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176화 (176/561)

#21. 의사, 열사, 그리고 테러리스트 (3)

1월 26일의 아침은 작은 소란 속에서 시작되었다. 본사 본관 로비가 하룻밤사이에 빽빽한 거미줄로 뒤덮여버린 까닭이었다. 차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거미줄 가닥들이 인공조명의 창백한 빛을 안개처럼 흐려놓은 풍경은, 통상시야를 기준으로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 다름 아니었다. 귀신이 튀어나오더라도 총부터 갈기고 볼 경태 녀석조차 이 풍경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을 정도.

“뭐야 이거? 까리한데?”

……멋있다고? 이게?

이해하기를 포기한 나는, 로비 내부 공간 전체에 적당한 강도의 염동력을 퍼트린 뒤 회전력을 섞어 단숨에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켰다.

“오오.”

지켜보던 경태가 흘리는 감탄의 소리.

넓은 로비의 가시거리를 1미터 이하로까지 축소시켰던 거미줄은, 그러나 하나로 뭉쳐놓고 보면 야구공 사이즈에 못 미치는 작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 덩어리의 한쪽에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 끼어있었으니, 순수 거미줄만의 부피는 당구공과 비교해야 할 것이었다.

제 거미줄에 파묻힌 각성체 거미는 자유를 되찾고자 안간힘을 써댔다. 그러나 탄성이 좋고 인장강도가 높은 거미줄 뭉텅이는 자그마한 각성체가 발휘하는 힘을 끈덕진 늪처럼 빨아들였다. 그나마 거미가 간신히 밀어내는 데 성공한 다리 한 짝은 하얀 실타래가 솜처럼 엉겨 붙어 둔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거미의 꽁무니엔 불사암 조직이 붙어있었다. 이 암이 거미줄을 뽑아내는 방적돌기 부근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각성체 거미는 이 상황에서도 견사(絹絲)와 당단백질의 조합을 질금질금 흘리는 중이었다. 신경신호에 교란이 일어난 것이다.

즉 로비를 하얀 미궁으로 만들어놓은 건 이 거미에게도 반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말.

나는 잠시 이 병든 거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거미줄을 치는 건 거미에게도 양분 손실이 보통이 아닌 일이다. 그리고 제 의사와 무관하게 나오는 줄을 스스로 먹어서 해결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을 터. 그렇게 줄을 먹기만 하다 보면 사냥을 하기가 어렵게 되고, 사냥을 하지 못하면 거미줄에 포함된 것 이외의 다른 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최선의 조치는 실이 나오는 족족 집을 만들어서 사냥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

과연 거미의 머리로 이 정도의 복잡한 사고가 가능했겠는가 싶기는 하나, 아메바보다도 크기가 작은 요정알벌(Tinkerbella)이 수 마이크로그램 단위의 뇌를 가지고서 일반적인 곤충들만큼 복잡한 행동을 해내는 걸 보면 꼭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었다. 때로는 뇌 용적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능의 최적화라는 게 있는 것이다.

뜯어진 거미줄 자락이 지저분하게 남은 로비 한복판엔, 미라처럼 말라붙은 곰쥐의 사체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본사 건물이 바로 옆에 인적 드문 산줄기를 끼고 있다 보니, 종종 쥐나 너구리 따위가 사람 모르게 숨어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글쎄, 일찌감치 추위를 피해 들어와 있던 녀석이 어쩌다 미궁에 갇혀 사냥감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불운한 야행성 동물이 없었더라면, 병든 거미는 제 고장 난 꽁무니로 인하여 굶어죽고 말았을 테지. 로비가 거미줄 범벅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

거미를 하얀 덩어리째 태워버릴까 했던 나는, 마음을 바꿔 까딱이는 손가락질로 부하 하나를 가까이 오도록 했다.

“적당히 가둬다가 집무실에 가져다놔라. 돌아와서 잠깐 살펴보고 버려야겠으니.”

“앗, 예.”

엉겁결에 실타래를 넘겨받은 경호실 소속 부하가 곧바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거미줄 덩어리가 제 장갑에 들러붙었기 때문. 경태는 이 꼴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눈살을 찌푸린 수연은 사람을 불러 지저분해진 로비를 속히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문 밖으로 나서니 영하의 냉기가 살갗에 와 닿는다.

