자원들의 경험적 동질성이 강한 내 조직의 특성상, 편지함을 둠으로써 얻는 집단적 정서관리 및 유대강화의 효용엔 부담을 감수할 가치가 있으리라고.

나는 그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각각의 편지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편지는 단문으로 그쳤으니까. 대략 여남은 통쯤 읽었을까? 눈시울 희미하게 붉어진 수연이 나직한 톤으로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오빠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안다.”

“……아뇨, 모르실 겁니다.”

“음?”

“종종, 저는 강수혁이라는 사람이 친오빠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나는 미간에 조금 주름을 잡은 채 눈을 깜박였다. 수연이 제 오라비를 남자로서 좋아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가 아니라, 그걸 내게 털어놓는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어서였다. 침묵하던 나는 무난한 말을 골라 대꾸했다.

“수혁이 녀석에게서 그런 기미는 못 느꼈었는데.”

“저 혼자서만 품고 있었던 마음이니까요.”

“그러냐.”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제가 품었던 마음 자체가 말입니다.”

“세간의 시선을 뭣 하러 신경 쓴단 말이냐. 네 인생에 십 원짜리 한 장 보태준 적 없는 무가치한 타인들의 기준을.”

“…….”

“사실 남의 인생이 어찌 되든 관심도 없으면서, 작은 허물이라도 하나 눈에 띄면 게거품을 물고 지랄을 해대는 분노중독자들. 세상에 그런 인간들의 오지랖만큼 천박한 것도 드물다. 너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압니다. 세상의 시선 따위 저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고개를 가만히 저은 수연이 나를 올곧게 응시한다.

“제가 궁금한 것은 형님의 시각입니다. 형님께선 어찌 생각하시는지.”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대답을 피해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물어보는 속내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오해가 없도록 분명하게 답해주었다.

“전혀 더럽지 않다. 그저 좋아하기만 했을 뿐인 감정이 더러울 이유가 뭐냐. 뭔가를 강요한 것도 아니고 해를 끼치려 든 것도 아닌데.”

“그렇습니까.”

“이게 왜 궁금하지?”

“그냥, 알고 싶었습니다.”

이 녀석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구는군.

난 애초에 가족이라는 개념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인간이다. 피붙이 사이의 정이라는 걸 경험한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한 내게 근친이니 뭐니 떠들어봐야 막연하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나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이 없는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한 가지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언젠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을 때, 형님께선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치러야 할 싸움을 다 끝내고 난 후에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인가?”

“비슷합니다.”

“솔직히, 생각해둔 것이 없다.”

“그렇습니까…….”

“사람이 사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삶 그 자체를 이유라고 해도 좋겠고. 난 그저 살아남고 싶을 뿐이야.”

자신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만물의 본질 그 자체라 했던 스피노자의 말은 내 심리에 대한 가장 간명한 해설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잠시 아래를 보던 수연이 재차 나와 눈을 마주친다.

“무언가 하고 싶으신 것이 생겼을 때, 그때는 제게 가장 먼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려는 해보마.”

“감사합니다.”

대체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다시 한 번, 오늘의 이 녀석이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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