방독면을 착용한 채 매일아침 산길을 달리는 건, 본사로 돌아온 이래 회복한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짊어지는 짐의 무게, 그리고 달리는 길의 험난함. 짐은 더욱 무거워졌고 달리는 길도 더 험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반동으로 찾아오는 고통은 참아낼 만한 수준이다.

술사로서의 나도, 사냥꾼으로서의 나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작은 방증이라 하겠다.

본사 건물에서 구보를 뛰어 닿을 수 있는 시설들 중엔 완공 직전 개발이 중지된 밀리터리 테마파크가 하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마파크 간판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달아놓은 위장일 따름이었다. 불시에 찾아온 불청객이 안쪽의 시가전 및 산악전 훈련장을 보더라도 ‘이런 데 서바이벌 게임장이 다 있었네.’ 생각하고 말게끔 하기 위하여. 장식품처럼 서있는 전차와 장갑차들이 실제로 기동이 가능한 물건임은 겉으로 보기만 해선 알아차릴 방도가 없다.

지하화 된 실탄사격장과 숙소, 체력단련장 등이 딸린 이 훈련장에선, 앳된 위구르인들 한 무리가 내 부하들의 지도하에 실전적인 체력단련에 임하고 있었다. 전투근육(Combat Muscle)과 속도 지구력(Speed Endurance)을 길러주기 위한 운동이다.

내가 방독면을 벗자, 헉헉대던 위구르인들이 튕기듯 자세를 바로잡으며 각 잡힌 경례를 올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엔 순수한 열의가 녹아있었다. 내가 발걸음을 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양.

어린 것들의 순수이자 광신도의 열정이다.

경례를 받은 나는 손짓으로 하던 일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얼룩덜룩한 전투복을 입은 이들 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메리옘 바투르의 그룹이었다.

나를 볼 때마다 엎드려 경의를 표하거나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올리는 건 앞으로를 생각해서라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구세주로서의 난 이들에게 형식적인 예의를 덜어낼 것을 요구했다. 나는 너희의 목에 있는 핏줄보다 너희와 가까운 자이니, 나에 대한 경의는 마음속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는 알림 샤히디에게서 들었던 구절을 입맛대로 변용한 것이었다.

“「레그 턱(Leg tuck)」 120회! 구령에 맞춰 3분 내로 끊는다! 준비!”

교관 역의 부하가 표준중국어에 영어를 섞어 외치는 말에, 그룹 전체가 일제히 철봉에 매달린다. 두 손이 눈앞으로 오도록 철봉을 붙잡은 상태에서 무릎이 팔꿈치에 닿을 때까지 끌어올리는 동작. 보통 사람에겐 맨몸으로도 하기 힘든 운동이지만, 누구 하나 각성자 아닌 사람이 없는 메리옘의 그룹은 발목에 묵직한 무게추까지 달아놓은 채였다.

“시작!”

메리옘 그룹의 평균적인 강화계수는 벌써부터 3.0을 넘어섰다. 다만 강화계수는 최소한의 체력이 받쳐줄 때 의미가 있는 것. 아직 몸이 덜 만들어진 이들 무리는 주어진 잠재력을 다 이끌어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메리옘 바투르다.

“올리고, 올리고, 올리고, 올리고, 정자세, 정자세, 정자세, 정자세-”

교관 역 부하의 구령에 맞춰 전신을 끌어올리는 메리옘은 목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보고받은 바, 메리옘의 어제 자 강화계수는 그룹 내에서 가장 높은 4.71. 그러나 발목에 찬 무게는 강화계수 2.9에 불과한 열일곱 살 동생과 비슷한 정도였다.

끄흐으으으읏…….

꽉 깨문 잇새에서 흐느끼는 듯한 신음이 새어나온다. 이 날씨에 홑옷을 입었음에도 등짝과 쇄골 사이는 땀으로 푹 절어있었고, 찬바람에 노출된 목덜미에선 희미하게나마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팔뚝에서 선명하게 갈라지는 근육의 결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다시 며칠이 흐르고 나면 체력만큼은 합격선에 오를 터였다.

이러한 성장속도는 각성능력자 특유의 회복력을 감안해도 상당히 빠른 것이었다.

‘기어코 하나가 죽었을 때만 하더라도 변질을 우려했었는데 말이지.’

내가 불행한 여섯의 정수리를 쥐고 어깻죽지에 제례검을 찔러 세례를 내렸던 그날, 한 명은 결국 마력회로가 파열되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마법적으로나 외과적으로나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는, 영혼이 흩어져버리는 형태의 죽음. 이는 내가 눈알을 파내거나 파내어졌을 때 맞이할 최후이기도 했다.

영혼을 잃은 몸에서도 아이의 심장은 몇 분에 걸쳐 무의미한 박동을 이어나갔더랬다. 내가 고개를 흔들며 물러나자, 메리옘은 쓰러진 아이 위에 엎드려 심장이 멎을 때까지 조용한 눈물을 흘려주었다. 소리를 내지 않은 이유는 슬픔이 덜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한 거짓말로 말미암아 과도한 비애를 내비칠 처지가 못 되었던 까닭이었다.

난 이 일을 계기로 메리옘이 조금이라도 변심할 가능성을 경계했었다. 그러나 메리옘의 거짓말은 그룹 전체가 내 세례를 통해 ‘기적’을 경험해버린 시점에서 더 이상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메리옘 그 자신도 내게 반감을 품는다거나 하는 기미를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작별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카라마이의 강제수용소에서, 그리고 공산귀족의 위락시설 지하감옥에서, 메리옘의 그룹은 아주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그 죽음만큼의 이별 또한 경험했을 것이었다.

작별을 슬퍼할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테러의 기수들.

수틀리면 메리옘을 제거해버릴 작정이었던 나로서는 적잖이 기꺼워해야 할 바였다.

“그만! 쉬어!”

철봉에 매달려있던 메리옘 그룹이 일제히 떨어져 땅을 딛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는 수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인 메리옘은 그대로 드러누워 가슴이 오르내리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차게 얼어붙은 땅의 거친 냉기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광배근, 외복사근과 내복사근, 복부 직근, 대퇴부 장요근, 둔부 굴근에 이르는 근육들이 혹사에 가까운 운동으로 도드라지게 부풀어 오른 모습.

교관 역의 부하가 짧게 박수를 치며 그룹 전체를 칭찬했다.

“2분 42초! 어제보다 7초나 앞당겼다! 아주 좋아! 다들 잘하고 있어!”

주저앉거나 드러눕거나 둘 중 하나인 위구르인들이 저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기력을 조금 회복한 몇몇이 내 쪽을 바라보기에,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한 번씩 끄덕여주었더니 한층 더 기쁨으로 충만한 얼굴들이 되었다.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성과만큼 인간을 고무시키는 것도 드물다. 여기에 경애하고 숭배하는 대상의 인정과 칭찬이 더해진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느끼는 종류의 성취감일 터. 배고프고 부족한 삶 속에서 항시 감시와 폭력과 억압에 노출되어, 1년 365일을 그날그날의 근심만으로 꽉 채워서 살아왔을 이들 무리가 언제 이런 긍정적인 경험을 해보았겠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내 나머지 부하들과 조직 전체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한을 풀어줌으로써 거둬들인 부하들은, 조직에 들어오기 이전까지의 인생이 끔찍한 실패와 배신과 가난과 사회적 부조리로 점철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조직 밖에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인정도 받지 못하다가,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었던 것.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스스로를 자조할 필요가 없어진 삶.

사는 게 더 이상 고통만은 아닌 인생을.

그렇게 자존감을 얻는 과정에서 가슴속에 자라나는 소속감과 충성심이란 여간해서는 흔들릴 일이 없는 뿌리 깊은 나무다.

이와 동일한 현상을 세계최강의 군대라는 저 미군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때 미 육군의 인적자원은 수준이 낮기로 악명이 높았다. 병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모병을 실시했던 탓. 쉽게 말해 죄질이 가볍다 싶은 범죄자들에게 “감옥 갈래, 이라크 갈래?”라는 사법거래를 제시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정신이 멀쩡한 인간은 육군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까.

그리하여 미 육군은 한동안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들의 폭발적인 증가에 시달리게 되지만, 객관적인 수치만 놓고 보면 범죄자 출신 병사들의 8할 이상은 제 역할에 성실한 모범적인 병사로서 군복무를 이행했다.

이게 어찌 가능했겠는가.

더러운 뒷골목을 전전하던 인생들에겐 군인으로서 받는 대우와 존중이 너무나도 소중했을 것이었다. 이는 곧 그들이 처음으로 누렸을 ‘인간다운’ 삶이었을 테니.

내 조직의 건전성을 보장하는 핵심적 배경요소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0